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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전쟁

성스러운 폭력의 역사

카렌 암스트롱 저 / 정영목 | 교양인 | 2021년 11월 29일 한줄평 총점 10.0 (24건)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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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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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MD 한마디
십자군 원정에서부터 9.11 테러까지, 종교는 폭력을 부추기는 기폭제였다. 늘 그랬던 건 아니다.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은 종교의 이중성에 주목했다. 아시아, 유럽, 근동 사례를 폭넓게 검토하며 때로는 평화를 지향하고, 때로는 폭력을 부추겨온 종교사를 소개한다. - 손민규 역사 MD
최초의 전쟁 영웅 길가메시부터 ‘이슬람 테러리즘’까지
수천 년 인간 폭력의 역사와 종교의 관계를 추적하다


『신의 전쟁』의 1부와 2부에서는 고대 중동, 중국, 인도에서 탄생한 주요 종교의 기원을 확인하고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세 종교의 역사에서 두드러지는 폭력과 문명과 국가의 관계를 살핀다. 세계 주요 종교 전통은 모두 ‘피로 물든 땅’, 폭력이 만연한 곳에서 태어났다. 문명의 조건인 ‘폭력’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가 종교 탄생의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그러나 종교는 국가와 손을 맞잡으면서 폭력을 뒷받침하는 도구로 전락하기도 했다.

근대 이후를 다루는 마지막 3부에서는 새로운 신앙의 대상이 된 ‘민족 국가’의 문제, 종교 근본주의와 폭력의 관계를 살펴본다. 종교와 국가의 분리를 옹호한 유럽 최초의 기독교인 마르틴 루터, 17세기 철학자 토머스 홉스와 존 로크가 찾은 종교 폭력의 해법, 독실한 신앙인들이 세운 최초의 세속 국가 미국, 유대교 힌두교 이슬람교 등 각 종교와 ‘민족주의’가 만나 빚어진 폭력적 변화, ‘이슬람 테러리즘’을 둘러싼 오해에 관한 이야기가 저자 특유의 깊은 인문학적 통찰이 담긴 유려하고도 명료한 문장으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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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머리말 - 종교는 본래 폭력적인가?
1부 문명의 폭력과 종교의 딜레마
1장 수메르, 농경의 시작과 전쟁의 탄생
최초의 전쟁 영웅 길가메시
위대한 전사에게는 오점이 있다
피로 물든 수메르 평원
조로아스터, 절대 악과 절대 선의 세계

2장 인도, 비폭력을 향한 험난한 길
전쟁의 신과 하나가 된 아리아 전사들
크샤트리아, 폭력 속에서 태어난 영성
우파니샤드, 고통과 해탈의 가르침
폭력 밖으로 나온 출가자들
비폭력의 두 길, 자이나교와 불교
《마하바라타》, 평화와 폭력의 딜레마
3장 중국, 전쟁의 고통에서 등장한 군자
황제 신화에 담긴 문명의 조건, 폭력
폭력을 제어하는 예의 규범
공자의 평화, 묵자의 사랑
진(秦), 전쟁을 끝낸 폭력의 제국
한(漢)에서 제휴한 법가와 유가
4장 폭력과 평화 사이, 히브리인의 딜레마
농경 국가의 폭력성을 비판한 구약
이스라엘인은 유일신교도가 아니었다
유일신 신앙을 창조한 위기의 시대
“이방인을 네 몸처럼 대접하고 네 몸처럼 사랑하라.”
2부 제국의 폭력과 종교의 응전
5장 로마 제국 팔레스티나의 예수
팍스 로마나 시대의 예루살렘
상처 입은 세상에 태어난 예수
바울과 평등한 공동체의 이상
‘평화의 종교’가 된 랍비 유대교
기독교 신앙의 중심이 된 순교자 숭배
6장 비잔티움, 제국의 무기가 된 신앙
‘기독교인 황제’라는 모순 어법
평화를 찾아 사막으로 떠난 수도자들
순교자들, 혹은 공격적인 신앙의 전사들
‘카파도키아의 교부들’과 삼위일체 교리
아우구스티누스와 ‘정의로운 전쟁’
로마-페르시아 전쟁과 성모상을 든 병사들
7장 이슬람의 딜레마, 정복과 공동체의 꿈
메카를 정복한 ‘예언자’ 무함마드
쿠란, 무자비와 자비의 공존
칼리파의 정복 전쟁과 이슬람 제국 건설
무슬림의 분열, 수니파와 시아파
이슬람 율법 ‘샤리아’, 평등의 이상
이맘과 칼리파, 누가 진정한 지도자인가?
8장 십자군과 지하드, 성스러운 폭력의 충돌
신을 섬기는 두 길, 싸움과 기도
제1차 십자군 원정, 광기의 살육
십자군이 깨운 이슬람의 공격적 지하드
이슬람 세계를 흔든 칭기즈 칸
유대인 박해와 ‘이단’ 배척의 기원
기사 영웅들의 반체제적 기독교
3부 세속주의 시대의 종교 근본주의
9장 근대의 개막과 종교의 도래
르네상스 휴머니즘과 식민주의 열광
‘정치적인, 너무나 정치적인’ 종교재판
루터와 칼뱅, ‘개인 종교’의 탄생
지배자에 대한 충성 맹세가 된 신앙 고백
‘정치적 종교전쟁’이 바꾼 유럽 지도
종교 폭력의 해법을 찾아서, 홉스와 로크
10장 세속주의의 승리, 혁명과 민족
미국, 독실한 신앙인들이 세운 최초의 세속 국가
종교를 파괴하고 ‘시민 종교’를 세운 프랑스 혁명
영국의 식민 통치가 부른 인도의 분열
산업화가 낳은 폭력적 민족 국가
남북전쟁과 노예제를 둘러싼 신학적 분열
민족주의, 세속 시대의 새로운 신앙
11장 근대의 폭주와 근본주의의 반격
근본주의 운동의 탄생지, 미국
인도, 식민주의가 낳은 폭력적 근본주의
폭력 국가와 급진 이슬람주의의 등장
폭력적 근대화의 역류, 이슬람형제단
유사 종교적 열정이 된 유대 민족주의
팔라비의 ‘백색 혁명’과 돌아온 호메이니
12장 민족주의와 만난 종교적 열정
인민사원 913명의 ‘혁명적 자살’
체제 폭력과 공격적 지하드의 출현
자살 폭탄 순교와 헤즈볼라의 새로운 길
극단으로 가는 유대주의
박해 이미지에 갇힌 힌두 민족주의
민족주의와 종교 운동의 결합, 하마스
13장 ‘테러와의 전쟁’과 지하드의 물결
아프가니스탄 전장으로 떠난 무슬림들
‘이슬람 정체성’이라는 정치적 각성
보스니아전쟁, 20세기 최후의 종족 학살
9?11은 종교전쟁인가?
‘이슬람 테러리즘’의 본질
후기 - 누가 세계의 고통에 책임을 져야 하는가?
감사의 말
주석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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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인간은 자신이 저지른 폭력의 죄를
종교라는 희생양의 등에 실어 정치적 광야로 내보낸다.”


