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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목정원 산문

목정원 | 아침달 | 2022년 6월 3일 한줄평 총점 9.6 (21건)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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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시 >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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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슬픔을 아는 아름다움만큼 가치 있는 것은 없으니까요.”
사라지는 것들이 남긴 흔적을 더듬는 목소리
공연예술이론가 목정원의 비평 에세이

공연예술이론가 목정원의 산문집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이 아침달에서 출간됐다. 목정원이 2013년부터 프랑스에서 6년, 한국에서 2년 동안 마주했던 예술과 사람, 여러 사라지는 것들에 관하여 쓴 책이다. 공연예술에 관해 쓰고 말한다는 건 일면 공허를 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발생하는 동시에 소멸하는 시간예술이기 때문이다. 작품은 관객의 눈앞에서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그리하여 관객에게 남는 것은 점차 희미해질 기억뿐이다. 그럼에도 목정원은 사라지는 것에 관해 말하고자 하며, 오히려 자신에게조차 작품이 충분히 희미해졌을 때에 쓰고자 한다. 한 시절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기억 속에 남은 흔적들과, 말이 되지 못한 것들을 건네주기 위하여. 이 책은 그러한 슬프고 아름다운 것들에 보내는 비평이자 편지이다.

목차

뒤늦게 쓰인 비평 05
공간에서 11
봄의 제전 21
솔렌 35
관객 학교 45
김동현 선생님께 64
비극의 기원 69
꽁띠뉴에 83
테러와 극장 95
연극을 끝까지 보기 위하여 116
장 끌로드 아저씨 127
춤을 나눠드립니다 153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175

상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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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저 : 목정원
서울대 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렌느2대학에서 공연예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여러 대학에서 공연예술이론 및 예술학일반을 가르치며, 변호하고 싶은 아름다움을 만났을 때 비평을 쓴다. 산문집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이 있다. 서울대 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렌느2대학에서 공연예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여러 대학에서 공연예술이론 및 예술학일반을 가르치며, 변호하고 싶은 아름다움을 만났을 때 비평을 쓴다. 산문집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이 있다.

출판사 리뷰

슬픔을 기억하려는 힘

우리는 실체가 있는 것만을 사랑할까. 혹여 본 적 없는 얼굴을 더욱 사랑할 수도 있는 걸까. 그럼에도 무언가에 마음을 기대야 한다면, 계속 사랑하기 위해 어떤 흔적이 더 필요할까.
─ 28쪽.

시간예술의 특징은 사라짐에 있다. 회화와 같은 공간예술이 한번 완성되면 파괴되지 않는 한 공간 속에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것과 달리, 연극과 같은 시간예술은 얼마간 시공간 속에 발생했다가 사라진다.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이라면 시간예술뿐이 아니다. 인간의 생 또한 한 편의 공연처럼 세상에 머물렀다가 시간 속으로 흘러간다. 그것들은 모두 인간의 기억 속에서 점점 희미해지지만, 그 와중에 어떤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물론 흔적이 남는 것과 존재가 남는 것은 다른 일이기에, 이 모두에는 근본적으로 슬픔이 있다.

목정원은 예술과 삶에서 마주치게 되는 그 슬픔의 흔적에 관해 말한다. 〈봄의 제전〉을 통해, 백 년 뒤의 관객들은 안무가 니진스키의 삶과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의 춤을 떠올린다. 춤이 기록되지 못한 채 원전이 소실된 작품을 복원하려 하거나 다시 만드는 일은 무엇일까. 이는 본 적 없는 이의 얼굴을 사랑하는 일이며, 그가 남긴 흔적을 그러모아 그 얼굴을 다시 그려보는 일이다.

의상제작자 솔렌과 만난 때를 돌아보며 저자는 무대의상의 특수성에 관해 이야기한다. 무대의상은 하나의 공연만을 위해 만들어진다. 그 옷들은 무대 위에서 잠시간 쓰였다가 이내 무용해져 창고에 보관되거나 애호가들의 수집품으로 남는다. 따라서 그 옷을 만드는 일은 발생하면서 소멸하는 고유함을 위한 일이며, 이때 무대의상은 그 자체로 생의 은유가 된다. 이는 목정원에게 안무가 알랭 플라텔의 〈타우버바흐(Tauberbach)〉를 떠올리게 하는데, 이 작품에는 제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들이 부르는 바흐와 함께 무대에는 수백 벌의 옷이 무덤처럼 쌓여 있기 때문이다. 무용수들은 음악을 비껴 가는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추고, 옷 무덤에 파묻혀 사라지고, 무덤 속에서 옷을 입고 나온다. 이어 알랭 플라텔의 다른 작품인 〈아웃 오브 콘텍스트 - 피나 바우쉬를 위하여〉를 함께 회상하며, 목정원은 누군가는 볼 수 없는 춤을 보고, 누군가는 들을 수 없는 노래를 듣는 일에 관해 생각한다. 누군가에게는 금지되어 있는, 사라진 것과 다름없는 경험에 따르는 슬픔에 대해.

