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지 저
하루 저
문정훈 글/장준우 사진
밍동 글,사진
등잔 밑이 어둡다. 나름 서울 토박이라 자부하지만 유명 장소를 언급하며 묻는 이 앞에서는 말을 잃는다. 생활권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아는 게 없는 것이다. 그나마 최근 들어 따라다닌 답사 모임을 통해 알게 모르게 서울의 진면모를 접했다. 올해는 특히 지금은 사라진 전차의 각 노선을 따라 구석구석을 거닐며 여러 이야기를 들었다. 그 시간들이 이번 독서에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걸으면 보이는 도시, 서울>로 나를 이끈 건 그림이었다. ‘드로잉에 담은 도시의 시간들’이라 적힌 표지의 글처럼 저자는 그림으로 서울을 보여주고자 애썼다. 서울을 크게 동측과 서측으로 나누어 거닐었는데, ‘구릉지와 철길’이라 이름 붙은 서측은 물론이거니와 동측에도 내가 가 본 곳이 적잖이 포함돼 있었다. 그렇게까지 부지런하진 않은지라 들은 모든 이야기를 녹음하고 글로 남기지는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은 희미해져 갔으며 영영 망각의 늪으로 흘러가 버린 이야기도 제법 여럿이다. 이들 중 일부를 이번 기회에 되찾은 것만 같아 기뻤다. 무엇보다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광경과 꼭 닮은 그림을 볼 수 있어서 마음이 들떴다. 경험이라 하는 것은 실로 놀라워서 익숙한 장소를 그림으로 접하기가 무섭게 당시 그 곳에서 사람들과 나누었던 대화, 무더위를 쫓으며 베어 먹었던 아이스크림 상호 등이 생각났다. 잊었다며 안타까워 했는데 잊은 게 결코 아니었다.
저자의 걸음은 서울역에서 출발했다. 지금이야 도처에 높은 빌딩이 올라섰으며, 기차가 예전처럼 힘을 쓰진 못하는 게 현실이다. 과거엔 사정이 달랐다. 드높은 무언가는 존재치 않았으며, 어디로든 이동을 위한다면 거의 유일한 요충지라 할 법한 장소로 몰려 들어야만 했다. 서울역은 그런 장소였다. 보따리를 싸 들고 모여든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열차를 기다리는 모습이 제법 잘 어울리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면 그렇게 기다림을 감내하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닐 것이다. 철도는 일제의 필요에 의해 놓인 착취의 도구이자 일본인 이동권 확보를 위한 수단이었으니 말이다. 이런 슬픔은 흐름을 잃고 외따로 떨어져 섬 마냥 존재하는 숭례문으로 고스란히 옮겨간다. 황태자의 방문을 앞두고 허무하게 헐린 숭례문은 제국주의 세력에 한양 입성 방해꾼에 불과했다 .그 바로 옆으로 놓인 고즈넉한 정동길은 아픈 역사를 두 눈 똑똑히 지켜보았을 터이다. 품은 역사가 슬프다 하여 걸음걸음마다 슬픔을 아로새기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붉은 벽돌 건물들을 낭만으로 해석하는 젊은이들의 수는 아마 헤아리기 힘들 것이다.
청계광장에서 출발해 수성동 계곡에 이르는 두 번째 걷기 코스에는 서촌이라 하는 걸출한 장소가 포함됐다. 북촌한옥마을의 뒤를 이어 소위 ‘핫한’ 장소로 떠오른 서촌이건만 이어 닥친 건 달갑잖은 젠트리피케이션이었다. 굴러 온 돌이 박힌 돌 빼어내는 형국 마냥 꽃가게 송씨, 세탁소 김씨가 밀려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덜 유명했더라면 멎은 듯한 시간을 누리며 평온하게 살았을 사람들이다. 거주지가 관광지로 차츰 변모하는 과정을 바라보며 그들이 느꼈을 씁쓸함이 얼마나 컸을지 나로서는 짐작 불가다. 그래도 걸음이 멎은 곳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인왕산 자락과 아래 놓인 수성동 계곡이 어우러진 풍경이 일품이다.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진본을 목도한 것처럼 경외감이 들기도 한다. 인간이 자연에 행한 일은 끔찍했으나, 여전히 자연은 인간에게 최고의 선물을 선사 중이었다.
