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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다른 이야기 하자

조해주 | 아침달 | 2022년 6월 3일 한줄평 총점 0.0 (6건)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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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시 > 시/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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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10일 서비스 종료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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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정확한 온도를 지키는 시,
시 읽는 즐거움을 회복시키다

아침달 시집 10, 조해주의 첫 시집 『우리 다른 이야기 하자』가 출간됐다. 등단을 출간의 기준으로 삼지 않고 원고의 수준과 작가의 가능성을 중심으로 출간을 결정해온 아침달에서 열 번째로 선보이는 시집이다. 조해주 시인은 아침달에서 첫 시집을 펴냄으로써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

유계영 시인은 조해주의 시를 “건강하다”고 평한다. 여전히 많은 독자들은 시가 ‘난해하고’ ‘우울하다’고 생각한다. ‘세상과 불화하는 자아’나 ‘명랑한 광인’들의 목소리들을 시가 오랫동안 대변하고 또 모색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유계영은 이러한 시의 주제와 강박들로 인해 시 읽기가 조금 피곤해진 독자들이라면 조해주의 시가 시 읽기의 즐거움을 다시 회복시켜줄 것이라고 말한다.

감정의 균형을 잘 지키는 것은 조해주의 시를 대표할 만한 특징 중 하나다. 조해주는 일상에 산재한 드라마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대신에 거리를 두고 지켜본다. 때문에 그의 목소리는 짐짓 무심하게 들리지만, 그런 일정량의 무심함이 자신과 대상을 다치지 않게 한다는 것을 조해주는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조해주는 필요한 만큼만 말함으로써 독자들을 편안하게 다른 생각으로 움직이도록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다른 이야기 하자』라는 제목만큼 이 시집의 특징을 잘 표현하는 말도 없을 것이다. 넘치지 않는 정확한 온도를 지키는 말과 정서가 요즘 시에 부족하다고 느끼는 많은 이들의 허기를 이 시집이 달래주기를 바란다.

목차

나무수업
정물화
의자가 없는 방
소파에 앉아 뜨거운 초콜릿을 마신다 마시멜로를 넣으면 더 맛있다
익선동
참석
일행
단골

낭독회
모임
자립
일요일
여분
여섯 시
눈 깜빡할 사이에
이것, 하나
양이라는 증거
월요일
도모다찌라고 말하자 친구가 도망갔다
아이들
예감
아는 사람
형규
혜진
전생
실물
다큐멘터리
홀로그램
슬립
온갖 사과
옷과 함께
모르는 얼굴
크레바스
생각에게
기일
연날리기
돌멩이의 탄생
미미
잠깐이 느낀 고독
놀이터
환생
주문
부록 | 자술연보

저자 소개 (1명)

저 : 조해주
199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시집 『우리 다른 이야기 하자』, 함께 쓴 에세이 『혼자서는 무섭지만』 등이 있고, 『AnA Axt & ARKO vol.01』와 팀 '유후'의 공동 시작(詩作) 공동시집 첫 번째 프로젝트 “같은 제목으로 시 쓰기”로 공동시집을 펴낸 후 두 번째 프로젝트 “빈칸 채워 시 쓰기” 『아무 해도 끼치지 않는』을 함께 썼다. 199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시집 『우리 다른 이야기 하자』, 함께 쓴 에세이 『혼자서는 무섭지만』 등이 있고, 『AnA Axt & ARKO vol.01』와 팀 '유후'의 공동 시작(詩作) 공동시집 첫 번째 프로젝트 “같은 제목으로 시 쓰기”로 공동시집을 펴낸 후 두 번째 프로젝트 “빈칸 채워 시 쓰기” 『아무 해도 끼치지 않는』을 함께 썼다.

