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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방랑자 잡초들이 문을 부수고 문명으로 들어와 우리가 자연을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어 놓았는가.” ― 리처드 메이비 Richard Mabe
인간은 문명 초기부터 식물과 긴밀한 관계를 이루며 살아왔다. 인류 문명의 근간이 되는 농경에서 시작하여 식물을 이용해 물건과 집을 만들고, 식물을 약으로 사용하고, 식물을 기르고 감상하는 것 자체를 취미로 즐기기도 한다. 인간의 관점에서 어떤 식물은 이처럼 유용하지만, 그렇지 않은 식물들도 있다. 우리가 잡초라고 부르는 식물들이다. 잡초는 끊임없이 인간의 영역을 침범하고, 농작물을 말려 죽이고, 인간의 기물을 파괴한다. 그렇다면 잡초는 마땅히 없애버려야 할 자연의 무법자일까? 저자 리처드 메이비는 이러한 잡초야말로 오늘날 인간이 자연에 가한 무차별적 공격에 맞서 생태계를 지키는 수호자임을 역설한다. 잡초는 공장화된 농업과 생태 오염으로 퇴화된 초목을 치유하고 땅의 빈 공간을 메움으로써 홍수나 산사태 등의 재해로부터 다른 생물들을 보호하도록 발전해온 고도의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인간중심적 관점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각도에서 식물과 자연의 역사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처음 읽는 식물의 세계사
인간의 문명을 정복한 식물 이야기
리처드 메이비/김영정
탐나는 책/2022.3.21.
sanbaram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잡초지만 대부분 그냥 지나쳐 버리곤 한다. 그러나 농사를 짓거나 정원을 가꾸는 사람들이 골치 아파 하는 것이 잡초다. 잡초라 하는 것은 때와 장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잡초란 무엇인가? “잡초는 ‘부적절한 장소에서 자라는 식물’로 정의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당신이 다른 식물이 자라기를 바라는 곳, 또는 어떤 풀도 자라지 않기를 바라는 곳에 존재하는 식물이다.(p.20)”라고 <처음 읽는 식물의 세계사>에서는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잡초가 어떻게 어느 특정한 곳에서 자라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찾아보며 우리 인간의 문화와 결부하여 설명하고 있다. 특정한 식물을 세밀화로 보여주는 것은 좋았지만 천연색이 아닌 흑백으로 그려져 있는 점이 못내 아쉽게 생각되었다. 저자 리처드 메이비는 영국을 대표하는 자연 작가이자 저널리스트로 <대영 식물 백과사전>을 집필했다. <공짜로 얻는 음식>, <날이 다시 개었다>, <춤추는 식물>, <자연 치유>를 비롯해 30여 권의 책을 저술했다.
<처음 읽는 식물의 세계사>에서는 잡초가 인간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고 하면서, “잡초는 기생식물이 아니다. 그들은 인간이 없어도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 곁에서 유독 번성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자연계에서 그들의 생태적 협력자다.(p.29)”라고 저자는 말한다. 잡초는 우리가 땅에서 하는 일을 좋아한다. 숲을 청소하고, 땅을 파고, 농사를 짓고, 영양분이 풍부한 쓰레기를 버리는 것 등이다. 그들은 경작 가능한 들판이나 전쟁터, 주차장, 여러해살이풀이 자라는 화단 가장자리에서 잘 자란다. 그리고 우리의 운송시스템과 요리에 대한 모험심, 포장에 대한 집착을 잘 활용한다. 무엇보다 그들은 우리가 세상을 휘젓고 안정된 질서를 어지럽힐 때 우리를 활용한다. 요즘 잡초가 제초를 가장 많이 하는 곳에 가장 무성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라고 강조한다. 그렇기 때문에 잡초는 딱 봐도 변화가 심한 땅과 훼손된 풍경에서 자랄 수 있도록 진화했으며, 우리 생각보다는 덜 유해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유럽과 북미, 호주의 도시에서 가장 흔한 잡초들이 사실상 모두 같은 종들이다. 사실 다국적 잡초는 대부분 원산지가 유럽이다. 역설적으로 식민지를 찾아 떠난 모험의 부작용이었다. 하지만 국제 무역은 오늘날 잠재적 잡초들을 거의 동등한 처지로 내몰았다.