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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밤은 식물들에 기대어 울었다

이승희 | 폭스코너 | 2021년 11월 23일 한줄평 총점 0.0 (16건)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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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시 >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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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밤은 식물들에 기대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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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어떤 밤은 식물들에 기대어 울었다』는 소박하면서도 넉넉한 식물과의 동거 생활을 시인 특유의 섬세한 감성과 아름다운 문장으로 담아낸 산문집이다. 서로에게 지나치게 애쓰지 않으면서도 서로의 존재를 온전히 인정하는 시인과 식물들의 동거생활은 그저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서로에게 힘이 되는 진정한 반려의 삶이다. 그런 생활에서 직접 길어 올린 추억과 치유의 언어들은 그 자체로 읽는 이의 마음에 슬며시 스며든다. 까칠하지만 여려서 세상과 불화하거나 마음이 상한 날에는 어김없이, 한없이 예민하지만 그만큼 너그러운 식물이 자신의 연두로 시인을 위로한다. 그런 자연스러운 주고받음이 글의 곳곳에서 오롯이 배어나서, 책을 읽다 보면 당장 식물 친구 하나 곁에 두고픈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비가 오는 날이면 마당으로 식물들을 다 내놓고 비 맞는 식물들을 바라보는 때가 “근래의 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고백하는 문장들을 읽으면, 비와 식물과 라디오와 시인이 피우는 담배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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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프롤로그

1부 같이 살아요, 우리
데려온다는 말
식물은 위대한 건축가
식물과 라디오 사이를 뛰어다니면 알게 되는 것들
어느 봄날, 나는 앵두와 결혼했다
나는 외로우면 꽃집에 간다
식물은 내 삶의 무늬를 기억하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꽃밭’이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숨을 곳이 여름밖에 없다면 믿을 수 있겠어?
언제나 따뜻한 쪽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본 적이 있다
난 아직도 슬플 땐 잠을 잔다
꽃보다 연두지, 그렇고말고
아버지는 백합을 사랑하셨고, 어머니는 작약 같으셨다
여름에 겨울을 생각하는 일이란
나의 식물들은 어쩌다가 나를 만나서
아이비, 우리들의 짜식이
꽃 트럭을 타고 어디든 가고 싶어서
춤을 추기로 해요. 미끄러지자고 손을 잡고 울어요. 내일이 없어 즐거운 방향들
사이를 사는 일
사람들은 왜 담장 아래에 꽃을 심을까
파꽃 필 때 나는 환상이다
그건 다 여름이라 그래요
시 읽어주는 밤
비 오는 날 빗방울이 유서처럼 읽힌다면
너무 애쓰지 마, 지치면 약도 없어
내가 기다린다는 것을 들키지 않아야 한다
사물과 식물
밤의 식물들이 쓰는 동화
밤의 공항
꽃을 피우는 괴로움에 대하여

2부 내가 편애하는 식물
두 사람의 옆얼굴, 불두화와 수국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꿈꿀 때 흑법사를 보았다
나는 네가 자꾸 좋은 걸 어쩌지 못해, 채송화
내게 없는 ‘명랑’을 이해하기 위하여, 형광덴드롱과 형광스킨답서스
강아지 같은 살가움, 보스톤고사리
사는 게 그런 건 아니지, 동백나무
나는 지금 이대로의 나를 사랑해, 극락조화와 여인초
나의 비밀스런 친구, 올리브나무
영원한 친구처럼, 벤자민고무나무와 아이비
큰누나를 닮은 꽃, 다알리아
그래, 마디의 힘으로 사는 거다, 대나무

3부 시 속의 식물 이야기
해국, 먼 곳부터 따뜻해지는 마음
백합, 콱 죽고 싶어지는 행복한 마음이야
고사리, 나 없이도 천국인 세상에서 나는
고무나무, 근거는 없지만 믿음이 가는 그런 친구
올리브나무, 멀리서 오는 엽서를 받는 기분
몬스테라, 귀여운 나의 녹색 괴물 ─너를 사랑해
형광덴드롱(필로덴드론 레몬라임), 일요일 그리고 또 일요일이 계속될 것 같은
코로키아, 슬픔의 모양이 있다면 이와 같을지도

상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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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저 : 이승희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으로 시 쓰기를 시작했다. 어린 시절이 그리워 동화를 통해 어린이만이 할 수 있는 생각, 꿈, 이야기들을 찾아서 다시 느끼고 글로 쓰려 한다. 그동안 시집 『저녁을 굶은 달을 본 적이 있다』를 냈고, 동화 『살구는 왜 노랗게 익는 걸까』를 지었다.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으로 시 쓰기를 시작했다. 어린 시절이 그리워 동화를 통해 어린이만이 할 수 있는 생각, 꿈, 이야기들을 찾아서 다시 느끼고 글로 쓰려 한다. 그동안 시집 『저녁을 굶은 달을 본 적이 있다』를 냈고, 동화 『살구는 왜 노랗게 익는 걸까』를 지었다.

