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루션 저널리즘은 ‘저널리즘의 혁명’이다
“한국형 문제 해결 저널리즘을 이해하기 위한 질문들”
우리가 “문제는 비명을 지르지만 해법은 속삭인다(The problems scream, but the solutions whisper)”고 말하는 건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문제 제기에서 그치기 때문에 문제가 계속 문제로 남아 있고 그래서 독자들을 냉소하게 만들고 오히려 문제의 해결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다.
문제를 드러내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고 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해야 해법을 찾을 수 있지만, 문제가 문제에서 멈추면 우리의 질문은 “세상은 왜 이 모양이지?”에서 멈추게 된다. 독자들은 뉴스를 내려놓고 깊은 한숨을 쉬게 될 것이다.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로 끝나는 기사가 언론의 할 수 있는 최선일까? 국회에서 문제를 해결해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5년마다 한 번 대통령을 잘 뽑는 걸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
솔루션 저널리즘은 “문제를 드러내는 것뿐만 아니라 문제 해결 과정에 대한 증거에 기반한 보도 기법”을 말한다. 미국의 솔루션저널리즘네트워크는 솔루션 저널리즘을 “문제에 대응하는 엄밀한 취재 보도”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정환 기자는 이 책에서 한국형 솔루션 저널리즘의 모델로 ‘문제 해결 저널리즘’을 제안한다.
“좌절하고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변화의 희망을 불어넣는 적극적인 저널리즘이 필요하다. 기자가 답을 내놓을 수 없다면 함께 답을 찾아보자고 제안해야 한다. 시민사회 진영과 협업도 필요하다. 끊임없이 토론을 불러일으키고 참여를 끌어내야 한다. 해법에 집중하는 새로운 접근 방식이 저널리즘을 더욱 충실하게, 민주주의를 더욱 탄탄하게, 그리고 변화를 더욱 앞당기는 과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확인과 검증,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은 여전히 중요하고 당연히 더 잘해야 한다. 이 책에서 제안하는 문제 해결 저널리즘은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과 새로운 스토리텔링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다.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고 부정부패를 폭로하는 것은 언론의 고유한 사명이지만, 갈등을 중계하고 분노를 판매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문제에 대한 인식과 접근의 프로세스를 바꾸어야 한다.
본질에 대한 고민, 구조에 대한 질문, 반론과 검증, 대안과 해법을 찾는 토론과 참여가 필요하다. 사실에서 출발해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고 질문을 끌어내야 한다. 문제를 다시 정의하고 질문과 검증의 반복을 통해 해법을 도출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어떻게 현실과 맞서고 어떻게 현실을 바꾸고 있는지, 문제를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고 변화에 대한 희망과 확신을 일깨우는 것이 이 책에서 제안하는 ‘문제 해결 저널리즘’의 본질이고 목표다.
이 책은 해법을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사람들을 위한 변화의 매뉴얼이다. 솔루션 저널리즘을 한국에 소개하고 실행 방법론을 제안해왔던 『미디어오늘』 이정환 기자가 ‘문제 해결 저널리즘’의 사례와 가능성, 실천 전략을 정리한 책이다.
이 책은 크게 다섯 가지 흐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솔루션 저널리즘을 비롯한 참여와 대안 저널리즘의 논의를 소개한다. 둘째, 솔루션 저널리즘의 여러 실험과 사례를 살펴본다. 셋째, 한국 언론의 지형과 해결 지향 보도의 현황을 이야기한다. 넷째, 시스템 싱킹과 저널리즘 싱킹, 해커톤 방법론 등의 몇 가지 실행 가능한 프로세스를 소개한다. 다섯째, 구체적인 솔루션 저널리즘 실행 매뉴얼과 가이드라인을 제안한다.
세상을 바꾸기 위한 질문
이 책은 뉴스를 보면 괴롭고 우울해진다는 사람들에게 제안하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변화의 매뉴얼이다. 세상이 왜 이 모양이냐고 한탄하는 것을 넘어 세상을 바꾸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제 질문을 시작해야 할 때다.
우리가 부딪히는 문제는 비행기 사고 같은 문제와 자동차 사고 같은 문제가 있다. 비행기가 추락하면 문제의 원인을 찾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시스템을 보완한다. 대한항공은 기장과 부기장의 위계를 없애기 위해 조종석에서 영어로 대화를 하도록 시스템을 바꾸었다. 9·11 테러 이후 세계적으로 조종석 문을 안에서 걸어 잠그도록 프로토콜이 바뀌었다. 2015년 저먼윙스 사고 이후에는 조종사 한 명이 화장실에 가더라도 반드시 조종석에 두 명이 앉아 있도록 프로토콜을 업데이트했다. 실패의 경험으로 시스템을 보완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자동차 사고가 발생하면 ‘안타까운 일이네’ 하고 넘어간다. 사고는 날마다 어디에선가 일어나고 다만 그게 나와 내 가족의 일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자동차 사고처럼 세상엔 너무 많은 문제가 있다. 상당수는 방치되어 있거나 쉽게 해법을 찾기 어려운 문제들이다. 우리는 그런 문제들을 그냥 지나친다. 공사 현장에서 추락 사고로 죽는 사람이 1년에 300명이 넘는다. 전국 228개 시군구 가운데 ‘소멸 위험’ 지역이 36곳에 이른다고 한다. 벚꽃이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무너질 거라던 흉흉한 소문이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무연고 사망, 이른바 고독사가 해마다 3,000명에 육박하는데 이 가운데 절반 정도가 65세 이상 노인이다. 간병 살인은 제대로 된 통계조차 없다. ‘김용균법’이 통과되었지만 2018년 기준으로 2,142명이 직장에서 죽었다. 한국은 산업재해 사망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집이 없어 길에서 먹고 자는 사람이 1만 6,465명(2018년 기준)이나 된다. 이게 모두 자동차 사고처럼 어쩔 수 없는 일인가?
