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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루저의 나라

독일인 3인, 대한제국을 답사하다

고혜련 | 정은문고(신라애드) | 2022년 5월 25일 한줄평 총점 10.0 (19건)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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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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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대한제국에 온 독일인,
지금의 대한민국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저자는 연구년을 독일 하이델베르그에서 보내면서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를 다룬 독일 기사를 찾았다. 몇 년 동안 자료 발굴을 통해 당시 독일인이 관찰한 대한제국은 많은 부분 호도되고 저평가된 것을 알았다. 이 책은 1898년 당현(당고개) 금광을 조사하고 돌아간 크노헨하우어의 1901년 강연문, 1913년 조선을 경험한 예쎈의 여행기, 1933년 라우텐자흐 교수가 백두산 밀림에서 만난 이름 모를 독립군 이야기를 바탕으로 독일 신문, 독일 대학에서 소장하는 한국관계자료집을 참조해 구성하였다. 대한제국을 답사한 3인의 독일인 기록을 통해 대한제국 역사를 바로 알리고자 엮었다.

목차

책을 펴내며: 하이델베르그대학 도서관에서 대한제국 찾기
머리말: 대한제국의 낯선 이방인
1. 대한제국은 동아시아의 황금사과인가?
세계 제국주의 열강 가운데 놓인 조선
개항 후 조선에 설립된 서양 무역회사
조선은 상업적 가치가 없다
금을 채취하면 가난한 나라가 될 것이다
크노헨하우어의 강연문 「Korea」(1901)
유럽인들이 잘못 알고 있는 한국 역사
2. 우아한 루저의 원형
풍전등화에 놓인 대한제국
헤이그 특사 파견은 과연 실패일까
독일의 동아시아 예술사 연구
예쎈의 여행기 「답사기: 조선의 일본인」(1913)
문화 차이에서 느끼는 루저
3. 백두산 가는 길
지배하는 제국, 저항하는 민족
일본이 꾸민 반중여론
독일의 동아시아 지리 연구
라우텐자흐의 「조선-만주 국경에 있는 백두산의 강도여행」(1933)
백두산 강도는 누구인가?
맺음말: 우아한 루저, 조선인의 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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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저 : 고혜련
1985년 이화여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박물관에서 재직하다가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독일 도상해석학의 연구방법론을 습득하기 위해 바르부르크가 교수로 재직했던 독일 함부르크대학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2002년 10월 하이델베르그대학에서 『미륵과 도솔천의 도상학』으로 박사논문을 제출, 2003년 2월 예술사학과 중국학 복수전공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그 후 LMU뮌헨대학 중국학과 조교수로 임용되어 2007년 한국 귀국 전까지 재직하였다. 2007년부터 2017년 5월 하이델베르그대학으로 연구년을 떠나기 직전까지 10여 년 동안 대학 강의와 독일 동아시아 연구 D... 1985년 이화여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박물관에서 재직하다가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독일 도상해석학의 연구방법론을 습득하기 위해 바르부르크가 교수로 재직했던 독일 함부르크대학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2002년 10월 하이델베르그대학에서 『미륵과 도솔천의 도상학』으로 박사논문을 제출, 2003년 2월 예술사학과 중국학 복수전공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그 후 LMU뮌헨대학 중국학과 조교수로 임용되어 2007년 한국 귀국 전까지 재직하였다. 2007년부터 2017년 5월 하이델베르그대학으로 연구년을 떠나기 직전까지 10여 년 동안 대학 강의와 독일 동아시아 연구 DB 자료 구축에 힘썼다.

하이델베르그대학 연구년 동안 하이델베르그대학, 뷔르츠부르그대학, 튀빙엔대학, 베를린자유대학에서 도상해석학 관점으로 본 한국예술사 강연을 하였다. 또한 독립기념관에서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위탁한 한국독립운동사 자료총서 제43집 『독일어 신문 한국관계기사집』 발간 작업을 완수, 이를 통해 일제강점기 새로운 자료를 세상에 알렸다.

현재 국제교류재단(Korea Foundation)이 파견한 한국학 교수로서 2019년 신학기부터 독일 뷔르츠부르그대학에서 매 학기 한국예술사, 한국사를 강의하고 있다. 앞으로 독일에 현존하는 한국관계자료를 찾아내고 번역 작업을 통해 올바른 한국관 정립에 노력할 생각이다.