출판사 리뷰

“세상으로부터 밀려나고 단절되었다는 생각으로 외로울 때
식물은 저의 연두를, 저의 연두색 손가락을 건네주었다.”

까칠하지만 여린 시인과 예민하지만 너그러운 식물들의 동거동락(同居同樂)!


『거짓말처럼 맨드라미가』, 『여름이 나에게 시킨 일』 등의 시집으로 독자들에게 사랑받아온 이승희 시인이 첫 산문집 『어떤 밤은 식물들에 기대어 울었다』를 펴냈다. 이승희 시인은 살고 있던 집에서 식물들이 잘 살아남지 못하자, 식물이 살 수 없는 집에서는 살기 싫어 마당이 있는 구옥으로 이사를 했다. 함께 살던 식물들을 데리고 왔고, 이사 와서는 새로운 식구들을 맞아들여 다양한 식물들과 함께 동거동락하고 있다. 시인은 자신이 식물을 보살핀다고 생각하지 않고 식물이 자신을 길들인다고도 생각하지 않으며, ‘생각이나 행동을 함께하는 짝이나 동무’라는 의미에서의 상호 반려 생활 중이다.

마당이 있는 집 안팎에 자신의 자리를 차지한 식물들에게 시인은 시를 읽어주고, 라디오를 들려주고, 비가 오면 비를 맞혀주면서 그렇게 살아간다. 식물들은 시인에게 호들갑스럽지 않은 위로를 전하고, 슬픔의 모양을 빚어주고, 일상의 평온을 선사한다. 시인은 어떤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그저 연두색 얼굴을 한 친구를 하나 사귄다”는 마음으로 식물들과 더불어 살고 있다.

『어떤 밤은 식물들에 기대어 울었다』는 소박하면서도 넉넉한 식물과의 동거 생활을 시인 특유의 섬세한 감성과 아름다운 문장으로 담아낸 산문집이다.

서로에게 지나치게 애쓰지 않으면서도 서로의 존재를 온전히 인정하는 시인과 식물들의 동거생활은 그저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서로에게 힘이 되는 진정한 반려의 삶이다. 그런 생활에서 직접 길어 올린 추억과 치유의 언어들은 그 자체로 읽는 이의 마음에 슬며시 스며든다. 까칠하지만 여려서 세상과 불화하거나 마음이 상한 날에는 어김없이, 한없이 예민하지만 그만큼 너그러운 식물이 자신의 연두로 시인을 위로한다. 그런 자연스러운 주고받음이 글의 곳곳에서 오롯이 배어나서, 책을 읽다 보면 당장 식물 친구 하나 곁에 두고픈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비가 오는 날이면 마당으로 식물들을 다 내놓고 비 맞는 식물들을 바라보는 때가 “근래의 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고백하는 문장들을 읽으면, 비와 식물과 라디오와 시인이 피우는 담배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이 된다.
1부 ‘같이 살아요, 우리’에서는 시인과 식물들의 동거사(史) 혹은 반려 이야기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하나하나의 식물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시인과 만나고, 관계를 맺고, 추억을 함께해온 순간들이 감성 어린 언어로 그려진다. 라디오, 식물의 연두, 아버지 하면 떠오르는 꽃, 동화 같은 밤의 식물들, 비 오는 날의 마당 같은 심상들이 섬세한 언어로 쓰인 문장 사이사이로 흐르며 서정적인 감성을 양껏 불러일으킨다. 2부 ‘내가 편애하는 식물’에서는 불두화와 수국에서부터 대나무까지 시인과 특별한 인연이 닿아 ‘편애’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식물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꽃과 나무, 식물을 더 깊이 사랑하게 되는 한 방법을 배울 수 있다. 3부 ‘시 속의 식물 이야기’는 자주 식물을 소재로 시를 써온 시인이 자신의 반려 식물들과 살다 떠올린 착상으로 쓰인 시를 직접 들려준다. 식물이 불러일으키는 감흥과 그것이 시로 화하는 아름다운 창조의 순간이 한데 어우러진 산문들을 만날 수 있다.