청계천과 세운상가 일대, 해방촌 등의 옛 모습은 지금과 사뭇 달랐을 것이다. 일거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든 이들에게 주어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늘을 지붕 삼아, 사정이 조금 더 좋다면 금방이라도 스러질 것 같은 판자촌 아래 몸을 뉘였던 곳이 바로 이들 동네다. 아현동은 또 어떠한지, 내가 대학생이던 시절 힘겹게 오르던 북아현동 가파른 언덕은 잊혀지지가 않는다. 특히 이화여대 복지관이 위치한 쪽 주택가 골목은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폭을 보기가 무섭게 ‘헙-‘하고 놀라고는 했었다. 얼마 전 답사 차 그 옆을 스쳤는데 빼곡하게 들어찬 아파트 일색 풍경이 생경했다. 젊음의 상징과도 같았던 신촌 그리고 홍대 일대의 최신 모습을 나는 알지 못한다. 그림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유추하는 일이 마냥 지루하지 않았던 까닭은 저자의 목소리에 담긴 경험의 일부가 내 것과 흡사했기 때문이다. 잊을 만하면 한 대씩 지나가는 열차의 꼬리를 밟기 위해 바지런히 걷고 때론 오랜 시간 멎었던 시절, 우리는 모두 젊었다. 옛 모습과 닮은 꼴이라곤 하나 없음에도 현재로부터 과거를 향한 그리움이 생성되는 신기한 경험을 그림을 통해 했다.
더 자주 그리고 더 많이 걷고 싶다. 혹시 또 모른다. 하찮게 여겼던 많은 것들이 새로운 의미로 나에게 다가올지도. 서울 토박이라면서 좀체 품지 못했던 이 도시를 향한 애정 역시도 걷다 보면 생겨나지 말란 법 없다.
예전부터 혼자 여기저기 다니는 것을 좋아했는데 결혼하고 아이들이 생기다보니 예전의 자유를 누리기가 힘들더라고요. 가끔 혼자 동네 근처를 다니긴 하지만 예전처럼 여기저기 다니기는 힘드네요. 거기다가 큰아이가 아프고 코로나로 인해 외출이 더 힘들어지다보니 과거가 너무 그립더라고요. 이런 시기에 서울 곳곳을 둘러볼 수 있는 책을 만나게 되었네요. 현재 건축사로 일하고 있는 저자가 서울역에서 시작해서 주변을 걸어다니면서 그린 그림과 설명을 중심으로 건축물과 도로, 골목 등의 역사를 알 수 있고 마치 저자와 함께 서울 곳곳을 걸어다니는 것같은 착각이 들게 만드네요.
표지에는 드로잉으로 그린 건축물들의 모습이 보이네요. 익숙한 건축물도 있고 낯선 건축물도 보이네요. 직접 가본 곳도 있고 가보고 싶었던 곳도 보이네요. 뚜벅뚜벅 걸으면서 그려낸 서울역 동서남북의 도심과 골목길을 산책하듯이 책을 읽으며 만나볼 수 있네요. 그림을 통해 서울역 주변을 둘러볼수 있다니 너무 좋네요.
책을 펼치면 이 책을 통해 함께 걸어볼 지역과 경로들이 지도로 나타나 있네요. 서울역을 기준점으로 동측과 서측으로 나눠서 동측에서는 숭례문을 중심으로 도시 걷기를, 서측에서는 서울역 서쪽에 위치한 동네들을 구릉지와 철길 위주로 걸어보는 방식으로 책이 구성되어 있네요.. 지도만 봐도 서울 이곳저곳을 산책할 생각에 설레네요.
제1부는 서울역 동측인 도심과 남산을 만나보러고 하네요. 첫 번째 걷기에서는 숭례문을 중심으로 서소문동과 정동 일대를 살펴보네요. 이곳은 저도 자주 걸었던 곳이라서 더 관심이 가고 자세히 보게 되네요. 익숙한 곳이 많아서 그림을 보고 글을 읽으면서 추억에 잠기게 되네요. 아무 생각없이 걸었던 길이나 보았던 건축물에 이런 이야기들이 숨어있다는 것이 신기하네요.