출판사 리뷰

독일인 눈에 비친 대한제국,
과연 대한제국은 루저의 나라일까.

대한제국은 1897년 10월 12일부터 1910년 8월 29일까지, 조선의 국명이다. 그러나 제국이라는 이름을 가진 근대국가의 역사는 불행히도 너무 짧다. 그 시기 많은 유럽 제국이 동아시아와 무역을 하기 위해 현지 답사차 일본과 중국 그리고 대한제국을 찾았다. 또 그 기록을 본국으로 돌아가 강연, 신문 기사, 책을 통해 활발히 알렸다. 하지만 짧은 기간 동안의 방문으로 만들어진 기록에는 우리 역사에 대해 수많은 오류와 잘못된 인식이 수두룩하다.

독일에서 연구년을 보내면서 저자는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를 다룬 독일 기사를 찾았다. 그 과정에서 당시 대한제국을 방문한 독일인 자료를 발견, 자료를 통해 당시 독일인이 보는 대한제국의 진실이 많은 부분에서 호도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유럽에서 지금까지도 잘못 인식하고 있는 한국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독일인의 방문기를 번역, 꼼꼼히 묻고 수정했다. 하지만 오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아한 루저라는 말에는 찬란한 고대 문명을 가진 대한제국의 몰락과 영리하면서도 순박한 이 민족의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도 들어 있다. 이 기록을 통해 우리는 열강의 패권 싸움 한가운데에서 중립을 선언한 대한제국의 실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이 책은 1898년 당현(당고개) 금광을 조사하고 돌아간 크노헨하우어의 1901년 강연문, 1913년 조선을 경험한 예쎈의 여행기, 1933년 라우텐자흐 교수가 백두산 밀림에서 만난 이름 모를 독립군 이야기를 바탕으로 독일 신문, 독일 대학에서 소장하는 한국관계자료집을 참조해 구성하였다.

3인의 독일인은 말한다.

“여행자들의 표현대로 조선이 가난하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나라였다면, 조선 때문에 그토록 끊임없이 다툼이 일어나는 원인은 무엇일까요?”
- 크노헨하우어, 독일 산림청 관료

“크고 바른 당당한 체구와 잘생긴 모습의 사람들은 상의, 치마, 바지, 신발 모두 흰색으로 차려 입었으며, 머리는 뒤에서 흰 모자 안으로 감아올렸으며, 대나무 틀 위에 느슨하게 말총으로 직조한 높고 넓은 차양 모자를 쓰고 모자 끈을 턱 아래에 묶었다. 수많은 상점 앞에서 기다란 담뱃대로 끊임없이 흡연을 하거나 수다를 떠는 등 우아한 루저의 모습으로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 예쎈, 독일 예술사 연구자

“멀리 떨어진 경찰서에서 알려준 최근의 강도 습격 소식은 우리 일행을 매우 불안하게 만들었다. 며칠 전 30명의 강도떼가 호타이산[포태산] 북서쪽 5km 떨어진 중국 벌목인들 거주지를 통과하며 머물렀다고 한다. 만주 지역에서는 이들 강도떼와 군대가 전쟁을 치렀다. 체포된 두 명의 강도 머리는 공공장소에 내걸렸다.”
- 라우텐자흐, 그라이프스발트대학 지리학과 교수

19세기 제국주의 열강, 금광 채굴권 확보를 위해 대한제국을 답사하다

이 시기 조선을 방문한 독일 여행자들은 일본보다 높은 수준의 고대 문화를 소유한 조선의 문화를 보고 자신들의 눈을 의심했다. 실리를 따지는 중국인과 겉으로 함박웃음을 짓지만 속을 모르는 일본인 그리고 무뚝뚝해도 이방인에게 수줍은 미소를 머금을 줄 아는 순진한 조선인의 특성을 분명히 구별할 줄 알던 독일인들은 무기력한 루저 국가 대한제국의 몸부림을 안타까워했다. 한편 대한제국에 대한 열강의 요구는 채굴권, 어업권 등 이권 영역에 집중되어 있었다. 1895년 미국의 운산 금광 채굴권 획득을 시작으로 일본, 프랑스, 독일 등의 채굴권, 어업권의 연이은 획득은 1910년 한일병합에 이르기까지 이권 다툼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준다.

