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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06일
'물건들 사이로 엄마와 떠난 시간 여행'이라는 표지의 문구에 문득 나의 친정 엄마가 떠올랐다.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나신 나의 친정 엄마도 1952년생으로 교육을 많이 받지 못했고 경제적으로 여유롭게 살지 못했다고 들어서 이 책에 우리 엄마의 삶도 시대를 함께했던 물건들과 함께 녹아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나의 엄마와 함께 했던 추억들을 소환하며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좋을 글을 쓰는 것이 바람이라는 저자님은 1950년생 전쟁둥이인 70년 된 엄마의 진진한 삶의 여정을 담아 이 책을 집필하셨다고 한다. 이태리타월, 손톱깎이, 우산, 진공청소기, 다리미, 가스보일러, 고무장갑, 전기밥솥, 냉장고, 김 솔, 가스레인지, 김치냉장고, 세탁기, 모기약, 주방 세제, 치약, 브래지어, 생리대, 화장지, 양변기, 싱크대 등 산업화 시기에 생긴 물건들을 엄마가 어떻게 수용하고 생활속으로 받아들였는지 그 과정을 이 책에 담으셨는데 객관성을 담보하고자 당시 신문 기사도 참고하셨다고 한다. 엄마의 삶을 기록하며 이야기의 중심에 '집안일'을 두었는데, 엄마가 무한 반복의 노동으로 꾸려온 일상에는 삶을 이어가는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가치가 담겨 있다고 믿기에 이 이야기를 기록하기로 하셨단다.
서민들에게 익숙한 물건인 '이태리타올'이란 제품의 유래, 손톱깎이 '777'상표권을 놓고 벌어진 '777'브랜드를 만든 대성금속과 미국 보잉사 민항기 '777'의 싸움 등 재미있는 일화들이 당시의 신문기사들과 함께 담겨 있어 눈길을 끌었다.
손톱을 깎아야 글을 쓸 수 있는 난, 기술 집약체인 이 사소한 물건에 오늘도 의지하고 의존한다. 어디 손톱깎이뿐일까. 평범한 내 일상은 앞선 사람들의 무수한 노동과 노력 덕분에 안락할 수 있음을 이 작은 손톱깎이가 일깨운다.
가스보일러 이야기에서는 겨울에 입김을 불면 다 보일 정도로 웃풍이 심한 집에 살았지만 새벽에 일어나 방 불(연탄)을 갈아주셨던 나의 엄마가 떠올랐다. 연탄 아궁이 옆 곤로에서 밥하고 밥상을 차려서 방으로 갖고 들어가고, 그 많은 집안일을 하면서 김에 기름을 발라 연탄 아궁이에서 엄마가 구워주셨던 구이김을 정말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고무장갑 이야기에서는 주부들의 노동이 그 가치와 노고를 인정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시대를 살아오신 엄마가 안쓰럽고 화가 났다. 고된 노동을 되물림하고 싶지 않았던 엄마는 뭐든 다 ' 내가 할께 ' 하며 너는 하지 말라고 늘 말씀하셨다.
전기밥솥 이야기에서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친정 엄마가 손수 만들어주시는 따뜻한 삼시세끼를 먹으며 회사 생활하고 있는 나를 돌아보며 하루 세끼 남의 밥 차리는 노동을 하고 계시는 어머니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손목, 허리, 목 어디 한군데 성한데 없는 엄마를 보며 난 일하느라 바쁘니까 쉬라며 늘 고된 가사 노동을 도맡아 하시는 엄마의 체력과 노동력을 무심히 착취하는 딸로 살고 있음에 반성했다. 사글세내고 끼니때우는 것에 연연할 수 밖에 없던 가난한 시절, 해놔도 표가 안나고 안 해야 표가 나는 고된 집안일을 평생 도맡아 하시며 네식구의 삼시 세끼를 차리는 밥노동을 하셨는 우리 엄마, 잠자기 전까지 등을 바닥에 댈 수 없는 엄마의 고단한 삶 덕분에 내가 이렇게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음에 늘 감사하고 죄송할 따름이다. 구이김을 마음속으로 아껴먹는다는 저자님의 마음에 크게 공감하며 자세히 보지 않아 없는 줄 알았던 누군가의 소중한 피와 땀을 잊지 말아야겠다 생각했다.
화장지 이야기에서는 돈만 있으면 참 살기 좋은 세상이지만 없어도 불편한 줄을 몰랐던 옛날이 그립다는 이입분 구술자님의 말씀에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 주변에 나를 둘러싸고 있는 가득찬 물건들을 보며 이제는 '환경'이라는 가치가 소비의 중요한 기준이 된 시대, 지구와 뭇생명에 이로운 선택을 하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실천하며 조금만 더 부지런 떨면서 쓰레기를 덜 남기며 살아가야겠다는 생각도 해보며 환경 오염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되었다.