책에서는 극락조화, 다알리아, 달개비, 앵두나무, 아이비, 여인초, 보스톤고사리, 몬스테라, 물옥잠, 채송화, 작약, 백합, 형광스킨답서스 등 32종의 식물들이 소개되는데, 각각의 식물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올봄, 새로운 식물 친구 하나를 반려하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어떤 밤은 식물들에 기대어 울었다』는 고독한 시인과 반려식물이 함께 만들어가는 곱디고운 ‘결’, 그리고 그 속에서 느껴지는 깨끗하고 온화한 고요와 사랑을 만끽할 수 있는 아름다운 산문들이 가득 담겨 있는 책이다.

종이책 회원 리뷰 (16건)

어떤 밤은 식물들에 기대어 울었다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 책**초 | 2022.03.31

2022.3.30.수요일

내 키보다 훨씬 큰 벤자민, 거의 내 키랑 비슷한 산세베리아 둘,

고무나무, 인삼 벤자민, 금전수, 산호수, 동양난 둘, 

그리고, 얼마전 물꽂이해서 화분에 옮긴 고무나무 둘과 인삼 벤자민까지...

우리집 거실에서 함께 살고 있는 반려식물들이다.

 

저자처럼 마당있는 집에 살면서 

내가 좋아하는 꽃이며, 나무들을 심고 가꾸면 얼마나 좋을까?

언젠가는 그런 삶을 살거라 기대하며 

지금은 아파트라는 한계는 있지만 식물들과 함께 살아간다.

 

나도 저자처럼 식물의 연두색을 넘넘 사랑하는 사람이다.

벌써 봄을 느끼고 연두색 새순이 돋기 시작한 식물들을 바라보면,

신기하고 기특하고 아름답고 경이롭다.

 

이 책을 통해 식물을 더 주의깊게 바라보게 되어서 좋고,

새로운 식물들을 더 많이 알게 된 것도 좋다. 

식물과 함께 더 싱그러운 삶을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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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어떤 밤은 식물들에 기대어 울었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YES마니아 : 로얄 져* | 2021.06.20

p.16

데려와 돌봐줄게.

사실, 돌봐준다는 건 나 역시 돌봄을 받는다는 말에 다르지 않다. 무엇인가에 마음을 준다는 것은, 그렇게 마음의 흐름을 갖는다는 것은, 그것 자체로 둘 사이에 시냇물 같은 게 생기는 거니까.

그게 한쪽으로만 흐른다 한들 서로 닿아 있다는 말이니까. 거기에 발목도 담그고, 얼굴도 비춰보고, 안부도 전하면서.

 

p.45

생각해보면 식물과의 교감이라는 것도 그렇다. 사소함이 모여 생활을 이루는 것처럼, 조금씩 쓸쓸한 마음이 모여 어딘가에 닿는 간절함이 되는 것처럼, 식물과 나는 아무 말이 없어도 혹은 함께 죽자고 말하지 않았어도 날마다 보내는 사소함이 꽃을 피우고 마음 따뜻해지는 결이 된다. '결'이라는 말은 얼룩이나 흔적이 담아낼 수 없는 고요하고 따뜻함이 느껴지는 온도 같아서 좋다.

 

p.70

나의 작은 마당에서 살아가는 식물들이나 화분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사실 제 맘껏 자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환경이다. 그러다 보니 열매나 꽃을 보는 일이 자연에서 살아가는 아이들보다 적다. 그러나 꽃이 아니면 어떤가, 연두만으로도 세상은 아름답다. 버티는 일도 그렇다. 버틴다는 건 그냥 있는 것이 아니다. 최선을 다해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일이다. 그렇다면 그건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p.82

세상으로부터 지워진 내 이름도 어디쯤에서 비처럼 내릴까. 흐지부지 늙어가는 일도 나쁘지만은 않다고, 나는 이제 더는 이해받지 못한 열망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그렇게 나의 여름 화단은 겨울을 끌어안고 운다.

