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항해시대. 그것은 코에이사가 만든 대항해시대라는 게임을 통해 알게 되었다. 항해라는 게임을 통해 모험가들의 삶을 동경하면서 이 책을 구매하였다. 이 책은 처음 대항해시대가 어떻게 시작하였는지, 그리고 누가 모험가가 되었는지, 그리고 그들이 어떤 성과를 이루었는지를 이야기한다. 과연 우리는 그들의 삶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 것인가? 여러분도 정복자들의 삶에 대해 접근해보자.
혁명은 변방에서 비롯된다.
포르투갈이 16세기 유럽의 아시아 및 아메리카 정복에 최선두에 섰던 것은 그런 명제가 타당하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 물론 가장 서쪽에 위치해 있다는 지리적 조건도 있었지만 한 국가가 변하는 정세에 어떻게 대처하는지는 그것에만 달려 있지 않다.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지 못하던 국가가 그 상황을 타개하고자 오랜 세월에 걸친 각고의 분투가 비로소 결실을 맺은 것이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인도양으로 진출한 것이었고, 그에 이은 정복 사업이었다.
로저 크롤리는 바로 그 포르투갈이 15세기 말부터 16세기 초반 아프리카 남단을 거쳐 인도를 지배하게 된 활약상을 이 책 한 권에 집약시키고 있다. 시작은 '항해왕' 엔히크라고 할 수 있다. 남쪽으로의 진출을 위해 전진 기지를 구축하고, 배를 만들고, 항해 경험을 축적한 결과가 그가 죽은 후 그의 후예들에 의해 결과가 나타났다. 헨히크의 지도 하에 역량을 쌓은 포르투갈은 바르톨로메우 디아스, 페드루 알바르스 카브랄, 바스쿠 다 가마, 프란시스쿠 알메이다, 아폰수 드 알부케르크로 이어지면서 놀라운 정복의 역사를 펼쳐나갔다.
사실 대강만 알고 있던 이 역사에 대해 읽으며 정말 놀란 것은 그 일이 벌어진 속도다. 알부케르크가 인도 제국을 거의 석권한 건 처음 디아스가 아프리카 희망봉을 넘어 간 지 겨우 십여 년밖에 지나지 않았던 때이고, 바스쿠 다 가마 이후로 따지면 겨우 몇 년 후였다. 그들의 모험심, 부에 대한 열망, 종교적 사명감이 겁쳐지면서 그 놀라운 속도가 가능해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그들의 폭력성이다. 그들은 정복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인도양으로 진출했고, 끝까지 지켰다. 무역을 통한 부의 획득만이 그들의 목적이었다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인도양의 민족들은 이미 자급자족의 세계를 이루고 있었고, 아랍을 통해 평화롭게 무역을 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이익이 되었다면 뒤늦게 나타난 포르투갈과도 평화로운 무역 관계를 맺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세계에 침범하여 힘의 논리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했던 게 포르투갈의 방식이었다. 그 과정과 결과가 500년의 제국주의적 세계질서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씁쓸하다.
로저 크롤리는 그 정복의 과정을 찬양도 아니고 비판도 아닌, 아주 건조한 문체로 서술하고 있다. 피 튀기는 전장의 상황도 묘사할 뿐 흥분하지 않는다. 그들, 그리고 그들의 후예에 대한 평가는 독자들에게 넘기고 있는 것이다. 배울 사람은 배울 것이고, 비판할 사람은 비판할 것이다. 흥미진진한 무협소설처럼 읽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무드리는 협상이 파탄 나자 분노했고 보트를 여러 척 파견하여 그들을 추적했다. 그들은 8월 30일에 잔잔한 해상 위에서 포르투갈 소함대를 따라잡았다. (...) 그때 갑자기 바다에서 폭풍우가 일어나 우리를 바다 한가운데로 더 밀어붙였다. 그들은 우리에게 더는 피해를 입히지 못할 것임을 알고 뱃머리를 돌렸다. 그 후 우리는 정해진 항로를 따라 계속 나아갔다.