어엿한 동시대인이 되기에 아직 우리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고 그것은 전부 타인의 아픔에 관한 일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모르는 동안, 어떤 이들은 멀리 떠나버리기도 했다. 남겨진 편지가 해독되지 않을 곳으로. 잊히지 않는 것들을 잊은 곳으로.
─ 47쪽.

목정원은 배삼식 작가의 〈먼 데서 오는 여자〉로부터 동시대인으로서 목도했기에 우리가 아는, 우리 몸의 역사가 된 죽음들을 읽어내고, 김동현 연출가를 추모하는 공연을 본 뒤 고인에게 편지를 쓴다. 현실과 작품 속에서 죽어간 여성들을, 왕명을 어기고서라도 오빠의 죽음을 애도하는 안티고네에 주목한다. 2015년 프랑스에서 발생한 테러 이후 죽음이 지닌 슬픔과 두려움이 극장을 무겁게 감싸고 있을 때, 혼란스러운 방식으로 세계의 고통을 직시하고자 하는 앙헬리카 리델과 의도치 않게 참상을 재현하는 로메오 카스텔루치의 연극을 통해 여러 죽은 자들 앞에 살아 있고 현존한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를 성찰한다.

이렇듯 여러 상실에 관한 기억을 오래 묻어뒀다가 이윽고 말로써 남기는 일은 저자에게 있어 슬픔을 해소하는 방식인 동시에 소멸 뒤에도 남는 것들을 통한 애도처럼 보인다. 그러한 애도는 어쩌면 〈봄의 제전〉에서처럼 떠난 이가 남긴 흔적을 그러모아 얼굴을 다시 그려보는 일과 유사할 수도 있고, 오르페우스가 마지막으로 보고야 마는 에우리디케의 얼굴 같은 것일 수도 있다. 그렇게 바라보고픈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리는 일이 기억하는 일로 이어지는 것이라면, 그 과업에는 필연적으로 사랑이 수반되는 셈이다.

사랑은 소멸을 넘어서 무언가를 기억하게 하고, 또한 그것이 개인의 기억을 넘어 다른 이들의 몸에도 새겨질 수 있도록 만드는 힘이다. 관객을 사랑한 예술가 장 빌라르에 관한 일화, 그리고 오페라를 사랑하는 장 끌로드 아저씨와의 우정 이야기, 그리고 저자 자신이 사랑했던 외할아버지에게 보내는 노랫말 등을 통해 사랑은 다른 이에게 많은 것을 전하는 일임을, 그러한 사랑의 흔적들을 유산으로 삼아 사람들은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음을 목정원은 또한 말해주고 있다.

나는 당신에게 노래를 나누어준다. 당신은 또 다른 곳으로 가 노래의 일부를 나눠줄 것이다. 목도한 슬픔을 당신의 몸에 기입하며. 당신의 호흡대로 춤추며. 다시 사랑하며. 그렇게 우리는 비로소 우리 자신이 되었다가, 마침내 우리가 아닌 것들로 흩어진다. 죽음 이후에는 정말로 영혼만 남게 될까. 그때도 서로를 사랑할 수 있을까. 서로를 비춰볼 몸이 없어도. 모든 계절을 춤으로 시작할 수 있을까.
─ 172쪽.

종이책 회원 리뷰 (16건)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내용 평점3점   편집/디자인 평점3점 | c******e | 2023.05.31
날것의 감상평이 아닌 오랫동안 품어 온전히 내것이 된 무언가, 보여주기위해 쓰여진 글보단 작가 본인만의 감정에 따라 쓰여진 그래서 묘하게 집중하게만드는 책.

낯선 장소, 생소한 연극,오페라를 이야기 하고있지만, 그걸 접하고 소개하는 작가 또한 우리와 같은 또 한명의 관객(혹은 독자)였다.
한 명의 감상자로써 오직 그 순간 그곳에 있던 사람들과만 공유했던 감상들, 거기에서만 할 수있었던 배우와 관객의 소통들.
작품을 분석해야하는 직업적 숙명을 지녔지만 작품을 통해 느낀 감정만은 오직 그것을 본 관객인 본인의 것이였다.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이라는 작가의 편지는 감상이
언어로 변환될때 언어가 품고있는 나라,상황으로 생기는 단어의 의미, 문화적 배경으로인한 한계에서 벗어나 온전히 작품을 품고싶다는 마음 같았다.

작품을 통해 느꼈던 무언가를 언어로 표현하는것이 원석과 다듬어진 보석의 모습이 다른것과 같다면, 가끔은 감상을 온전히 전하기 위해 차라리 침묵으로 모든 것을 품는 것도 하나의 감상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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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이 되어
내용 평점3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k*****1 | 2023.05.31

도저히 읽기 쉽지 않았던 책이었다.

