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현 글/유희 그림
유영광 저
이창현 글/유희 그림 저
서미애, 송시우, 정해연, 홍선주, 이은영 저
천선란 저
정보라 저
‘기억은 사라졌어도 기억을 대체하는 어떠한 본능이 가슴 속에서 꿈틀거린 걸까.’ P. 308
우리는 기억한다. 삶을 살아가면서 지나친 수많은 경험, 사건, 인상들이 자동적으로 머릿속에 저장된다. 기억은 말로 구전되거나, 문서로 기록되어 세대를 넘어 이어지며 이는 인류 발전의 중요한 기틀이 되었다. 그러나 기억은 물리적인 힘이 아닌 인간 스스로의 정신적인 노력으로는 삭제할 수 없다. 기억은 불가항력적인 존재이다.
‘메모리케어’에서는 알약과 헬멧으로 기억의 삭제와 조작이 가능하다. 부정적인 기억은 삭제하고 긍정적인 기억은 만들어낸다. 사용자의 의도에 맞춰 기억이 재형성된다. 거짓으로 만들어낸, 인위적인 삶을 살아가는 썬 시티 주민들의 모순적인 내면이 책에 자세히 표현되어 있다. ‘사방에 늘어선 전신 거울’, ‘완벽하게 고정된 목각인형’. 주인공이 썬 시티 주민들을 표현한 방법이다. 긍정적이고 행복한 기억들만 머리에 새겨 넣은 사람들의 모습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지하철, 버스를 이용할 때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대화를 하지 않는다. 한 뼘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앉은 사람들이 서로 무표정을 유지한 채 목적지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이동한다. 썬 시티 주민들의 단절된 소통과 싸늘한 표정은 어쩌면 이것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 아니었을까.
가까운 미래에 기억을 삭제하는 기술이 생겨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부정적인 기억, 트라우마를 없애기 위해 기억을 삭제할 수도 있고, 윤리적인 문제를 중시하여 기술에 반대 표를 던질 수도 있다. 개인의 판단과 행동에 정답은 없다. 중요한 것은 ‘기억의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는가’이다.
기억의 주도권이 타인 혹은 정부의 시스템 속에 속하게 되는 미래가 궁금하다면, ‘메모리케어’에서 그중 한 가지의 미래를 미리 경험해 볼 수 있다.
살아가면서 보편적으로 느끼는 온갖 부정적인 감정 즉 상처와 아픔, 고통, 트라우마와 같은 것들이 사람을 괴롭히기도 하고, 오히려 단단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전자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나쁜 기억에 옭매였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치료와 상담, 종교 등 온갖 방법을 통해 탈출하려고 한다. 후자인 사람들은 Resilience, 즉 회복 탄력성이 높은 사람이라 평가받는다.
이 글은 전자에 대한 이야기다.
나쁜 기억을 없애고 그 흔적을 꼬리표에 출력하여 기록을 남기는 삶.
당장 나쁜 기억으로 받는 고통은 없지만(PTSD와 같은 것은 평생 사람을 메마르게 한다), 그 기억이 꼬리표로 남는다면 그것이 완전한 “메모리 케어”일까?
이 꼬리표로 서로 감시 대상이 되고, 밉보이지 않기 위해 가면을 쓴 채 온갖 타인을 의식한 친절한 행위를 일삼으며, 내 기억의 기록을 끊임없이 감시당하는 삶.
나쁜 감정을 없애는 대신 기록을 남기는 세상이 과연 유토피아라고 할 수 있을까? 이것은 인간의 존엄성, 자율성의 측면에서 윤리적 문제가 드러나는 지점이다.
연결 포인트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인간이 극한에 닥치면 생존본능에 의해 살고자 철저히 내 영역만 지키려고 한다. 타자가 개입하는 순간 당장 내 생명줄이 단축된다.
단 한 채만 남은 아파트는 살아남고자 하는 염원 가득한 유토피아 형국에서 타자를 배척하며 반목과 갈등이 지배하는 디스 유토피아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도 ‘유토피아를 꿈꾼 디스토피아라는 입장’에서 맥락을 같이 한다고 생각한다.
'메모리 케어'는 불치병에 걸린 할아버지에게 했던 비밀스러운 약속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로, 개인적인 기억뿐 아니라 타인의 기억에 지속해서 미칠 수 있는 영향을 탐구하는 이야기이다.
이는 인간과 도시의 찌든 피로감에서 출발한다. 끊임없는 갈등과 반목으로, 인간이 ‘기억 관리 시스템’을 채택하도록 만드는 세상을 그린다. 표면적으로 긍정적인 기억 큐레이션을 통해 영원한 평화와 행복을 재구성하도록 만들어진 이것은 숨겨진 동기가 있다. 바로 통치에 의해 통제되는 기억의 서술을 강요함으로써 사회의 불만을 잠재우려는 시도인 것.
기억관리 시스템으로 인간의 나쁜 기억을 삭제하는 것은 윤리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부정 사용 문제, 데이터 확보를 통한 개인정보 유출 및 상업적 이용 등 각종 또 다른 범죄들로 이어질 것이 자명하다. 이런 문제까지 독자가 생각하게 하는 작가 작품의 주제 의식이 돋보인다.
즉 작가의 상상력, 실험적 소재와 내러티브는 꽤 신선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재형으로 주로 진술된 문체는 현실감을 주기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왜 그렇게 썼을까? 라는 의문점이 든다.
각종 사건을 보여주는 대담함을 보았지만, 작가가 의도한 대로 이미지화하기는 집중도의 흐릿함이 있지 않았나,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상처를 떠안은 대한민국의 현실과 그 기억을 건강하게 관리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염원과 과학의 발전은 인간에게 편리함을 줌과 동시에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윤리적인 문제가 양날의 검처럼 양립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인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