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등장은 혁명이었다. 세계 각국에 사는 사람들을 단숨에 연결 시킨 인터넷은 앉은 자리에서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거의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만들었다. 게다가 평범한 사람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론장이 활성화되며 권력층에서는 여론의 눈치를 보기도 한다. 어느 시대보다 빠르게 정보의 평등을 이뤄낸 것도 인터넷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플랫폼이 또 다른 권력이 되고 있다.
<보호받고 있다는 착각>은 실리콘밸리의 거대 플랫폼 기업들이 어떻게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정보를 통제하고 있는지를 폭로한 책이다. 저널리스트이자 사회운동가 질리안 요크는 실제 '아랍의 봄' 시위에서 인권 운동가들을 도우며 소셜 미디어의 검열과 치열하게 싸워왔다. 저자는 이 책에서 소셜 미디어 정책팀의 직원들과 오랫동안 소통하며 알게 된, 거대 플랫폼의 검열 시스템의 문제를 마치 내부고발자의 시선으로 자세하게 까밝힌다.
소셜 미디어의 등장은 우리에게 표현의 자유를 더 많이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 같았다. 거대 언론이 취급조차 하지 않을 사연들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주목받고, 정치권과 행정부를 움직이게 만든 사례를 우리는 숱하게 접했다. 특히 튀니지를 비롯해 중동 국가들에서 벌어진 민주화 시위 '아랍의 봄'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확산되었기에,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소셜 미디어의 강력한 힘을, 그리고 그 힘은 선한 영향력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도 아랍에서 벌어진 민주화 시위에 페이스북이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에 고무되었고, 자신들의 비전처럼 떠들고 다녔다. 하지만 저자는 수 많은 인권 탄압의 현장에서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려했던 인권 운동가나 평범한 시민들이 하루 아침에 게시물이 삭제 당하는 것을 목격했다. 게다가 페이스북은 모든 것이 통제되고 있는 독재 국가에서 인권 운동가들이 별명으로 가입한 사실로 계정을 삭제하기도 했다. 저자는 이 같이 '취약한 사용자 집단을 더 배려하지 않는' 이유는 페이스북이 '그런 집단과 그들의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 것이 페이스북의 책임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 지적한다.
저자는 페이스북은 오직 이익에만 관심이 있다고 말한다. 경쟁사를 인수해 더 많은 이익을 얻으려하는 것이 페이스북의 실질적인 비전이라는 것. 만약 마크 주커버그가 자신이 말한대로 더 선한 영향력을 확산하는데 관심이 있었다면, '공정하고 평등한 콘텐츠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투자'했을 것이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게다가 더 충격적인 것은 페이스북은 이스라엘과 같은 갈등 상황에 놓인 국가와 협정을 맺으며 노골적으로 친 이스라엘, 반 팔레스타인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트위터의 경우 사우디 왕가에서 일부 지분을 보유하면서 영향력을 드러낸다. 권력과 결탁한 소셜 미디어는 낮은 곳에서 올라오는 목소리에는 자신들의 애매하고 허술한 규정을 내밀며 검열하고, 정치권이나 권력층의 목소리는 더 자주 노출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시민의 발언이 정치인의 발언보다 덜 중요하게 여겨질 때, 인권운동가가 정부 내지는 거대 기업 또는 서로 협력하는 그 두 행위자에 의해 침묵을 강요당할 때, 오프라인에서 탄압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가 온라인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된다. (중략) 새로운 검열 방식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것은 언제나 그 사회의 소외된 공동체다. (p82)"
반면 ISIS와 같은 명백한 테러집단의 극단주의적인 메시지는 모호한 기준 때문에 즉각적으로 검열되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게다가 검열시스템이 인공지능과 같은 기계로 대체될 수록 오히려 극단주의 메시지가 공유되고, 인권탄압의 현장을 고발하는 목소리는 삭제되는 상황이 빈번하게 일어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저자는 플랫폼 기업의 검열 기준이 백인 남성 엘리트층의 가치관과 맞닿아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나체를 성적인 것과 연결 시키는 문화를 그대로 반영한 소셜 미디어의 규정은, 여성의 유두 노출은 무조건 음란한 것으로 간주해 삭제한다. 이 때문에 모유수유하는 여성의 유두가 노출됐다는 이유로 삭제 당했던 어이 없는 케이스가 실제로 발생했다.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나체, 동성애 등의 표현의 자유는 국내 정서상으로도 검열의 가이드라인에서 즉각 삭제 조치가 될 것 같은 부분이다. 올리는 사람들의 의도가 언제나 좋은 의도가 아닐 수도 있고, 이런 부분들을 일관성 있게 통제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게다가 어떤 콘텐츠에는 보호받아야할 특정 집단도 있다. 어린 아이들에게 폭력적이고 성적인 콘텐츠는 노출되지 않아야하거나, 피해자가 2차 가해를 당하지 않게 막아줄 필요도 있다. 그래서 저자의 주장이 다소 급진적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저자가 이어 주장하고 있는, 원하는 사람들끼리는 공유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선하는 방법은 타당한 것 같다.
저자 역시도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려면 반대적인 부분에서 끔찍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예를 들어 '젊은 트랜스젠더가 안전하게 익명성을 유지하도록 보장하는 것은 범죄자도 안전하게 익명성을 유지하도록 보장한다는 것'이니까. 하지만 저자는 이런 이유로 표현의 자유를 극대화하려는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검열을 하는 당국도 부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검열은 더 나아지려 했던 역사를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리게 만든다.
