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노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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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나 렘키 저/김두완 역
천선란 저
김호연 저
백온유 저
언제부터인가 새치가 눈에 띈다. 한두 가닥 정도면 뽑을 텐데 그 정도가 아닌 듯해 뽑지도 못하겠다. 다행히 머리색이 밝아서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정도는 아니지만, 이대로 몇 년 후가 지나면 새치 염색이란 걸 해야 될지도 모르겠다. 염색을 하면 머릿결도 많이 상하고 피부에도 안 좋다는데. 무엇보다 '탈코'를 해도 시원찮을 마당에 염색이 가당할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흰머리 염색을 그만두기로 결심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고잉 그레이>다.
이 책에 나오는 여성들도 처음으로 검은 머리카락 속에서 흰 머리카락을 발견했을 때는 새치라 여기고 뽑아버렸다. 흰 머리카락의 수가 점점 늘어 숨길 수 없는 수준이 되었을 때는 남들 하는 대로 염색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을 계기로 염색을 그만뒀다. 피부가 상해서, 머리숱이 줄어서, 시간이 아까워서, 돈 들어서 등등 이유는 다양했고 결과는 놀라웠다. 염색을 안 해도 늙어 보이지 않았다(늙어 보이면 또 어떤가). 머리색이 환해지니 예전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컬러가 잘 어울렸다. 과감한 디자인의 옷이나 볼드한 무늬의 스카프, 액세서리를 시도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염색하는 데 썼던 비용과 시간을 온전히 자기 자신을 위해 쓸 수 있게 되었다. 죽기 전에 염색 안 한 게 떠오를까, 돈 없고 시간 없어서 하지 못한 일이 떠오를까.
흰머리 염색을 그만두지 못하게 만드는 최대 원흉은 사람들의 시선이다.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도 가깝게는 남편이나 자식부터 멀게는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한테까지 "염색을 왜 안 하느냐?"라는 비난 섞인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머리는 그저 깨끗하게 감고 단정하게 빗고 다니면 그만 아닌가. 몇 살 때까지는 염색을 하면 안 되고, 몇 살 때까지는 염색을 안 하면 안 된다는 규정은 대체 누가 정하는 걸까. 사회의 편견에 맞서 자기만의 멋과 자유를 즐기는 이 분들이 너무 멋있다.
호, 불호가 분명한 탓일까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회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회색분자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인상도 작용을 한 것 같기도 합니다.
나이가 들어가면 흰머리가 늘어가기 마련입니다. 젊어서는 까맣던 머리에 흰 머리가 조금씩 섞이기 시작하는데, 처음 흰머리를 발견하게 되면 대경실색(?)하는 수준으로 놀라고 당장 흰 머리를 뽑아내고야 마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다가도 여기저기서 비집고 나오는 흰머리를 뽑는 일에 지치기 마련이고, 결국은 한 번에 해결하는 방법을 찾기 마련입니다. 바로 염색이죠.
흰머리에 대하여 관대하신 분들도 염색을 하면 훨씬 젊어 보일 거라는 주변의 이야기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순간이 오기 마련입니다. 결국은 염색과 타협을 하게 되는데, 염색을 시작하는 순간 고난에 발목을 잡히는 셈입니다. 염색을 하면 흰머리가 가릴 수 있지만 흰머리가 자라는 것까지 멈출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검게 보이던 머리카락이 시간이 지나면 뿌리에서부터 흰색이 올라오기 시작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보기 싫어지면 염색을 다시 해야 합니다.
사실 저 역시 나이가 나이인 만큼 반백을 넘어 백발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물론 염색은 해본 적은 없습니다. 제 경우는 십대 시절부터 흰머리가 나기 시작했는데, 저도 처음에는 새치를 뽑아내곤 했습니다. 그런데 새치는 하나 뽑으면 둘이 나온다고들 하더니 흰머리가 많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사십대에는 관자놀이 부근은 하얀 색이 두드러졌던 것 같습니다.