9·11 테러가 커다란 상처를 남긴 후, 종교는 전 지구적 폭력, 불관용, 분열, 불화의 원인으로 지목받았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충돌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 중이며, 알카에다에서 갈라져 나와 위협적으로 세를 불린 ‘이슬람국가(IS)’ 지도자의 사망 소식은 우리를 안도하게 하는 동시에 “정말 끝인가?”라고 되묻게 했다. 종교는 이제 더는 영성을 일깨우지 못하고, 공동체적 감각이나 타인에 대한 공감과 연민, 평화의 가치를 전하지 못하는 듯 보이며, 비합리성과 어리석음의 전형으로 조롱받는 듯하다.

그러나 이런 관점은 얼마나 정확한가? 우리 시대의 가장 유명한 무신론자 리처드 도킨스의 말처럼 “종교가 없다면 세상은 평화로울 것”인가? “오직 종교적 믿음만이 다른 때에는 멀쩡하고 품위 있는 사람들에게서 (테러 같은) 완전한 광기를 일으킬 힘이 있다.”라는 주장은 타당한가? “종교는 역사상 모든 주요한 전쟁의 원인이다.”라는 말은 사실인가?

신은 이교도의 피를 손에 묻히라고 명령하지 않았다
카렌 암스트롱, ‘종교의 본질적 폭력성’이라는 신화를 깨부수다


“종교는 본래 호전적”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중세 십자군 원정, ‘이단’을 잔인하게 처리한 종교재판, 16~17세기 유럽의 종교전쟁, 21세기 이슬람 무장 단체의 테러 같은, 종교와 관련된 무수한 전쟁과 폭력을 근거로 든다. 그러나 이 책에서 카렌 암스트롱은 그러한 주장이 위험하고 과도한 단순화일 뿐임을 입증한다. 교회 권력을 확장하기 위해 십자군 원정을 벌인 교황 우르바누스 2세, 15세기 말 오스만 제국의 위협 앞에서 내부 단합을 위해 종교재판을 이용한 에스파냐의 페르난도와 이사벨, 정치적·경제적 이유에서 비롯된 유대인 박해와 기독교 ‘이단’ 배척, 서양 제국주의의 식민 지배와 강압적 근대화가 낳은 이슬람의 폭력적 지하드까지, 암스트롱은 풍부한 역사적 사실들을 바탕 삼아 “종교는 본래 호전적”이라는 주장을 명쾌하게 반박한다.

책의 구성

이 책은 총 3부 1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기원전 3000년경부터 예수 탄생 이전까지 메소포타미아, 인도, 중국, 레반트 지역을 무대로 삼아 문명의 탄생과 종교의 기원을 다룬다. 《길가메시 서사시》《일리아스》《아트라하시스》《마하바라타》를 비롯한 고대의 신화적 서사시와 《논어》《묵자》《한비자》《사기》를 비롯한 중국 고전 문헌과 구약 성서 등 다양하고도 방대한 문헌을 통해 문명과 폭력의 딜레마, 종교의 역할을 깊이 있게 들여다본다.

2부에서는 로마 제국부터 근대 이전 13세기까지 제국 시대에 기독교와 이슬람교 두 종교의 전통이 발전하고 변화하는 양상을 자세히 살펴본다. 특히 로마의 속주 팔레스티나에서 예수가 펼친 비폭력 저항에서 시작된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기까지 과정과 622년 메카에서 쫓겨난 무함마드가 10년도 안 되어 메카를 정복하고 이슬람 제국을 이룬 역사가 흥미롭게 서술되어 있다. 2부 마지막 8장에서는 십자군 원정 동안 두 종교가 충돌하며 두 종교의 영성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주목한다.

3부에서는 15세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근대 이후의 중요한 종교적 사건들을 빠짐없이 다룬다. 루터와 칼뱅의 종교 개혁, 16~17세기 종교전쟁, 유럽에서 탄생한 근대 국가, 식민주의 시대, 미국의 대각성운동과 독립전쟁, 프랑스 혁명과 이란 혁명, 종교적 근본주의와 민족주의, 9?11테러와 이슬람 테러리즘, 그리고 신앙이 개인화되고 힘을 잃어 가는 우리 시대에 종교의 가치와 역할을 숙고할 수 있는 암스트롱의 제언이 담겨 있다.

서양에서 종교가 본래 폭력적이라는 생각은 이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고 자명해 보이기까지 한다. 종교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종교가 얼마나 잔인하고 공격적이었는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있으며, 이런 생각은 괴상하게도 거의 매번 똑같은 방식으로 표현된다. “종교는 역사상 모든 주요한 전쟁의 원인이었다.” 나는 미국의 시사평론가와 정신치료사, 런던의 택시 기사와 옥스퍼드대 교수가 이 문장을 주문처럼 읊조리는 것을 들었다. 하지만 이것은 이상한 말이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종교 때문에 벌어지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전쟁사 연구자들은 사람들이 전쟁을 하는 이유에는 수많은 사회적, 물질적, 이념적 요인이 관련되며 그 가운데서도 주요한 것은 빈약한 자원을 둘러싼 경쟁임을 인정한다. 정치적 폭력이나 테러리즘 전문가들도 사람들이 복잡하고 다양한 이유로 잔혹 행위를 저지른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의 세속적 의식에서 종교적 믿음의 공격적 이미지는 지울 수 없는 것이어서 우리는 일상적으로 현대의 폭력적인 죄를 ‘종교’의 등에 실어 정치적 광야로 내몰곤 한다. _ 머리말, 11∼12쪽

본문 내용 소개

문명의 딜레마, 종교의 두 갈래 길


암스트롱은 인간 사회가 원시 상태에서 벗어나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던 중요한 조건이 ‘폭력’이라고 말한다. 《길가메시 서사시》《일리아스》《아트라하시스》 중국의 신농씨와 황제 신화는 최초의 정착자들이 전쟁하는 인간이었음을 보여준다. 농경 국가는 그 체제의 한계로 영토 정복 전쟁을 벌이거나 약탈을 자행할 수밖에 없었고, 평화시에도 주민 대부분을 수탈함으로써 유지되었다. 사람들은 국가 건설로 유랑하는 부족민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국가의 구조적 폭력의 피해자가 되었다.

