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어지고 자지러지는 동물계 음경 이야기
2012년 코스타(Rui Miguel Costa) 연구진은 ‘그 실수’를 저질렀다. 남성중심적 과학 연구에서 늘상 일어나는 실수다. 그들(참고로 연구자 3명 모두 남성이다)은 남성 생식기(음경)의 어떤 특징이 진화적으로 선택되는지 알아보겠다는 명목으로, 여성들에게 설문하여 질 오르가슴을 조사했다. 글쎄, 인간의 성 행동을 ‘음경이 질에 들어가는 것’에 국한하는 것은 지나친 축소이며, 여성은 음경을 선택하는 데 쓰이는 질에만 신경계를 지닌 고깃덩어리가 아니다.
하지만 연구진은 끝까지 음경을 고집했다. 설문에 응한 여성들 중 30퍼센트는 음경 길이가 중요치 않다고 말했고 29퍼센트는 음경-질 자극으로 오르가슴을 느끼지 않는다고 답했음에도, 그들은 “수정 가능성을 최대화하는 방식으로 여성의 신경계를 자극하는 능력”을 토대로 남성 생식기가 선택될 수 있다고 썼다. 심지어는 청소년기 여성들이 크기라는 척도로 음경을 평가할 수 있고 그걸 토대로 “성교 능력”(질 오르가슴을 유도하는 능력?)을 추론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까지 나아갔다. 한번 움켜쥔 페니스를 절대로 놓지 않으려는 듯했다.
어쩌다가 음경은 남자들이 멋대로 휘두르는 몽둥이가 됐을까?
‘남성다움을 대변하는 불끈거리는 오벨리스크’로 추앙받으면서, 음경은 후끈 달아오른 남자들의 머릿속을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과학자들이 편견을 고스란히 반영한 연구 결과를 내놓는 와중에 일상에서 여성들은 SNS로 딕픽(dick pic: 남성 성기 사진)을 받는 등 성폭력을 경험하곤 한다. 인스타그램으로 딕픽과 함께 “누나랑한번해보고싶어요”라는 메시지를 받은 래퍼 재키와이, 끊임없이 ‘스폰’ 제의를 받는다는 가영(아이돌 그룹 스텔라 출신 연예인) 등등, 음경으로 여성을 굴복시키려는 시도는 계속 일어나고 있다. 누가 이 생식기에 왜곡된 상징을 덧입혔는가? 도대체, 음경이란 무엇인가?
페미니스트이자 과학 저널리스트인 에밀리 윌링엄은 『페니스, 그 진화와 신화』에서 이 질문들의 답을 찾기 위해 각종 동물의 음경과 짝짓기 방식을 탐사한다. 따끔한 바늘로 상대의(혹은 자신의) 몸을 아무데나 찔러 정자를 전달하는, 인간과 전혀 닮지 않은 달팽이부터, 입으로 암컷의 생식기 안을 문질러서 입구를 느슨하게 만드는 진드기까지 다양한 사례를 살펴본다.
진화심리학자 제프리 밀러는 스트리퍼 여성이 배란기에 더 많은 팁을 받았다며 여성이 혼외 상대들과 바람을 피우기 위해 배란의 단서를 누설한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이렇게 남성중심적(음경중심적)으로 왜곡된 과학 연구들을 지적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어서 음경과 삽입이 어떻게 출현하고 진화했는지 알아보고 여러 동물의 음경과 아예 그것이 없는 종까지 살펴본 다음, 마지막으로 인간에게 시선을 돌린다. 동물계의 드넓은 음경 스펙트럼에서 인간의 것이 어디에 속하는지를 이해함으로써, 우리의 페니스가 전쟁이 아닌 사랑을 위한 것임을, 위협용이 아니라 친밀감을 쌓기 위한 기관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2050년, 꿈에 그리던 화성 이주에 성공했다고 상상해보자. 만약 거기서 음경으로 추측되는 것을 지닌 동물을 발견한다면? 그 물건이 진짜로 음경인지, 아니면 그냥 좀 거시기하게 툭 튀어나온 부위일 뿐인지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여기서 “교미할 때 상대의 생식기 안으로 집어넣고 정자(난자)를 전달하는 것”이라는 기준은 합리적인 양 보인다.