고종이 광산 채굴권을 허락하는 대신 생산 이윤의 25%를 약속받은 이유는, 고종이 내탕금 명목으로 의병과 사절단의 국외활동을 지원할 자금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조용하고 과묵하지만 삶을 즐길 줄 아는 민족

당시 독일에서 광산은 곧 국가 자본이며 부의 척도였다. 지구의 동쪽 어딘가에 금이 많다는 소문은 1897년 4월 금융기관 연합체의 형태로 코리아-신디게이트를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뒤셀도르프의 광산산업은행은 라인란드, 함부르크, 베를린의 투자자들의 펀드를 모아 투자하였다. 이것의 공식 명칭은 베를리너 디스콘토-게젤샤프트(Berliner Diskonto-Gesellschaft)이다.

크노헨하우어는 1897년 11월 독일을 떠나 1898년부터 1899년까지 약 1년 반 동안 대한제국에 머물면서 광물 지질 분포를 파악하기 위해 수차례 답사하였다. 크노헨하우어는 그의 일기에 이는 별로 내키지 않는 일이며, 금광을 찾는다는 것은 희망적이지 않다고 하였다. 그의 눈에 비친 조선은 지구상에서 제일 먼 동쪽에 숨듯이 위치한, 조용히 자연에 적응하면서 그저 평화롭게 살고자 하는 나라였다. 그가 본 조선인은 동아시아 3국 중에 제일 멋진 신체 조건을 갖추었으며, 외국인에게 친절한 중국인과 일본인과 달리 이방인 앞에서 수줍어했다. 성품이 순박한 조선인은 조용하고 과묵하지만 삶을 즐길 줄 아는 민족이었다.

독일인의 눈에 비친 우아한 루저

조선 관리와 권세가들의 횡포로 농민 계층은 착취를 당하고, 권세가 집안에서 소작농이지만 노예처럼 일하는 농민과 양반 사회의 병폐를 지적하며 양반이 조선 사회 루저의 원형이 됐다는 역설적 정의가 흥미롭다. 권세가들에게 착취당한 농민들이 정처 없이 떠도는 유민과 강도로 변하고, 이들은 외세에 저항하기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굶주림의 고통이 처절하였다. 이들에게 애국심은 차후 문제였다. 이러한 농민들이 오히려 외세 침입을 현실적 구원자로 여겼다는 논리는 당시 국제 정세에 어두운 순박한 백성들의 무지몽매함을 지적하며 조선의 외세 침입에 대한 당위성으로 연결하고 있다.

그들이 본 19세기 말 조선인의 특성은 수줍고 순박하며, 급변하는 세계의 흐름에 대응하기보다는 쇄국정책의 울타리 안에서 안주하는 것이 어울렸다. 조선의 성리학자들에게 제국주의자들과 공존해야 한다는 개념은 곧 바깥세상의 야만인들과 접촉하는 것이며 이는 성리학적 세계관에 위배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조선 선비의 유교적 윤리관은 제국주의 약육강식의 논리에 처참하게 짓밟혔으며, 결과적으로 대한제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만다.

중립국 선언 전략을 선택한 대한제국

고종의 전략은 1907년 헤이그에서 개최되는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비밀리에 파견하는 것이었다. 특사 3인은 만주의 이상설, 러시아의 이위종, 이준이다. 이들은 대한제국이 중립국가라는 점과 일본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라는 고종의 특명을 안고 1907년 6월 29일 헤이그평화회의장에 도착하였다. 제2차 헤이그평화회의는 1907년 6월 15일에서 10월 18일까지 개최되었다.

그러나 헤이그 관계자들이 보여준 특사들에 대한 반응은 싸늘했다. 대한제국이라는 나라는 금시초문이고 이 나라가 대표사절단을 보낼 권리가 있는지 의견이 분분하였다. 유감스럽게도 초청된 독립국가의 목록에 대한제국은 없었다. [베를리너-폴크스 짜이퉁] 1907년 7월 27일자 기사의 제목은 ‘대한제국 사절단의 항변’이다. 고종 황제는 특사를 파견하면서 “나를 돌아보지 마라. 나는 살해될 수도 있다. 그러나 내 삶은 이 나라에 속한다. 너희들은 내가 보낸 특명을 중단하지 말고 500년보다 오래된 대한제국의 독립권을 다시 찾아라”라며 비장한 마음을 보였다.

