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에도 있었고 오늘날에도 있는 인물들의 결혼 심리극
19세기 영국 사회에서 재산이 없는 집안의 남자들은 목사나 군인이 되고 여자들은 시집을 가거나 가정교사, 혹은 노처녀로 사는 것이 관례였다. 사회활동이 극히 제한되어 있고 남자들에게 의지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여성들에게 결혼이란 신분 상승의 도구이자 사회활동의 방편, 그리고 지극히 합법적인 생계 수단이었다. 장남상속법에 의해 귀족 가문의 차남이나 재산을 물려받을 게 없는 집안의 남자 역시 돈을 고려하지 않고 자유롭게 배우자를 선택할 수 없었다. ≪오만과 편견≫은 이런 사회적 배경 아래 중류층 집안의 다섯 딸들이 각자 배우자를 찾고 자아를 발견해나가는 과정을 둘째 딸 엘리자베스의 시점으로 그리고 있다.
물려줄 재산이 없는 상황에서 딸들을 부잣집에 시집보내기를 원하는 속물근성의 베넷 부인, 그저 착하고 순수하기만 한 큰딸 제인, 사회 통념에 얽매이지 않고 당당하며 분별 있는 둘째 딸 엘리자베스, 줏대도, 분별력도 없는 셋째 딸 캐서린, 자매들 중 가장 못생겼으며 지적인 허영만 좇는 넷째 딸 메리, 제멋대로 구는 천방지축 리디아, 그리고 못생기고 재산도 없어서 낭만적인 결혼은 아예 포기한 스물일곱 살의 이웃 처녀 샬럿 등 결혼을 기준으로 여성들의 성격과 가치관을 분류한다면 세상 모든 여성들이 이들 범주에 속할 것이다.
남자들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자유롭게 아내감을 선택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재산을 가졌지만 가문의 수준과 명예를 외면할 수 없는 다아시, 신흥 부유층으로 사랑하는 여자와의 낭만적인 결혼을 꿈꾸는 빙리, 변변한 재산이 없어서 돈 많은 여자와 결혼해 한몫 챙기는 것이 목표인 위컴, 재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거드름만 피우면서 낭만보다는 조금 굴욕적이지만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는 콜린스, 못마땅한 것들은 단숨에 외면해버리는 베넷 씨 등 결혼관으로 보면 대부분의 현대 남성들도 이들과 비슷할 것이다.
재력가이자 높은 신분의 다아시는 인습에 얽매이지 않고 쾌활한 베넷 가의 둘째 딸 엘리자베스에게 호감을 보이지만, 그녀는 다아시를 재산과 신분만 믿고 오만하게 구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다아시는 베넷 가 여성들의 속물근성을 경멸하며 더욱 오만하게 굴고, 엘리자베스는 더욱 편견을 가지고 그를 대한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다아시의 오만함 뒤에 숨은 진정성을 발견한 뒤 조금씩 편견을 벗어던지고 그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제인 오스틴은 ≪오만과 편견≫에서 신분과 지위, 이해관계와 재산, 성격과 가치관이 서로 충돌하는 결혼이라는 큰 사건을 중심으로 다양한 성격의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서 최선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당시 상류층의 오만함과 권위의식, 중류층의 신분 상승 욕구 등을 통렬하게 비판함과 동시에 가진 것은 없지만 당당한 여자와 부자 남자의 결합을 통해 이상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여성 중심의 신데렐라 이야기에서 새로운 가치관 제시
≪오만과 편견≫은 재산이나 신분이 변변찮은 신사 집안의 딸과 부자 남자의 결혼이라는 점에서는 신데렐라 이야기 구조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조건을 갖춘 남자를 차지하는 여자가 뛰어난 미인이라기보다 지적이고 분별 있으며 당당하다는 점, 그 시대에 여성이 처한 상황을 대변함과 동시에 비판하며, 가문과 지위를 중시하는 상류층의 통념이 잘못된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결혼의 전제 조건으로 외적인 것보다는 사랑을 역설하며, 여성이 재력가인 남자의 세계로 고스란히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남자의 성품과 세계관을 바꾸는 주체가 된다는 점, 남자 또한 가문이나 권위 의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가치관과 취향에 따라 선택하는 등 당시의 지배적인 가치를 벗어나 새로운 가치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