당연히 염색을 하면 젊어 보일 것이라는 주변의 권유가 있었지만, 굳이 염색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습니다. 다행히도(?) 결혼한 다음이었던 탓에 흰머리에 신경을 쓸 이유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누구에게 젊어 보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라고도 했습니다.
<고잉 그레이>는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일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골랐던 것 같습니다. 일본 잡지 주부의 벗에서 기획한 책으로 머리칼을 염색하던 것을 중단하거나 자연스럽게 흰머리가 늘어가도록 한 열여섯 사람의 이야기를 취재해서 정리한 것입니다. 49세에서 80세에 이르기까지 연령도 다양하고, 가정주부에서 화장이나 패션 분야에서 일하는 전문가에 이르기까지 직업도 다양하였습니다.
나이 때문인지 머리칼이 흰 정도가 다양한 것 같습니다.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염색을 제외한 영역, 의상이나, 치장, 화장 등에는 신경을 많이 쓰는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늙어가지만, 나이 듦을 감추려하지 않고 오히려 내세우는 쪽으로 자신을 드러내려는 생각을 가진 분들이라는 느낌입니다.
흰머리를 오히려 자랑스러워하시는 이분들을 잘 표현하기 위해서인지 머리를 어떻게 다루는지 화장이나 의상은 어떤지 많은 사진을 곁들여 소개하고 있어서 책장이 수월하게 넘어갔습니다.
외국 책을 번역해서 소개할 때, 국내 인사들의 이야기를 더하는 책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만, 이 책에서는 예수정 배우님과 오금숙 화가님의 기고문을 더했습니다. 두 분 모두 염색을 해오다가 어느 시점에서 그만두었는데, 여러 모로 편한 느낌이 들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분들의 말씀과 모습을 소개한 뒤에 회색머리칼에 잘 어울리는 의상과 화장법을 별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성 독자라면 관심이 많을 듯합니다만, 아무래도 남성인 저는 그냥 건너뛰기로 했습니다. 책을 읽다보니, “일본의 헤어숍에 가면 헤어디자이너가 흰머리를 마치 질병처럼 취급해요”라는 어느 분의 말씀에 깜짝 놀랐습니다. 최근에 하버드대학에서 나온 연구에서는 나이 듦을 질병이라고 주장했다고 합니다만, 나이 듦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가 가진 운명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생노병사는 지구를 건강하게 지키는 원칙이라고나 할까요? 인간만이 영생을 누리게 된다면 지구가 얼마나 복닥거릴까 상상만 해도 겁날 지경입니다.
마흔 초반, 살기도 바빳던 시절, 어느날인가 오랜만에 쳐다본 거울 속 내 얼굴에 놀란 적이 있다.삶에 지쳐 표정이 없어진 얼굴,희노애락이 사라져 버린 생물이 날 보고 있었다.거기 언뜻 보이는 하얀 머리칼 몇 가닥이 반짝였다. 윤기있고 힘 있는 거라곤 그 흰 머리칼 뿐이었다. (-18-)
블론드와 섞인 그레이든, 흰머리와 섞인 그레이든 결과적으로는 같은 맥락이다.'화이트 그레이'라는 컬러는 여성의 피부를 돋보이게 할 뿐 아니라, 인간의 존재 자체를 더 고귀해 보이게끔 한다.이런 그레이의 숨은 가치는 충분히 살리고 볼 일이다. (-23-)
육아에 지쳐 나 자신도 꾸미지도 못한 채 일상을 살다가,
어느 날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쉰 살이 코앞이었다.
