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렉션이 왜 중요한가명품 미술품 하나가 도시에 주는 힘박물관의 격은 소장하고 있는 작품으로 판가름 난다. 필라델피아미술관은 세잔의 〈목욕하는 사람들〉을 보기 위해 방문하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이 작품은 세잔의 대표작이자 미술관을 대표하는 그림으로, 가격으로 보면 최소 3억 달러, 즉 3000억 원을 가볍게 넘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그림을 처음 구입할 당시인 1937년, 필라델피아미술관이 지역 미술관 후원자가 지원한 기금 11만 달러로 이 그림을 구입하자, 세계 경제 공황이 한창인 당시 비싼 미술품 구입에 대한 냉소와 비난이 일었고, 대표적 지역 언론지인 〈필라델피아 레코드〉는 “필라델피아 주민 4만 1000명(10%)이 욕조가 없으니, 그 돈은 다른 곳에 더 잘 쓰였을 수도 있었다.”며 비판할 정도였다. 그러나 현재 세잔의 작품은 미술관을 넘어 도시의 자랑이 되었으며 결국 필라델피아 시민은 1937년 욕조를 구입하는 데 돈이 쓰인 것보다 더 큰 문화적인 혜택과 명성, 그 이상의 경제적인 효과를 얻어내고 있는 것이다.국립중앙박물관의 관람객 통계를 보면, 한국고미술 전시보다 유럽 회화나 이집트 유물전의 성적이 월등한 것을 알 수 있다.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으로 이전한 뒤부터 한국에서도 소위 해외 메이저급 특별전이 개최되기 시작했는데, 1위는 2006년 개최된 루브르박물관전으로 52만 명, 2위는 2009년 개최된 이집트 문명전 “파라오와 미라”로 44만 명, 3위는 2014년 개최된 오르세미술관전으로 37만 명, 4위는 2016년 개최된 이집트 보물전 “이집트 미라 한국에 오다”로 34만 명 순이다. 이러한 경향은 미국, 유럽, 일본 등 박물관 전시 문화가 크게 발달된 지역도 비슷한데, 세계적으로 볼 때 매년 전시 흥행 1위는 인상파, 2위는 이집트, 3위는 그리스, 4위는 중국 유물 등의 순서로, 최고 흥행 전시 주제는 다름 아닌 인상파 전시다.아시아 국가 중 인상파에 관심을 갖고 근대화가 시작될 무렵부터 인상파에 주력한 나라는 일본이다. 모네가 그린 200여 점의 수련 중 10% 정도가 일본에 있을 정도다. 우리나라의 경우 A급 유물은 서울에 집중 전시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일본은 소도시에서도 명작을 소장 전시하고 있다. 폴라미술관, 오호라미술관, 미호미술관, 지추미술관 등이 그것인데 이 중 지추미술관은 심지어 나오시마 섬에 있어 배 시간까지 맞춰 오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도 다다오 설계의 건축과 함께 2×6m 크기의 〈수련〉을 포함한 5점의 〈수련〉을 소장하고 있어 한 해에 60만 명의 관람객이 일부러 찾아가 방문하는 명소가 되었다. 특A급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뮤지엄의 영향력은 단순한 작품 감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예이며, 이것이 곧 명품 하나가 도시에 주는 힘이다. 국내 박물관 수준을 넘어서는 업그레이드된 전시가 필요한 이유 1949년부터 마티스의 〈붉은 방〉이 뉴욕의 MOMA에 전시되기 시작하자 47세의 한 뉴욕 예술가가 그 유명한 붉은 방을 감상하기 위해 수개월 동안 계속 미술관을 찾았다. 이후 대가로 성장한 그는 자신의 예술적 업적은 전적으로 마티스의 〈붉은 방〉으로 가능했다고 훗날 밝힌다. 추상화가로 유명한 화가 마크 로스코의 이야기다. 이렇듯 명작을 국내에 보유한다는 것은 명소를 만들겠다는 의미를 넘어 예술가들에게 탄탄한 밑거름이 됨을 의미하는 일이기도 하다.돌아보면 현재 K문화가 세계인들로부터 큰 찬사를 받게 된 이면에는 온라인이라는 열린 공간 속에서 우수한 콘텐츠를 자유롭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빼놓을 수 없다. 국내 박물관에서도 상시적으로 세계적인 작품이 전시된다면 분명 국내 많은 아티스트에게 영감을 주고, 또 창작의 밑거름이 되어줌으로써 문화의 질적 성장을 가져올 것이다.2021년 국제신용평가회사 무디스가 실시한 국가별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평가에서 한국은 최고 등급인 1등급을 받았다. 미국, 영국, 프랑스, 캐나다 등 30개국은 2등급을 받았고, 일본은 이탈리아, 중국, 러시아 등 38개국과 함께 3등급을 받았다. 경제 성장과 더불어 문화적인 성숙과 예술품에 대한 안목 등을 미루어볼 때 이제 우리도 세계적인 박물관을 우리 곁에 둘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진 상태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박물관 마니아이자 소장 역사학자인 저자가 오랜 기간 직접 현장을 찾아 감상하고 수집한 자료를 저자의 통찰력과 상상력이 돋보이는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집필했다. 문화적으로 소외된 중소도시가 어떻게 세계적인 문화 도시로 주목받을 수 있는지, 그 방법을 박물관이라는 콘텐츠로 보여주는 신박한 발상은 그 자체로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박물관 컬렉션의 힘을 서사하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맥락하에 세계 유수 박물관의 인상파 컬렉션, 이집트 컬렉션, 구겐하임 빌바오 등 유명 박물관의 분점의 예들로 세계 박물관의 경향 및 세계적인 작품과 유물의 세세한 이야기를 엮어 들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