 

p.147

그리고 수국은 꽃이 피어 있는 기간이 제법 길다. 어느 소설가는 어떤 글에서 수국을 수다쟁이로 표현했다. 그러고 보니 소복이 모여 수다를 떨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럼 나도 같이 끼어 앉아볼까 싶지만, 사실 이 아이들을 수다쟁이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나는 이 아이들이 모여서 떠드는 걸 본 일이 없다. 다들 자기 식대로 이야기하는 것을 몇 번 보았을 뿐이다. 그러니까 뭉쳐서 각자 자기 이야기를 한다. 참 이상하면서도 신비한 식물이다.

 

p.189

내 마음에도, 몸에도 그런 마디가 좀 있다. 물론 그런 마디가 있음에도 여전히 똑바로 서 있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지만 말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마음이란 참 그런 것이어서 수시로 낭떠러지가 되고, 난간이 되거나 며칠씩 집 나가 돌아오지 않기도 한다. 내 것인 것이 어찌 이리도 내 것 같지 않을 때가 많은지. 하지만 그렇게 마음의 한 끝이 난간이 될 때 나는 또 그만큼 어디로든 깊어진다고 믿는다. 끝을 가본다는 것도 그런 것은 아닐까 싶다. 마디는 그럴 때 조금씩 자란다.

 

 

참으로 우연하게 손에 쥐게 된 산문집 <어떤 밤은 식물들에 기대어 울었다>. 읽을 때마다 이것이 진정으로 우연이란 말인가, 하고 놀란다. 이 책은 식물들을 키우며 쓴 산문집인데, 놀랍게도 나는 요즘 식물들을 키우고 있다. 아니, 같이 살고 있다. 어느날 TV를 보다가 갑자기 확 꽂혀서 파키라, 이오난사, 파리지옥, 편백나무, 네펜데스, 구문초, 알로카시아, 스투키 등등 다양한 종류를 한꺼번에 키우게 되었다. 이렇게 늘어놓고 보니.. 새삼 또 놀랍네.ㅎ 여튼, 죽이는 게 무섭고 미안해서 키워볼 엄두도 못 냈었는데.. 아직 싹이 나지 않는 캣닙까지 이렇게 매일 애정을 품고 바라보게 될 줄은 정말 생각도 못했다. 요즘 들어 더 심하게 외로움을 타고 있어 씁쓸해하고 있는 나에게 이 아이들은 존재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어주고 있다. <어떤 밤은 식물들에 기대어 울었다> 그런 내 식물들을 더 바라보게 하고 마음을 열게 하는 좋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산문집이었다.

내 마음은 시인이 되기에 참 적합한 조건이었으나 나의 글빨이 마음의 재능을 따라가지 못해 늘 아쉽고, 외롭고, 어디에도 닿지 못해 늘 헛헛했다. 그런 내 마음이 내내 안타까웠었는데, 이 산문집과 우리집의 초록2들이 서릿발같이 하얗게 얼었던 마음의 온도를 초록에 가깝게 올려주었다. 지금은 노랑빛이 살짝 도는 연두가 될까 말까~이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초록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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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문화리뷰 자귀나무에 꽃이 피었다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꼼* | 2021.06.18

바쁘다는 말은 감성이 메마르거나 황폐한 가슴으로 변해간다는 걸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어쩌면 시간적 바쁨보다는 마음에서 오는 알 수 없는 쫓김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일이라는 게 언제나 그렇듯 아주 느긋한 마음으로 시작하든지 혹은 누군가에게 쫓기는 듯 허겁지겁 시작하든 결과적으로 일을 마무리 짓는 데 걸리는 시간은 별반 차이가 없음에도 우리는 습관적으로 후자를 선택하곤 한다. 그렇게 한동안의 시간을 보낼라치면 휑한 바람이 시도 때도 없이 가슴을 관통하는 듯하고, 내가 바라보는 시선에는 물기를 잃고 바삭바삭 메말라가는 것들이 주검처럼 펼쳐지곤 한다.

