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먼시 버턴힐 저/김재용 역
존 마우체리 저/장호연 역
김태용 저
안인모 저
오수현 저
지이·태복 저
역사상 최고의 축구선수는 누구일까?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논쟁적인 질문이다. 펠레, 마라도나, 메시, 호나우두, 호날두. 모두 기라성같 은 위대한 선수들이다. 아마도 질문에 답하는 이들이 선호하는 플레이 스타일에 따라 최고로 꼽는 답이 달라질 것이다. 피지컬, 테크닉, 카리스마 등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A급 대표팀을 영광의 자리로 이끈 리더십까지 고려해야 한다면 나는 펠레를 1순위로 꼽고 싶다. 사상 최초로 월드컵 3회 우승을 이끌며 줄리메컵을 영원히 조국 브라질에 안긴 업적은 어느 누구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조희창의 에센셜 클래식]을 읽는 내내 떠올린 질문은 바로 '역사상 최고의 축구선수는 누구?'처럼 각 분야에서 누가 최고인가였다. 특정 시대에 최고 선수를 꼽기는 상대적으로 쉽다. 그러나 시대를 아우르는 최고 선수를 꼽자면 활동 시기가 달라 직접 비교하기 어려운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어찌 보면 굳이 최고의 선수를 가릴 필요가 있는가 싶기도 하다. 한 명 한 명 그들이 남긴 위대한 족적은 영원히 남기 때문이다.
[조희창의 에센셜 클래식]은 저자의 표현대로 '전설 속의 거장' 25명의 생애를 다룬다. 익숙한 이름도 있고 처음 접한 대가도 있다. 본문에는 나와 같은 클래식 입문자뿐아니라 클래식에 정통한 마니아들까지 클래식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흥미로울 내용들이 가득하다. '프리츠 분덜리히'. 최고의 독일 가곡, 리트 테너이다. 서재에 꽂혀 있는 그의 베스트 앨범 표지에 이렇게 쓰여있다. '대체할 수 없는 목소리'라고. 슈베르트 가곡을 노래하는 미성. 가슴을 울리는 잔잔한 표현력. 이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분덜리히가 전설의 3 테너라는 엔리코 카루소, 유시 비욜링, 요제프 슈미트와 어깨를 견줄만한 테너였다는 사실을 이 책을 접하고 비로소 알게 되었다.
[조희창의 에센셜 클래식]이 독자들에게 주는 가장 큰 의미는 무엇일까? 주저 없이 한마디로 말할 수 있다. 공연과 레코딩의 주역인 전설적인 지휘자, 연주자, 성악가와 같은 마에스트로들의 삶과 에피소드와 거장들의 레퍼토리를 다룬다는 점이다. 이 것이 수많은 클래식 서적과 다른 가장 큰 차별성이다. 이 책은 흔한 클래식 작품과 작곡가 위주의 해설서가 아니다. 대개의 클래식 서적들은 음악가의 일생을 다루면서 그가 남긴 작품을 소개한다. 또한 작품과 관련한 명연주를 소개하거나 감명 깊게 들은 작품과 관련된 저자의 경험담과 감상을 풀어내며 명음반을 설명하는 방식이다.
이 책에서 찾을 수 있는 또 다른 재미는 다음 세 가지가 있다.
첫째, 클래식 역사에서 서로 비교되는 위대한 거장들 간의 라이벌 구도이다. 특히 동시대를 살며 직접적으로 비교되거나 경쟁을 하였던 토스카니니와 푸르트뱅글러, 아바도와 카라얀, 호로비츠와 루빈스타인, 하이페츠와 밀스타인, 칼라스와 테발디 등이 대표적이다. 서로 경쟁하는 둘 사이에서 벌어지는 긴장감, 작품 해석과 연주를 대하는 스타일의 차이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예를 들어 토스카니니는 작곡가가 남긴 악보와 의도를 그대로 재연하는 것을 강조하였다. 반면에 푸루트뱅글러는 악보 뒤에 숨은 음표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악보에 충실한 연주는 상상력의 결핍이고 지휘란 자유로운 창조행위라고 주장했다. 베토벤 5번 교향곡 운명. 동일한 작품을 둘이 어떻게 해석하고 연주했는지 비교하는 일이 무척 즐겁다.
