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 [인간 실격]
I. 한 줄 요약
약간의 위선과 이기주의를 겨루는 게임에서 퇴출된 자의 넋두리 그리고 그의 비참한 말로
II..전체적인 소감
칙칙하고 끈적끈적한 늪에서 허우적거리다가 겨우 기어 나와 살아난 느낌이다
인간은 낯설은 행복보다는 익숙한 불행을 선택한다는 인간 본성에 대한 믿음을 재확인을
시켜준 책이기도 하다
예를들면 폭력적인 가장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매 맞는 아낙과
'프랑수아즈 사강'의 책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등장하는 사랑에 헌신적인 '시몽'대신에 불성실하고 바람둥이 '로제'를 선택하는 39살의 이혼녀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폴'
오바 요조는 호리키나 넙치따위를 인간들을 적당한 거리에서 컨트롤을 하지 못하고
질질 끌려다니다가 게임에서 퇴출된 자의 최후에 걸맞게 소설이 마무리 된다.
사강이나 다자이 오사무의 책들이 인기가 있고 잘 팔리는 이유가 도대체 뭘까하는 강렬한 호기심이 생겼다.
내게 있어 두 책의 공통점은 읽는 내내 주인공의 선택이 바보같고 어이없는 결말에
뒤통수 씨~게 쳐맞은 느낌인데 사람들은 이런 느낌을 좋아하나?
매조키스트적인 측면이 모든 사람들에게 있나?
공통점은 두 책 모두 일단 얇다 책 값이 저렴하다 그래서 부담 없이그냥 사서 읽나?
바보같은 두 주인공보다는 내가 낫다라는 위안과 처연한 자위에 몰입해서인가?
아마도 어두운 인간 본성과 약간의 거짓과 계략으로 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메세지가 인상에 깊이 박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조심스레 유추를 해 본다.
III. 등장인물 평
오바 요조: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경제적 어려움 없이 자랐고 인간들의 속고 속이는 삶에 그렇지만 서로 속이는 줄도 모르고 속는 줄도 몰라서 상처받지도 않은 모습에 의아해한다.
약간의 위선과 이기주으로 돌아가는 세상을 간파하였으나 적응하는 데는 실패한다.
본인의 허약함을 술,담배, 모르핀,매춘의 뒤에 숨고 그것을 알선한 호리키에 더욱 의존하게 된다.
그리고 나서 결핵병원인줄 알았으나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고 자신이 배신당했다고
좌절한다. 넙치나 호리키에게는 오바 요조는 사람이 아니고 돈이 되는 물건의 하나였을 것이다.
넙치: 인간 세상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자신의 이득이 되는 일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이권을 챙기며 온갖 생색을 다 내는 전형적인 인간
사업적 수완도 뛰어나다 그래서 부도 상당히 축적한다 그러나 베푸는 데 아주 인색하다
아마 죽을 때 가진 돈 못 싸들고 저승을 갈 때에 아까워서 발을 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호리키: 지인들이나 친구들 등이나 쳐먹고 빼먹을 것 없나 기웃거리는 자로 주위에서 넘쳐난다 이런 사람들의 전형적인 특징이 순진하거나 착한 사람들 목에 빨대를 꽃고
상대가 말라 비틀어 질 때까지 피를 뽑아 먹으면서 친구 사이에 그 정도도 못해주냐며 더 큰소리 치는 파렴치한 종자들이다.
정작 다른 친구들이 도움이 필요할 때는 연락이 안되거나 아주 바쁜일 매우 중요한 일이 공교롭게도 그때 생겨서 시간적으로 금전적으로 도움을 줄 형편이 안되는 이유가 백만가지가 생기는 족속들이다.
쓰네코, 약국주인: 오바 요조의 고독을 냄새를 맡고 모여든 여인들
요시코: 가장 안타깝고 지켜주지 못해 미안했다.
범죄의 본인이 피해자이면서 오바 요조의 눈치를 봐야하고 불안해하며 움찔움찔하며 살아간다. 인간사가 그렇다 왜 피해자가 더 눈치를 봐야만 하는 세상일까?
IV.인상적인 장면
죄의 반대말을 찾는 요조와 호리키의 대화
죄의 반대말을 알려면 죄를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
무한한 신뢰는 죄가 될 수 있는가?