우리 나라 역시 이제는 조중동과 같은 언론 매체보다 포털의 힘이 더 강력해지고 있다. 사람들이 포털을 통해 뉴스를 접하다보니 포털의 게이트키핑이 여론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것이다. 만약 포털이 친정부적 입장을 취한다면, 정부를 비판하는 뉴스는 우리의 눈에 띄기 어렵다. 실제로 그런 일들은 숱하게 벌어지고 있다. 포털과 특정 세력의 공조를 의심하는 시선도 늘어나고 있다. 그만큼 표현의 자유가 공평하지 않은 시스템이 되어가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동안 나는 소셜 미디어의 알고리즘이 확증편향을 만들어 사람들을 극단으로 치닫게 만든다는 역기능만 생각했지, 검열을 통해 특정 세력에게 유리한 판을 짜고 있을 것이라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책에는 그런 증거들로 가득하다. 새로운 현실에 눈 뜨게 만들어 줄, 놀라운 사실들이 담긴 책이다.
※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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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광주에서 태어난 나는 검열이란 단어의 뜻을 알기도 전부터 세상 소식을 권력자들의 마음대로 관리하고, 고치고, 차단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몸소 느끼며 자랐다. 군인에게 맞아 사람들이 쓰러지고 개돼지 취급을 해도 이 좁은 땅덩어리 안에서조차 소식을 전하지 못했던 그런 시대였으니 말이다. 그 당시에는 언론이 검열당해 내 뜻을 자유롭게 세상에 알리지 못하는 시절이었다. 그렇게 억압된 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게 인터넷의 발달과 자유롭게 자신의 뜻을 글로 전하는 지금 시대는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시원하고 달콤한 일이었을텐데 막상 살아보니 또 그렇지만도 않다.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상상하던 시대에 살지만 버젓이 검열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왜 우리는 알지 못하는 것일까? 지금처럼 인터넷을 통한 각종 뉴스가 몇 분 만에 퍼지는 세상에서는 언론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온라인 검열이 권력자들에게 꼭 필요한 일일 텐데 우리는 정말 자유롭게 살고 있는 것일까?
블로그나 인스타, 페이스북을 포함한 모든 SNS,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관리로 위장한 검사들을 나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살아온 것이 아니었나 되돌아보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궁금해하며 알고 싶어 했다. 검열을 하려고 하면 어마어마한 시간과 인력이 소요될 텐데 어떻게 다 하는 것인지, 검열 프로그램이 있다면 도대체 어떤 똑똑한 이가 그런 것을 만들었을지, 늘 손에 들고 다니며 세상 무엇보다 내 삶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휴대폰도 사실은 검열 도구 중 하나일 텐데 왜 난 아무렇지도 않게, 내 삶을 누군지도 모를 이들에게 보여주며 살고 있는 것인지 말이다.
헌법으로도 보장되어 있는 자유권적 기본권 중에 사생활의 자유, 통신의 자유,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 등을 나는 확실히 보장받고 살고 있는지 다시 되돌아 보게 된다. 보장해 준다니 그런 줄 알고 살았는데 몰래 뒤로 검열당하고 내 기본권을 침해당했단 생각이 드니 괜시리 씁쓸해진다. 내가 대단한 글을 쓰고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게 해달라는 게 아닌데도 이런 기분이 드는데 정말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고 드러내는 사람들에게 이런 검열은 분명 어마어마하게 큰 구속이 될 것이다.
인터넷의 발달은 새로운 유통망을 만들어냈고 거기에 맞는 새로운 형식의 규제와 검열이 난무하는 어릴 적 내가 꿈꾸었던 미래와는 또 다른 느낌의 세상에 살게 되면서 어떤 신념과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지 다시금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다가올 미래가 꿈꾸던 유토피아일지 극한 현실의 디스토피아일지 알 수는 없지만 콘텐츠를 사찰당하고, 서로가 서로를 감독하며 신고하고, 삭제할 내용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관리자들의 입장도, 그렇다고 스스로가 아닌 남이 걸러주는 정보만 받아들여야 하는 이용자들의 입장에도 선뜻 편을 들 수가 없었다.
플랫폼 관리자들도 어느정도 선까지 자유를 허용해야 할지 굉장히 애매할 때가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표현하는 이들의 자유가 보지 않을 자유가 있는 이들을 괴롭히는 것은 아닌지, 분류하고 걸러내는 과정은 꼭 필요한 것인지 너무 어렵고 헷갈리고 판단하기 힘들다. 마구잡이로 퍼져나가는 성 관련 콘텐츠나 누가 봐도 나쁘다, 혐오스럽다,라는 판단을 내려야 한다면 얼마나 흰머리가 늘어날 정도로 머리를 쥐어짜야 할 것인가?
앞으로의 다가올 미래도 어떤 식의 변화가 나타날지 한 치 앞을 알 수 없지만 내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스스로의 권리와 자유를 지킬지에 대해서는 더 많이 생각해 보고 자세히 알아야 될 것이라고 본다. 누가 검열을 하고 내놓은 정보인지 판별하는 능력은 스스로 키워야 할 테니 그 첫걸음을 [보호받고 있다는 착각] 이 책과 함께 떼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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