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평범한 일상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을 다루는 작가 마스다 미리.
《수짱의 연애》 를 비롯한 다양한 만화 작품으로
일러스트레이터 이자 만화가로 알려진 그녀는
만화를 제외하고 여행에세이 등의
작품활동을 주로 하는 편이지만,
드물게 장편소설도 집필하곤 했는데
이 책이 그녀가 써낸 두 권의 장편소설 중 하나이다.
사별 후 여유로운 인생의 후반기를 보내고 있는
기요코 이모의 제안으로 불쑥 갑자기
브라질 패키지 여행을 떠나게 된 히나코.
그녀는 이혼 후 혼자 살아가고 있는
언니 야요이의 집에 얹혀
파견직으로 일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30대로,
화려하고 뜨겁게 빛나는 브라질에서
마치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세계에 빠진듯한
느낌에 휩싸여 총 천연색으로 빛나는
새로운 삶의 자극을 받게 된다.
여행을 준비하며 외모가 별로라 관심없던
직장의 영업팀 정규직인 이시오카씨가
'남미 여행'을 다녀왔다는 것 하나로
그를 새로이 보게 되서는
여행을 계기로 그와 공감을 이뤄 관계를 진전해
인생의 반려자가 되면 어떤 인생이 펼쳐질까 하는
소위 '김치국'을 마시기도 하고
같은 패키지에서 알게 된 화과자 가게를 운영하는
기무라 부부의 미혼 아들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그들 중 하나와 결혼해 기무라 부부의 가업을 물려받아
'젊은 사모님'의 역할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기도 한다.
히나코가 함께 살고있는 언니 야요이는
결혼을 이유로 전업주부의 삶을 살다가
이혼으로 인해 경단녀(경력단절 여자)로서
요양보호사 일을 하며 근근히 살아가고 있었는데
동생이 여행을 간 동안
평소에는 하지 않을, ‘매일 새로운 일을 하는 룰’을
정해 하나씩 기록해나가기로 하며
그녀 역시 나름대로 일상에서의 일탈을 통해
본인의 삶에 변화를 주는 시간을 갖게 된다.
언니인 야요이 역시 동생 히나코처럼
요양보호사로 방문하는 가정에서 알게 된
아들과의 미래를 잠시나마 떠올린다거나
수영장에서 만나 새로이 알게된
(부자이며 여유있는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
친구와 함께 일을 시작하기로 하면서
'부장'이라는 직함을 가지며
커리어적으로 성공한 자신의 모습을 그리기도 한다.
그렇게 일탈을 통해 빛나는 장밋빛 인생을
꿈꾸고 상상하던 그녀들은
각각 여행이 끝나고 일명 '현타'로 인해
와장창 다시 조금은 암울한 현실로 돌아온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지만,
능력도 없고 노력할 의지도 없는 그녀들은
여전히 현실에서도 기요코 이모의 유산과 같은
요행을 바랄 뿐이다.
하지만, 여느 픽션과 달리
마스다 미리의 소설에서는 어림없는 소리이다.
꿈에서 와장창 깨서 현실로 돌아와
일상으로 돌아가는 그녀들의 모습으로
이 이야기는 마무리 된다.
과하지 않은 현실적이고 신선한
마스다 미리식 마무리에 피식하고 웃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하게 되었는데
그녀들의 꿈처럼 장밋빛 미래가
현실이 되지는 않았지만
사실은 약간만 일상에서 변화를 주어도
그 일상 속에서 내 모습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그리고 평범한 그녀들의 일상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매일을 살아내는
그녀들의 모습에서
많은 공감과 위로를 얻을 수 있었다.
기요코 이모는 여행을 통해
내심 자신을 데려가지 싶어 질투가 난 듯한 언니와,
노력하지 않는 히나코,
머릿속으로 계산이 빠삭해 약은듯 싶은 야요이까지
세 여자에게 좋은 자극은 물론
새로운 삶을 스스로 이끌어내는 방법을
일깨워주고 싶었던게 아닐까 싶다.