체제 폭력은 모든 농경 문명을 지배했다. 경제적으로 농업에 의존하던 중동, 중국, 인도, 유럽의 여러 제국에서는 인구의 2퍼센트가 되지 않는 엘리트 집단이 소수의 가신 무리의 도움을 얻어 대중이 재배한 농산물을 체계적으로 강탈함으로써 귀족적 생활 방식을 지탱했다. 그러나 사회사가들은 이런 부당한 구조가 없었다면 인간은 아마 절대 생존 수준을 넘어서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이 문명화된 예술과 과학을 발전시킬 여유가 있는 특권 계급을 만들어냈고, 그런 예술과 과학 덕분에 진보를 이룰 수 있었기 때문이다. _ 머리말, 28쪽

암스트롱은 ‘평화는 폭력에 의존한다’는 문명의 딜레마 속에서 공동체적 윤리를 강조하는 위대한 종교 전통이 탄생했음을 환기한다. 기원전 5세기말 붓다는 인간의 고통에 공감하는 자비로운 비폭력의 정신을 주장했다. 붓다는 제자들에게 세상으로 돌아가 다른 사람들이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도록 도우라고 했다. 중국 춘추시대 공자는 제후들의 난립으로 피폐해진 백성들의 삶을 보며 인(仁)을 설파했는데, 인은 “자신이 바라지 않는 것을 남에게 바라지 않는” 개인의 윤리이면서 동시에 통치 원리이기도 했다. 성경과 쿠란 모두 가난한 이웃을 못 본 체하는 것은 불의라고 단정했으며, 타인을 향한 공감과 연민을 강조했다.

붓다의 깨달음은 도덕적으로 사는 것이 남을 위해 사는 것이라는 원리에 기초를 두었다. 인간 사회에서 물러난 다른 출가자들과는 달리 불교 수도승은 세상으로 돌아가 다른 사람들이 고통으로부터 해방을 찾는 것을 도우라는 명령을 받았다. …… 불교는 그냥 폭력을 피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의 고통을 덜어주고 행복을 늘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운동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_ 2장, 104쪽

그러나 평화를 위해 폭력적 수단을 동원하는 문명의 딜레마에서 종교도 예외일 수 없었다. 암스트롱은 사실상 모든 주요한 종교 전통이 자신이 생겨난 국가의 뒤를 쫓았으며 막강한 제국의 후원이 없었다면 ‘세계 종교’가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종교는 자신과 불가분 연결되어 있는 국가의 폭력에 어느 정도나 기여했을까? 인간 폭력의 역사에 대하여 종교 자체의 책임을 얼마나 물어야 할까? 이 책은 이 오래된 질문에 답을 찾는 지적이고 흥미진진한 여정이다.

(근대 이전) 종교는 국가 건설과 통치를 포함한 모든 인간 활동에 스며들어 있었다. 실제로 우리는 근대 이전의 정치는 종교와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지배 엘리트가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같은 윤리적 전통을 받아들이면, 성직자들은 대개 국가의 구조적 폭력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개편했다. _ 머리말, 28쪽

십자군 원정과 공격적 지하드의 각성

오늘날 종교적 폭력의 상징이 된 ‘십자군’은 1095년 말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소집을 주도하면서 처음 결성되었다. 우르바누스는 동방의 기독교인을 무슬림의 압제에서 해방하고 성지 예루살렘을 되찾자고 호소했지만, 그의 진짜 속셈은 당시 기독교 세계의 군사적 방어를 이유로 삼아 세를 넓히던 왕과 제후를 견제하고 교회 권력을 동방으로 확장하는 것이었다. 원정에 응한 왕과 기사 계급의 목적은 더 복잡했는데, 전사로서의 명예욕과 더불어 재산을 불리고 소유지를 넓히고 싶은 경제적 요인이 컸다. 십자군의 동기는 대단히 세속적이었으나 그 결과는 대규모 살상이었다.

우르바누스는 …… 형제, 즉 동방의 기독교인을 “무슬림의 압제와 억압”으로부터 “해방하라”고 촉구했다. …… 십자군 원정은 동방의 형제들을 위해 고상하게 목숨을 내놓는 사랑의 행동이 될 것이다. 그들은 집을 떠났기 때문에 수도원에 들어가려고 세상을 버린 수사들과 똑같이 천상의 보답을 얻게 될 것이다. 우르바누스는 그렇게 확신했다. 그러나 이 모든 신앙적인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십자군 원정은 교회의 리베르타스[특권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우르바누스의 정치적 공작에도 필수적이었다. _ 8장, 319쪽

3세기 가까이 소아시아와 예루살렘을 피로 물들인 십자군의 이 광기는 이슬람교 전통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 암스트롱은 십자군 원정 동안 오래전 무슬림에게 잊힌 폭력적 투쟁으로서의 ‘지하드’가 깨어났다고 설명한다. 본래 지하드는 주로 무슬림에게 내적 이기심에 맞선 ‘싸움’을 의미했고, 무함마드는 무슬림이 전쟁 후에 정신적 개혁인 ‘더 큰 지하드’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시기 이슬람 성직자의 마음속에서는 ‘더 큰 지하드’에 군사적 지하드가 새겨졌으며, 무슬림이 서방의 공격을 받을 때면 이 영성이 다시금 활활 타오르게 된다.

거의 죽었던 지하드는 이 지역에서 살아 있는 힘이 되어 갔다. 지하드는 이슬람에 내재하는 폭력적 본성이 아니라 서방의 지속적인 공격 때문에 부활했다. 훗날 서방의 중동 개입은 모두, 아무리 그 동기가 세속적이라 해도, 제1차 십자군 원정의 광적인 폭력의 기억을 불러내게 된다. _ 8장, 332∼333쪽

‘정치적인, 너무나 정치적인’ 에스파냐 종교재판과 30년전쟁

무자비하고 광적인 종교적 폭력의 대명사로 흔히 ‘에스파냐 종교재판소’와 ‘30년전쟁’이 거론된다. 하지만 암스트롱은 두 사건 모두 신앙보다는 정치적 고려가 주된 원인이었다고 설명한다. 1480년 에스파냐 군주 페르난도와 이사벨이 세운 ‘종교재판소’는 에스파냐 제국을 둘러싼 내외부의 위협, 곧 계속된 내전과 점점 세력을 넓혀 가던 오스만 제국의 위협에 맞서 내부 단속을 위해 만든 임시방편이었다.