양변기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았는데, 1995년 수세식과 재래식 화장실 비율이 75대 24 였는데 당시 고작 24%에 해당하는 재래식 화장실 사용 가구에 속했다는 것이 부끄러웠다는 저자님의 말씀에 그시절 나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재래식 공용 화장실을 사용하는 낡은 집에 살았던 기억이 떠오르며 나를 늘 주눅들게 했던 우리집 환경, 친환경적인 삶을 위해 선택한 것이 아닌데 재래식 화장실 사용 가구에 속했다는 것이 부끄러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엄마의 짙은 추억이자 결코 딸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은 아픈 기억들과 함께하는 물건들의 역사를 보며 그 시대 그 물건들과 함께 했던 잊지 않아야 할 엄마의 생생한 역사를 추억하는 멋진 시간이었다. 가족들 챙기느라 정작 자신은 돌보지 못한 엄마, 극적인 변화의 시기를 통과하며 엄마가 세상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여기까지 왔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과 함께 각자의 추억을 소환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면 어떨까?
* 네이버 미자모 카페 서평단 이벤트 참여하며 도서를 증정 받아 리뷰하였습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증정 받아 솔직한 리뷰를 하였습니다.
#미자모#엄마와물건#심혜진#이입분#한빛비즈
포맷이 신기하기도 했고, 읽으면서 엄마를 떠올릴 수 있어서 좋았던 책이다.
이태리 타월, 손톱깎이, 우산, 다리미.... 치약, 양변기, 싱크대까지
호미와 스마트폰을 모두 사용할 줄 아는 1950년생 엄마와 여러 물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엄마의 삶을 기록하였다.
이야기의 중심에 '집안일'을 두기로 했다.
우리는 분명 집안에서 누군가의 노동에 의지해 살아왔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지만
세상은 이를 썩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삶이 고속도로와 높은 건물과 연구실 안에만 있는 것은 아니기에
엄마가 무한 반복의 노동으로 꾸려온 일상에는
삶을 이어가는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가치가 담겨있다고 믿기에 난 이 이야기를 기록하기로 했다.
프롤로그 중
첫번째 물건은 이태리타월 이다.
"이태리타월? 그런게 어디있어. 나는 냇가에서 고운돌 주워다가 그걸로 밀었어."
아 어쩐지! 만일 엄마가 누군가에게 때밀이를 당해봤다면, 내 몸을 그렇게 세차게 밀지 않았을 거다.
엄마의 기억에 의존한 추억들에 더하여, 그 당시의 신문기사까지 실려 있는 건 더 재밌다.
1970년대 들어 때를 심하게 밀지 말자는 내용의 기사가 자주 등장했다고 한다. 이태리타월이라는 이름의 유래와 처음 만든 이에 대한 기록, 때밀이라는 새로운 직업의 등장과 1985년에는 때밀이, 구두닦이 등의 직업 명칭을 변경하는 개선안도 나왔다고 한다.
어릴 때 엄마와 목욕탕에 가서 벌겋게 익은 얼굴로 내 몸을 밀어주려는 엄마와 아프다고 버팅기고 악 쓰던 내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이 장에서 저자도 역시ㅡ 그 시절을 떠올리며 이젠 작은 몸집의 귀여운 할머니의 등을 밀어주고 있는 자신을 발견. 엄마에 대한 애정이 느껴져서 좋은 구절이었다.
엄마는 여전히 고무 장갑에 무한 애정을 보였다.
고무장갑을 도매가로 판매하는 가게에서 한번에 20개씩 사서 절반을 내게 가져온다.
아무리 필요 없대도 소용이 없다.
그런데 도저히 알 수 없던 이런 엄마 행동의 이유를 글을 쓰는 동안 어렴풋이 깨달았다.
엄마의 무의식엔 꽁꽁 언 손으로 빨래를 하고 설거지를 하던 시린 고통과
고무장갑 하나 내 맘대로 돈 주고 살 수 없었단 무력감이 아주 크고 깊게 새겨져 있다.
엄마는 그걸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다.
그건 엄마의 짙은 추억이자 결코 딸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은 아픈 기억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기억들을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다.
이 또한 내게는 잊지 않아야 할 소중하고 생생한 역사이기도 하니까.
때 밀기 싫었던 어린 시절, 가스보일러가 나오기 전 연탄중독으로 어지러워했던 아빠 엄마의 모습, 고무장갑에 물을 집어넣었다가 설거지 하려는 엄마한테 혼났던 기억,,
우리 엄마의 생년으로부터 거슬러 올라와보니 엄마에게도 오버랩 되는 순간들이 많아서 읽는 내내 나의 엄마와 시간여행을 하는 듯 했다.
