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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박완서 에세이 / 세계사
소설가 박완서의 이름을 모를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지만 익숙함과 달리 부끄럽게도 그의 책에 대해 제대로 읽은 것은 별로 없었다.
익숙한 이름이라 그의 책을 모두 아는 착각에 살았던 것 같다.
박완서 그가 남긴 산문 660여 편중 가장 글맛 나는 대표작만 모았다는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이 책을 읽고 이제야 박완서라는 분이 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렇게 거리낌 없이 그대로 보여주는 글에 진심이 느끼며 진심을 빼앗기게 되었다.
‘소박하고, 진실하고, 단순해서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한 작가라는 문구가 딱 맞았다.
사랑하였으며 삶 또한 그러했다.
이 책은 신기하다.
글을 통해 작가를 만났다기보다는 나를 만난 기분이다.
그녀의 삶이 유별난 것도 없고 평범한 주부에서 사십이 넘어 글을 쓰며 그저 쓰고 싶어 허기증을 느끼듯 글을 쓰게 된 내력이 중년이 된 나의 허기증을 만나게 한다. 남편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스탠드 불빛에 그저 내가 되고 싶어 글을 쓰며 행복해하는 모습은 한밤중 소소한 서평 쓰기를 하는 내 모습과 살짝 겹치기도 한다.
(오해는 마시길 내가 박완서 작가처럼 소설가의 삶을 산다는 것이 아니라 중년의 평범한 삶의 모습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녀의 가족에 대한 걱정, 자식에 대한 사랑은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에서 작가는 자식에게 바라는 것이 많다.
“활발한 건 좋지만, 특히 교육은 따로 못 시켰지만 애들이 자라면서 자연히 음악, 미술, 문학 같은 걸 이해하고 거기 깊은 애정을 가져주었으면 한다. (…) 아는 것이 많되 아는 것이 코 끝에 걸려 있지 않고 내부에 안정되어 있기를. 무던하기를. 멋쟁이이기를. 대강 이런 것들이 내가 내 아이들에게 바라는 사람 됨됨이다.”
151쪽.
참 바라는 것이 많다.
그런데 뭐하나 빠짐없이 자식에 대한 나의 마음과도 같다.
'그래 아이들은 이렇게 커야지.' 하며 작가의 소망을 응원하게 된다.
그런데 뒤에서 작가는 한마디 한다.
“그렇지만 이런 까다로운 주문을 아이들에게 말로 한일은 전연 없고 앞으로도 할 것 같지 않다.”
아니, 왜? 그렇게 원하는 것인데, 우리 아이 잘 되라고 하는 말인데.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까다로운 주문이었다.
사랑하기에 이런 소원을 말로 해서 부담을 지우지 말라는 것이다.
그저 '소망의 냄새 맡기로 내 애들이 그렇게 자라주기를 바랄 뿐이'(152쪽)라고 말한다.
이것이 너무 어려운 방법 아닐까?
아이들이 개 코도 아니고 소망을 알아서 척척 들어주는 것도 아닐 텐데.
결국 아이에 대해 절대 기대하지 말라는 소리이다.
‘그렇지 내가 아이들에게 뭘 바라’하고 웃고 넘어간다.
이렇게 책을 읽으면서 나의 이야기인 듯 절로 공감하며 주절주절 내 생각이 덧붙어간다.
아니 비슷한 상황에서 나는 잘 모르고 넘겼을 감정을 작가는 세세히 자분자분 파헤쳐 주어 '아 이런 상황에서 이런 마음이 들었던 거였군' 하고 과거 속 나의 감정을 되짚어보게 한다.
작가 노년의 모습은 조만간 언젠가 내가 만날 모습인 듯했다.
손자 손녀의 재롱이 행복해하고, 먼저 간 가족, 친구에 눈물겨워 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죽음을 준비하는 나의 모습이 떠올라 울컥하게 하기도 했다.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봄 직한 일상적인 사건 속에 숨어있는 감정을 찾아준다. 그 감정에 공감하고 감동하게 된다.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책은 박완서 작가의 또 다른 글을 더 읽고 싶게 만들었다.
어쩌면 숨은 나의 이야기를 작가의 다른 책 속에서 찾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그 소박한 것들을 예쁘다고 칭찬해 주지 않는다. 그래도 우리 마당 꽃들은 기죽지 않고 열심히 저 생긴 대로 핀다. 273쪽
작가의 글은 소박하다.
하지만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다.
그 소박 글에서 기죽지 않고 열심히 저 생긴 대로 사는 작가를 발견하고 나를 발견하게 해주니 아름답다고 칭찬해 주고 싶다.
기죽지 않고 열심히 저 생긴 대로 살아갈 나를 칭찬해 주고 싶다.
오래전부터 박완서 작가님의 작품을 좋아해서 또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에세이가 그렇듯 내얘기같고 쉬운듯하면서도 마음 깊은곳을 저리게 하는 글입니다.
p153. 할머니와 베보자기
유년시절 누구나 겪을법한 그러나 나이 들면서 깊숙히 잊혀져가는 그런 부끄러운 감정이 그대로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p217. 코고는 소리를 들으며
코고는 남편옆에서 깊은밤 끄적끄적 글을 쓰면서 행복을 느낀다는 작가님~
[오래 너무 수다스럽지 않은, 너무 과묵하지 않은 이야기꾼이고싶다.]
은은히 미소짓는 작가님의 얼굴이 떠오르는 문장입니다.
잔잔히 미소지으며 격하게 요동치지 않고 편하게 읽을수 있고 자신의 추억을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