세계 흐름과 공존해야 한다는 인식이 부족했던 우아한 루저

조선은 1876년 개항 이후 1897년 대한제국을 거치면서 1910년 한일병합까지 그저 제국주의 국가의 희생양 노릇만 했을까? 19세기 말 20세기 초 근대화를 향한 조선이 생각한 외교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이들은 서구문명화를 위해 내재된 유교전통문화를 깡그리 없애고 서양일본인이 되고자 몸부림친 이웃과 다르다. 이들은 자주적 조선 개화를 위해 몸부림쳤으며, 동학농민운동을 통해 유교사회 부조리에 항거했으며, 국권을 회복하고자 대한독립군이 되어 만주벌판과 백두산을 누볐으며, 때로는 무기력하고 보잘것없는 투쟁이었지만 끊임없이 일제에 항거하며 끝까지 대한인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죽음을 불사했다. 이들이 없었다면, 독립된 주권을 소유한 21세기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종이책 회원 리뷰 (17건)

구매 마냥 무기력은 아니었다는 일말의 위안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 YES마니아 : 골드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q*****2 | 2023.01.18

100여년의 시간이 흘렀으나 진정한 의미의 평가는 쉬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현대의 변화에 끊임없이 영향을 받는 것이 역사여서 그런 듯하다. 결국 판단은 개인의 몫이다. 남은 기록을 세심히 살피는 가운데 자신이 취할 입장을 결정하는 과정이야말로 어쩌면 역사학자 E. H. Carr 가 말한 역사(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일지도 모르겠다. 

지금이야 경제대국 독일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불과 30년 가량 전반 하여도 독일의 인지도는 지금과 달랐다. 이 나라의 동서는 냉전 시기를 상징하는 장벽에 의해 나뉘어진 상태였다. 여전히 치열한 남북 대치 상태가 유지 중인 우리에게 독일은 동병상련의 아픔을 경험한 존재이면서, 바로 옆에 철천지 원수이자 악의 축을 둔 위험한 나라라는 인식이 강했다. 워낙에 영어권 국가(미국, 영국) 중심의 사고에 능했던 점도 이 나라에 대한 이해를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동했을 것이다. 우리에겐 상대적으로 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국가가 독일인데, 독일의 입장에서 우리는 어찌 인식됐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왠지 이 책으로부터 얻을 수 있을 듯했다. 

책 제목 <우아한 루저의 나라>는 3명의 독일인 시선에 비친 우리나라를 다루고 있었다. 조선이 사라진 자리를 채운, 이름만을 놓고 보면 제국이었던 ‘대한제국’을 그들은 경험했다. 한 때 강고한 쇄국주의 정책을 고수했던 조선의 연장선상에서 건국이 이루어진 대한제국이었음을 고려한다면 낯선 이방인들은 환영 받기가 어려웠으리란 짐작이 충분히 가능하다. 상대가 호의를 베풀지라도 다가서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터인데, 적대적이기까지 하다면? 그게 아닐지라도 이들의 방문은 한 나라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만큼 길지가 못했다. 유럽의 여러 국가를 제한된 기간 동안 훑은 것과 어쩌면 흡사할지도. 기록을 읽는 나로서는 여러 가지를 염두해 둘 필요가 있었다. 

가장 먼저 만난 인물의 이름은 크노헨하우어(Knochenhauer)였다. 독일 산림청 공무원이라는 그의 신분은 그가 이 땅을 방문한 목적이 무언지를 짐작케 했다. 1899년 무렵 조선은 열강의 관심을 한 눈에 받고 있었다. 나날이 팽창해가던 제국주의 세력은 식민지 개척에 열을 올렸고, 독일 또한 조선에서 금광 채굴권 등 이권 획득을 노리고 있었다. 그의 강연문 ‘Korea’는 이러한 관점이 적극 반영된 결과물로 보아도 무방하다. 강연이 이루어진 곳이 베를린 식민지연구회라는 점이 나에겐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저들에겐 선명한 계획이 있었다? 

