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섭 저
한승혜 저
와이프가 갑자기 책을 한 권 주문해 달라고해서
급하게 주문 했습니다.
책을 같이 읽다가 문득
5년전에 한 노숙인에게 몇 천원을 쥐어 주며
커피라도 한잔 하라고 하던 팀장이 생각이 났습니다.
매번 노숙인을 볼떄 마다 그런건지
하필이면 그때 타이밍이 맞았던건지 모르겠지만
본인도 형편이 좋지 않은데
나눔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고 저도 내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살아가야 하는지 다시 되돌아 볼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남은 삶을 어떻게 살지의 고민이 이 책의 출발이었다(p.329).
이 책은 인생처럼 아무 데서나 읽기 시작하면 된다. 각 이야기들이 한 사람의 인생을 이야기 해 주는 수업이기 때문이다. 어른인데 무슨 인생을 공부하나 싶었다. 그런데 공부 하는 게 맞다. 하루라도 일찍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다. 나이만 먹어서는 어른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자는 마흔을 불혹이라고 했다. 쉰을 지천명이라고 하고 예순을 이순이라 했다. 40대에 이미 미혹됨이 없었어야 하고, 50대에는 천명을 알아야 하고, 60이 되면 귀가 순해져 귀에 들리는 모든 소리를 이해 한다는 뜻이다.
나는 이 세 가지의 의미를 이 책에서 찾아 보았다. 불혹. 미혹됨이 없으려면 일단 욕심을 내려 놓고 단조로운 삶을 살면 된다.
권태를 견딜 수 있는 힘은 행복한 삶에 필수적이고, 사람은 어린시절부터 단조로운 삶을 견디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p.44).
그런데 요새는 단조로운 삶을 살 수가 없다. 놀 거리가 넘쳐난다. 이러다 권태라는 단어가 없어질 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바쁜 삶 속에서 나 자신을 마주할 기회가 없었다. 마음에 혹 하는 것이 없으려면 나와 마주 서서 나와 친해 지면 된다. 나에게 이렇게 책을 통해 자꾸 질문을 해 보자. 그래서 권태의 시간이 필요하다.
고통과 괴로움은 다르다. 고통이 밖에서 오는 것이라면, 괴로움은 그걸 붙잡는 내 마음이다(p.55).
지천명. 천명은 무엇일까? 건강하게 오래 살라는 자연의 명령이다. 지는 이 것을 아는 것이다. 고통과 괴로움이란 스트레스다. 만병의 근원이 스트레스다. 쌓이면 건강하게 살 수가 없다.
우리 모두 태어나면서부터 죽어가는 자다. 죽음은 죽은 사람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의 문제다(p.278).
죽음을 향 해 가면서 건강하려면 욕심을 버리고, 자기를 돌보고, 스트레스도 바로 바로 해소 하면 된다. 그런데 아주 사소한 일로 짜증을 내고, 내 입장만 내세우고, 세상탓만 하는 나를 보며, 불혹도 지천명도 내게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이 끊임없이 지껄이는 건 어쨌거나 나를 위해서다(p.62).
나는 내 마음의 소리를 듣는 자다(p.63).
이순. 내 귀에 들리는 것을 이해 하는 나이. 사람이 귀가 두 개인 것이 듣는 것을 2배로 하라는 뜻이란다. 어른이란 나이가 아니라 보다 많이 들어 주고 이해 해 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나는 나만 이해 해 달라고 칭얼댄다. 수업을 듣기만 하고 적용하지 않아서 인 것 같다.
나는 운삼기칠(運三技七)정도를 믿고 싶다. 1만 시간을 채우려면 십 년 정도 걸리는데, 이제 새로 시작하더라도 아직 그 시간이 충분하지 않겠는가(p.218).
작가의 말이 아주 힘이 된다. 이제서라도 인생에 대해 다시 공부하고 배우면 된다. 아직 시간은 충분하다.
돌이켜 보면 젊은 사피엔스로서 오랜 시간 성취에 대해 물어왔다.
그러나 이제 행복을 묻고 싶다.
남은 시간을 잘 살아가는 데 이것보다 좋은 질문은 없을 것 같다(p.242).
인생의 목적은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닌가. 내 안에 있는 행복을 찾아 내서 만끽 하는 것.
죽어감의 고독에 맞서는 효과적인 무기는 무엇일까.
역설적으로 바로 삶의 의미이지 않을까(p.282).
나는 어른이 아니다. 이제 어른이 되어 가기를 공부하는 사람이다. 삶의 의미를 찾아 가며 인생 수업을 듣는 학생이다. 이 책을 통해 나 혼자만의 삶이 아님을 느꼈다. 나보다 앞서 삶과 진지하게 마주 하고 고민했던 분들... 시간을 초월한 따듯한 마음들과의 행복한 만남의 만남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