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노 저
임솔아 저
애나 렘키 저/김두완 역
로랑스 드빌레르 저/이주영 역
천선란 저
백온유 저
제목에서처럼 부의 측면에서만 입각한 내용이 아니라 세계 몇몇 주요나라들의 발전사 정도로 내용이 이해된다. 평이한 설명이 이어졌기 때문에 이해하기에는 어렵지 않았으나 아쉬운 점은 대상 국가들을 줄여서 좀 더 심화적인 내용이 담겼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장마다 한 국가에 대해 좀 알았다 싶으면 이내 다른 나라로 넘어가버리는 그런 점이 아쉽다.
올해 마지막으로 읽은 책은 《22개 나라로 읽는 부의 세계사》. 조홍식(1967~) 교수의 저서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자되기를 바라지만 막상 부자되는 이는 적고, 모든 국가가 부국강병을 꿈꾸지만 선진국에 진입하기는 쉽지 않다. 부자나라는 어떤 과정을 거쳤기에 부유해진 걸까
메소포타미아, 로마, 송나라, 이슬람, 인도, 그리스, 베네치아, 제노바, 피렌체,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독일, 일본, 칠레, 스위스, 싱가포르, 타이완, 스웨덴, 미국, 중국, 유럽연합.
저자가 선정한 과거와 현재의 22개 부국들이다. 얼핏 보기에 이 나라들은 부유하다는 점을 빼면 눈에 띄는 공통점이 없다. 지리적 위치, 국토의 면적, 천연자원, 인구수, 종교... 모두 다르다. 그렇다면 이 나라들을 부국으로 만든 공통된 요인은 무엇일까
우리는 대개 천연자원이 많고 지리적 여건이 좋아야 나라가 발전할 수 있다고 말하며 작은 국토, 빈약한 자원을 아쉬워한다. 하지만 이 책은 부자 나라의 비결을 다른 곳에서 찾는다.
질서, 개방, 경쟁, 혁신, 학습, 단결, 비전.
저자는 역사적으로 볼 때 부국은 7가지 조건을 상황에 따라 받아들이고 변화시키면서 부자 나라가 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22개 국가 중에는 역사에 흔적으로만 남은 나라도 있고 지금 우리와 긴밀한 영향을 주고받는 국가도 있다. 그 중 의외로 부국에 포함된 유교국가 송나라와 멀고도 낯선 나라 칠레가 기억에 남는다.
국제정치나 군사적으로 보면 송나라는 취약한 세력이었고, 실제로 쉽게 무너지는 경향을 보였다. 예컨대 북송은 대륙의 북부를 요나라와 양분했고, 남송은 아예 중화문명의 핵심인 황하유역을 여진족이 금나라에 완전히 내줬다.
그렇지만 ‘부국’의 기준으로 살펴보면 송나라가 단연 으뜸이다. 중국은 960년부터 1279년까지 이어진 송대에 경제수준이 정점에 도달한 뒤 19세기 유럽에 추월당할 때까지 계속해서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송나라는 산업혁명 이전까지 이어지는 1,000년의 경제 선진국이었다.
(p.58)
2장 개방 편에는 중세 중국 대륙의 유교국가 송나라가 등장한다.
한, 당, 원, 명, 청 같은 통일 제국이 많은데 왜 하필 군사력도 약하고 주자학이 만들어질 정도로 유교적 전통이 강했던 송나라를 부국으로 꼽았을까?
저자는 송나라는 정치나 군사력이 강한 나라는 아니지만 경제를 기준으로보면 부국의 개념에 맞는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알려주는 송나라 경제 발전의 요인은 신용을 바탕으로 하는 화폐의 사용, 교역의 증가, 그리고 유교다. 뭔가 이상하다. 화폐를 사용하고 교역이 증가했다면 상업이 발달했다는 것인데, 상업은 사농공상의 개념이 뚜렷하던 유교사회에서 가장 천시하던 분야가 아닌가. 그런데 유교가 상업을 권장했다니.
송나라의 유교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보수적인 사상이 아니었다. 당시의 유교는 새로운 국가를 세운 신흥세력의 혁신적 이념이었고 따라서 상업으로 이윤을 남겨 백성의 조세부담을 줄일 수 있다면 상업은 권장할 만한 일이지 천시할 이유가 없었다.