[에스파냐 군주들은] 그저 나라가 평화롭기를 바랐지만, 그들의 나라는 내전으로 흔들리고 이제 오스만의 위협과 마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종교재판소는 안정을 얻으려는 시도로는 너무 결함이 컸다. 나라가 외부 세력의 위협과 마주하면 종종 벌어지는 일이지만 내부의 적에 대한 편집증적 공포가 생겨났고, 이 경우 공포의 대상은 국가 안보를 해치기 위해 은밀히 활동하는 타락한 개종자들로 이루어진 ‘제5열’이 되었다. 에스파냐 종교재판소는 광적인 ‘종교적’ 편협성의 대명사가 되었지만 그 폭력의 원인은 신학이라기보다는 정치적 고려였다. _ 9장, 364쪽

16~17세기 종교전쟁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30년전쟁’은 근대적인 의미에서 전형적으로 ‘종교적’이지 않았다.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같은 편에서 싸우는 일이 왕왕 벌어졌기 때문이다. 가톨릭을 수호하던 신성로마제국 황제는 프로테스탄트 제후 다수의 지원을 받으며 교황과 프랑스 가톨릭 왕들과 싸웠다. 그들의 싸움은 신앙이 아니라 균열이 일던 봉건 사회에서 자신의 영토와 권력을 지키려는 것이었다.

종교 개혁의 신학적 다툼이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를 너무 자극하는 바람에 분별없는 전쟁을 벌여 서로를 학살하다 마침내 종교와 정치를 분리하는 자유 국가가 창조되면서 폭력이 억제되었다. 흔히 그런 식으로 이야기된다. …… 하지만 어떤 것도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 오스만 제국처럼 유럽 전역에서 헤게모니를 쥐려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의 갈망은 주권 민족 국가로 나아가려던 유럽의 더 다원적인 힘과 맞서게 되었다. 독일 제후들은 당연히 카를의 야망에 저항하고 지역 권력과 전통적 특권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_ 9장, 379, 380쪽

종교의 폭력을 제어하는 두 방법, 홉스와 로크

16~17세기 종교전쟁은 종교 개혁 이후 유럽 사회에서 벌어진 가톨릭계와 프로테스탄트계의 세력 다툼이었다. 슈말칼덴전쟁, 위그노전쟁, 30년전쟁 등 유럽의 지형을 바꾼 이 싸움들은 지식인 사회에 종교적 폭력을 어떻게 하면 해결할 것인가를 시급한 화두로 던졌다. 근대 철학자 토머스 홉스는 절대군주제를 신봉했는데, 강력한 군주가 마치 “하느님이 질서 잡힌 우주를 창조하기 위해 성경에 나오는 혼돈의 괴물 리바이어던을 제압하듯이” 종교의 분열을 제어하고 종교의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홉스의 해법은 절대국가를 창조하는 것이었다. 이 국가는 인간이 자신의 믿음에 고집스럽게 집착하는 바람에 쉼 없이 전쟁의 운명으로 빠지는 경향을 누를 것이다. 인간은 인간성이 진리를 파악하는 데 약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서로 계약을 맺고 절대군주를 선출하여 그의 생각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 통치자는 성직자들을 통제하여 종파적 갈등의 가능성까지 예방할 것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역사는 홉스의 해법이 지나치게 단순함을 보여주었다. 유럽 국가들은 종파적 다툼이 있든 없든 계속 야만적으로 서로 싸우게 된다. _ 9장, 395쪽

반면 존 로크는 종교적 폭력의 원인이 다른 관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배타적 태도에 있기 때문에 ‘종교적 자유’가 평화의 해법이라고 주장했다. 로크는 종교란 사적인 것이며, “종교와 정치를 섞는 것은 심각하고 위험하고 실존적인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암스트롱은 로크가 주장한 종교의 ‘개인화’는 당대 매우 급진적인 혁신이었으며, 전근대적 신앙과 전혀 다른 새로운 믿음 체계가 서양에서 탄생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고 설명한다.

로크는 정치와 종교의 분리가 사물의 본성 자체에 새겨져 있다고 가정했다. 물론 이 생각은 급진적 혁신으로서 같은 시대 사람들은 대부분 로크의 생각이 특이하고 받아들일 수 없다고 여겼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근대의 종교는 전에 있던 어떤 것과도 완전히 다른 것이 된다. 그러나 로크는 종교가 격한 감정을 분출할 수도 있다고 보고, 종교를 정부로부터 격리하는 것이 평화로운 사회를 창조하기 위해 “가장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로크에게서 우리는 서양의 에토스에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되는 ‘종교적 폭력 신화’의 탄생을 본다. _ 9장, 396쪽

새로운 신앙이 된 ‘민족주의’

19세기 유럽에서는 산업화와 함께 ‘민족’ 개념이 등장했다. ‘민족’은 국가가 떼어내버린 종교의 자리를 대신 차지했는데, 종교가 일으키는 감정과 분위기까지 대신하며 사실상 유사 종교로서 역할을 했다. 독일 철학자 피히테는 통일된 독일 민족 국가를 염원하면서 민족의 신성성과 영원성을 강조했다.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유럽의 국가들은 모든 시민을 전쟁에 동원하기 위해 민족주의 신화를 발전시켰다. 그러나 문제는, 종교와 달리 민족주의는 ‘타인에 대한 관심’이 계발되지 않았기에 폐쇄적 경향을 보였으며, 특히 소수 민족에 대한 폭력을 막는 윤리적 태도를 담지 못했다.

신성한 것을 사람이 그것을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면, 민족은 틀림없이 성스러움의 구현체, 지고의 가치였다. 따라서 민족 신화는 민족이라는 테두리 안의 단결 연대 충성을 장려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아직 종교와 연결된 다수의 영적 전통에서 중요한 이상이었던 ‘만인에 대한 관심’이 계발되지 않았다. 사실 이런 보편적 감정 이입이 전사 귀족의 폭력에 영향을 끼친 적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대안을 제시하고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기는 했다. 그러나 이제 종교가 개인화하면서 힘없는 민족은 증대하는 구조적, 군사적 폭력에 점점 굴복할 수밖에 없었고, 이런 폭력에 맞설 ‘국제적’ 에토스는 존재하지 않았다. _ 10장, 444쪽

미국에서 일어난 대각성운동과 평등의 이상

암스트롱은 18세기 전반 미국 식민지에서 일어난 신앙부흥운동인 ‘대각성운동’이 종교가 근대화의 방해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고 말한다. 미국 식민지를 이끈 지도자들은 교육을 받은 신사 계급으로서 계몽주의와 합리주의 정신에 매료되었지만, 그런 사상은 문맹이었던 대다수 청교도 민중에게는 낯선 것이었다. ‘대각성운동’은 미국 사회 주변부로부터 터져 나와 민중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평등주의의 이상을 설명하며, 교육받지 못한 계층에까지 종교적 계몽을 선사했다. 즉 미국인을 계몽하게 한 것은 인권 철학이나 인본주의 사상이 아닌 바로 ‘종교’였던 것이다. 또한 대각성운동에 참여한 목사들은 개개인의 신앙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결과적으로 이 과정에서 기성 귀족 체제에 속박당하지 않는 새로운 민주주의 사회가 태동할 수 있었다.

