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저
정승규 저
미야자키 마사카츠 저/정세환 역
이나가키 히데히로 저/서수지 역
사토 겐타로 저/서수지 역
벤 윌슨 저/박수철 역/박진빈 감수
물의 흐른다. 그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넌다. 헤엄을 칠 순 없는 노릇이다. 당연한 일이다. 모두가 의심 않고 해온. 다리 이름에 주의를 기울여 본 적은 없다. 굳이 명칭을 알려 들 필요성을 못 느꼈다. 다리에 깃든 이야기에 대해선 더더욱. 조금 더 세심한 시선으로 세상을 둘러보아야겠다는 다짐은 명제로서만 존재했지 늘 실천까지 다다르지 못했다.
처음으로 소개된 다리를 접하고는 놀랐다. 내가 알고 있던 다리의 전형적인 모양과는 사뭇 달랐다. 아무 돌이나 막 갖다 박아 놓은 것 마냥 투박했고, 높이 또한 어찌나 낮은지 조금이라도 수량이 차오르면 바로 잠기게 생겼다. 역시나 매우 오랜 역사를 지녔다. 변변한 기계의 도움을 받기 힘든 시절, 사람이 일일이 땀 흘려 놓은 다리다. 수시로 물에 잠기겠다는 나의 우려 또한 맞았다. 한 차례씩 날을 잡아 돌을 뒤집고 표면의 이끼 등을 닦아낸다는 설명을 읽었다. 엄청난 수고다. 차라리 옆에 이를 대체할 다리를 놓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편과 저편, 단절된 두 공간을 이어주는 역할 이상을 다리가 수행하고 있다는 걸 깨닫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섣불리 없앨 수 없는 다리였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하여도 그 정신만은 고이 간직해야 할.
형태가 제각각이었다. 거대 자본 등의 도움을 받은 다리보다는 오랜 세월을 머금은 쪽이 조금 더 정감이 갔다. 집 근처 둘레길을 걷다 섶다리를 한 번 건넌 적이 있어 주천강 섶다리는 마냥 낯설지가 않았다. 헌데 하나가 아닌 둘이다. 단종이 잠든 장릉을 참배하려는 강원 관찰사 일행의 우마차를 생각해 백성들이 발 벗고 나서 만든 다리다. 250여 년의 시간이 흐른 후였음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단종의 억울함을 잊지 않은 터였다. 진천 농다리의 투박함 또한 자꾸만 시선이 쏠렸다. 크기도 제각각이요, 얼핏 보면 다리 아닌 자연적으로 놓인 돌덩이의 연속과도 같다. 물살이 조금만 세면 휩쓸려 갈 법도 한데, 아귀가 딱딱 맞아 떨어지게끔 정교하게 쌓아 그럴 걱정은 접어 두어도 된단다. 열 손가락을 다 사용해도 헤아릴 길 없는 시절, 나라 잃은 백성 처지였던 김유신 일가가 신라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울여야 했을 노력이 이 다리에 깃들어 있다는 설명을 읽으니 다리가 조금은 달리 보였다.
다리 또한 역사의 비극을 피하진 못했다. 다리의 건설 주체가 남북으로 갈린 철원 승일교는 전쟁과 분단의 역사가 아니었더라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완공되지 않았을 것이며, 노량해전 격전지에 놓인 남해대교의 경우 굴욕적인 한일협정과 그로 인해 도입된 일본 자금, 기술 등에 힘입어(?) 개통이 가능했다. 일련의 발전 과정을 ‘기적’이라 여기며 신앙처럼 받들던 시절, 먼 미래에 대한 고려 없이 오로지 빨리빨리를 외치며 덤벼들었던 정신이 낳은 성수대교의 비극과 영광스럽진 않으나 역사에 ‘우리나라 최초의 사장교’로 남은 진도대교 등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됐다.
일종의 회귀를 한 기분이 들었다. 가장 먼저 다루어진 추포 노두길의 공동체 의식이 형태는 다르나 안동 영월교에서는 다리 이름 공모의 방식으로 재현됐다. 현 시점에서도 많은 다리가 놓이고 있으며, 흐르는 물이 메마르지 않는 이상 이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시간을 채 머금지 아니 한 다리로부터는 풍성한 이야기를 기대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첫 단추를 엉성하게 끼운 채 이후 이야기의 생성을 기다리는 것 또한 바람직하진 않다. 나와 나의 가족, 지인들이 나이를 머금는 동안 다리 또한 은은하게 자신만의 역사를 온몸에 새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야기는 끊이지 말아야 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