이는 인도양에서 앞으로 벌어진 수많은 해전 가운데 첫 번째 전투였다. (p.141)
'대항해시대'라는 단어를 듣고 나는 사실 '콜럼버스'를 먼저 떠올렸다. (몇 권의 책을 읽고도 여전히 콜럼버스라니!) 포털에서 대항해시대를 검색해도 '콜럼버스의 신대륙발견'이 먼저 등장하기에 대다수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듯하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포르투갈의 진출이 대항해시대의 물꼬를 텄다고 한다. 하지만 '세우타 점령'이나 '탕헤르 공성' 등 짤막한 지식 말고는 포르투갈의 15세기 이야기를 제대로 알지 못했기에, 그 궁금증에서 시작했던 이 책은 나에게 놀라움과 깨달음을 동시에 준 것 같다. 포르투갈이 인도양을 향하는 여정에서는 긴장과 놀라움을 주었고, 그들의 행보를 통해서는 역사 속에서 정말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음을 또 한 번 깨닫게 하기도 했다.
그간 '바다의 제국들', '부의 도시 베네치아', '비잔티움 제국 최후의 날' 등의 저서로 제국들의 흥망성쇠를 생생하게 전파해온 로저 크롤리의 신간 '대항해시대, 최초의 정복자들'은 포르투갈에 대한 엄청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중해 기후와 아름다운 항구도시들로 유명한 포르투갈이 그 아름다운 해안 국가를 만들고 지키는 과정, 지금의 문화와 음식 등을 형성해가는 과정을 전부 유추해볼 수 있다니 기대하지 않을 수 없는 책이었달까.
작가 특유의 문장력을 여실히 드러낸 덕분에 포르투갈의 전사들이 거친 바다를 정복하는 과정이 어찌나 상세히 그려지는지, 긴장감을 놓기 어려운 책이었다. 어떤 장면은 매우 천천히 묘사되어 상황을 극적으로 표현하고, 어떤 장면에서는 몰아치듯 빠른 호흡으로 쏟아부어 긴박함이 가득했다. 베네치아의 첩자로 인해 내 마음도 요동을 쳤고, 신앙과 상업을 양손에 쥐고 폭풍우를 나아갈 때는 그들 앞의 일들이 마치 나에게 닥친 일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이야기였음에도 이토록 긴박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작자의 문장력이 탄탄하고, 작가가 쥐고 있는 이야기 소재가 매우 넓고 깊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평가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책이었다.
사실 알고 있던 정복 전쟁 너머의 많은 이야기가 담긴 책이었기에, 더 흥미롭게 느껴지기도 했겠으나, 단순히 '극적인 이야기'만으로 재미를 주는 책은 아니다. 물질적 욕심 너머 (종교나 사상의) 이념의 충돌, 물리적 장악과 학살까지 제대로 담고 있기에, 독자에게 더 생생한 당시의 역사를 엿보고 자신만의 생각을 정립할 기회를 준 책이기에 여러 가지 방향에서 많은 것을 생각해보게 했다. 개인적으로는 향신료나 금 등의 물질을 넘어 모험심과 이념, 사상 등이 인간에게 더 큰 영향과 목적의식을 줄 수 있음을 또 한 번 느끼게 된 기회였다. 내가 믿는 종교 그 밝음에 가려진 어두움 역사에 대해서도 말이다.
지중해와 인도양 등에서 일어났던 제국주의의 무력충돌과 약탈, 그로 인해 부수적으로(혹은 필연적으로) 이어진 교역과 교류 등이 전 세계를 어떻게 바꾸었는지 우리는 알고 있기에, 포르투갈이 행했던 업적이 얼마나 대단했던 것인지를 새삼 깨닫는다. 물론 그 후 500년의 역사 속에서 다른 나라들의 움직임과 세계의 변화 속에 그 영광이 계속 유지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포르투갈이 세계에 쏘아 올린 화살들은 분명 큰 의미와 작용으로 남아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물질적 욕구 위에 사명감과 모험정신을 얹어 그들이 바다에 남긴 것들. 세계는 다른 의미에서 매일 전쟁하고, 물리적인 영토와 한계를 벗어난 '세계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오늘날, 다양한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