‘건국의 선조’는 신사 계급에 속했으며 그들의 사상은 전형적이라고 할 수 없었다. 대부분 칼뱅주의자였던 미국인은 건국자들의 이 합리주의적 에토스에서는 자신과 연결되는 관련성을 찾지 못했다. 식민지 개척자들은 처음에는 영국과 결별하는 것을 망설였기 때문에 모두 투쟁에 참여하지는 않았으며, 참여한 사람들은 건국자들의 이상만큼이나 기독교의 천년 왕국 신화에서도 동기를 찾았다. 독립전쟁 기간에 세속주의 이데올로기는 다수의 종교적 갈망과 창조적으로 섞이면서 아주 다양한 신앙을 가진 미국인들이 잉글랜드의 힘에 맞서 한데 뭉칠 수 있었다. _ 10장, 411쪽

이슬람 근본주의에 대한 오해와 진실

20세기에 유행처럼 번진 ‘종교적 근본주의’는 근대화와 함께 개인의 영역으로 추방당한 종교를 복원하려는 저항 운동이었다. 암스트롱은 이슬람 근본주의가 기독교 근본주의보다 더 공격적으로 표출되는 이유는, 이슬람 자체의 호전적 성향 때문이 아니라 근대화 과정에서 무슬림이 겪은 폭력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근대화는 서양에서는 토착적으로 자라나 서서히 무르익었지만 무슬림 세계에서는 식민주의라는 혼란과 분열 속에서 군사적인 강요로 가혹하게 이식되었다. 암스트롱에 따르면 ‘근본주의’는 자신의 신앙을 파괴한다는 공포에 빠질 때 발흥하며, 외부의 공격은 그 폐쇄성을 강화한다.

유럽인이 그려놓은 국경이 워낙 자의적이었기 때문에 [무슬림은] 민족적인 ‘상상의 공동체’를 창조하기가 대단히 어려웠다. …… 레바논은 인구의 50퍼센트가 무슬림이라 당연히 아랍 이웃들과 긴밀한 경제적, 정치적 관계를 원했지만, 프랑스가 선택한 기독교 정부는 유럽과 더 강한 유대를 선호했다. 1948년 국제연합(UN)의 팔레스타인 분할과 이스라엘 유대 국가 건설도 이에 못지않게 유해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 일은 아랍계 팔레스타인 주민 75만 명의 강제 이주를 낳았으며, 남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적대적인 국가 안에서 살게 되었다. _ 11장, 464쪽

우리 시대에 필요한 종교의 역할은 무엇인가?

‘종교의 본질적 폭력성’에 대한 역사적 규명을 시도하는 이 책은, 역사상 ‘종교적’ 전쟁, ‘종교적’ 폭력으로 불린 참상들이 실제로는 정치 투쟁의 결과에 가깝다는 진실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 진실은 이 책에서 종교가 폭력의 문제에 아무런 책임이 없음을 주장하는 데 쓰이지 않는다. 오히려 암스트롱은 진정한 평화를 이루려면,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인류가 겪고 있는 분열, 불화, 분쟁에 종교가 책임 있는 자세를 취함으로써, 공동체를 향한 공감, 연민, 배려를 증진할 수 있는 종교 본연의 영성 계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암스트롱이 안내하는 종교와 폭력에 관한 이 광활하고도 지적인 역사 여행을 통해, 독자들은 종교가 개인적이고 의례적인 신앙을 넘어서서 공동체를 위한 적극적인 헌신에 힘쓸 때, 비로소 오래전 ‘피로 물든 땅’에서 탄생한 위대한 종교 전통(힌두교, 불교, 이슬람교, 유대교, 기독교, 유교)이 지금껏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된 힘, 곧 종교의 존재 이유에 다가가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설령 내 탓이 아니더라도 내 이웃이 겪는 고통에 깊이 공감하며 동정과 사랑의 감각을 키우는 것. 이것이 기원전 6~2세기에 형성된 힌두교의 위대한 경전 우파니샤드의 정신이자, 붓다가 설파한 자비의 본의이며, 중국 춘추시대 천하를 돌아다니며 덕치(德治)를 주장한 공자의 핵심 사상이자, 로마 속주 팔레스티나에서 예수가 설교한 하느님의 왕국의 본 모습이며, 이슬람 공동체가 상업화된 메카의 불의 속에서 지키고자 했던 정의와 다르지 않음을 이 책은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우리는 오늘날 과거 예언자들이 그랬듯이 사람들이 현재의 ‘경제적, 역사적 상황’의 다루기 힘든 딜레마와 마주하도록 도와줄 이데올로기가 필요하다. 이제는 농경 제국의 억압적 불의와 싸우지 않지만 여전히 큰 불평등과 권력의 불공정한 불균형이 있다. 그러나 이제 소외된 사람들은 무력한 농민이 아니다. 오늘날 소외된 사람들은 맞서 싸울 방법을 찾았다. 생명이 유지될 수 있는 세계를 원한다면 우리는 세계의 고통에 책임을 져야 하고 우리의 자기 인식에 문제를 제기하는 서사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종교의 역사에서 십자군과 지하드만큼이나 중요한 ‘내어줌’, 이타심, 동정심을 요구한다. _ 후기, 606~607쪽

종이책 회원 리뷰 (23건)

「신의 전쟁」 성스러운 폭력의 역사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스타블로거 : 골드스타 s**********0 | 2023.07.24

 

 

 

 

카렌 암스트롱(지음)/ 교양인(펴냄)

 

 

 

 

 

 

 

 

 

 

 

 

종교의 이름으로 우리는 정작 해야 할 것을 실천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인간은 자신이 저지른 폭력의 죄를 종교라는 위대한 이름으로 세례한 후, 정치적 도구로 삼는 것은 아닌지!!!!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전쟁에 대해 나는 이 책을 통해 알았고 말하고 싶었다.