세상을 바꾸기 위한 언론 보도
이 책은 솔루션 저널리즘의 개념을 소개하면서 저널리즘의 새로운 역할 모델을 제안한다. 언론이 답을 내놓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언론의 역할은 문제 해결의 과정을 추적 보도하고 검증하고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는 80여 개 언론사가 모여 8개월 동안 ‘샌프란시스코 홈리스 프로젝트(SF Homeless Project)’라는 이름으로 노숙인 문제를 공동 취재했다. 노숙인을 거리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만들 수는 없었지만, 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합의된 원칙을 세울 수 있었다.
생리대가 없어서 운동화 깔창을 쓴다는 학생의 이야기를 다룰 수도 있지만 생리 빈곤 학생들에게 어떻게 생리대를 지원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제안이나 이미 하고 있는 실험을 추적 보도할 수도 있다. 승합차에 방치된 아이의 이야기를 다룰 수도 있지만 ‘조는 아이 버튼’을 설치하는 데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소개할 수도 있다. 스타벅스의 리유저블 컵을 소개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이런 컵을 몇 번이나 반복 사용해야 일회용컵보다 더 탄소 발자국을 줄일 수 있는지 검증해볼 수도 있다.
공사 현장의 추락 사고를 줄이기 위해 노동자들을 모아 암벽 등반 대회를 열었다는 인도네시아의 사례도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캐나다의 한 대학교에서는 정수기에서 물을 따라 마실 때마다 숫자가 카운팅되도록 했더니 생수병 사용량이 크게 줄었다고 한다. 교도소에서 마음 챙김 수업을 했더니 폭력이 줄어들더라는 사례도 있다. 흑인들 모유 수유 비율을 6개월 만에 두 배 가까이 끌어올린 병원의 사례도 흥미롭다.
청소년 자살이 늘어 고민이었던 미국 콜로라도주 플라타 카운티는 멘토링 프로그램으로 자살률을 낮출 수 있었다. 영국의 BBC는 분리 수거의 성공 사례를 배우려고 노르웨이에 다녀왔고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의 [데저트뉴스]는 자동차 없는 거리의 실험을 배우려고 핀란드에 다녀왔다. [허핑턴포스트]는 한국의 음식물 쓰레기 종량제를 대안 모델로 소개한 적이 있다.
변화는 느리고 더디지만 원래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홈리스 프로젝트’는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고 있던 샌디에이고로 확산되어 ‘샌디에이고 홈리스 어웨어니스’로 이어졌다. 10년 동안 기사를 썼던데 바뀌지 않더라는 클리블랜드의 지역 신문은 로체스터에 가서 해법을 찾았다. 과정에 주목하는 언론 보도가 있었기 때문에 하나의 성공 사례에 그치지 않고 시스템을 바꾸는 실험이 지역을 넘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개별 사건을 넘어 문제의 구조를 보고 질문과 토론을 제안하고 실험과 실패를 반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지금도 누군가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실제로 세상이 느리게나마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를 알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게 된다.
세상을 바꾸는 솔루션 저널리즘
솔루션 저널리즘은 언론이 비판과 냉소를 넘어 대안과 해법을 제안하는 단계까지 나가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권력을 감시·비판하고 부정과 부패를 들춰내는 게 전통적인 저널리즘의 사명이지만, 넘쳐나는 부정적 보도가 오히려 독자들을 뉴스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현실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형성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문제 해결의 과정에 집중하는 저널리즘이다. 해법을 이야기하려면 근거를 제시해야 하고 검증 가능해야 하고 복제 가능해야 한다. 경기도 부천시에서 가능했던 실험을 전남 무진군이나 경남 합천군에서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한계를 드러내야 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 완벽한 해법이 아닐 수도 있지만 변화의 과정을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가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문제를 잘 드러내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다만 우리가 그동안 문제를 드러내는 데 그치면서 문제가 작동하는 방식을 깊이 추적하지 않았거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현장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다루어야 할 문제는 정말 많다. 기후 변화와 양극화, 젠더 갈등, 청년 실업, 노인 빈곤, 지방 소멸, 장애인과 교통 약자들의 이동권 확보, 성 소수자 인권 보호, 교육 격차 축소 등 정치가 할 일이 있고 언론이 할 일이 있지만 결국 우리 공동의 문제들이다. 거창하게 세상을 바꾸는 단계까지 가지 않더라도 당장 우리 주변의 크고 작은 문제들이 얼마든지 있다.
이정환 기자는 이 책에서 “해법을 찾되, 해결에 대한 강박을 벗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해결을 지향하되, 섣불리 정답으로 건너뛰려 하지 말고 문제의 본질을 파고들고 구조를 드러내는 질문과 탐색, 검증의 과정에 우리의 역량을 더 쏟아부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 책은 매뉴얼이면서 제안서 성격으로 읽는 게 좋다. 문제 해결의 주체는 기자들이 아니고 문제의 당사자들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를 잘 아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토론하고 대안을 고민하고 실험하고 개선하면서 해법에 다가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문제는 계속 진화하고 환경에 따라 제각각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완성된 해법이 아니라 문제 해결의 노하우와 실행 매뉴얼, 시스템의 보완이기 때문이다. 이정환 기자는 이 책에서 전국에 1,000개의 문제 해결 워크숍과 해커톤 그룹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한다. 이 책이 새로운 질문과 대안을 모색하는 협업 프로젝트에 실습 교재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