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화 저
신하늘 저
가토 겐 저/양지윤 역
김민정 저
글배우 저
시마모토 리오 저/김난주 역
이 책이 우리 모두에게 길 위의 빛나던 순간을 소환해 주길 기대한다. 터널을 지나는 우리에게 한 줌의 햇살이 되기를, 어두운 방 안에 걸린 작은 창문이 되기를 소망한다. 여행이 보이진 않지만, 사라진 건 아니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이성부 시인의 시 '봄'처럼, 여행도 언제 떠났느냐는 듯 우리 곁으로 돌아오리라 믿는다. '쉘위고(shall we go?)'손 내밀 수 있는 날, 가지런히 숨 고르며 그날을 애타게 기다린다. _prologue
여행은 삶과 이어지고 삶은 결국 여행으로 향한다. 책표지만 봐도 공항으로 향하고 싶어지는 「여행이 멈춰도 사랑은 남는다」는 저자의 여행 이야기를 읽다 2009년 처음 읽었던 저자의 책을 찾아보기도 했다. '시간이 되면 가지' '여유가 되면 가지' '언젠가 가겠지' 언제든 훌쩍 떠날 수 있었던 여행에 제약이 걸리기 시작하며 왜 이토록 일상으로부터의 떠남에 목마른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추억할 여행지가 많은 여행작가로의 저자의 직업이 부럽기도 했던 책인만큼, 짧은 여행지들의 글이 여행에 목마른 갈증을 잠시나마 달래줌을 느끼게 된다.
이토록 여행을 그리워하고, 자유로운 떠남이 가능해질 시기를 기다리게 되는 시기를 살게 될 줄은 알았을까? 보이지 않는 여행, 이 여행이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건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여행지도 예전처럼 마스크 없이 여행할 수 있는 시기가 올까? '언젠가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해야지,라는 미룸을 더 이상 미루지만 말아야겠다'라는 생각에 책장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소중하게 느껴졌던 여행 에세이다.
멋진 사진은 자체로 큰 힘을 갖는다. 그러나 사진에서 찾을 수 없는 가치가 있다. 팔딱팔딱 뛰는 에너지와 끝없는 인간의 노력 같은 것들이다. 사진 속에 숨어 있는 진정한 이야기를 발견하는 길, 이것이 여행하는 이유다. _124p.
누군가 '여행을 정의한다면?'하고 물으면 '해결사'라고 답한다. 물론 마지막 '사'자를 발음할 때는 약간 말꼬리가 올라가겠지만 말이다. 나에게 여행은 해결사였다. 일상이 따분해질 때, 여행은 신나고 재미있는 모험이었다. _138p.
여행은 스스로 방전하고 충전하는 작업이다. 여행은 수많은 눈빛의 스침이다. 여행은 내 안에 숨어 있던 나를 발견하는 과정이자 시간과 공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타임머신을 타는 것이다. 나이쯤은 훌훌 던져버릴 수 있는 통쾌한 시간이다.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여행에 대한 정의 중 딱 하나만 꼽아보라면, 바로 여행이야말로 나를 숨 쉬게 하는 이유라고 답할 것이다. _142p.
#채지형 #상상출판 #여행에세이 #에세이 #상상팸10기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여행이 멈췄다. 새로운 전염병 때문에. 그래도 남는 건 뭘까? 여행 작가 채지형은 말한다. 사랑이라고. 그녀의 책, 《여행이 멈춰도 사랑은 남는다》(2021)라는 이름에서. 그녀의 말에 적극 공감한다. 모두들 여행에 가면 남는 건 사진이라고 말하지 않던가. 그 사진에 담겨 있는 것. 사진으로 투영된 여행자의 가슴에 담겨 있는 것. 그것은 사랑이다. 그렇다. 여행의 기록에 담긴 것은 사랑이다. 찬란하게 빛나고, 다채로운 색채의 사랑이다.
'돌아보니, 인생의 변곡점마다 피와 살이 된 여행의 순간이 있었다. 오늘의 나는 그 순간이 모여 이루어졌다. 가슴 찡했던, 후끈 달아올랐던, 소름 돋을 정도로 오싹했던, 넙죽 엎드려 절하고 싶었던, 무릎을 탁 치게 했던 길 위의 순간을 책에 담았다. 여행 유전자를 물려주신 부모님에 대한 사연, 예쁜 쓰레기를 모으는 여행 컬렉터의 구구절절한 변명도 들어 있다. 신문과 잡지에 낸 글이 주를 이루지만, 처음 선보인 글도 적지 않다.' -prologue <여행, 너를 믿는다> 중에서. (7쪽).
여행의 순간들. 그 순간들이 모이고 쌓여서 삶의 힘이 되어 준다. 사랑을 품고 있기에. 여행 작가 채지형에게도 그랬다. 지금은 여행이 멈췄지만, 세상의 곳곳을 다녔었던 그녀. 네팔, 핀란드, 미국, 스리랑카, 스위스, 인도, 일본, 타이완, 나미비아, 태국 등. 여기저기의 하늘을 보고, 이곳저곳의 땅에 닿았다. 그리고 다양한 사람도 만났다. '여행의 효능을 이야기할 때 빠트릴 수 없는 것이 만남(140쪽)'이라는 그녀. 부드럽고, 따뜻한 사람과의 만남은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하늘, 땅, 사람. 그녀는 그 창문을 통해 무한하고, 끊임없는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여행 유전자를 물려받았다며 밝히는 사연들. 또, 그녀가 여행하며 모으는 것들을 보여 주기도 한다. 인형, 마그네틱, 패브릭, 커피, 차, 영수증, 엽서 등. 그중에 '인형은 여행을 하며 만났던 '그 사람'을 닮았다(258쪽)'며 모은다고 한다. 생각해 보니, 인형은 정말 그곳의 사람을 닮았다.
이 모든 것이 사랑에서 비롯되었고, 사랑을 남겼다.
'이 책이 우리 모두에게 길 위에 빛나던 순간을 소환해 주길 기대한다. 터널을 지나는 우리에게 한 줌의 햇살이 되기를, 어두운 방에 걸린 작은 창문이 되기를 소망한다. 여행이 보이지 않지만, 사라진 건 아니다.' -prologue <여행, 너를 믿는다> 중에서. (7쪽).
'나에게 여행은 해결사였다(138쪽)'는 그녀. '여행이야말로 나를 숨 쉬게 하는 이유(142쪽)'라는 그녀. 그녀는 누구보다 뚜렷한 여행 유전자를 물려받은 게 확실하다. 그래서 여행이 일상인 여행 작가가 되었나 보다. 그리고 여행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며 살아가고. 그렇다고 여행 유전자가 없는 사람들은 실망하지 마시라. 여행은 분명 모두에게 주는 힘이 있다. 길 위에 빛나는 발자국을 남기던 순간들은 누구에게나 있기에. 그 순간들은 한 줌의 햇살이 되고, 작은 창문이 되기도 한다. 사랑으로. 여행은 그런 것이다. 아쉽게도 전염병이 세상을 뒤덮은 지금은 이런 여행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녀의 말처럼 여행이 사라진 건 아니다. 여행은 꼭 돌아온다. 여행의 귀환을 기다리며 나온 이 책, 사랑이 담긴 이 여행 기록은 아름다운 기도다. '여행 다닐 때 꼭 엽서를 쓴다(282쪽)'는 그녀가 새로운 엽서 쓰기를 염원하며 하는 기도. 여행이 남긴 사랑으로 다시 여행을 부르는 기도. 사랑스럽다.
출판사로부터 받은 책으로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