 

 

 

 

 

 

책 페이지 1에서 〈창세기〉 4:2, 8~10 동생인 아벨을 죽인 카인의 장면을 언급한 의미를 우리는 알 수 있다. 책은 저 수메르 시대에서 발원하여, 제국주의의 폭력을 거쳐 종교 근본주의를 관통하여 현대로 거슬러 올라온다. 시간순으로 총 13장으로 서술된다. 다시 한번 묻게 된다. 종교는 원래 폭력적인가? 개종 아니면 죽음이라는 이슬람의 방식, 물론 이슬람 뿐 아니다!! 그들의 경전에서 각자 신이 말한 '자비'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너희 중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요한복음의 말씀을 머리에 이고 산다면, 과연 남의 죄를 물을 수 있을까? 언행 불일치의 면모를 교회에 다니면서 가장 많이 본다.

 

 

 

 

 

 

 

 

 

 

동물 공희 풍습 죄 지은 자가 자기 죄를 사함 받기 위해 순한 양을 제물로 바치는 비슷한 모습으로 다양한 종교에서 볼 수 있다. 종교의 폭력적인 면을 쓰려면 지면이 부족할 정도라는 저자!! 문명의 폭력성!!!

 

 

 

 

 

 

 

 

수메르, 농경의 시작과 전쟁의 탄생에서

 

최초의 전쟁 영웅으로 기록되는 길가메시 신화. 일리아스나 오디세이아에서 언급된 장면들. 수메르인은 최초로 공동체가 생산한 잉여 생산물을 징발하여 특권 지배층을 만들어낸 것으로 보인다. 그 무렵에도 농민은 최저 생활 수준으로 살아갔는 것. 노동의 열매를 강탈당한 농민은 노예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웠던 조로아스터교는 귀족의 요구에 적합하게 수정되어 페르시아 지배 계습의 이데올로기가 된다. 

 

 

 

 

 

 

이들이 살던 시대에는 신들이 우주의 상태를 관리한다고 믿었고 이런 불평등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을 터. 군대의 폭력을 '문명의 상징'으로 제시했다. 인간이 존재함과 동시에 지배, 피지배가 생겨났고 오늘날에까지 유효하다.....

 

 

 

 

 

 

 

인도, 비폭력을 향한 험난한 길

인도 아리아인의 의식과 신화는 근동의 목축민과 마찬가지로 조직화된 절도와 폭력을 찬양했다. 그들의 말로 '신성한 질서'였으나 오늘날의 시각으로는 전혀 '종교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베다의 의식은 "네가 주니까 내가 준다는" 상호 교환적이었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인도를 이해하는 데는 공통적으로 몇 가지 키워드가 제시한다. 그것은 전사들의 억제를 무디게 하는 '소마', 계급제도와 의무, 베다 의식, 불교 등이다. '신들의 나라'라 불리는 인도, 다양성을 안고 있으면서도 아직까지 계급 제도와 여성차별은 심각하다. 폭력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 물리적 폭력만이 폭력은 아닐 것이다. 차별과 편견, 여성의 사회활동 억압 등 이 모든 것이 '폭력'이다.

 

 

 

 

 

 

 

이 챕터를 읽으며 최근 아프가니스탄의 소식이 떠오른다. 여성의 활동을 제약하는 텔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블을 장악한 모습, 탈출하기 위해 미군 수송기에 줄을 선 수백 명의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의 표정, 어린 아기들의 얼굴, 겁에 질린 여자들, 먼저 도망친 대통령, 미군의 철수, 한국 교민의 피신 등등 계속 뉴스를 주시하면서 마음이 아팠다..... 이미 아프가니스탄은 너무도 많은 피를 흘렸다. 평화로 가는 길은 이다지도 멀단 말인가! 아직도 더 많은 피를 흘려야 하는가? 

 

 

 

 

 

 

 

 

책의 서사는 다시 중국으로 향한다. 동양의 황제 신화에 담긴 폭력성, 문명의 조건으로써 폭력을 언급한다. 이원론적 관점에서 문명국 VS 야만인 서사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왜냐면 우리는 선진국 VS 후진국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이다. 나는 선진국이라는 단어도 별로 달갑지 않다. 무엇이 선진이란 말인가? 자연친화적으로 사는 아프리카인들은 미개하다는 말인가? 우등생과 열등생으로 나뉘는 교실이나, 기득권 VS 비기득권 프레임은 그들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이념이 필요했을 것이고, 그 이념으로 종교가 사용되었다.

 

 

 

 

 

 

 

 

 

 

농경사회에서 국가 사회로 변하는 과정에서 사용된 폭력, 기득권은 자신의 권리를 빼앗일까봐 상상의 적, 공공의 적이 필요했고 그 가장 쉬운 수단이 종교였다. 십자군 전쟁이라든가, 가톨릭 VS 프로테스탄트의 전쟁, 수니파와 시아파, 종교 재판과 30년 전쟁, 산업혁명과 함께 세계로 뻗어나간 제국주의, 이후 민족국가 체제, 미국이 이라크 침공에도 같은 뿌리를 두고 있다. 현대에는 테러라는 이름으로 종교를 지키려 하고, 종교를 위해 전쟁을 명분화 한다.

 

 

 

 

 

 

 

 

저자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세계 3대 종교에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이는 가장 주목받는 종교이기 때문이다. 영국인 저자이면서 이슬람의 폭력성에 대해서만 비판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이들 50만 명이 죽었다고 들었다. 그러니까 히로시마에서 죽은 아이들보다 많은 수다.... 그런 대가를 치를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서방은 신의 이름으로 민간인을 죽이는 테러를 늘상 또 정당하게 비난하지만 서방이 벌이는 전쟁에서 죽는 수많은 민간인의 고통과 죽은을 '부수적 피해'로 일축한다면 도덕적으로 우월한 위치를 주장할 수 없다고... 모든 국가 이데올로기는 종교적이었다.

 

 

 

 

 

 

결국 이 책이 744 페이지를 들어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종교는 고유의 본질을 깨닫고 성찰해야 한다. 종교는 기득권이 아니라 사회로부터 소외된 '타자'를 향해 있을 때 가장 아름답고 가장 종교적이다.

 

 

 

 

 

 

 

 

♣♣덧. 책은 주로 중근동 &서양을 다루고 있다. 고대 아프리카, 아메리카의 종교들 예를 들면 마야나 아즈텍의 종교, 고대 오세아니아의 매우 특이한 종교를 더 추가로 2권이 나오면 어떨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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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운 폭력의 역사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R* | 2023.07.24

흔히들 야훼를 믿는 아브라함계 유일신교 3대장 ㅡ 유대교, 기독교(가톨릭, 개신교), 이슬람교 ㅡ 때문에 세상에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고들 한다. 그리고 이는 종교가 본질적으로 폭력성을 내포하고 있기에 어쩔 수 없다는 논리를 기반으로 한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의 <신의 전쟁> 은 이러한 통념에 반박하며 신의 이름으로 가해져 온 '성스러운' 폭력의 역사가 진정 종교만의 책임인지 의문을 제기하며 종교를 수단으로 사용하면서도 목적인양 전면화시키는 농경 기반 제국의 폭력(의 역사)을 고발하는 작품이다. 저자의 수십 년의 연구가 녹아 있는 작품이라 열흘간 읽으면서도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평소 지문을 읽으면서 의문스러웠던 포인트들이 있었던지라 그 부분을 해소하고자 서구 기독교 역사를 중심으로 읽었다.