자녀를 키우다보니 친정 엄마에 대한 감정이 애틋해지기도 하는데 이 책도 묘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그리고 나는 알 수 없었던 우리 엄마의 어린 시절을 상상해보기도 했고.. 저자도 엄마와 대화를 나누며 엄마를 낯선 존재로 바라보는 시간이었고 엄마가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다는 걸 실감 하였다고 한다.
또한, 이러한 물건들이 우리 삶에 들어와 어떻게 기여했는지 이야기 하며 우리나라가 산업화를 거치며 발전해온 변천사도 알수 있었다. 언젠가 우리도 다큰 자녀에게 "라떼는 말이야~~" 하며 어떤 물건에 대해 추억할수 있을지 상상해보아도 재밌을 것 같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 입니다
우리는 '역사'를 배우면서 거창한 것만 떠올리기 일쑤다. 교과서에서조차 '임금의 업적'만 나열을 하고 '위인들의 생애'만 다루며, 인류사에 큰 영향력을 끼친 '굵직한 사건' 들을 예로 들면서 스케일을 한껏 키우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사'로 오면서 역사의 범위는 점점 복잡해지고 사건사고는 끊이지 않으며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했다 사라지길 반복하면서 위대하고 유구한 역사의 흐름만을 따라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그렇게 늘 거창해야만 하는 걸까?
한편, 임금이나 위인이나 모두 같은 사람인데, '그들'만 역사의 주인공이 되란 법이 있느냔 말이다. 더구나 무릇 역사란 '승자의 기록'이라고 하던데, 그 말이 맞다고 친다면 '개인의 취향'이 얼마든지 반영될 수 있다는 증거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면 '나만의 역사책'에는 내가 주인공이고, 내가 '아는 사람'이 얼마든지 위인이 될 수도 있는 법이다. 이를 테면, '엄마' 같은 위인 말이다.
엄마가 왜 위인이냐고 되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겠다. "당신은 엄마를 존경하지도 않으신답니까? 세상에는 인류 모두를 위해 헌신하는 위인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정작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신 엄마를 떠올리지 않는다면, 사람도 아니다."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엄마의 모든 것'을 역사책으로 쓸 수도 있다. 특히, 엄마 때부터 '즐겨 쓰던 물건에 담긴 현대사의 질곡'을 주제로 삼아 역사책을 쓴다면, 바로 이 책일 것이라고 소개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책이 <역사책>은 아닐지라도...
그렇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떠올리신 분들이 꽤나 많을 게다. 왜냐면 대한민국만큼 '빠르게' 변천한 나라도 드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신발만 보아도 그렇다. 지금 100세를 살고 계신 분이 살아계신다면 그분은 어릴 적에는 '짚신'을 신으셨을 것이고, 비가 오는 날이면 '나막신'도 신어보셨을 것이다. 조금 형편이 나아지면 '고무신'도 신어보셨을 것이고, '가죽신'을 신고 폼을 내기도 해보셨을 것이다. 젊어서 직장에 다닐 때에는 '구두'를 신고 다녔을 것이고, 평상시에는 '운동화'를 신고, 근래에 들어서는 '기능성 신발'을 신으며 발건강에 신경 쓰면서, 요즘처럼 부쩍 추워진 날씨에는 발을 따뜻하게 보호하는 '털신'을 신으며 평생 자신이 신어본 '신발의 변천사'를 떠올리실 수도 있을 게다. 이렇듯 '신발' 하나에도 동서양을 아우르고 전통과 현대, 그리고 시대별 유행까지 모두 담겨 있고, 시대마다 첨단을 달리는 '과학기술의 발전'까지 수용하였으니, 우리 주위에 널려 있는 사소한 물건들을 보면서 '대한민국의 역사와 발달사'를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의 내용은 글쓴이와 글쓴이의 엄마가 나눈 '대화'가 주를 이룬다. 지금 현재의 '나'는 이런 물건을 쓰는데, 과거의 엄마, 또는 엄마의 엄마는 어떤 물건을 써왔었는가하고 말이다. 이런 내용의 글을 읽다보니, '나 어릴 적의 추억'이 떠올라 색다른 감상에 빠지기 일쑤이기도 했다. 이런 점이 책의 첫 번째 매력이었다. 또 다른 매력은 글쓴이가 '여성'이기에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남자'들은 늘 쓰던 물건에 그닥 애착을 갖지 않는 편이다. 그저 손에 익숙하고 편하면 그뿐, 그 이상도 없고, 쓰다가 없어도 그만이기에 물건 하나하나에 '의미'를 담는 편이 아니다. 