(p.39)”고 말하면서 잡초가 국제 무역을 통하여 알게 모르게 전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음을 말한다. 아울러 잡초는 어느 한 지역이나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이제는 전 세계적인 문제로 대두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개미취의 친척인 서양등골나물은 줄기가 잎을 밀고 나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렇게 불린다. 하지만 그 이름은 현대 잡초들이 흔하디흔하다는 사실을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우리 세계에 아주 깊숙이 침투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식물이 처음 땅을 비집고 나올 때와 다 자랐을 때, 그리고 시들어 사라지기 시작할 때, 그 자리에서 지켜보는 것은 숙련된 식물학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해야 할 의무다.(p.95)”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느 한 시기의 식물 모습만 알고 있는 경우가 흔하다. 약초가 싹이 틀 때만 본 사람은 다 자란 약초를 알아볼 수 없고, 다 자란 약초만 살펴본 사람은 그것이 땅 위에 막 나타났을 때 알아 볼 수 없다. 잎 모양과 줄기의 크기 변화와 꽃과 열매의 변화, 그리고 알려진 다른 특정한 특징들의 변화 때문에 이런 식으로 제대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사람들은 큰 실수를 저질러 왔다. 그렇기 때문에 식물의 한 살이를 처음부터 끝까지 관찰해야 그 식물을 잘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공기와 토양은 화학적 메시지, 그러니까 포식자 곤충을 감지하고, 꽃가루 매개자를 유혹하고, 경쟁자를 죽여 없애고, 동료 식물들을 독려하고, 다른 식물들에게 곤충의 공격을 알리는 식물 페로몬이 끊임없이 분주하게 흘러 다닌다.(p.121)” 페르몬은 휘발성이며, 잎에서 나와 공기를 통해 전파되거나 토양으로 스며드는 수용성은 뿌리 침출물을 통해 전파되는 것이다. 관계된 식물이 많을수록 페르몬 메시지의 역할은 더 복잡해지며, 오랜 기간 정착된 식물 군락에서 이러한 화학적 대위법은 잡초 같은 침입자들을 쫓아내는 장치 중 하나인 것이다. 하지만 몇몇 정착종이 자라는 교란된 땅에는 기존의 활동이 거의 없으며, 그래서 잡초들은 자신의 화학물질을 퍼부어 경쟁자들을 진압할 수 있다. 그래서 한 종류의 식물이 일정 지역을 덮고 있는 경우가 종종 발견되기도 한다.
“이 풀은 중세 시대 프랑스에서 명상하는 듯한 ‘얼굴’이 생각하는 사람처럼 보인다는 이유로 팡시(pensees : 생각)로 알려지다 나중에 영어식으로 ‘팬지(pansy)’가 되었다. 하지만 영국 교구 주민들은 훨씬 덜 지적인 관심을 갖고서 얼굴이 두 개 있는 것으로 그 꽃을 보았다. 그것은 옆에 달린 꽃잎이 위쪽 꽃잎이 만들어 준 덮개 안에서 입술과 입술을 포개고 키스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p.15)” 그래서 ‘올려다보고 키스하세요.’는 서머싯 등지에서 불린 별명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특정한 장소에서 키스해 달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삼색제비꽃은 마음의 평온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모양대로 키스를 구하는 꽃으로 꺾이며 오로지 그 목적을 위해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잡초는 시계 같은 풀이다. 정원사 입장에서는 그 고집스러운 규칙성이 최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삶이 계속되고 있다고 일깨워주며 위안을 주기도 한다.(p.267)” 이처럼 일정한 때가 되면 싹이 트고 자라는 잡초는 곤충들에게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원료가 된다. 멧노랑나비는 어린 미나리아재비의 꿀을 모은다. 쐐기풀 나비와 공작나비 큰멋쟁이나비의 애벌레는 쐐기풀 잎을 먹고 산다고 한다. 그리고 잡초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라는 물음에 대한 한 가지 대답은 ‘나방’알 것이다. 이렇게 곤충들에게 꿀을 제공하는 대부분의 꽃은 따뜻한 날에는 활짝 피고 추운 날에는 오므리면서 태양을 분명히 기억한다. 그것은 곤충들이 활동하기에 알맞은 조건일 때 꽃을 열어 곤충을 유인함으로써 가루받이를 통해 씨앗을 만들기 위한 일이다.
