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엽 저
천선란 저
델리아 오언스 저/김선형 역
이미예 저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 저/황가한 역
아름다운 작품으로 지상을 약간은 더 살 만한 곳으로 만들어주셔야 하고요.
바로 그게 문학의 역할인 것 같은데요
레 망다랭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프랑스 지식인으로서의 고민과 삶을 다룬 소설이다.
전쟁이 끝난 것을 기념하는 크리스마스 파티로 소설은 시작한다.
"인류는 어디론가 향하고, 역사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 압제와 빈곤은 그 속에 소멸의 약속을 품고 있었다. 악은 극복되었고 파렴치한 행위는 제거되었다."
전쟁은 승리로 끝났고, 이 시기는 인류와 역사가 올바른 길로 나아가고 있다는 확신과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짧은 시기였다. 전쟁 중에는 무엇이 악인지 명확했고, 전쟁만 끝나면 모든 것이 좋아질 것이라는 미래에 대한 밝은 희망만이 존재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났음에도 그 누구도 전쟁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었고, 모든 것이 좋아지고 그저 행복하기만 하리라던 환상은 사라졌다. 전후의 프랑스는 소련식 공산주의와 미국식 자본주의 그 사이의 휴머니즘 사회주의 등 다양한 정치적 분파와 계층으로 나뉘어 혼란이 가중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계의 중심이라 믿었던 파리에서 모든 발언들이 전세계에 영향력을 미치던 프랑스 지식인으로서 권위를 잃어가는 무력감과 문학의 역할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앙리와 로베르를 통해 묘사한다.
지식인의 역할은 무엇인지, 문학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옮고그름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 목적이 수단에 앞서는지 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소설이다.
소설 속 인물들인 앙리와 로베르는 사르트르와 카뮈를 모델로 한 인물이라고 한다.
(보부아르는 다른 주인공 '안'에게 자신의 일부가 섞여 있을 뿐 다른 인물은 특정인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은 아니라고 했다지만 인물들의 성격이나 삶의 궤적이 사르트르와 카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소설 후반부에서 앙리와 로베르를 갈라서게 만든 소련의 강제수용소 관련 폭로에 대한 입장차이도 흥미로웠다. 앙리와 로베르의 목적은 같았으나 한명은 폭로를, 한명은 침묵을 선택했다. 사회주의의 승리를 원하는 목적은 같았으나 수단에 대한 입장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보부아르의 단편소설인 '모스크바에서의 오해'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나오는데,
개인의 행복을 포기하지 않는 공산주의가 가능하리라는 희망을 품었던 소련의 붕괴와 함께 실현가능한 인류의 이상향을 잃은 박탈감과 무력함이 엿보인다.
현대사회는 이데올로기 싸움에서 승리한 시장자본주의의 독주체제를 공고히 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지닌 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이상적인 체제를 상상하는 것 조차 쉽지 않다.
더 나은 미래, 이상향에 대한 희망이 삶과 사회를 이끌어가는 가장 강한 동력 중 하나일텐데
이상향을 꿈꿀 수 없는 오늘날 우리의 무력감과 박탈감이 레 망다랭 속 인물들의 삶과 생각을 우리 자신의 일처럼 공감하게 한다.
이상향이 무너지고 희망을 뺏겨도 문학은 계속되어야 한다. 삶을 조금이라도 더 살만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2차 대전 직후의 프랑스 지식인들의 일상으로의 회귀, 달라진 세상에 대한 깊은 고민을 서로의 관계 속에서 소통하며 어떤 것이 바르게 살아가는 것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행동하고, 살아내고자 하는 과정을 이야기 하는 책.
어느 방송 프로그램에서인가 유시민씨가 다시 읽고 싶은 책으로 꼽았던 책이다. 그 마음을 다는 알수 없겠지만 웬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책이다. 나는 전쟁을 겪은 세대는 아니지만, 코로나로 인해 달라진 일상을 보내며 지금이 전쟁과 다름없다고 생각하곤 한다. 레 망다랭은 나와 다른 시대, 다른나라, 다른역사를 이야기 하고 있지만, 등장인물들의 관계, 감정, 개개인의 삶의 방향을 찾으려는 노력은 지금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소설의 형식으로 쓰여졌지만 읽는 내내 실재하는 이야기를 읽는 느낌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내 삶을 다시 한번 되돌아 보게 하는, 앞으로 다가올 삶의 방향을 어떻게 잡을것인지 생각해보게 하는 귀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