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고 지키기 위해 싸우는 소녀들
강력한 여성 서사에 목말라 있던 독자들의 갈증을 채워 주다!
《와일더 걸스》의 소녀들은 ‘소녀성’이라는 환상을 산산이 부숴놓는다. 이들은 부족한 물자에서 조금이나마 더 식량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를 물어뜯고 싸우며, 학교로 침입해 오려는 야생동물들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사격을 배운다. 거칠고, 야성적인 소녀들은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소녀들에게 요구했던 소녀다움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와일더 걸스》는 ‘소녀’라는 단어를 성인이 되기 이전의 어린 여성, 여자아이라는 사전적 정의를 부정하고, 자기 자신과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는 존재로서 그 뜻을 다시 정의 내린다. 이들은 완벽하지도, 아름답지도 않고 희생적이거나 성녀로서 그려지지도 않는다. 그저 소중한 사람과 함께 생존하고자 하는 불완전한 인간 그 자체다. 그 어떤 문학 작품과 미디어에서 그린 적 없는 강인하면서도 거친 소녀들의 모습은 강력한 여성 서사에 목말라 있던 독자들의 갈증을 채워 주기에 충분하다.
작품의 주인공인 헤티와 바이엇 그리고 리스 삼총사는 《와일더 걸스》가 정의한 소녀성을 충실히 재현한다. 그동안 여성 캐릭터에게 암암리에 요구되었던 ‘도덕적 완벽함’ 대신 저마다의 결함을 보여 주며, 실수를 하고, 때로는 이기적인 선택을 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그동안 재난 서사, 생존과 SF가 접목된 이야기에서 제한적으로 쓰인 여성 캐릭터의 폭을 넓힌 한 걸음이기도 하다. 동시에 《와일더 걸스》를 단순히 생존 SF 소설이라고만 칭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극한의 상황에 몰려 있는 가운데에서도 소녀들은 우정과 사랑을 키워 나간다. 치료제가 오고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는 믿음과 생존에 대한 의지를 버리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모두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10대 소녀들 사이의 아슬아슬한 우정과 애틋한 사랑은 그 어떤 퀴어 문학과 성장 소설에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깊이가 담겨 있다.
첫 번째 데뷔작으로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와일더 걸스》는 신인 작가 로리 파워의 첫 번째 데뷔작이자 첫 번째 장편 소설이다. 해외 유명 작가들의 수상 작품이나 유명작이 번역되는 추세인 한국 출판계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데뷔작이 번역된다는 것은 그만큼 작품성과 흥행성을 인증 받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와일더 걸스》는 데뷔작임에도 독자와 평단의 인정을 두루 받으며 〈뉴욕 타임스〉의 베스트셀러에 올라 많은 동료 작가들의 지지를 얻기도 했다. 해외 도서 리뷰 사이트인 ‘굿리드스(goodreads)’에는 4만 8000개의 리뷰가 달렸으며, 아마존의 페이지에도 2000개 이상의 별점이 매겨져 있다.
로리 파워는 현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이 자신의 초상을 맡겨 둘 수 있는 여성 작가인 동시에 앞으로 어떤 작품을 만들어 낼지 기대하게끔 만드는 신인 작가다. 《와일더 걸스》는 다음 세대를 책임지게 될지도 모를 훌륭한 작가의 첫 단추가 될 작품이며, 책을 덮음과 동시에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여운을 지니고 있다. 눈 밝은 독자라면 위대한 작가의 첫 걸음을 놓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