“팀 로우의 <야생의 미래>에서 그는 현재 이 나라가 2,500종 이상의 외래 잡초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들로 인해 매년 40억 달러의 경제적 손실을 보고 있다고 자세히 설명한다. 그리고 그들은 호주의 오래된 문화로의 진입을 세계화의 한 예이자 결과라고 말하고 있다.(p.356)” 호주에서는 거의 모든 외래식물이 잡초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원래 호주에서 살지 않던 식물들이 세계 각 지역으로부터 유입되기 때문이다. 수선화, 스위트피, 라벤더, 복숭아, 올리브, 버드나무, 포도, 무화과, 당근, 스위트브라이어, 물냉이, 케슈페퍼멘트 등등, 그 목록은 매년 수십 개씩 증가한다. 생태계는 기후 변화와 멸종에 적응하며 순응한다. 회복력을 유지하려면 반드시 그래야 한다. 외래 침입종들 또한 한 번 욱하며 열을 낸다거나 제초제를 퍼붓는 것으로는 이 땅에서 몰아낼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우리의 생활과 생태계에 통합시키는 방법을 찾고, 도움이 되지 않는 새로운 종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귀화한 대부분의 외래종은 우리가 보아온 것처럼 하나의 다른 길을 따라 여행해 왔다. 그들은 개체 수가 자연스럽게 탈출하거나 의도적으로 추방할 수밖에 없는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정원에서 보살핌을 받으며 번식하고, 정원사들끼리 서로 나눠가진 것들이다.(p.373)” 이것이 영국의 자연보호주의자들을 걱정하게 하는 12가지 정도의 ‘침입 외래종’들이 양생에 들어오게 된 경로다. 잡초는 재빠르고 기회주의적인 생활 방식으로 그들의 역할 즉 그들이 하는 일이 땅의 빈 공간을 메우고, 산사태나 홍수, 산불로 인해 수백만 년 동안 자연적으로 완전히 지쳐버린, 그리고 오늘날에는 공격적인농업과 엄청난 오염으로 퇴화된 초목을 치유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토양을 안정시키고, 물의 손실을 막으며, 다른 식물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고, 더 복잡하고 안정적인 식물 체계의 전이 과정을 시작한다. 예를 들면, 중동의 건조한 토양은 일단 개간을 하면 그냥 날아가 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작물들은 태양으로부터 보호해 줄 것이 없어서 쓰러졌을 것이다. 어쩌면 잡초를 제대로 이해하고 멸종시키기보다는 타협한다면, 그들이 우리를 도울지도 모른다. 생태적으로 우호적인 농작물 관리 체계에서 실시한 여러 실험에서 그들이 보여준 것처럼 말이다.
“잡초가 인류의 원죄에 대한 벌이라는 성경적 주장은 그것이 생태학적 벌이라는 사실에 대한 무의식적인 이해와 함께했다. 그것은 또한 우리가 지구를 망가뜨리는 대가로 지불한 십일조였다.(p.420)” 하지만 일단 기계와 화학물질로 잡초를 공격할 수 있게 되자 그들은 우리의 이해 밖으로 튕겨나갔다. 그들의 외모는 이제 추리가 아니라 반사 신경을 자극한다. 그들은 우리의 생활방식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납득할 수 없는 무례한 침입자로 여겨진다. 그리고 그 관점은 더 급진적으로 변해서, 우리는 이제 우리 자신보다는 잡초 탓을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경멸스러운 이름을 붙였지만, 황야를 벗어나 우리의 손상된 세계로 들어와 그들이 자신의 복구 역할을 확장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