흔히들 조선은 예법과 격식을 중요시하는 유교 때문에 정체되고 경제발전이 더디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송나라가 유교사상으로 경제를 발전시키는 과정을 보면 특정 사상이나 종교는 그 자체로 경제에 도움이 된다거나 그렇지 않다기보다 받아들이는 자세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유교에는 예법도 있지만 애민사상도 있다. 조선의 폐쇄성과 더딘 발전의 원인은 유교 그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위정자들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비슷한 예는 중세의 이슬람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는 상인이었다. 8~11세기 이슬람 세계는 상업을 기반으로 활동영역을 넓혔고 다른 지역, 다른 문화의 사람들을 포용했다.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보수적인 이슬람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저자는 말한다. 어떤 종교도 본질적으로 폐쇄적이거나 개방적이지 않다고. 환경과 사람에 따라 개방적일 수도 폐쇄적일 수도 있다고 말이다.
칠레는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할 만큼 이 지역에서 가장 성공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한 국가다. 만약 주된 관심사를 라틴아메리카의 경제 강국에 둔다면 멕시코나 브라질을 다뤄야 할 것이다. 인구 2억명이 넘는 브라질은 2019년 국내총생산이 1조 8,000억 달러로 라틴아메리카에서 최대 규모다. 인구 1억 2,000만 명을 넘은 멕시코도 국내총생산이 1조 2,000억 달러에 달한다.
이에 비해 칠레의 인구는 1,800만 명 정도에 불과하다. 다만 2019년 국제통화기금의 추정에 따르면 1인당 국민소득은 1만 5,000달러 이상으로 멕시코(1만 118달러)나 브라질(8,797달러)보다 높다.
... 국제연합이 발표하는 인간개발지수(Human Development Index, HDI)에서도 칠레는 우루과이와 함께 라틴아메리카의 선두주자다.
(p.267)
5장 학습 편은 세계에서 가장 긴 나라, 남아메리카의 칠레를 소개한다.
비슷하게 유럽의 식민지였다가 독립한 미국이 세계의 패권을 쥐는 동안 라틴아메리카는 이렇다 할 발전을 보여주지 못했다.
저자는 그 원인으로 봉건적 관습, 불평등한 사회구조와 함께 유럽이나 동아시아처럼 경제발전을 강하게 추진할 수 있는 효율적인 국가가 없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역사적으로 강한 국가를 만드는 것은 전쟁의 경험이나 안보의 위협인데 라틴아메리카는 유럽이나 동아시아에 비해 19세기 독립전쟁 이후 평화로운 시기를 보냈기 때문에 치열하게 경쟁할 기회가 없었다. 그나마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칠레가 몇 차례 전쟁을 겪으며 강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농업과 축산업으로 먼저 부국이 된 아르헨티나가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쇠퇴하는 사이 칠레는 미래에 대한 투자로 부국이 되었다.
그사이 국제적인 상황도 달라져 칠레가 가진 지리적인 불리함은 하늘이 내린 혜택이 되었다. 비행기가 일반화되자 지리적인 위치나 국토의 생김새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열대부터 남극에 걸쳐 태평양에 인접한 긴 국토는 수산업에 유리한 조건이 되었고 세상과 동떨어져 낙후되었던 땅은 청정 관광의 땅으로 주목받고 있다. 저자는 이런 뒤바뀐 상황이 칠레에게 저절로 주어진 선물이 아닌 그들이 미래를 보고 투자하고 노력한 결과라고 평가한다.
지리적 어려움을 극복한 예는 칠레와 정반대의 조건을 가진 스위스의 사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질서, 개방, 경쟁, 혁신, 학습, 단결, 비전.
7가지 부국의 비결 중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없다.
사상이나 종교를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전쟁의 위협에서 단결하고, 다른 문물을 모방하고 학습하여 자기 것으로 만드는 동안 지리적 악조건은 혜택이 되고 전쟁의 위협은 기회가 된다.
물론 22개의 나라가 부국으로 발전하는데 천연자원이나 지리적 이점의 혜택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중요한건 상황을 받아들이고 발전시키는 사회와 인간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저자의 주장대로라면 우리나라는 주변의 패권국들 때문에 어려움이 많지만 그 덕분에 단결하고 모방하고 학습해서 경제 발전을 이룬 셈이다.
자연환경보다 인간의 이성과 노력을 믿는 이 책을 읽다보면 부자가 되지 못할 나라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부국을 만들 의지가 없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국경이 낮아졌다. 한 나라에서의 유행이 다른 나라로 전파되기까지 이제는 수일조차 걸리지 않는다. 전자우편을 이용하면 몇 분 지나지 않아 상대로부터 답장을 받을 수 있기까지 하다. 상황이 이러하므로 각국이 지닌 차이는 점차 줄어들 가능성이 농후하다. 어느 나라에서 참신한 시도가 성공을 거두기가 무섭게 다른 나라에서 그와 꼭 닮은 시도가 행해져도 하등 이상치가 않다.