더구나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거나 '까라면 까..'라는 묘한 신조(?)가 남자들 사이에 퍼져 있는 까닭에 망치가 있으면, 못을 박는데 쓰다가도, 밤송이를 깔 때도 쓰고, 땅을 팔 때도 쓰고, 심지어 밥 먹다가 이를 쑤실 때도 쓰는..무던한(?) 삶을 살아갈 뿐이다. 아무래도 '군대식 문화'라 남자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기에 그런 점이 없지 않나 싶지만, 확실히 '여성'들의 관점에서 물건에 대한 역사를 살펴볼 수 있어서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한편, 집안 살림을 하다보면 세탁기, 청소기, 밥솥, 김치냉장고 등과 같은 '전자제품'에 대한 위대함을 저절로 깨닫곤 한다. 나 어릴 적에는 부뚜막에서 아궁이에 불을 피울 정도는 아니었지만, '가스레인지'가 등장하기 전까지 '풍로', 또는 '곤로'라고 불리는 기구로 밥을 짓고 국을 끓이며 음식을 조리하곤 했기 때문이다. 지금에야 '전자레인지'에 1분만 돌리면 '즉석밥'이 뚝딱 만들어지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어릴 적에 밥 타는 냄새에 눈을 뜨고, '삼층 떡밥'으로 대충 끼니를 때우고, 도시락도 싸지 못해 점심시간에 물배를 채우고 1시간 남짓 출렁출렁거리는 뱃속 장단을 치던 것이 '컵라면'의 등장으로 끼니를 때울 수 있게 되는 추억을 갖고 있는지라, 집안에 '전자제품'이 하나둘 들어오는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르곤 한다. 실제로 세탁기가 없을 적에 울 엄마는 화장실에서 빨래판에 빨래비누를 듬뿍 묻혀서 비비고 또 비비곤 하셨다. 좀 두꺼운 빨랫감에는 빨랫방망이로 흠씬 두들겨 패기도 했고 말이다. 그러다 세탁기가 들어오자 '세상 참 편해졌다'는 말씀을 하시곤 하셨다.
하지만 늘 처음에만 그러셨다. 세탁기가 들어와도 '빨랫감'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기에 빨래를 널고 걷고 개고, 다시 꺼내 입히는 수고는 똑같이 들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베란다에 널어서 빨래가 마르지 않으니 '연립주택' 앞마당에 집집마다 '빨간 빨랫줄'을 걸고서 널어놓기 일쑤였다. 빨래는 햇볕이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날에 잘 말랐기 때문이다. 한여름에는 뽀송뽀송 잘 마르던 빨래가 한겨울이면 고드름을 주렁주렁 달려 있기 일쑤였다. 초창기 세탁기에는 '탈수기능'이 별로였기 때문이다. 어릴 적에는 그 고드름을 참 잘도 따먹었는데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세제성분'이 제대로 분해되지 않아 '화학물질 덩어리'였다는 생각에 먹지 않았겠지만, 그 당시엔 뭐든 참 잘 먹었다.
암튼, 전자제품이 쏙쏙 들어와서 '엄마의 수고'가 덜어진 듯 싶었지만, 집안살림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그 당시 '남정네'들은 전자제품이 '여성을 게으르게 만든다'라고 단단히 오해했지만, 정작 '전자제품'이 집안살림을 대신한다고 '집안일, 그 자체'가 사라진 건 절대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치 젖은 손이 애처로워 '고무장갑'을 사주며 생색을 내도 '고무장갑'이 엄마 손을 보호해줄 수는 있어도 '설겆이, 그 잡채'를 대신 해주지는 않은 것처럼 말이다. 이것은 훨씬 더 과학이 발전한 미래에도 똑같을 것이다. 아무리 '인공지능 집안일 로봇'이 등장한들, '집안일, 그 잡채'는 여전할 것이다. '로봇청소기'가 그렇지 않느냔 말이다. 얘가 아니라 '물걸레 기능'까지 탑재되었다고 해도, 꼼꼼한 사람손길이 닿지 않는 구석구석까지 깨끗하게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훨씬, 훨씬 더 나중에는 '꼼꼼한 사람손길'이 탑재된 전자제품이 등장한다고해도 그닥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새삼 옛일을 떠올려 아스라한 추억여행을 떠나게 해주는 책이기도 했고, 대한민국의 급속한 변천사를 들여다보는 역사기행을 떠나는 기분이 들기도 했고, 암튼 참 묘한 기분이 들게 하는 책이었다.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누군가 쓰다 버린 '파란 비닐우산'이었고, 비가 오면 학교앞으로 우산을 들고 나를 데리러 오신 엄마가 있나 없나 살펴보던 추억이었다. 대개는 바빠서 학교앞에 오시지 못했지만, 간혹 오시는 날에는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사기도 했다. 울엄마가 너무 예뻐서 말이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