예술사학자 예쎈(Jessen)의 답사기를 저자는 ‘우아한 루저의 원형’이라 칭했다. 그야말로 존재감이 없던 나라 조선에 대해서는 당대 세력 모두가 동의를 표할 듯한데, 예쎈의 시선은 고대 문화를 향하고 있어 조금 독특했다. 착취할 수 있는 대상, 일본에 의해 이루어진 근대화 등을 빗겨 그는 이 나라 사람들이 일군 하나의 문명을 주목했다. 그는 조선이 중국과 일본의 가교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으며, 조선을 지배하고 있는 일본의 원류가 조선이라는 점을 분명히 파악했다. 그의 시선에 일본은 군국주의에 열광하는 세력이자 서구 문명에 무차별적으로 동화되어가는 중인 존재에 불과했다. 허나 그는 학자였으며, 그릇된 흐름을 멈추게 할 의도나 힘이 없었다. 그가 조선인의 일상 생활을 흥미롭게 지켜보는 와중에도 일본은 조선을 야금야금 먹어 삼키고 있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마지막 ‘백두산 가는 길’은 지금은 갈 수 없는 곳이 된 북녘땅을 여행한 라우텐자흐 헤르만(Lautensach Hermann)의 기록이 있어 가능했다. 실로 날씨가 좋아야지만 제대로 된 감상이 가능하다는 백두산 천지를 제대로 영접(!)했던 듯. 그가 촬영했다는 백두산 천지 파노라마 사진은 어디에 내놓아도 웅장함 면에서는 뒤처지지 않으리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야말로 ‘대단히 아름다운 풍경’이었는데, 이 나라와 별반 관련이 없는 그에게는 허락된 백두산 방문이 우리에겐 금지라는 사실이 씁쓸하게 다가왔다. 압록강 상류에 위치한 조선인 마을을 담은 사진을 응시하며 오늘날의 모습과 얼마나 달라졌을지를 묻고픈 마음이 들기도 했다. 시도때도 없이 변화하는 도시에 대한 반감이 깊은 것과 별개로, 만일 압록강 유역 마을의 오늘날 모습이 시간이 멎은 듯 고대로라면 안쓰러운 심정을 느낄 것만 같았다. 

우리에게 정보가 많지 않았던 것 이상으로 독일인들 또한 우리를 알지 못했다. 수시로 그릇된 표현이 등장했으며, 그 중 일부는 일본인들, 더 나아가 제국주의 국가들의 시선과 판박이 모양새를 하고 있어 언짢았다. 그들은 수시로 다른 열강들의 입장을 고려했으며, 그 결과 조선인들이 내민 손을 결코 잡으려 들지 않았다. 폭력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그게 현실이었다. 한 번 시작된 흐름은 막무가내로 넘쳐흐르는 해일과도 같았으니, 제 아무리 독립국가를 표방한들 대한제국으로서는 감내할 길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마냥 무기력하지는 않았다는 점으로부터 적잖이 위안을 얻었다. 파란 눈의 독일인들은 고종 황제가 지닌 애민의식을 조금이나마 느꼈다. 한계가 분명함에도 투사들은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독립을 부르짖었다. 그것도 당당하게. 

 

이 책에 사용된 ‘우아하다’는 표현이 내겐 ‘처절하다’와 동일어로 읽혔다. 고상하고 기품이 있으며 아름답다는 수식어는 아무에게나 사용할 수 있는 게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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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리뷰 ●[한국사] 우아한 루저의 나라...●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스타블로거 : 골드스타 북*브 | 2022.02.25
"주트너여사는 이토 히로부미가 암살당한 직후, 1909년 11월 <프리덴스-바르테> 논설에서 이 사건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조선인이 조국을 위해 복수를 한 것이고, 2년 전 헤이그 특사로 파견된 이위종의 연설을 상기하며 일본이 얼마나 굴욕적으로 그의 조국을 탄압했는지 직접 들었다고 썼다. (184쪽)"

나는 고혜련님께서 저술하시고 <정은문고>에서 출간하신 이책? <우아한 루저의 나라>을 읽다가 윗글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윗글은 1905년 여성 최초로 노벨ㅈ평화상을 수상한 주트너여사께서 기고한 글로써 그 당시 안중근의사의 의거와 이위종선생의 헤이그 연설을 이 평화주의자께서 인식하셨다니...
정말 이 당시에도 참지식인은 계셨구나 정말 노벨 평화상을 수상할만 하시구나 바로 그걸 느꼈다.

글고 이책의 저자이신 고혜련님께서는?이화여대 사학과 졸업후 독일 함부르크 대학에서 석사과정을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는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는 국제교류재단이 파견한 한국학교수로서 2019년 신학기부터 독일 뷔르츠부르그대학에서 매 학기 한국예술사, 한국사를 강의하고 있다.