나는 공연예술에 대해서는 문외한일 뿐더러, 작가의 섬세한 표현과 시대와 국경을 넘나드는 의식의 흐름은 도무지 따라가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꾹 참고 한 줄 한 줄 따라가보니 어느새 작가의 감정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작중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언젠가 매우 뚜렷하게 완전한 행복을 체감한 순간, 나는 그 순간의 모든 것들을 기록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격렬하게 망설인 적이 있다. ~ 기록하기 위해 몸을 움직임으로써 행복의 구체를 깨지 않았다."

작가는 시간예술과 공연예술을 비교하며 휘발되기에 아름다운 공연예술을 사랑한다고 했다.

과거 휘발성은 비단 공연예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지만 오늘날 우리는 기술의 발달로 존재하는 거의 모든 것을 기록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늘 그랬듯이 기술의 발전이 항상 긍정적인 효과만을 낳진 않았다.

당장 콘서트장에만 가봐도 너나 할 것 없이 핸드폰을 들고 있지 않던가.

그깟 직찍 영상 하나 때문에 비싼 돈 주고 간 공연을 온전히 즐기지 못한다면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디지털 세상 속에서 아날로그를 붙잡고 있는 삶이란 그야말로 낭만적이다.

어쩌면 장 끌로드 아저씨도 그런 마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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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슬픔을 이해하기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 B*S | 2023.05.31

공연예술은 발생하는 동시에 사라지는 시간예술이다. 작가는 사라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라지기 때문에 슬프고 아름다운 것에 대해 말한다. 그것에 대한 기억이 충분히 희미해졌을 때 기억하고자 한다.

 

공연예술의 일회성은 인생을 닮았다. 연극이 삶의 반영에서 출발했을까? "네 인생의 주인공은 너야" 같은 상투적인 비유를 볼 때마다 생각한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난데, 작가나 감독은 내가 아니었구나. 그걸 깨달았을 때 이미 극은 절반 이상을 지나고 있었다.

 

대본도 세트도 배경도 모르고 내가 주인공인 줄도 모르고 심지어 극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고 우리는 극에 던져진다. 잘 해낸다면 기적이다. 무사히 마치기만 해도 정말 대견한 일이다. 연습을 딱 한 번만 할 수 있었더라면... 후회하더라도 그런 기회는 아무에게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산다는 게 슬프다. 그래도 가끔은 아름답다. 공연예술의 특징처럼 삶도 그 순간이 지나가면 소멸한다. 사라지기 때문에 매 순간이 소중하다. 사라지는 것은 아프지만 아름답다. 끝이 있다는 것은 생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축복이다.

 

사라지는 아프고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기록해준 작가에게 고맙다. 슬픔을 알아보는 데 그치지 않고, 아픔을 글로 기억해준 것이 감사하다. 작가와 같은 모국어를 사용한다는 것이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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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회원 리뷰 (1건)

공연 비평 에세이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R*****^ | 2022.11.24
'공연예술이론가'의 비평 에세이.
2013년부터 프랑스와 한국에서 올린 공연들과 예술가, 작품들에 대해서 쓴 글이다.

나도 워낙 공연을 좋아하는 터라 아껴두고 천천히 읽었는데...
문제적 작품들과 작품을 바라보는 통찰력과 깊이 있고 수려한 문장에 한없이 작아졌다. 역시 전문가는 다르시다는...ㅜㅜ

찰나의 예술, 공연.
아무리 녹화를 해서 남겨둔다 해도 현장에서 느끼는 감동을 재현할 순 없다. 연극이든 콘서트든 뮤지컬이든 오페라든 무용이든, 공연은 무대와 관객이 함께 호흡하는 것이다. 그 분위기와 흐르는 감정은 그때 그 자리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고 그 순간은 오로지 그때 뿐이다. 무대 위에서 공연을 펼치는 사람도 관객의 웃음과 눈물, 환희와 함께 하며 매번 다른 퍼포먼스를 하게 된다.

슬플 때 노래하는 것이 이상해서 뮤지컬을 못 보겠다는 저자의 친구 이야기에 이렇게 얘기하고 싶다.
노래는 슬플 때 부른다고. 기쁠 때 부르는 노래보다 슬프고 아프고 외로울 때 우리는 노래한다. 많은 창작자들이 슬퍼야 곡이 나온다고 하지 않는가. 많은 노래들이 아픔을 노래하지 않느냐고.

니진스키의 전설적인 춤은 나도 정말 궁금하다. 오페라 속 기막힌 아리아는 언제나 소름 돋고, 화려한 뮤지컬은 오감을 만족시키며, 멋진 발레 공연에 설레고, 감동적인 연극에 울어 버린다. 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 무대들인가!
나는 그저 즐기리~~~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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