출판사 리뷰

평범한 일상 속에서 관찰되는 이상한 단면들

조해주의 정서는 불안하기보다는 튼튼하고, 그에 따르는 문장은 간결하다. 그러나 그로 인해 발생되는 자연스러움이 단순한 일상의 잔영에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평범하게 넘길 법한 일상적인 장면도 조해주의 눈빛과 말을 입으면 일순간 시의 무대로 넘어온다. 그러한 무대의 이동이 조해주의 시에서 대개 ‘말’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이것, 하고 말하면
누군가 설탕에 절인 포도를 나에게 건넨다. 빈 유리병이 필요했는데

나는 그것을 받아들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겠지.

맞아요,
이것이 필요했어요.
―「이것, 하나」 부분

누군가가 내게 건넨 것과 내게 필요한 것이 일치하지 않는 저런 흔한 일상의 순간이라면 보통은 부정의 말을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조해주는 “아니오, 그거 말고, 저거요.”라고 말하는 대신에 “맞아요, 이것이 필요했어요.”라고 말한다. 얼굴에는 여전히 어리둥절하다는 표정을 띄운 채. 이러한 혼란 속에서 유지되는 것과 변화하는 것 사이의 기묘한 조화가 조해주의 시를 독특하게 만든다. 말이 통하지 않는 가운데 건네받은 것에 대하여 부정하지 않음으로써 표면적인 정서는 평안하게 유지된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것이, 그 평안이 표면적인 것일 뿐이며 속에서는 딴생각을 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평안을 유지하기 위한 말이 밖으로 나오는 순간 내가 필요했던 것이 정말로 바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가 설탕에 절인 포도를 받고서 짓는 어리둥절한 표정은 ‘내가 말하던 건 이게 아니었다’라는 의미인 동시에 ‘사실 내가 말하려던 것이 이것인 줄 나도 몰랐다’라는 의미가 된다. 이러한 필요했던 것 자체의 변화는 즉, 감각 자체의 변화이다. 조해주의 시에서, 나와 세상의 의견 불일치와 이에 따른 변화가 ‘말’로 나타나는 사례는 그밖에도 다양하다. “이번 주말에도 다음 주말에도 비가 온다고 했는데”(「익선동」) 오지 않는 일이나, “갑작스러운 질문을 받을 때”(「참석」)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는 일, “그가 마침 잘 아는 곳이 있다고”말할 때 “이 모든 것이 신기하다고 대답”(「일행」)하는 일, 단골이 되고 싶지 않아서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다가 나오는 카페의 주인이 어느날 “차갑게, 맞지요?”(「단골」)라고 묻는 일.

일상의 순간들이 나 또는 상대의 말을 통해 변화한다는 점 때문에 약간 엉뚱한 방향으로 향하는 조해주의 말들은 일상의 순간들 또한 기이한 모습으로 변화시킨다. 이때 관찰되는 일상의 이상한 장면들, 단면들은 역설적으로 우리 삶에 얼룩덜룩 묻어 있는 관습들의 이상함을 드러내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드러냄은 폭로의 형식을 취하지 않는다. 김언 시인의 말대로 조해주의 시는 “아주 편안하게 우리를 딴생각으로 몰아세”운다. 그의 시는 불편하지도 불가해하지도 않다. 조해주의 시집은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상 속에서, 낯선 단면을 엉뚱하고도 지혜롭게 들리는 목소리와 미온의 정서를 통해 발견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미래를 살아갈 미지의 당신에게

조해주의 첫 시집 『우리 다른 이야기 하자』를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시편들에 귀퉁이를 접지 마세요. 거의 다 접혀 있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어느 시구에 대고 밑줄을 그으려고도 하지 마세요. 도드라진 몇몇 문장보다 다음에 오고 있는 문장으로 앞 문장을 견디는 방식이 더 멋지니까요. 조해주의 시세계에서 키워드를 찾기 위해 애를 쓰는 것도 불가능하리라 생각됩니다. 조해주는 우리가 시에 대하여 익히 알고 있는 몇몇 키워드로는 요약할 수 없는 지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니까요.