둘째, 명연주, 명음반을 남긴 거장들의 진면목을 짐작할 수 있다. 사실 20세기 초중반 당시 공연장의 무대, 음향시설과 레코딩 기술은 오늘날에 비할 바 못된다. 하드웨어 수준도 그렇거니와 당시 비평가와 청중들이 선호하는 스타일 같은 소프트웨어적 성격도 지금과 매우 상이하다. 그리하여 직접 비교를 하기 몹시 어렵다. 그러나 거장들이 남긴 음원을 감상하다 보면 그들의 위대함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최근 유튜브에서 하우저와 캠벨의 협연 영상이 화제이다. 캠벨의 바이올린과 하우저의 첼로가 멋지게 협주된다. 둘 사이에 흐르는 끈끈한 시선과 연주 동작이 매우 육감적으로 다가온다. 현대 음악가들은 연주뿐 아니라 이처럼 퍼포먼스 역시 중요시한다. 반면 유튜브에서 거장들의 공연을 보자면 뭔가 결이 다른 느낌이다. 나탄 밀스타인과 테발디의 견해처럼 그들은 연주기교보다 해석을 더 중시했는지 모른다. 말스타인에게 퍼포먼스란 작품을 해석하여 연주를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https://www.youtube.com/watch?v=Sk2yoOY8CTU 하우저와 캠벨의 협연, Czardas |
https://www.youtube.com/watch?v=6pOfAv9gQzs 나탄 밀스타인, 바흐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 |
셋째, 본문에서 소개되는 25인의 주요 추천작품을 접할 기회가 있다. 저자는 한 명당 2장의 추천앨범과 유튜브 음원 3곡을 추천한다. 주옥같은 연주곡들 중에서도 저자가 권하는 음원들은 거장들이 남긴 정수이다. 하지만 이 음원이 더욱 값진 것은 이 음원들을 유튜브에서 검색하는 순간 꼬리에 꼬리를 물며 거장을 소개하는 채널과 각종 음원들을 추가로 발견하게 된다는 점에 있다. 내가 애호하는 오페라 아리아 중 하나가 [사랑의 묘약] 중 '남몰래 흐르는 눈물'이다. 이 노래는 거의 대부분 루치아노 파바로티 버전으로 감상했다. 그의 미성과 폭발적인 음량으로 듣는 재미가 그만이다. 저자가 추천한 엔리코 카루소 버전을 들었다. 1904년에 녹음된 것을 리마스터링 한 음원이다. 리마스터링 하였다지만 레코딩 수준이 떨어졌는지 왠지 빈티지한 소리를 들려준다. 하지만 카루소의 기교와 표현력, 찰진 고음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대부분의 오디오 마니아들은 오디오 기기에 집착한다. 미세한 음질차이를 얻기 위해 앰프는 차치하고 선재 하나에 수백만 원 이상을 소비한다. 정작 감상할 음원에는 신경을 덜 쓴다. 멋진 앰프와 스피커를 뽐내는 마니아가 모은 음원들 중에 모노반 하나 없어 겉멋만 든 듯하여 안타까웠다는 어느 오디오 애호가의 푸념이 새삼 떠올랐다. 이 책에 소개된 다수의 거장들이 남긴 작품 중에 오리지널 버전이 모노반이 꽤 많다. 스테레오반에 비해 선명하고 깨끗한 소리를 들려주지 못하더라도 그들의 전성기를 엿볼 수 있는 유일한 명반이란 점에서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가치를 절감하였다. 흔하디 흔한 오천 원, 만 원하는 음원 수십 장을 장만하려는 욕심에 앞서 구하기 힘든 모노반 한 장을 소장하려고 애써야겠다.
[조희창의 에센셜 클래식]을 통해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이나 내가 가지고 있던 편견들을 깨닫게 되었다. 우선 20세기를 대표하는 루치아노 파바로티를 능가할 수 있는 천재, 엔리코 카루소의 진면목을 알게 되었다. 자클린느 뒤 프레에 못지않게 불행한 삶을 살다 간 비운의 피아니스트 클라라 하스칼을 처음 접할 수 있었다. 카라얀을 최고의 지휘자라 여겼던 나의 무지와 편견이 시원하게 깨지기도 하였다. 카라얀이 굴지의 이전 선배들에 비해 탁월했던 능력은 지휘가 아니라 레코딩과 비디오를 빼놓을 수 없는 시대에서 이를 적절하게 활용한 시대감각일 것이다. 19세기 청중들은 파가니니를 볼 수 있는 행운을 가졌다. 20세기 우리들 곁에는 하이페츠가 존재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절대 완전한 연주가는 없다는 클래식 역사에서 완벽에 가까운 유일한 연주자라 일컬어졌기 때문이다.
요즘 음원차트는 아이돌 그룹이 장악하고 있다. 장년의 중견가수를 만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20대들에게 7080 가요는 흘러간 옛 노래일 뿐이다. 클래식에 있어 이 책에서 소개되는 음악가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대가들이다. 가요에 비유하자면 핫한 아이돌이 아니라 오래전에 은퇴한 장년 가수이다. 그러나 이제는 살아서 만날 수 없는 전설들이다. 그들이 남긴 음원을 감상하면서 읽어 내려가는 전설들의 삶과 에피소드가 가슴에 하나하나 새겨진다. 여기에 저자의 필력이 더해져 오랜만에 읽는 내내 리듬이 흐트러지지 않고 편안하게 독서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아주 가끔 선친께서 들으시던 원로가수 김희갑 씨의 LP를 걸곤 한다. 올드하게 들리는 소리가 그리운 어린 시절을 일깨운다. 마찬가지로 이 책을 통해 잔잔한 여운이 떠올랐다. 소장하고 있는 클래식 LP들을 정리한다고 하고선 차일피일 미루기 어느새 반년이 지나고 있다. 지금의 여운을 잊지 않기 위해 겨울이 가기 전에 한 장씩 꺼내 들으면서 작곡가, 지휘자/연주자 별로 분류하고 재킷 앨범의 비닐커버를 새 단장하려고 한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을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이 글의 제목과 같다.