앞으로 독일에 현존하는 한국관계자료를 찾아내고 번역작업을 통해 올바른 한국관 정립에 노력할 생각이다.

그리하여 이책에서는 대한제국은 동아시아의 황금사과인가?, 우아한루저의 원형, 백두산 가는 길 등 총 3파트 319쪽에 걸쳐 우리가 잘못 알고있는 대한제국의 역사에 대해 정확히 짚어주시고 있다.

나는 고혜련님께서 저술하시고 <정은문고>에서 출간하신 이책 아주 잘읽었고 이에 나에게도 뜻깊은 독서가 되었다.

따라서, 이책은 잘못 알고있는 대한제국의 역사에 대해 정확히 알고싶어하시는 분들께서는 놓치지않고 꼭읽어보시길 권유드리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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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리뷰 [한국사] 우아한 루저의 나라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u*******7 | 2022.02.25




 

[우아한 루저의 나라]는 '우아한'과 '루저'라는 단어가 연결되어 의아함을 자아내며 묘한 흥미를 일으킵니다. 그러면서 '독일인 3인, 대한제국을 답사하다'라는 부제를 통해 우아한 루저의 나라가 바로 대한제국임을 깨닫게 됩니다. 모든 것이 불안하고 혼란스럽고 치욕스러웠을 대한제국 시대에 독일인들이 본 것은 무엇일지 궁금해지며 책을 만나보았습니다.

 

[우아한 루저의 나라]는 독일 하이델베르그대학에서 연구년을 보내던 지은이 고혜련이 일제강점기 조선과 관련한 독일 신문 자료들을 수집하고 번역하던 중 찾게 된 19세기 후반부터 조선을 다녀 간 독일인 3인의 여행기로 그동안 한국사에서 접해보지 못한 시점의 이야기라 흥미로웠습니다. 낯선 이방인들의 눈에 비친 우리나라는 어떤 모습이며, 그들의 여행에는 어떤 목적이 숨어있는지, 그러면서 왜 우아한 루저의 나라라 표현하는지 여러 궁금증들을 가지고 책 속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한 일제강점기 속 대한제국의 이야기를 독일인의 눈으로 만나보는 것은 새로우면서 한없이 순진하면서도 힘없고 무지한 그때 그 시간 속의 우리나라를 만나보며 우리의 뼈아픈 역사를 다시 한번 느껴보게 하였습니다.

한국사 [우아한 루저의 나라]는 19세기 중반 근대화를 무기로 서양의 제국주의가 몰아치던 동아시아의 상황 속 조선에 대한 열강들의 이권 야욕을 향한 모습에서 시작됩니다. 책 속에서 우리는 광산 채굴권을 획득하고 우리나라 금광 지역을 조사하기 위해 직접 방문한 독일 산림청 공무원 크노헨하우어의 강연문「Korea」전문과 독일 예술사학자 예쎈이 미국을 걸쳐 일본을 답사하며 쓴 「답사기:조선의 일본인」그리고 압록강 어귀부터 백두산 천지까지 여행한 라우텐자흐 헤르만의 「조선-만주 국경에 있는 백두산의 강도여행」을 만나보게 되는데, 3인의 색다르면서도 그때 그 시간들을 따라가보는 것만으로도 아주 흥미로운 여행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선의 풍경부터 생활 모습, 호랑이 사냥, 지층 파악, 고종에 대한 평가, 근대화 정책 속 조선과 일본의 비교, 백두산을 오르면서 만나게 된 강도들의 정체 등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모습들부터 독일인들의 눈에 비친 우리나라의 상황들과 그에 따른 그들만의 생각과 판단들이 흥미로웠습니다. 여행기 속 상황을 잘 느껴보게 하는 여러 사진 자료들이 함께하여 더욱 실감 나게 이야기 속에 빠져볼 수 있었습니다. 

 

정은문고 [우아한 루저의 나라]는 우리가 알고 있던 역사 속 일제강점기 대한제국의 상황에 대한 이해를 조금 더 실제적이며 자세히 해볼 수 있었습니다. 독일인 3인의 여행기 속에 녹아져있던 우리 현실을 바라보면서, 그때 그시간 속 대한제국이 진정 우아한 루저인지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하면서 우리가 잊고 있던 역사 속 우리의 시간들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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