그래서 그레이 헤어로 머리를 길러, 이 순간 자신만의
누릴 수 있는 멋을 충분히 즐겨보자고 마음먹었다는 야마모토 씨.그녀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은 자극적이면서도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다. (-85-)
"건강한 피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피부에 괜한 부담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그건 얼굴도 두피도 마찬가지예요.올바른 방법으로 케어를 해야 피부도 반응을 보여준답니다.저도 어릴 때는 서핑이나 골프 같은 스포츠를 좋아해서 기미나 잡티가 많은 구릿빛 피부였어요. 하지만 기타라 비간 방식인 냉수 세안 등으로 피부 재생력을 더하고, 식사나 수면 등 생활 리듬을 개선하자 놀랄 만큼 피부가 좋아졌죠.육십이 되어도, 칠십, 팔십이 되어도 피부나 두피,모발은 마음을 쓰는 만큼 아름다움이 지속된답니다." (-153-)
머리를 감을 때는 가능하면 미지근한 물로 1차 세정하며 모발에 있는 오염 성분을 가볍게 씻어낸다. 그다음 샴푸를 손에 덜어 거품을 낸 뒤 두피 위주로 감는다.이때 손톱 밑,손가락 안쪽으로 모발 뿌리 부분을 마사지하듯이 두피를 부드럽게 문지를 것,모발 끝 부분까지 거품을 골고루 묻혀 감은 뒤 마지막에 깨끗이 행궈낸다. (-156-)
다시 말해 그레이 헤어가 되면 플래티넘 블론드나 그레이 계열의 머리칼을 가진 서양 여성들처럼 멋을 낼 수 있어서 나름의 즐거움이 생긴다는 것.지금껏 패션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던 사람들도 난해한 팬톤 컬러의 옷 마저 잘 어울리게 된다.게다가 어떤 컬러의 옷이라도 값비싼 제품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그레이 헤어의 크나큰 매력, 다양한 컬러 모험으로 새로운 맵시에 눈을 뜨길 바란다. (-183-)
플래티넘 블론드:백금발을 뜻함.아주 엷은 색의, 거의 순백 블론드에 가까운 모발.
컬러트리트먼트:샴푸한 뒤 색소가 포함된 트리트먼트로 헤어를 관리해주는 한 방법이다. 머리카락 큐티클 (모발 겉면에 각질이 있는 부분) 층에 트리트먼트의 색소가 내려앉으며 다른 색상처럼 보이게 된다. (-226-)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출연한 메릴 스트립이나, 한국의 강경화 외무부 장관을 보면,그레이 헤어가 잘 먹혀 들었다는 것을 자각할 수 있었다.멋스러움과 맵시, 그들의 지적인 지성미가 패션과 그레이헤어와 함께 더 빛을 발하고 있었다. 우리 스스로 할머니로 대표되는 그레이 색이 이제는 지성의 상징으로 바뀔 수 있는 야충분한 패션 조건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 책을 읽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매일 매일 외출을 할 때,자신의 흰머리가 신경쓰인다. 자신의 커리어를 높여나가고 염색에 대한 부담감에서 헤어나오는 것,주변 사람들이 새칠하 불러도 아무렇지 않도록 스스로 패션을 충분히 완성 시킬 수 있다.그건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며, 왜 그래이 색이 자신의 패션에 있어서 단점이 아닌 장점이 될 수 있는지, 하나 둘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그레이 색에 원색의 악세사리는 자신의 패션을 보완한다.초록이나 빨간 색의 악세사리가 그레이와 잘 어울리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더군다나 가방이나 목걸이, 귀걸이까지 자신만의 매편 연출이 가능하며, 남들과 차별화된 패션을 완성시킬 수 있다.즉 염색을 하지 않으면, 두피와 얼굴 피부가 좋아지며,자신의 몸을 혹사시키지 않을 수 있다.사람들의 시선에 신경쓰지 않고,원색의 옷을 소화시킬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흰색의 올림머리는 그 사람의 가치를 높여주고 ,기품을 올려줄 수 있고, 싼 옷이라 하더라도, 명품처럼 보일 수 있다.어떤 색이든 잘 받아주며, 더군다나 원색과 그레이 헤어가 더해진 패션 스타일은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감, 라벨을 올려줄 수 있는 패션 완성에 있어서 충분한 매개체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