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노 저
임솔아 저
애나 렘키 저/김두완 역
로랑스 드빌레르 저/이주영 역
천선란 저
백온유 저
▣5-6장
버지니아 울프는 현존하는 작가의 작품들이 보관된 서가에서 이젠 남성 작가의 책만큼 많아진 여성 작가의 책들을 발견한다. 게다가 한 세대 전에는 손댈 수조차 없었던 다양한 주제의 책들도 많아졌다.
그 중 버지니아는 무작위로 소설 한 권을 고르고, 그녀가 고른 소설은 메리 카마이클의 [생의 모험]이었다. 메리의 첫 작품인 것 같은 그 책은 '클로이가 올리비아를 좋아하는' 내용이었다. 버지니아는 놀란다. 메리의 문장들은 관습에서 벗어난 것들이었다. 이전까지 남성의 시선으로만 재단되던 여성들의 관계가 여성의 시선으로 새롭게 표현된 것이다. 만약 그녀가 다른 남성 작가들처럼 더 많은 교육의 기회와 연간 500파운드라는 경제적 안정, 그리고 자기만의 방을 가지고 있었다면 더 멋지고 정리된 글을 앞으로 쓸 수 있을 것이라 버지니아는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각각의 내면에 남성성과 여성성을 가지고 있다. 그 둘이 조화를 이루고, 영적으로 협력할 때, 우리 존재는 편안한 상태가 된다고 버지니아는 말한다. 시인이자 수필가인 콜리지는 위대한 마음이란 양성적이라고 말했다. 그가 말한 양성적 마음을 가진 작가는 본인이 가지고 있는 생물학적 성을 초월하여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투과성이 좋은 글을 씀으로 모두에게 인정을 받는 존재가 될 것이다. 버지니아는 당대에 이런 양성적 글을 쓴 작가로 셰익스피어와 프루스트를 언급한다. 여러모로 인정받는 작가들이다.
이제 양성적 마음을 가진 남성의 글과 함께 양성적 마음을 가진 여성의 글들도 많이 나와야 한다고 그녀는 언급한다. 그러기 위해선 여성들에게 지적 자유와 다양한 주제를 쓸 수 있는 경험과 사색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그녀는 주장한다.
▣4장
16세기 엘리자베스 시대에 시를 쓸 수 있는 여성은 없었다. 시간이 흐른 후 지위도 높은 귀부인이 자신의 이름으로 무언가를 출간하였더니 사람들에게 괴물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그녀의 시에는 증오와 두려움이 표현되어 있다. 그녀는 높은 지위였으므로 주변으로 부터 제인 오스틴과 브론테 보다 격력와 지지를 받았을 터인데도 말이다. 그녀에게 증오와 두려움의 감정을 불러일으킨 대상들은 남성들이었다. 그들은 그녀가 글을 쓰는 것에 대해 비난하고 조롱할 힘이 있었다. 그녀, 레이디 윈칠시는 단지 글을 쓰는 것만 원했는데도 말이다.
18세기 끝 무렵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중산층 여성들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부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인 귀족만이 아니라 일반 여성들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은 여성들에게 마음을 소리 내어 말할 권리를 가져도 된다는 것을 확인해 준 것이다. 또한 글을 쓰는 것이 생계를 위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은 중요한 변화였다.
19세기 초에 이르러서는 여성들의 작품으로만 온전히 채워진 서가가 드디어 만들어진다. 그런데 그 책들은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소설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궁금해진다. 왜 여성들은 시를 쓰지 않았던 것일까? 이는 19세기 중산층 가정의 여성들이 글을 쓰는 장소가 온 가족이 공유하는 거실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언제든 누구든 드나드는 공간에서는 희곡이나 함축적인 의미를 담은 시보다는 산문이나 픽션을 쓰기가 수월하다.
또한 그녀들의 소설 소재는 언제나 제한된 공간만 다루고 있다. 이는 글을 쓰는 당사자가 제한적인 외출만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그녀들에게 이동의 자유가 이루어졌다면 그녀들의 글은 어땠을까? 또한 그녀들의 소재가 되는 글이 왜 남성들의 소재보다 평가절하 되는 것을 우리는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일까? 버지니아는 분노하고 있다. 그녀의 분노는 어떤 방향으로 어떤 결말에 이르게 될까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지음) | 최설희 (옮김) | 앤의서재 (펴냄)
남존여비, 삼종지도. 요즘의 아이들은 이 말의 뜻을 알까?
역사의 흐름 속에 많은 여성들의 몸부림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권리를 박탈당한 차별에서 여권신장을 거쳐 (진정한 평등과 페미니즘에서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남녀평등, 페미니즘에 이르렀다.
글을 쓰는 행위가 여성에게는 자유롭지 못했던 시절, 쓰고 읽는 것을 감추어야 했던 여성들이라고 해서 그것들에 대한 욕구마저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자신을 드러내고 당당하기를 원했던 여성들은 시대를 앞서갔다는 이유로 많은 질타와 모욕을 감수해야만 했다. 시대를 너무 앞서갔던 여성들은 똑똑함을 인정받지 못하고 되바라짐의 대표 명사처럼 되었다. 나혜석,전혜린. 외국의 여성들에게만 있었던 일은 아니다.
그리 멀지않은 과거에 남자들은 여자들을 무식하다며 무시하는 일이 종종 있곤 했다. 하지만 여자라서가 아니라 교육의 기회를 가져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여성들도 공평하게 교육의 기회를 갖는다. 더 이상 여자라서 무식하다는 얘기는 없다.
진정한 페미니즘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 것이다. 동등하게 대우받고 공평하게 기회를 갖는 것이다. 여성은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 여성이라는 이유가 차별과 냉대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되지만 무조건적인 배려와 보살핌을 받는 특별한 존재가 되어서도 안된다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물론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나는 여자다.
여성이 자유와 최소한의 권리, 자존심을 지키기위해 필요한 것은 자기만의 공간과 돈이라고 버지니아 울프는 말하고 있다. 주방과 거실처럼 공용 공간을 제외하면 개인적인 공간이 없기는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이것이 꼭 여자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리고 자기만의 방이 있다고 하더라도 오롯이 즐기고 느끼며 쉴 수 있는 시간(취침을 제외하고)을 가지기가 어렵다.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무형의 재화인 시간과 맞바꾸기 때문이다. 일을 하며 월급을 받고 돈을 모아 어떻게 쓸 것인지 고민하고 행복한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 시간과 맞바꾸는 일은 자기만의 공간을 누릴 수 있는 여유가 줄어드는 아이러니가 되어 버렸다. 이제는 자기만의 공간이 집에 국한되지 않는다. 혼자있는 장소가 아니더라도 본인이 즐기고 있는 곳, 여러가지 취미를 즐기는 곳이라면 그곳이 자기만의 방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