책에 언급된 거장들의 이름을 턴테이블 모양으로 나열해 디자인한 표지가 그러한 느낌을 더해준다.
마치 음악이 흘러 나오는 것 같달까.
저자 소개.
마에스트로로 인정받는 연주자들의 삶을 다룬 책이라 저자에 관해선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서평단에 응모하게 되었는데 클래식 음악 전문 평론가셨다.
<객석>을 구독하시는 분들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한 분이시겠지.
통도사 쪽에서 '베토벤의 커피'라는 카페를 운영하신다고 하는데 언젠가 한 번 가 볼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다.
(작년에 출간된 저자의 동명저서가 있기에 조만간 구입할 계획이다. 어딜가나 '거기 괜찮다더라' 하는 카페가 있으면 가보고야마는 나는야 '커피사랑꾼'이기도 하니까.)
목차는 이렇다.
클래식 음악을 소재로 한 책들이야 이전부터 꾸준히 나오고 있었지만 유독 이 책에 흥미를 느꼈던 건 요즘 나오는 클래식 음악을 주제로 한 도서들을 보면 작곡가와 연주에 대한 내용들이기보다는 영화나 미술, 도시 등 저자 개인의 관심분야(혹은 전문분야) 한 가지에다가 부수적으로 음악을 접목시킨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던 반면 이 책은 오직 당대 음악가들의 '삶'과 '연주'에만 중점을 두고 기술되었다는 점이다.
책은 녹음 기술이 발명된 이후인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사이에 태어나 현대까지 활동했던 거장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들이 살아왔던 시대적 배경을 떠올려 보면 '세계대전'이라는 큰 전쟁만 두 번이나 치렀으니 어느 대륙, 어느 누구랄 것 없이 대혼란과 고난의 시기를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겪어 내야 했던 시기다. 그런 가운데서도 신으로부터 주어진 천부적 재능을 허비하지 않고 스스로가 정한 예술적 지향을 고수하며 혼을 불태웠던 음악가들의 일생을 짤막하나마 전문가의 소개글로 만난다는 건 정말이지 흥미진진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
특히 파블로 카잘스의 경우엔 따로 평전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애초에 내가 그와 같은 시대를 살다 간 연주자들의 삶에 흥미를 갖게 된 것도 그들의 생애과 예술적 업적 모두가 알고 보면 한 개인의 대단한 기록으로만 남은 것이 아니라 세계사의 모든 중요한 순간들과 언제나 궤를 함께 해왔고 동시대를 살아가던 이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과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났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 것이 그 어떤 가공된 드라마보다 훨씬 놀랍고 감동적이기 때문이다.
책에 소개된 25인의 거장들 중에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이름이 약 1/4 정도 되었는데 조금 아쉬웠던 건 구소련 출신 연주자들 중 호로비츠나 나탄 밀스타인처럼 망명을 선택해 비교적 널리 알려진 연주자들 위주로 일부러 선정한 것인지 리흐테르나 오이스트라흐의 이름이 빠졌다는 것이다.
덕분에 몇 년 전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일주일간 병상 신세를 지면서 읽고는 집에 와서 책꽂이에 가만 꽂아 두었던 <리흐테르 회고록>을 다시금 뒤적거리며 아쉬움을 달랬다. 두 번 째 읽다보니 처음 읽을 때 놓쳤던 흥미로운 사실들을 여럿 발견하게 되어 기쁘기도 했다. (리흐테르는 25인의 거장에 나오는 거의 모든 지휘자들과 협연했다는 사실!)
그리고 한 가지 의문도 생겼다. 그 책도 어찌보면 리흐테르라는 개인에 대한 특별한 존경을 가진 저자에 의해 정리된 것이니 이 분의 평가는 또 다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끝으로 놓칠 뻔한 이 책의 장점 한가지!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각 연주자의 명연으로 평가받는 앨범소개와 함께 유투브 동영상 QR코드를 제공함으로써 검색하는 수고로움이나 별도의 재생기기없이 휴대폰 하나로 바로 스캔해 감상할 수 있게 독자의 편의를 도모했다는 것. 어학용 도서 외에도 이렇게 QR코드를 활용해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도서가 속속 나오는 것 같아 정말 좋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미디어샘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