이 책은 각기 다른 요인으로 경제적 흥망성쇠를 거듭했다는 걸 증명해 주는 많은 역사를 품고 있었다. 총 22개의 나라가 자국의 역사에 새겨온 경로를 따라 걸으며, 어쩌면 이번에 읽은 책은 오늘날에 적용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 앞서 언급하였듯 서로가 너무도 닮은꼴을 하고 있으므로, 유일무이한 무언가의 발견이 어려울 듯했기 때문이다. 이 점은 잠시 뒤로 젖힌 채 역사 그 자체에 몰두하기로 했다.
사실 경제라 하였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느끼는 감정은 난해함이다. 숫자에 대한 거부 반응이 이 미지의 영역으로 다가서는 것에 대한 부담감으로 작용한 탓이 크다. 경제이기 전에 역사라는 생각을 내 자신에게 주입할 필요가 있었다. 수많은 종류의 역사 중 부의 역사이므로 자본주의 태동 이후를 다루고만 있을 거라 생각했으나 아니었다. 화폐가 출현하기 전 물물교환 등의 방식으로 인류가 경제 활동을 전개했다는 사실을 망각했단 걸 뒤늦게 떠올리고는 머리를 쳤다. 저자는 인류가 이룩한 위대한 문명 중 메소포타미아와 로마를 주목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 일대를 중심으로 펼쳐진 문명이 바로 메소포타미아 문명인데, 강 유역의 비옥한 토지가 인류에게 풍요로움을 선사해 주었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시선이었다. 수시로 범람하는 강이 도리어 인류의 삶에 척박함을 선사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문명이 싹텄다는 내용을 읽으며 ‘온실 속 화초’의 약하디 약한 모습을 상상했다. 생존을 위한 활동들이 인류에게 단련의 기회로 작용한 역설이 신비하게 느껴졌다. 군사적으로는 약한 면모를 보였던 송나라 역시 역설에 기댄 국가였다. 남으로 밀려났고, 국가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 보이는 상황에서도 이들의 문화는 유려하게 꽃피었다. 저자의 설명 속 송나라는 여기에 더해 화폐를 사용한 부국이기까지 했다. 일군 부의 정도가 어찌나 건재했던지. 19세기 유럽에 의해 추월당할 때까지 이어졌다는 설명은 그저 놀라웠다.
정답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국가가 상업을 중시하는 정책을 펼치되 상인들에게 무한한 자유를 선사하지는 않는, 그럼으로써 부의 일부가 국내에 머무를 수 있게끔 정책을 펼친 국가들은 어김없이 부국으로 거듭났다. 피렌체처럼 특정 가문이 거머쥔 부를 문화에 투자한 경우도 있었고, 국가 차원에서 영토 개척에 쏟아 부은 경우도 있었다. 후자의 경우, 그 이상의 수익을 거둘 수 있으리라는 판단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기대했던 황금의 땅을 발견치는 못했어도 오늘날까지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국가가 어마어마한 걸 보면 스페인의 시도는 성공적이었다고 평할 수 있다. 네덜란드와 영국 등도 곧장 스페인의 뒤를 따라 시장 경제 질서의 안착에 발을 디뎠으니, 자본주의의 역사를 언급할 적이면 이들 국가가 빠지지 않음은 당연하다. 제한적이나마 개방 정책을 펼쳐 서구 제국주의와 어깨를 나란히 한 일본의 사례, 두 차례의 세계대전 속에서 거의 무너지다시피 하였으나 ‘라인강의 기적’이란 표현까지 통용시킬 정도로 기적적 성장을 기록한 독일 등의 학습 능력은 두고두고 회자가 될 법하다.
유럽연합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었다. 거대한 미국과의 경쟁에 개별 국가로 맞서는 건 승산이 없지만 유럽의 모든 국가가 연합을 구성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최근에는 이로부터의 탈퇴를 선언하는 국가가 나타나는 등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고도 하나 유럽이라는 하나의 집단으로 경제 단위를 묶는 행위 자체의 의미가 사라진 건 아니다. 필요에 따라 모였다가 흩어지는 전략은 역사에 늘 있어왔고, 유럽연합의 정체성 또한 숱한 고민이 쌓인 끝에 비로소 결정이 가능할 것이다.
모두가 바라는 부자 나라, 우리 또한 이룰 수 있을까. 소득 수준만을 놓고 평가한다면 이미 상위권이다. 중요한 건 사람들이 어려움을 덜 느끼는 것이다. 부유해지되 역사의 어떤 흐름에 의도치 않았음에도 휘말리는 것보다는 몇몇 국가들이 도모했듯 우리만의 길을 찾을 필요도 있을 것이다. 질서, 개방, 경쟁, 혁신, 학습, 단결, 비전. 어느 쪽을 향해 손을 뻗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