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생거 사원은 제인 오스틴의 초창기 작품이면서 사망 후 출판된 사연있는 작품이다.
캐서린, 헨리, 존, 이자벨라 4명의 주요인물과
앨런부인, 쏘오프 부인, 틸리대령, 틸리장군이라는 주변인물이 등장한다.
17살의 놀길 좋아하는 시골처녀가 도시 사교계에서 느낀 첫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조신하지 못하고 분주히 뛰어 다니길 좋아하지만 심성과 기질이 못되지 않았고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은 읽었던
캐서린은 바스의 사교계에서 두 남자와 두 여자친구를 만난다.
캐서린은 그들 사이에서 17살 시골처녀의 미숙한 면과 성숙해질 싹수있는 지조있는 행동을 보여준다.
캐서린에게 관심을 표출하는 부유한 장남인 존과 자신이 관심 갖는 차남인 헨리가 등장한다.
부유하지만 자만과 허영에 가득찬 존을 알아본 관찰력과 경제적 안정에 안주하지 않은 모습과
지난 잘못을 조금도 다시 들추지 않는 헨리의 관대함과 점잖은 태도를 알아본 캐서린의 분별력에 박수를 보낸다.
머물던 친구집에서 친구의 아버지로부터 갑자기 쫓겨난 것에 대해 자신의 가족을 걱정시키지 않으려고 무슨말을 해야할지 고민하는 모습과
친구를 나쁜 사람으로 오해 받지 않게 고민하는 모습,
그 황당한 일에 슬퍼하거나 분노하거나 가족을 끌어들이지 않으려 고민하는 행동들을 보면서
타고난 심성과 기질을 무시 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헨리는 특별히 캐서린을 결혼상대로 마음에 두고 있지 않았던 것 같은데
끝에 자신의 아버지의 심한 행동을 사과하러 그녀의 집을 찾았고
그녀와 가족이 보여준 분별있는 자신을 좋아하는 애정에 고마움을 느끼고 그녀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고
그런 신의에서 나온 결단을 확고히 지켜 결국엔 부친의 허락을 받아 낸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있다면 그걸 표현해야 하며
상대의 말과 행동을 잘 관찰해 분별의 기준으로 삼아야 함을 다시 느꼈다.
노생거 사원의 오만과 편견처럼 반전은 없었지만
부모, 부부, 친구, 형제자매간의 올바른 관계에 대한 기준을 제시했다.
분별없이 자식 자랑을 일삼거나 가혹하게 자녀의 기를 누르는 부모가 되지 않고
안아주고
평정심을 유지하고
기다려 주고
부드럽게 타이르는 말 한마디
도움이 되는 책을 선물해주는 부모가 되겠다고 다짐해 본다.
『노생거 사원』은 제인 오스틴의 첫 소설이지만 그녀의 유고작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수전』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동명의 타 소설이 출판되어 오스틴이 판권을 회수했다. 여주인공의 이름이 캐서린으로 바뀐 것 외에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고 하며, 제목이 『노생거 사원』이 된 것은 유족의 뜻이었다고 한다. 첫 소설이라 그런지 능숙함이나 세련미는 부족하지만 풋풋함이 있으며 화자의 빈번한 개입은 또 다른 재미를 준다. 『노생거 수도원』으로 나온 펭귄클래식 버전을 먼저 읽었는데, 내 취향에는 을유판 『노생거 사원』이 더 맞았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음에도 등장인물 간의 대화나 문맥을 보다 자연스럽게 파악할 수 있었다. 역자의 주석과 해설도 꼼꼼하여 기쁘게 읽었다.
어떻게 보면 『노생거 사원』은 전형적인 <오스틴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결혼 적령기의 두 남녀가 만나 무도회에서 춤을 추고, 대화를 나눈다. 집 구경도 하고 편지도 보내고 그러다 결혼을 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독특한 여주인공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작가가 서두에서 밝히고 있듯이, 캐서린 몰란드는 여주인공이 되기에 부족한 자질을 지니고 있다.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한 외모로 태어나 무엇 하나 뛰어난 점이 없기 때문이다. 여동생도 잘 외는 시를 겨우 외는데다 활동적인 성격이다보니 숙녀다운 몸가짐을 익히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한적한 시골 출신이기 때문에 경험이 없어 사람을 대하는 매너가 부족하다. 따라서 그녀는 자신이 빠져있는 고딕소설의 프레임에 맞춰 현실을 해석한다. 자신의 고향 풀러튼은 현실이고, 바쓰와 글로스터셔(노생거 사원)에서 접하는 상황들은 새롭기 때문에 고딕 스타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즉 그녀는 현실과 소설을 구분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38p 이자벨라는 그가 목사라서 더 좋다며 "난 그 직업에 끌려"라고 했다. 이렇게 말할 때 한숨 비슷한 걸 쉬었다. 그 애틋한 감정이 무엇인지 캐서린이 캐묻지 않은 건 실수였다. 사랑의 섬세함이나 우정의 의무에 대한 경험이 일천하다 보니 친구에게 어느 시점에 미묘한 농담을 적절하게 던져야 하는지 또는 어느 시점에 말해 달라고 졸라야 하는지 몰랐다.
136p 참신하고도 분별력 있는 사랑스러운 감정 표현을 듣고 캐서린은 알고 있는 모든 여주인공들을 떠올려 보았다. 그녀의 친구는 다른 때보다 화려하게 말할 때 가장 사랑스러워 보인다.