이 시집을 미래를 살아갈 미지의 당신에게 선물로 주세요. 어떤 시집은 미리 미래를 살아가고 있다는 걸 실은 알고 있지만, 그런 시집을 찾아내는 게 쉬운 행운은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분에게 특히나 소용스러울 겁니다. 다만 현재진행형인 이 시간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신다면, 만약 그렇다면, 더더욱 이 시집이 적합할 겁니다. 우리가 겪었을 법한 어떤 순간이,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마음에 담아본 적 없이 지나쳐버린 순간이 이 시집에는 생생하고 선명하게 담겨 있답니다. 하나 더. 시를 꾸준하게 읽어왔지만 좀 더 다른 세계를 찾고 계신 분들에게도 이 시집을 권합니다. "우리 다른 이야기 하자"라는 말이 어느 만큼의 진심인지 전해질 거라 여겨집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 시가 지나치게 시적이라는 이유 때문에 시와 거리를 두었던 분들에게도 이 시집을 권합니다. 간결하게 훈련된 문장이 얼마만큼 깊은 정서를 전달하고 있는지, 담담하게 훈련된 어법이 얼마만큼 멀리 퍼져나가고 있는지, 별다른 독법이 없어도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엔 응원해야 마땅할 시집이 많지만, 이 시집은 더 각별한 응원이 필요합니다. 비등단 시인의 첫 시집이며, 지금을 성실하게 견디며 살고 있는 이십 대의 비망록입니다. 좌절도 희망도, 다정함도 씩씩함도, 피로와 고독도 조해주에게는 필요치 않은 듯해 보입니다. 당연히 의연합니다. 표출된 의연함이 아니라 기조에서 은은하게 배어 나오는 의연함입니다. 아무리 반복해서 읽어도 이 시집은 기묘하게 신비합니다. 이 신비에 이름을 붙일 수는 없습니다. 경험할 수 있을 뿐입니다. 이런 경험을 나누어 가지는 일이 시를 읽는 보람이라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김소연 시인 추천사)

종이책 회원 리뷰 (6건)

알쏭달쏭
내용 평점3점   편집/디자인 평점3점 | n********e | 2022.12.22
시를 너무 오랫만에 읽었나보다. 알쏭달쏭. 뭔가 있는듯한데 손에 잡히지 않는다. 산문읽기에 편중한 부작용인가?
독특하고 괴팍한 시. 한편 유쾌하기도 하다. 세 번 정도 읽어야 어렴풋이 연결점이 보이는듯.
_______

생각에게 부탁한다
제발 기척 좀 하세요

오지 않으면 어쩌지
걱정보다 병적인 것은 걱정 없이는 외롭다는 것

나는 건강하게 살고 싶다
누군가 씹다 버린 생각을 다시 주워다 씹으면서
누군가의 눈에 갇혀도 좋으니

거울처럼 고요하다
생각의 목소리를 누가 빼앗았나

우리 다른 이야기 하자 | 조해주 저
‘생각에게’ 중에서

#우리다른이야기하자 #조해주 #조해주시집 #아침달 #시읽기 #독서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시스타그램
1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접어보기
소설 같은 느낌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 스타블로거 : 골드스타 n***8 | 2020.08.25

 책 날개에 조해주는 1993년에 태어났다고 나와. 시가 끝나고 나오는 ‘자술 연보’는 1978년부터 시작해. 거기에 나온 이름은 숙희여서 처음에는 ‘응?’ 했어. 숙희는 조해주 어머니야. 어머니 이야기부터 하다니. 그것도 자신이 태어나기 전을. 연보는 다른 사람이 정리할 때가 많은데 자신이 쓰는 연보도 괜찮은 듯해.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기도 하겠지. 난 쓸 게 없어. 내가 써 봤자군. 내가 쓰는 글도 영 아니고. 이런 자존감 낮은 말을 하다니. 얼마전에 라디오 방송을 들으니 거기에 나온 사람이 자신을 천재라고 하더군. 유튜버로 이름이 잘 알려진 사람이었어. 유튜브도 텔레비전도 안 보니 난 잘 모르지만. 이름 앞에 붙이는 천재라는 말은 호 같은 거래. 재미있는 호지.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그 말을 해서 자존감 높고 자신도 있지 않았을까 싶어. 난 갈수록 안 좋아지지만. 조해주를 말하다가 이름도 잊어버린 사람 이야기를 했군.