두 번째 걷기에서는 청계광장에서 출발해서 세종문화회관과 경복궁역을 지나 서촌 일대를 살펴보네요. 서촌은 가보고 싶은 곳인데 아직 가보지 못해서 꼼꼼하게 읽었네요.
세종문화회관 근처에서 직장 생활을 해서 이 곳도 익숙한 곳이네요. 세종문화회관은 거대한 지붕과 목구조의 형상화라는 한국성은 가지고 있다는데 저는 잘모르겠네요. 제가 건축 쪽에는 문외한이라서 그런건지 한국적인 게 느껴지지는 않네요. 오히려 서민들의 주거 공간이나 시골에 남아 있는 옛날 집들, 한옥에서 한국적인 부분을 더 느낄 수 있네요. 세종문화회관을 떠올리면 한국적인 것보다는 공연이나 음악회가 떠오르네요.
세 번째 걷기는 숭례문을 출발해서 남대문과 명동, 청계천과 세운상가 일대를 살펴보네요. 남대문과 명동, 청계천과 세운상가도 자주 다니던 곳이라서 익숙하긴 한데 책을 읽다보니 제가 모르는 부분이 많이 있었네요. 산책하듯이 돌아다니는 것도 좋지만 각 장소나 건축물 등에 관련된 역사를 알고 보면 더 좋을 것 같아요.
네 번째 걷기는 숭례문을 출발해서 남산 아래 동네 후암동, 동자동을 둘러보고 남산 구릉지 동네 해방촌을 살펴보네요. 남산서울타워만 가봤지 그 근처 동네를 구석구석 살펴볼 기회는 없었는데 책을 통해서 둘러보니 가보고 싶네요. 특히 108계단을 가보고 싶은데 지금은 경사형 승강기가 설치되었다니 조금 아쉽네요. 해방촌도 가보고 싶은 곳이었는데 책을 통해서 해방촌에 대한 여러 가지 것들을 알게 되서 다음에 갈 기회가 생기면 좀 더 의미있는 장소가 되겠네요.
제2부는 서울역 서측인 구릉지와 철길을 살펴보려고 하네요. 다섯 번째 걷기는 서울역 뒤편으로 가보려고 해요. 중림동, 충정로, 아현동과 청파동 일대를 둘러보는데 낯선 동네라서 천천히 책을 읽어내려갔네요. 아파트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처음 알게 된 사실들이라서 흥미롭네요. 갈월동굴다리가 그림으로 소개되어 있는데 중학교 친구가 결혼식을 마치고 피로연을 했던 곳이 있어서 반가웠네요. 지금 그 친구와 연락은 끊겼지만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을 거라고 믿어요.
여섯 번째 걷기는 경의선숲길을 따라 도화동을 거쳐 서강대 근처까지, 신촌연결선의 흔적을 따라 연세대 근처를 살펴보려고 해요. 이곳도 익숙한 곳이 아니라서 더 자세히 보게 되네요. 몇 번 가본적은 있지만 찬찬히 둘러본 적은 없는 곳이거든요. 연세대 근처 독수리 빌딩이 그나마 가장 익숙한 장소네요.
일곱 번째 걷기는 와우교를 출발해서 홍대를 거쳐 당인리발전소의 흔적을 살펴보네요. 홍대거리는 예전같지는 않지만 지금도 젊음의 거리라서 가보고 싶은데 갈 기회가 없었네요. 당인리발전소 자리는 지금은 공원과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는데 아이들과 한 번 가봐야겠네요.
이 책은 작가를 따라 서울 곳곳을 둘러보면서 역사도 알아보고 그림도 보면서 산책을 즐길 수 있네요. 작가가 세운 기준을 중심으로 서울을 둘러본 것이기는 하지만 덕분에 서울에 대해서 산책 겸 역사까지 함께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네요. 기회가 되면 이 책 한 권 들고 작가가 걸었던 길을 혼자 걸어보고 싶네요. 워낙 걷는 것을 좋아해서 저에게는 힐링이 될거에요. 작가와는 다른 관점으로 곳곳을 다시 바라보고도 싶네요.
*허니에듀 서평단으로 뜨인돌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