단어부터 짚고 넘어가자. 정자 전달 기관이 모두 학술적으로 음경(남근)인 것도 아니고 그걸 반드시 수컷(남성)만 지니지도 않는다. 책에서는 삽입과 전달이라는 폭넓은 기능을 담당하는 부위를 가리켜 ‘도입체(intromittum)’라고 한다. 모든 성에 적용 가능한 라틴어 명사의 중성 형태다.
암컷에게 사정하기 위해 다리를 집어넣는 것은 인간 경험의 한계를 벗어난 듯하다. 지네와 더불어 징그럽게 다리가 많기로 유명한 노래기는 8번째 다리 쌍을 도입체로 사용한다. 샛노랗고 새빨간, 화려한 색깔의 갯민숭이는 어떨까? 이 친구는 둘로 갈라진 도입체를 써서 한쪽은 상대의 머리를 향하고 다른 쪽은 생식기 입구로 뻗는다. 이 과정은 ‘머리외상성 분비물 전달’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으로 불리지만, 실제론 아주 아름답다(동영상이 있으니 직접 확인해보시길!). 한편 꼬리개구리는 인간과 달리 정액을 발사하지 않는다. 대신에 수컷은 암컷의 골반을 움켜쥔 다음 자신의 ‘꼬리’(정확히는 총배설강이 늘어난 부위)를 집어넣은 뒤 그것을 일종의 미끄럼틀로 삼아 정자를 흘려보낸다.
2018년에는 새로 발견된 어느 동굴 곤충의 도입체를 어떻게 지칭해야 할지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박쥐 배설물에서 영양소를 뽑아내 근근이 살아가는 이 동물은 암컷이 도입체를 지니고 수컷의 몸에서 정자를 빨아들였다. 연구자들은 “역전된 생식기”라고 했고 사람들은 “암컷 음경”이라고 불렀다. 특정 구조에 동물의 성별에 따라 다른 이름을 붙이는 관행을 따라야 할까? 성별과 무관하게 기능에 초점을 맞춰 그냥 ‘음경’이라고 할 수는 없을까? 저자는 기능에 따라 부르는 쪽이 더 타당하다고 본다. 우리는 누가 뇌를 쓰는지에 상관없이 뇌를 그냥 ‘뇌’라고 하니까.
각양각색 음경의 상상도 못한 정체! 책에서는 ‘음경이란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기준선을 멋대로 넘나드는 동물들을 살펴본다. 읽다 보면 이 기관의 실체가 무엇인지 모호해질 것이다. 이로써 저자는 남근중심주의가 모래밭 위에 세워진 기둥처럼 불안하고 근거 없는 신화에 불과함을 드러낸다.
페니스는 죄가 없다
2019년 10월의 어느 날 저녁, 우크라이나 셰브첸코보 마을에서 한 여성이 성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조금 독특한 일로 화제에 올랐는데, 여성의 목을 조르던 강간범의 음경을 그 여성의 남편이 스위스 군용 칼로 잘라버린 것이다. 곧이어 나타난 구급차는 강간범을 병원으로 실어 갔고, 피해자 여성은 태우지 않은 듯했다. 모든 신문 기사는 잘린 음경에 집중했으며, 피해자에 관해서는 “심리적 회복에 오랜 기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짤막하게 한 줄 실리거나 아예 그조차도 삭제되었다.
이 끔찍한 사건에는 오늘날 사람의 음경에 부정적인 윤곽을 부여하는 모든 요소가 관여한다. 강간범은 음경을 무기로 사용했고, 남편은 그의 음경을 살의를 지닌 인간 전체를 대변하는 것으로 삼고서 상징적인 행위로 그것을 잘라냈으며, 구급차와 언론은 여성이 당한 신체적·정신적 위해보다 음경 상실을 더 중요하게 다루었다. 이렇게 잘못된 방향으로 주목이 쏠리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지를 알아차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했다.
음경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음경중심적 관점은 여성을 차별할 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해롭다. 그 관점은 ‘내가 더 커’라는 하찮은 자존심 싸움을 부추기고, 남자들은 (평균 크기인 사람들도) 자신의 음경에 문제가 있다고 느껴 심리상담소나 비뇨기과를 찾으며 심지어는 젤킹(jelqing) 같은 위험한 방법으로 크기를 늘리려다가 심각한 상처를 입는다. 음경을 올바르게 사용하려면 섹슈얼리티의 발원지로서 음경이 아닌 다른 기관을 마땅히 중심에 놓아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뇌, 그리고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