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 박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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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춤꾼
공간 [움직이기] 대표
진실
어릴 적부터 가수들의 춤을 따라하던 나는 결국 춤추는 것을 좋아한다는, 피할 수 없는 진실을 마주했다.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서 뒤늦게 무용의 길을 선택했다. 부모님 몰래 무용입시를 준비해서 단국대 무용과에 들어갔고, 숙명여대 대학원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했다. 무용수로 공연활동을 시작하였다. 기준과 틀에 잘 맞아 떨어지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점점 집착과 강박에 시달렸다. 남의 길을 찾아 메뚜기처럼 펄쩍펄쩍 뛰어다녔고, 앵무새처럼 로봇처럼 열심히 따라하기를 수련했다. 긴 시간동안 바깥만 바라보며 춤췄다. 바깥에 있는 줄 알고. 그러나 이제는 진실을 안다. 자유도 고유도 내 안에서 시작된다는 진실을. 그렇게 춤도 삶도 진실해져 간다.
고유
2010년 트러스트 현대무용단을 시작으로 2013년 호주단체 Stalker theatre와 작업하였다. 2014년 솔로 안무 [모범인간?], 2015년 프랑스 서커스 연수 및 솔로 안무 작업을 했다, 2016년 프랑스단체 Cie Osmosis와, 2017년 영국단체 Far from the norm과 작업을 했다. 좋아서, 잘하고 싶어서,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달렸다. 그러던 중, 2018년 한 지점에서 쥐고 있던 모든 것을 다 놓게 되었다. 더 이상 남의 기준과 틀에 맞추려고 애쓰는 것도, 춤도, 공연도 다 싫었다. 그렇게 차츰 무용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선생의 일을 충실히 해오던 마흔 살 어느 날, 문득 나이만 먹고 생계형 무용인이 된 내 모습을 보았다. 나는 그동안 대체 뭘 한걸까.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났다. 그리고 남의 길 따라가기를 완전히 그만두었다. 나의 길을 가고, 나만의 고유하고 진실한 몸짓을 하고 싶었다. 2023년 그렇게 [움직이기]가 탄생했다.
자유
자유롭게 춤추고 싶어서 무용을 했다. 그러나 마흔 살의 나는 얽어매어진 생계형 무용인이었다. 그때 떠난 우즈베키스탄 여행은 현실의 속박을 떠나 자유를 향한 것이었다, 어쩌면 그곳엔 자유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유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외부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뚜렷한 이상적 실체로써 자유를 생각했기에. 내가 찾던 자유는 허상의 개념일 뿐이었다. 어쩌면 나는 이미 자유로운 속에서 자유를 찾고 있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공간 [움직이기] 대표
진실
어릴 적부터 가수들의 춤을 따라하던 나는 결국 춤추는 것을 좋아한다는, 피할 수 없는 진실을 마주했다.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서 뒤늦게 무용의 길을 선택했다. 부모님 몰래 무용입시를 준비해서 단국대 무용과에 들어갔고, 숙명여대 대학원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했다. 무용수로 공연활동을 시작하였다. 기준과 틀에 잘 맞아 떨어지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점점 집착과 강박에 시달렸다. 남의 길을 찾아 메뚜기처럼 펄쩍펄쩍 뛰어다녔고, 앵무새처럼 로봇처럼 열심히 따라하기를 수련했다. 긴 시간동안 바깥만 바라보며 춤췄다. 바깥에 있는 줄 알고. 그러나 이제는 진실을 안다. 자유도 고유도 내 안에서 시작된다는 진실을. 그렇게 춤도 삶도 진실해져 간다.
고유
2010년 트러스트 현대무용단을 시작으로 2013년 호주단체 Stalker theatre와 작업하였다. 2014년 솔로 안무 [모범인간?], 2015년 프랑스 서커스 연수 및 솔로 안무 작업을 했다, 2016년 프랑스단체 Cie Osmosis와, 2017년 영국단체 Far from the norm과 작업을 했다. 좋아서, 잘하고 싶어서,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달렸다. 그러던 중, 2018년 한 지점에서 쥐고 있던 모든 것을 다 놓게 되었다. 더 이상 남의 기준과 틀에 맞추려고 애쓰는 것도, 춤도, 공연도 다 싫었다. 그렇게 차츰 무용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선생의 일을 충실히 해오던 마흔 살 어느 날, 문득 나이만 먹고 생계형 무용인이 된 내 모습을 보았다. 나는 그동안 대체 뭘 한걸까.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났다. 그리고 남의 길 따라가기를 완전히 그만두었다. 나의 길을 가고, 나만의 고유하고 진실한 몸짓을 하고 싶었다. 2023년 그렇게 [움직이기]가 탄생했다.
자유
자유롭게 춤추고 싶어서 무용을 했다. 그러나 마흔 살의 나는 얽어매어진 생계형 무용인이었다. 그때 떠난 우즈베키스탄 여행은 현실의 속박을 떠나 자유를 향한 것이었다, 어쩌면 그곳엔 자유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유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외부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뚜렷한 이상적 실체로써 자유를 생각했기에. 내가 찾던 자유는 허상의 개념일 뿐이었다. 어쩌면 나는 이미 자유로운 속에서 자유를 찾고 있었던 것인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