어떤 의미로든 이 여행을 통해
엄마는 오래된 본가의 주방 리모델링으로
새로운 환경을 만들었고
히나코는 좀더 코드가 맞는 직장을 찾게 되었으며
야요이는 마지못해 하고있다고 생각했던
요양보호사 일에 대한 확신을 다시 얻게 되는 등
각자의 성장을 얻게 되었으니,
다뤄지지 않은 그들의 미래는
좀더 뜨겁고 뜨겁게 빛나는 시간으로
바뀌었으리라 믿는다.
'마스다 미리'의 책은 에세이로만 읽어왔는데 소설로 만나게 되서 반가운 마음이 컸다. 읽을 때는 너무 잔잔한데 이거 읽는 속도가 날까? 걱정했는데 읽다보니 이미 반 이상을 읽었고 마지막 책장을 덮는데까지는 불과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된 것처럼, 너무 선명하게 여행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과거 유럽여행과 대만 여행에서 만났던 지역 축제의 기억이 오버랩되면서 '그래, 여행을 갔을 때 나도 이렇게 느꼈지!' 공감을 하며 읽어갔다. 물론 히나코의 속마음을 따라가면서, 히나코의 시각에서 브라질 여행을 떠올려보면서 왠지 모를 속물 같은 부끄러움도 느끼면서 말이다.
너무 현실적이여서 이게 소설인가 싶을 정도로 굉장히 흡입력 있는 책이었다. 어떻게 보면 아무런 주제가 없는 정말 신변잡기적인 수필같은 소설이랄까. 근데 읽고나면 왠지 모르게 오늘 하루를 마치고 내일을 준비할 수 있을 것 같은 힘이 나는 소설이다. '그치, 인간이라면 원래 자기 원하는대로 해석하기 마련이잖아. 그게 뭐, 당연한 생각이지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눈 앞에 펼쳐진 여행지의 잔상을 느끼며, 현생을 그저 살아가는대로 살아가는 주인공들을 보며, 이질감이 느껴지는 주인공들의 시점 전환을 보며 삶이란 그런거지, 다 그렇게 살아가는거지 하는 위안을 받게되었달까.
일 년에 한 번이어도 좋겠다.
이토록 주목받고 뜨겁고 뜨겁게 빛날 수 있는 밤을 갖고 싶다. 이런 밤이 있다면 나머지 364일 아무것도 없어도 좋다.
평균대를 걷는 듯한 불안정한 생활도 그 앞에 있는 어두컴컴한 미래도. 모든 것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밤을 히나코는 갖고 싶었다.
주어진 업무를 착실하게 하고 직장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가능하면 내가 의지가 되어주고 그 보수로 돈을 받길 원했다. 히나코에게 일이란 그런 것이었다. 그런 자신이 이기적인 것 같아서 양심의 가책이 들기도 했다.
"야요이 씨라면 할 수 있을 거야. 기술은 나중에 배워도 돼. 예쁜 것을 예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
...
나답게, 아니 나니까 할 수 있는 일도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꼭 있을 것 같은, 어쩌면 나일지도 모르는 그런 평범하게 살아가는 이야기. 평범함이 주는 따뜻함이 필요하다면 이 소설을 추천하고 싶다. 읽다보면 현실보다 더 현실을 살아가는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기에!
딱한번만이라도 절대 일어나지 않는 우리네 평범한 일상.
사실 재마 중 언니가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가는 것인가했는데
그런것도 아니었고. 그래도 늘 우리는 현실이 지겹고 적적하고
새로운 무언가를 갈구하는 인생. 내 인생에 특별한 이벤트가 일어나주기를 바라는
바램을 늘 갖고사는 인생. 그런 이야기를 덤덤히 해주는 마스다 미리 언니.
언니의 네컷 만화 이후 소설로 점점 빠져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