그러므로 감성이 메마르다는 건 육체의 노쇠보다 더 위험하다고 느껴질 때가 더러 있다. 감성의 메마름은 언어의 고갈로 이어질 때가 많다. 상황에 맞는 적확한 언어의 선택은 감성이 메마르지 않고 적당히 젖어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같은 의미의 말을 전달하더라도 다양한 어휘를 선택하는 이와 몇 안 되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이의 감성은 크게 갈린다. 우리의 몸이 70%가 물인 것처럼 우리의 정신도 70%의 감성을 유지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때로 육체의 질병을 지나치게 걱정하면서도 정신적 질병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생각해보면 식물과의 교감이라는 것도 그렇다. 사소함이 모여 생활을 이루는 것처럼, 조금씩 쓸쓸한 마음이 모여 어딘가에 닿는 간절함이 되는 것처럼, 식물과 나는 아무 말이 없어도 혹은 함께 죽자고 말하지 않았어도 날마다 보내는 사소함이 꽃을 피우고 마음 따뜻해지는 결이 된다. ‘결’이라는 말은 얼룩이나 흔적이 담아낼 수 없는 고요하고 따뜻함이 느껴지는 온도 같아서 좋다."  (P.45)

 

이승희 시인의 산문집 <어떤 밤은 식물들에 기대어 울었다>를 읽으며 내가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무척이나 메마르고 거친 시간을 보내왔구나, 하는 반성의 마음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용서를 바라는 뜻에서의 반성은 아니지만 나 스스로의 정신 건강을 돌보지 않고 일견 방치한 측면이 있다는 자각에서 비롯된 반성이다. 그에 대한 치료는 어쩌면 간단할지도 모른다. 자연 속에서 머물면서 자연과 깊이 동화되는 시간을 갖는 것, 내가 알던 식물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고 바람이 흐르는 길목에 나의 마음을 무심히 풀어놓는 것, 미래에 대한 불안이나 걱정을 잊고 패랭이꽃처럼 하늘거리는 것...

 

"굳이 말하지 않고, 묻지 않아도 꽃은 핀다. 중요한 것은 그거이다. 그러나 그냥 둠은 버려둠이 아니라 거기 그냥 둠으로써 끌어안는 방식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끌어안음은 굳이 스스로 열렬하다고 소리치지 않아도 깊고 따뜻하다."  (p.204)

 

시인은 자신이 살고 있던 집에서 식물들이 잘 살아남지 못하자, 식물이 살 수 없는 집에서는 살기 싫어 마당이 있는 구옥으로 이사를 했다고 한다. 전에 살던 집에서 함께 살던 식물들과 함께. 그리고 이사 온 후에 새로운 식구들을 맞아들여 다양한 식물들과 동거동락한다는 것이다. 시인은 함께 사는 식물들에게 시를 읽어주고, 라디오를 들려주고, 비가 오면 비를 맞혀주면서 함께 하는 시간들을 늘려가는 것이다. 식물들은 시인에게 호들갑스럽지 않은 위로를 전하고, 슬픔의 모양을 빚어주고, 일상의 평온을 선사하기도 한다.

 

"식물들도 나도 불시착한 비행기처럼 지금 여기가 어딘지를 묻는 일이 있다. 그런 일들이 날마다 쌓여간다. 가끔 농담처럼 구름이 지나고, 혼자 산책하는 나를 내가 뒤에서 따라가는 것 같기도 하다. 모든 풍경은 지나가고, 세상의 모든 당신들도 지나가고 모든 사물은 저마다의 이름으로 행복해 보인다."  (p.71)

 

이름도 모르는 식물을 만날 때마다 문득 미안한 마음이 들곤 한다. 숲길을 걸으면서 무수히 많은 만남의 시간을 가졌을 텐데 여태 이름도 모른다는 건 마음을 열지 않았다는 것이며,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며, 무시해도 될 만큼 가벼이 여겼다는 뜻이리라. 그만큼 나는 냉정하고 오만한 인간이었으리라. 주변에서 흔하디 흔한 여뀌만 하더라도 바보여뀌, 개여뀌, 기생여뀌, 이삭여뀌 등 그 종류가 어찌나 많던지... 그러나 하나하나의 식물들도 애정을 갖고 바라보면 그들 각각이 얼마나 독특하고 아름다운지 우리는 이름도 모른 채 차마 지나칠 수 없는 것이다.

 

어느새 미모사의 연분홍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가늘고 긴 수술이 여럿 모여 마치 부채꼴 모양을 한 미모사의 꽃은 고운 색깔과 더불어 부드러운 느낌이 마치 비단결 같다. 매년 나는 자귀나무라고도 불리는 미모사의 개화를 경이로움으로 바라보곤 했었는데 올해는 뭐가 그리 바빴는지 꽃이 만개한 오늘에서야 화려한 자태를 겨우 마주했던 것이다. 자귀나무의 꽃말은 가슴의 두근거림이라는데 나는 땅에 떨어진 부드러운 꽃술을 매만지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숨을 가만가만 가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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