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선란 저
최은영 저/손은경 그림
조예은 저
황선우 저
김소영 저 저
이다혜 저
[이주의 신간] 『너는 활짝 피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 『디테일의 발견』 외
2023년 03월 15일
도저히 읽기 쉽지 않았던 책이었다.
나는 공연예술에 대해서는 문외한일 뿐더러, 작가의 섬세한 표현과 시대와 국경을 넘나드는 의식의 흐름은 도무지 따라가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꾹 참고 한 줄 한 줄 따라가보니 어느새 작가의 감정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작중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언젠가 매우 뚜렷하게 완전한 행복을 체감한 순간, 나는 그 순간의 모든 것들을 기록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격렬하게 망설인 적이 있다. ~ 기록하기 위해 몸을 움직임으로써 행복의 구체를 깨지 않았다."
작가는 시간예술과 공연예술을 비교하며 휘발되기에 아름다운 공연예술을 사랑한다고 했다.
과거 휘발성은 비단 공연예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지만 오늘날 우리는 기술의 발달로 존재하는 거의 모든 것을 기록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늘 그랬듯이 기술의 발전이 항상 긍정적인 효과만을 낳진 않았다.
당장 콘서트장에만 가봐도 너나 할 것 없이 핸드폰을 들고 있지 않던가.
그깟 직찍 영상 하나 때문에 비싼 돈 주고 간 공연을 온전히 즐기지 못한다면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디지털 세상 속에서 아날로그를 붙잡고 있는 삶이란 그야말로 낭만적이다.
어쩌면 장 끌로드 아저씨도 그런 마음 아니었을까.
공연예술은 발생하는 동시에 사라지는 시간예술이다. 작가는 사라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라지기 때문에 슬프고 아름다운 것에 대해 말한다. 그것에 대한 기억이 충분히 희미해졌을 때 기억하고자 한다.
공연예술의 일회성은 인생을 닮았다. 연극이 삶의 반영에서 출발했을까? "네 인생의 주인공은 너야" 같은 상투적인 비유를 볼 때마다 생각한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난데, 작가나 감독은 내가 아니었구나. 그걸 깨달았을 때 이미 극은 절반 이상을 지나고 있었다.
대본도 세트도 배경도 모르고 내가 주인공인 줄도 모르고 심지어 극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고 우리는 극에 던져진다. 잘 해낸다면 기적이다. 무사히 마치기만 해도 정말 대견한 일이다. 연습을 딱 한 번만 할 수 있었더라면... 후회하더라도 그런 기회는 아무에게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산다는 게 슬프다. 그래도 가끔은 아름답다. 공연예술의 특징처럼 삶도 그 순간이 지나가면 소멸한다. 사라지기 때문에 매 순간이 소중하다. 사라지는 것은 아프지만 아름답다. 끝이 있다는 것은 생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축복이다.
사라지는 아프고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기록해준 작가에게 고맙다. 슬픔을 알아보는 데 그치지 않고, 아픔을 글로 기억해준 것이 감사하다. 작가와 같은 모국어를 사용한다는 것이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