세이노 저
임솔아 저
애나 렘키 저/김두완 역
천선란 저
백온유 저
김호연 저
SF작가 '그렉 이건'의 30년전 작품(1992년 출판)이라고 한다. 공상과학 소설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지만 테드창의 작품들은 좋아한다. 테드창과 유사한 소설을 쓰는 작가의 소설이고 명작이라고 해서 읽어보았다.
쿼런틴, Quarantine, 隔離.
코로나로 인해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 쿼런틴이 소설의 제목이다.
누가 그랬는지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어느날 갑자기 검은 막(소설에서는 버블이라고 표현한다)이 지구와 태양계를 둘러싸 버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지구에서는 더 이상 별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지구가 격리된 것이다.
소설의 배경은 버블 이후 수십년 후의 지구다. 뇌의 신경 배선을 조절하여 감정을 억제하거나 조절하는 소프트웨어 '모드'가 만연하게 사용되고 있는 미래의 지구다. 소설의 내용을 적는 것은 스포일러가 될 듯 하여 스토리는 쓰지 않겠다.
30년전 소설이라고 하는데 소설에서 묘사되는 기술들은 2023년에 읽고 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아메바 벡터를 이용하여 나노머신을 뇌로 전달하는 장면의 묘사는 생명공학 전공인 내가 읽어도 어색하지 않았다. 양자역학과 생명공학에 방대한 지식을 갖춘 작가가 그려내는 소설의 백미다. 물론 '테드창'의 스타일과는 결이 다르다. 테드창의 스토리가 더 탄탄하다는 느낌이다. 기술적 장면의 묘사는 그렉 이건이 더 자세하다.
평행우주, 또 다른 나, 관찰자, 스핀, 파동, 수축 등 양자역학과 관련된 용어들이 많이 나온다. 양자역학에 대한 기본 지식은 어느 정도 알고 읽는 것이 좋을듯 하다. 아니면 소설을 읽으며 공부를 해 보는 것도 좋겠다.
테드창, 류츠신에 이어 관심가는 SF 작가를 발견해서 좋다. '내가 행복한 이유'도 읽어 봐야겠다.
쿼런틴(Quarantine)은 격리, 검역, 차단이란 뜻이다. 코로나19로 자주 사용된 단어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조금 다른 의미로 쓰인다. 현실에서는 전염병으로부터 인간을 격리한다는 뜻으로 쓰이지만, ‘쿼런틴’에서는 인간으로부터 우주를 격리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2034년 11월 15일에 지구의 밤하늘에서 별들이 완전히 사라졌다. 지름이 명왕성 궤도의 두 배나 되는 검은 구체 버블(bubble)이 태양계를 완전히 감싸버렸다. 이 초유의 사건이 벌어진지 30여 년, 별이 사라진 밤하늘은 이제 일상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2066년, 전직 경찰관이자 사립탐정인 닉은 한 정신병원에서 증발하듯 사라진 정신지체 여성인 로라 앤드루스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는데...
‘쿼런틴’은 처음부터 계속 양자역학과 관련되어 있다. 양자역학의, 양자역학에 의한, 양자역학을 위한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낯선 단어들과 내용들이 많아 읽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책을 읽는 동안 이해하기 어려워 중간에 그만 읽고 싶었지만 재미있어 책을 놓지 못했다. 어렵지만 흥미로운, 흥미롭지만 어려운 책이다. 여러 번 읽는 것을 추천한다. 나 역시 몇 번 더 읽어야 할 것 같다.
아직 다 읽은 건 아니라서 섣부르게 쓰는거지만 이 책 읽으며 <우주전쟁>이 생각났어요. 그 소설을 다 읽고 덮으며 이게 백년전에 쓴 거라고? 그렇게 오래된 소설속에 지금도 따라잡지 못한 또는 절대 따라잡아선 안될 미래가 여전히 미래처럼 느껴질때 즐거움이 증폭돼요.
본문 중 - 혹은 나쁜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아예 이유가 없든가. 혹시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닙니까? 평균적인 사람은 어느 날 책상 앞에 앉아서, 숙고에 숙고를 거듭한 끝에 합리적인 윤리학을 만들어 낸 다음, 그것에서 결점이 발견되었을 때 적절한 수정을 가한다고? 그건 순수한 환상에 불과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인생에서 경험하는 일들에 이리저리 치이면서 그냥 살아가고 있을 뿐이고, 그들의 인격은 자기들이 제어할 수 없는 영향에 의해 형성됩니다. 그렇다면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 뭐가 나쁘단 말입니까? 본인이 그것을 원하고, 또 그것에 의해 행복해질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