 

 여기 담긴 시는 어쩐지 소설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해. 모두 그런 건 아니고. 어쩌면 시에 나오는 사람이 있어설지도 모르겠어. 그런 시 처음 본 것도 아닌데, 이번에는 소설처럼 느끼다니. 내가 단순하군. 조해주는 2008년에 소설을 썼대. 2008년에는 열다섯살이었나. 그렇게 빨리 소설을 쓰다니 어쩐지 부럽군. 시에도 소설을 쓰겠다는 말이 나와. 조해주가 1997년에 본 텔레비전 만화영화 나도 봤어. 그게 1997년이었나. 무슨 만화영화였냐고. <달의 요정 세일러문>이야. 이거 첫번째만 꽤 빠져서 봤어. 뒷 이야기는 잘 못 봤어. 볼 시간이 없어서 그랬겠지. 시보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니. 조금 반가워서. 이제는 그런 만화영화 별로 안 좋아하지만.

 

 

 

 이번 겨울에 스페인으로 일주일 정도 여행을 갈 거예요. 몇 마디라도 미리 배워가는 게 좋을까요?

 

 내가 말하자

 그는 좋은 방법이 있다고 한다.

 

 사진이나 그림을 휴대폰에 많이 저장해두는 것이 좋다고 한다.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없이 휴대폰을 꺼내어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되니까.

 이것, 하나

 하고 말하면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다고 한다.

 

 손잡이 달린 유리병이 스페인어로 뭔지 아니?

 아뇨.

 

 그는 손잡이 달린 유리병 사진을 보여준다. 그것은 내가 먼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길쭉하다.

 

 진짜 몰라요?

 나 국문과 나왔어.

 나는 그를 가리키며 웃고 그도 나를 가리키며 웃는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으면 웃음이 나온다.

 

 그러나

 

 그가 뒷짐을 지고 서서 등 뒤로 유리병을 숨기고 있다면?

 수많은 행인들이 오가는 길 한복판이라면?

 구름보다 천천히 멀어지고 있다면?

 

 나는 그저 손을 뻗고 있을 뿐

 

 배꼽이라는 말이 내키지 않아서 단추를 말하고

 유리병으로 이해하고

 

 왜 알아채지 못했을까?

 

 그와 내가 웃고 있는 여름에서 아주 멀리 있는

 내가

 

 이것, 하고 말하면

 누군가 설탕에 절인 포도를 나에게 건넨다. 빈 유리병이 필요했는데

 

 나는 그것을 받아들고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고 말하겠지.

 

 맞아요,

 이것이 필요했어요.

 

-<이것, 하나>, 44쪽~46쪽

 

 

 

 앞에 옮긴 시는 그냥이야. 앞부분과 뒷부분으로 나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군. 스페인에 가서 말이 아닌 사진을 보여주면 바로 알겠지. 그건 어느 나라에서나 괜찮겠어. 뒤에서는 해야 할 말을 못하고 다른 말을 하고, 다른 말로 알아듣는군. 그래도 그걸 받아들였네. ‘이것’ 하고 말했을 때 바로 알아채는 사람이 있다면 좋을 텐데. 그건 어려운 일이겠지. 똑바로 말해야 알잖아.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여러 시를 만나보는 건 괜찮은 듯해. 시를 보면 난 쓰지 못해도 이렇게 쓰기도 하는구나 해. 시, 여전히 가끔 봐. 시는 시집에만 있는 건 아니지만. 글이 아닌 시도 잘 보면 좋을 텐데. 조해주는 2015년에 한주에 한번 시집을 보고 사람들과 이야기했대. 그 말 보고 나도 시집 한주에 한권 볼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는데. 그랬다가 두주에 한권은 어떨까 했어. 아니 한달에 한번이라도 시집 만나야겠어.