내가 정의하는 죄의 정의는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다.'
예를 들면 경찰도 없고 보는 사람이 없는 횡단보도를 무단횡단하는 것은 죄인가란 질문에
적어도 나에게는 죄가 안된다.
그런 상황에서는 반드시 무단 횡단을 하라는 소리가 아니니 오해가 없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정도의 규칙을 어기는 것은 나쁜 일이 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건 나를 속이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임에도 귀찮다고 하지 않고나 개입하는 것이 싫어서 모른다라며
나 스스로를 속이는 것은 죄'라고 생각한다
그리므로 죄의 반대말은 자기 자신에 대한 정직이라고 할 수 있겠다
타인에 대한 정직이 아니다 스스로에게 정직해야 하는 것이 죄의 반대말이다
이것을 나타내는 명사가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본다 자존감? 자신감? 한글에서는 적당한 명사가 떠오르지 않는다.
자신에 대한 정직과 타인에 대한 정직을 구분하는 명사가 한글에 있었으면 좋겠다.
두번째, 요시코가 겁탈당하는 장면에서 주인공의 태도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혹시 이 장면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사람들이 이 책을 많이 읽는 건가 ?
야구 방망이나 골프채로 상인의 대갈빡을 부숴놨어야 했다 호리키는 친구 부인이 당하는데도 구경하고 있고 요조는 옥상으로 도망치고 공포에 휩싸였다고 한다. 아 이건 또 뭔가?
이런 감정은 도대체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V.끝맺는 말
세상은 맑은 물이 아니다. 맑은 물에는 물고기가 살기 힘들기도 한다.
시궁창 냄새와 음식물 찌꺼기 뒤섞인 오물통이다
그곳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견뎌내야만 한다.
적당히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되 스스로에게 정직할 것 그리고 예수 석가 공자와 같은 반열에 오르려고 너무 노력하지 말 것
성자는 우리가 노력한다고 되지도 않고 스트레스 만땅이니 자기 것을 챙기되 자기 것만 너무 챙기지 말고 남도 조금 챙겨주면서 적당히 살아가는 것이 삶이 아닐까 싶다.
바로 이게 '중용'의 삶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끝.
소설이 그려내고 있는 절망감의 깊이만을 본다면, 소설을 보는 한 명의 독자로서 나까지도 곧바로 깊은 우울감에 빠져들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묘하게도 소설을 읽으며 느끼는 감정은 단순히 절망과 우울만이라고만 표현할 수 없는 복잡미묘함을 지닌다.
비현실적일 정도의 상황에 현실과의 괴리를 느끼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 그저 극단적인 형태라고만은 할 수 없지 않나 하는 동질감으로도 이어지기도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나약함이며, 부끄러움이며, 혼란스러움이다.
'인간 실격'이라는 표현이 깊게 와닿는다. 비난을 위해 만들어낸 표현이 아니라 자조적인 표현이라는 점에서 더욱. 여기서 말하는 인간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무엇이 부족했기에 실격이라는 판단을 내릴 수 밖에 없었을까. 소설을 읽을수록 확고한 생각보다는 여러가지 의문과 고민이 늘어간다.
우연치 않게 데미안과 인간실격을 나란히 읽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데미안과 인간실격이 놀랍도록 비슷한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인간의 투쟁과 자조 혼란이라는 점에서 두 소설은 다르지 않다. 하지만 두 소설의 방향성과 종착은 서로 전혀 다른 곳으로 흐른다. 데미안은 종국의 희망적인 미래를 암시하지만 인간실격은 단적으로 말해 파국으로 흐른다. 그 점이 인간실격이라는 소설을 더욱 아프게 느껴지게 한다.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삶이 우울하고 삶에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작가와 그 작가가 만들어낸 주인공의 이야기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전해지는 듯하다.
책의 줄거리도 간단하고 그 인물 서사도 복잡할 것이 없지만 책을 다 읽고나서는 복잡한 마음으로 상념에 젖게되는 내 모습을 보게된다.
하지만 우울함 속에서 예술성이 빛나는 것인지, 이 책을 읽다보면 참 예술이네..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인물의 감정을 너무도 세밀하고 섬세하게 표현하는 부분이며 우울하고 착잡한 심정을 눈에 보이고 만질수 있는 무언가로 표현하는 것이 예술인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