캐서린이 자기 딴에는 나름의 예의를 차리느라, 대화를 할 때 자기 주장이 그리 강하지 않다. 게다가 눈치가 없어서 소통이 잘 되지 않는데 이럴 때는 그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하다. 경험이 부족한 탓에 자신의 사고방식에 갇혀, 남을 의심한다거나 그의 속마음을 짐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캐서린과 그의 오빠 제임스는 쏘오프 남매의 약은 꾀에 놀아나게 된다. 그녀의 이런 점은 헨리에 의해서도 일깨워지는데, 이자벨라의 바람기에 대한 대화가 이를 잘 보여준다. 캐서린은 이 말도 못 알아듣는다...
149p 헨리가 웃으며 말했다. "사람들의 행동 동기를 별생각 없이 그냥 받아들이는군요." "네? 무슨 말이죠?"
반면 헨리는 매력적이고 똑똑하며 짓궂은 인물이다. 그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어떤 면에서는 캐서린의 교육-회화 강연과 전반적인 매너-을 담당한다. 그의 말을 듣노라면 우월감을 바탕으로 상대를 조롱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여성들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은 그의 여동생 엘레노어에 의해 사실이 아님이 밝혀진다.
129p "지금으로서는 더 진지한 사과를 듣긴 틀렸어요, 몰란드양. 멀쩡한 기분이 아니라서 저래요. 하지만 오빠가 혹시 어떤 여성에 대해 부당한 말을 하거나 내게 불친절한 말을 하는 것 같다면 그건 전적으로 오해라고 확신해요."
사실 헨리는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다른 사람이다. 여성들을 무시한다기엔 다른 남성들이 여성의 전유물이라고 무시했던 <고딕 소설>을 모두 읽었으며 이에 대해 캐서린에게 가르침을 주기도 한다. 또한 캐서린이 범한, 아버지에 대한 치명적인 실례에도 성숙한 태도로 그녀의 잘못을 고쳐 주며 그녀가 <상식> 선에서 사고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헨리가 캐서린을 가르치는 모습이 자주 나오다보니『노생거 사원』은 젠트리 버전의 『마이 페어 레이디』란 생각도 든다.
소설 말미에서 작가가 밝히고 있듯이 헨리가 캐서린에게 진지해진 것은 사실 캐서린이 그를 너무 좋아해서다. 캐서린은 헨리에게 첫 눈에 반했고 아주 노골적이었다. 거기서 나아가, 캐서린은 말 그대로 헨리를 숭상한다.
129p 캐서린은 헨리 틸니가 잘못할 리가 없다고 쉽게 믿었다. 가끔 그의 행동에 놀랄 때가 있지만 그의 의도는 언제나 옳았다. 이해하지 못해도, 이해한 것을 좋아하는 만큼이나 그것도 좋아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소설을 잘 읽어보면 헨리 역시 캐서린을 좋아하는 티를 냈다. 쏘오프의 얼쩡거림에 <저 작자는 누구냐> 질투를 보이는 것이 하나요, 그녀의 필사적인 사과에 흐뭇해하는 것이 둘, 그리고 그녀를 놀리지 말라던 여동생에게 <익숙해지도록 연습을 시킨다>고 대답하는 것이 셋이다. 사실 틸니 장군이 캐서린을 며느리감으로 고려하게 된 계기도 둘째 아들이 그녀에게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이 소설은 금사빠(?) 캐서린이 순진한 사랑스러움으로 <이성적이고 잘 교육받은 남성> 헨리를 손에 넣는 과정인 것이다!
『노생거 사원』은 단순한 로맨스 소설이 아니라 <소통> 그리고 <성장>에 관한 글이다. 작품 초반에 캐서린은 가족을 떠나 새로운 도시로 간다. 앨런 부부가 함께이지만 친구를 사귀고 사교 활동을 하는 것은 스스로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마치 우리가 대학을 가거나 이사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처럼 말이다. 또 캐서린이 종종 맞닥뜨리는 상황에서 보이는, 노련하지 못한 어수룩한 모습들은 성장하는 과정이며 곧 누구나 거쳤을 법한 경험이기도 하다. 상대방과 <소통>하기 위한 진실성은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캐서린을 손에 쥐고 흔들려는 쏘오프 남매의 획책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틸니 남매와 가까워질 수 있었던 이유다. 풀러튼에서 바쓰로, 글로스터셔로 그리고 우드스턴에 이르기까지 캐서린은 조금씩 매너를 갖추어 간다. 여주인공으로서 부족했던 자질은, 그녀가 소설과 현실을 더 이상 혼동하지 않고 매너를 갖춤으로써 채워진다. 일종의 성장기인 셈이다. 이것이 바로 현대에 어필하는 점이며 제인 오스틴의 글이 가지는 힘이 아닐까 한다.
역자 해설인 <책 읽는 여성을 위한 옹호>도 아주 좋다. 기회가 되면 꼭 읽으시길 권한다.
* 2007년, 영국의 ITV에서 제인오스틴 시즌이라고 오스틴 원작소설을 토대로 한 티비영화를 방영한 적이 있다. 96년작인 『엠마』를 제외하고 새로 찍은 작품은 『맨스필드 파크』, 『노생거 사원』 그리고『설득』 세 편이다. 『노생거 사원』의 영상화는 각색이 많이 된 편으로, 특히 캐서린의 고딕풍 상상이 일품이다. 심지어 여주인공이 펠리시티 존스라 너무 이쁘다. 헨리 역할로 나오는 JJ 페일드도 잘생겼고, 엘레노어도 기품이 흐른다. 요즘 잘 나가는 캐리 멀리건이 이자벨라 역을 맡았다. 『맨스필드 파크』의 여주인공은 빌리 파이퍼가, 『설득』에서는 샐리 호킨스가 열연을 했다. 이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바로 『설득』으로, 나무랄 데 없는 연기가 펼쳐지는 바쓰 풍경을 아름답게 담아냈다. 시대극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볼 만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