희선



2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접어보기
구매 나의 사춘기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a****3 | 2020.03.27


처음 시에 푹 빠졌을 무렵 가장 좋아하던 황인찬 시인이 추천했던 시집이다.

당시 표지를 보고 시집을 골라서 (ㅎㅎ) 위 사진처럼 심플하지만 감각적인 디자인에 마음이 갔고

'우리 다른 이야기 하자'라는 진지한 문제에 한 발 물러서고 싶은 회피성 다분한 태도에 공감이 가서.. ㅠ

결국 카드를 긁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일할 때 틈틈이 읽었다.

조해주 시인은 무려 비등단 시인이다~ 와우~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바로 '방'이다


나 왔어,

열에 아홉은 내가 방에게 말하는 상황이다.

혼자가 없어져도 물건으로 채워지는 방

방의 입장에서 보자면 언제나 충만했을 따름이지만

나는 가끔 방이 부족해서 견딜 수가 없다.

(중략)

아홉, 열, 쉿

도둑보다 빨리

꿈이 방으로부터 도망친다면 반드시 잡히게 되어 있다.


(중략)


방이 나를 찾아올 때가 있다.

찾아올 때는 혼자 오지 않는다.

여분이나 구겨진 종이가 겨우 다다른 푸른 쓰레기통

어긋나면서 몸을 포개고 있는 접시 같은 것들


(중략)


선물도 스스로의 정체가 궁금해서

네모난 어둠을 흔들고 덜컹거린다.

나는 그것에 귀를 가져다 댄다.


방 28~29쪽


지금은 이사를 갔는데 그 전에 살던 집의 방은 꽤 좁았다.

조금만 어지럽혀도 방이 꽉 차서 누울 곳이 없었다.

그래서 방이 소유 대상이기보다 방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한 방에서 20년 가까이 살아서 그런지

토속신앙처럼 뭔가 영이.. 깃든 것 같기도 하고

이 시를 읽으면서 사춘기를 보내면서 집에 있을 때 느꼈던 막막함과 답답함이 떠올랐다.

그리고 화자의 방과 마주하려는 태도와 선물의 이미지가 만나면서

사춘기 때의 안 좋은 추억이 조금 치유 받는 느낌이 든다.

무엇보다 분명 화자는 한 장소에 있는데 여러 방향으로 시상이 전개되서 잘 읽히고 흥미로웠다


(상략)


배꼽이라는 말이 내키지 않아서 단추를 말하고

유리병으로 이해하고

왜 알아채지 못했을까?

그와 내가 웃고 있는 여름으로부터 아주 멀리 있는

내가

이것, 하고 말하면

누군가 설탕에 절인 포도를 나에게 건넨다. 빈 유리병이 필요했는데

나는 그것을 받아들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겠지.

맞아요,

이것이 필요했어요.


이것, 하나 44~46쪽


이 시는 뒤 표지에 있다.

화자가 스페인으로 여행을 가기 전 의사소통을 대비해 여러 사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시가 출발한다.

타인과 함께 향유하는 언어가 없고, 오로지 손짓 눈짓만 통하는 상황에서 뜻이 통하지 않아도

뜻이 통했다고 말하는 화자의 태도가 여러 방향으로 분석이 가능할 것 같다.

상대와 친해지려고 하는 건지, 그냥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달관하려고 하는 건지.


사춘기 때 이런 상황에 처할 때가 많았다.

자기를 표현하기보다 남을 맞춰주려는 마음이 컸다.

그러다보니 자신은 a를 원하는데 상대가 b를 주면

응, 맞다고. 이게 내가 필요했던 거라고 자주 말했던 것 같다.

이 시집의 시는 이런 식으로 마지막에 여운을 남겨서

다음 이야기를 상상하게 한다.


시집 마지막에는 추천사가 없고 작가의 이력을 담은 부록이 있다.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의 사건사고를 연도 순으로 기록했다.

그것을 따라가며 자신의 과거를 되짚었다.

사춘기 감성에 젖게 되는 좋은 시집이었다!

다들 한번 읽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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