 


농업은 인류를 정착시키고 문명을 만드는데 기여한 것도 사실이었으나, 책에 따르면 농업을 기반으로 한 체제는 폭력적일 수밖에 없다. 잉여 생산물의 여부 및 그 차이는 계급 사회의 기반을 형성했고, 지배자는 국가 통치 기술로써 종교를 이용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진 자는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폭력과 약탈을 일삼았다.

 

초기 종교들은 이러한 농경 사회에서 비롯된 제국의 폭력성에 반기를 들며 시작된다고 한다. 특히 농경국가의 폭력성을 고발했던 구약은 이스라엘 사람들로 하여금 "가나안의 도시 국가들로부터 도망 나오면서 농경 사회의 체제 폭력에 정면으로 맞서는 이데올로기를 발전시킬 것" 을 이야기한다. 더불어 이스라엘인들에게 구약은 "도시 생활의 계층화된 압제를 버리고 목자 생활의 자유와 평등을 얻으라" 고 고집하는 약속과도 같았다. 예수는 당대 모순적이고도 폭력적인 지배 체제의 질서에 반기를 드는 혁명가와도 같았다. 그리고 그의 죽음 이후 이어지는 순교자들의 죽음은 신앙의 중심화인 동시에 국가 폭력의 잔혹성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이슬람교 또한 당대 농경 체제가 유발하는 계급 체제에 반기를 들며 제국에 대항한 공동체 지향적인 메시지를 전파하기 위한 것이 시작이었다.

 

순교자 숭배는 기독교 신앙의 중심이 되었다. 이들이 예수가 유일무이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교회의 한가운데에는 신성한 권능을 지닌 ‘하느님의 친구들’이 있었다. 순교자들은 ‘다른 그리스도’였으며, 그들은 죽기까지 그리스도를 모방함으로써 그리스도를 현재로 가져왔다. [...] 순교는 늘 소수의 항의가 되지만, 순교자들의 폭력적 죽음은 국가의 구조적 폭력과 잔혹성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순교는 늘 종교적일 뿐 아니라 정치적 선택이었으며, 이것은 나중에도 마찬가지다. 제국의 적으로 겨냥당하고 당국과 완전히 비대칭적인 권력 관계를 맺고 있는 이 기독교인들의 죽음은 다른 종류의 충성을 도전적으로 주장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미 로마보다 본질적으로 우월한 고귀함을 얻었으며, 순교자들은 자신의 죽음을 억압자의 문간에 갖다놓음으로써 효과적으로 억압자를 악마로 만들었다. 동시에 이 기독교인들은 원한의 역사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고, 이것이 그들의 신앙에 새롭게 공격적인 날을 세우게 된다.

 


기독교는 제국에 반기를 들며 이어진 종교의 전통이었다. 그러나 로마 제국은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하며 '기독교인 황제' 라는 모순적인 존재를 탄생시킨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타자에서 주체가 된 기독교는 제국주의의 특징인 강탈과 폭력에 오염된다. 이단은 이제 더 이상 교리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제정분리가 불가능했던 로마에서 다른 길을 가는 이단은 곧 황제에 대한 반기, 더 나아가 팍스 로마나에 대한 위협을 의미했기 때문에 국가적 차원에서 이단이 탄압되기 시작한다. 신앙인들은 제국을 기독교화하고자 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겠으나, 현실은 신앙이 제국주의화되었다.

 

모든 성공한 제국의 이데올로기에 되풀이해 나타날 세 가지 주제를 한꺼번에 볼 수 있다. 제국의 선과 그것에 반대하는 악한 자들을 대립시키는 이원론적 세계관, 통치자를 신의 대리자로 보는 선민 사상, 세상을 구한다는 사명.

 


문명은 늘 강제적으로 이루어지며, 따라서 국가 폭력은 공공질서에 당연한 것으로 내재화되어 왔을 것이다. 농경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의 변이 또한 이 폭력의 과정이 수반되었고, 그 속에서 불안감을 느낀 이들은 상상의 적을 만들어 타자화시키고 폭력을 행사한다. 끊임없는 <타자에 대한 불안> 은 유대인과 무슬림을 비롯한 '이교도' 에서 '이단' 으로, 이단에서 '타민족' 으로, 주류 문화에 동화되지 못한 '소수 집단' 으로 확장되어 나간다.

 

농경 국가의 억압은 산업화의 구조적 폭력으로 대체되었다. 더 자비로운 국가 이데올로기가 발전하고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이 전에는 오직 귀족에게만 가능했던 안락을 누리게 되지만, 일부 정치가들의 최선을 다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건널 수 없는 간극이 늘 부자와 빈자를 갈라놓는다. [...] 산업화는 민족 국가도 낳았다. 농경 제국은 단일 문화를 강제할 기술이 없었다. 근대 이전 왕국의 경계와 영토는 느슨하게 규정할 수 있었을 뿐이며, 군주의 권위는 일련의 중첩된 충성을 통해 존중되었다. 하지만 19세기에 유럽은 중앙 정부가 통치하는 분명하게 규정된 국가로 재구성되었다. 산업 사회는 표준화된 읽고 쓰는 능력, 공통어, 인간 자원의 통일적 통제를 요구했다. 신민은 통치자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에도 통합된 ‘민족’, 즉 ‘상상의 공동체’ ? 이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도 깊은 관련성을 느끼라는 권유를 받는다. ? 에 속하게 되었다.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누가 세계의 고통에 책임을 져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인류사에서 종교는 늘 공동체를 향했다. 지배 계급의 논리와 합치되며 폭력과 약탈에 변질되어 오긴 했으나, 그럼에도 본질은 주류 체제에서 소외당한 이들을 끌어안기 위한 것이었다.

 

역사 속 산업혁명과 함께 수반된 제국주의적 폭력은 국외로 뻗어 나가 타자 착취를 정당화하였고, 이는 특히 라틴아메리카와 아시아대륙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십자가의 폭력으로 침략당한 라틴 아메리카가 아이러니하게도 가톨릭의 힘으로 해방을 맞이하고, 보수적인 가톨릭이면서도 사회 참여적인 해방 신학이 가장 발달한 곳이라는 점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종교로 가장한 군주의 폭력성을 격파하기 위해 종교를 개인화하는 과정이 근대의 역사였다면, 종교가 주류에서 소외된 타자들을 위해 다시 공동체를 향하는 것이 곧 탈근대의 역사라는 말이 마음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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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카렌 암스트롱의 「신의 전쟁: 성스러운 폭력의 역사」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 YES마니아 : 로얄 난* | 2023.01.28

 

“어떤 신앙 전통도 군사적으로 막강한 제국의 후원이 없었다면 ‘세계 종교’가 되지 못했을 것이며, 모든 전통은 어쩔 수 없이 제국의 이데올로기를 개발하게 된다.”

30P

모든 전쟁은 자원 경쟁에서 비롯된다. 인류는 더 많은 식량, 자원, 토지를 차지하기 위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전쟁을 벌여왔다. 전장의 깃발에는 온갖 숭고하고 휘황찬란한 가치가 아로새겨져 나부끼지만, 사실 자원 경쟁의 틀을 넘어서는 고도의 대의명분은 존재하지 않는다. 전쟁의 명분이란 살이 터지고 뼈가 으스러지는 참상으로부터 애써 눈을 돌리게 하려고 고안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자원 경쟁이라는 명백하면서도 얄팍한 동기를 넘어서는 숭고한 정신적 차원의 명분이 정교하게 구성되어야만 사람들은 쟁기를 버리고 칼을 들 수 있다.

전쟁은 다양한 경로로 명분을 섭취하지만, 그중에서도 종교는 그야말로 가장 풍성한 명분의 보고나 다름없었다. 근대 이전에 종교는 정치 및 일상생활과 완전히 융합되어 있었다. 종교적 가치와 양식은 삶의 모든 양태를 좌우했다. 하지만 그 어떤 신이나 예언자도 특정 민족 구성원 전체에게 직접적이고 명백한 방식으로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게 전할 수는 없었기에 종교적 의사결정의 많은 부분은 늘 특권적 소수의 해석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종교가 삶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컸다는 점, 그러면서도 시공간을 초월한 일관된 교리적 해석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이 전쟁의 제1명분으로서 종교의 입지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사제와 권력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신의 선택을 받은 특별한 민족이고, 우리가 가는 길을 막는 자들은 모두 타락한 이교도들이므로 신이 벌하실 것이다. 종교는 이처럼 선한 우리와 악한 타자로 구성된 이분법적 세계관을 확고히 하는데 긴요한 토대를 제공했다. 이러한 역사가 되풀이되면서 어느덧 종교 자체가 모든 폭력의 근본적 원인으로 느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Karen Armstrong)이 고대부터 동시대 테러리즘까지 종교와 폭력의 역사를 가로지르며 하고 싶었던 말의 요지는 폭력의 원인으로서 종교를 지목하려는 손쉬운 접근의 유혹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문제의 원인은 종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원 경쟁이라는 본질을 교리로 희석하려는 호전적인 권력과 왜곡된 민족주의에 있다. 전쟁의 명분으로서 경전에서 끌어다 온 문장에 집착하다 보면 폭력을 추동한 진짜 주체와 의도는 가려지게 된다.

저자는 고대 수메르 문명에서부터 힌두, 이슬람, 유교, 법가, 유대교, 가톨릭, 개신교 등 거의 모든 민족과 종교를 얕게 아우르며 종교와 폭력에 결부된 역사적 실례들을 속도감 있게 보여준다. 종교와 폭력이라는 두 개의 키워드로만 거의 700페이지를 채운 셈인데, 진정 세계사 전체를 빈틈없이 아우른 것 같은 착각을 준다. 그만큼 두 키워드는 지금까지의 거대서사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지배적 변수였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저자는 특히 모든 종교가 역사적 흐름 속에서 불필요한 폭력을 억제하는 평화적 완충지대의 역할과 오히려 폭력을 부추기는 호전적 기능을 교차적으로 표출하며 긴장의 역사를 구성해 왔음을 강조한다. 우리가 아는 한 완전히 평화적인 종교도, 완전히 호전적인 종교도 없다는 것이다. 만약 완전히 평화적인 종교가 한때 존재했었다고 하더라도 아마 우리는 오늘날 그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완전히 평화적인 종교가 어떻게 그 교리를 누군가에게 전하며 어떤 형태로든 흔적을 남길 수 있었겠는가?

모든 종교에는 실로 다양한 면모가 깃들어 있다. 인류는 자연이라는 무지막지한 힘에서 느껴지는 무력감에서 어떻게든 벗어나 보고자 신화를 창조해 냈고, 종교적 신념은 가공할 정신적 응집력을 만들어내 단독자들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을 성취하게 했다. 우리는 피라미드와 고딕 양식의 중세 대성당을 바라보며, 저런 성취를 가능하게 만든 원동력이 무엇인지를 생각한다. 물리적 토대를 벗어난 저 너머의 세계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없다면 불가능한 성취다. 믿음은 암암리에 희로애락의 모든 국면에 기저 조건으로 작용한다. 철천지원수를 사랑하게 만들 수도, 가족 간에 칼을 들이대게 할 수도 있다. 인류 문명사의 최고 걸작품을 탄생케 할 수도, 반대로 그 걸작품을 한순간에 먼지로 만들어 낼 수도 있다. 하나의 종교가 그 모든 양극단의 의사결정 과정에 근거가 될 수 있다. 이편이나 저편이나 하나같이 같은 신의 이름을 들먹이며 서로의 목전에 칼끝을 겨눈다.

신이 죽었다고 선언된 오늘날에도 그러한 종교의 양면성과 아전인수는 여전히 유효하다. 신이 죽은 성좌에 인본주의와 신자유주의가 대신 앉아 있을 뿐이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야당이나 여당이나 똑같은 ‘국민’의 이름을 들먹이며 자기 뜻을 관철하려 악다구니를 부린다. 독재국가는 배타적 민족주의를 내세워 타자를 악마화하며 정권의 당위성을 옹립한다. 분쟁지역에 군대를 파견하는 지도자들은 하나같이 그곳의 자유를 수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십자군 전쟁 이후로 자유의 수호는 전쟁의 가장 당면한 명분이었으나, 진정한 의미에서 집권 세력이 아닌 평범한 백성들의 자유를 최우선 과제로 고려한 전쟁은 없었다.

폭력의 시간에 광신도적 열정만을 주범으로 몰아 손가락질한다면 폭력을 선동한 권력자들은 진짜 의도를 은폐할 시간을 벌게 된다. 진짜 미치광이가 허공을 향해 휘두르는 주먹질이 아닌 이상, 모든 조직적 폭력은 자원 경쟁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고, 그 폭력으로 주머니를 채운 자가 누구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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