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테라스에 펭귄이 산다』는 소설 같은 제목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 저자에게 벌어졌던 일을 바탕으로 쓰인 에세이입니다. 저자 톰 미첼은 영국인으로 20대 초반이던 1970년대에 아르헨티나에서 기숙학교 교사를 한 적이 있는데, 우루과이에서 휴가를 지내다 만난 마젤란펭귄 후안 살바도르와 함께 동거하게 되어 그 이야기를 이 책에 재미있게 담아내었습니다.
고즈넉한 오후, 휴가지에서 있었던 이런저런 일들을 떠올리며 해변을 산책한 지 10~15분쯤 됐을까. 내 눈에 충격적이고도 비통한 광경이 들어왔다. 처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움직임이 없는 검은색 물체였다. 처음에는 얼마 되지 않는 줄 알았다. 그런데 다가가서 보니 그 수가 어마어마했다. 검은색 카펫을 깔아놓은 듯 검은 사체들이 해변을 온통 뒤덮고 있었다. 검은 기름을 뒤집어쓴 펭귄들이 바다 수위를 표시하는 기둥부터 북쪽 해안을 따라 끝도 없이 길게 누워 있었다. 펭귄들은 끈적거리고 역겨운 기름과 타르에 숨통이 막힌 듯 기름범벅이 된 채로 죽어 있었다.
(...)
나는 죽은 새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기가 영 거북스러워 일부러 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시야 한편에서 언뜻 미약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 움직임은 바다의 흰 거품 쪽이 아니라 움직임이라곤 전혀 포착되지 않았던 검은 해변에서 느껴졌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움직임이 느껴지는 곳을 주시했다. 착각이 아니었다. 대견하게도 펭귄 한 마리가 살아 있었다. 온통 죽음뿐인 그곳에서 유일하게 고군분투하고 있는 단 하나의 생명이었다.
이렇게 참혹한 환경에서 우연히 만난 펭귄 한 마리를 살리기 위해 집으로 데려온 저자는, 처음엔 기름때만 씻어준 후 펭귄을 바다로 돌려 보내주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바다로 돌아가기는커녕 자신만을 따라오는 펭귄을 저버리지 못했습니다. 동물원에 맡기려는 생각도 했지만, 동물원에서 비참하고 무기력하게 살고 있는 펭귄들의 모습을 보고는 결국 함께 살기로 다짐하죠. 하지만 그가 사는 환경은 평범한 집이 아니라, 바로 학생들로 가득한 기숙학교였습니다. 후안은 학교의 인기 스타가 되었고, 심지어 학교 구성원들의 고민 상담원 노릇까지 하게 됩니다.
후안이 다른 이의 말을 잘 들어준다고 생각하게 된 건 그의 태도 때문이다. 후안은 상대가 말을 할 때 고개를 끄덕이고 눈을 바라보며 귀를 기울인다. 후안을 찾아온 사람들은 후안의 무거운 입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후안의 격려에 기댄다. 인간의 말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후안에게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후안의 눈동자에는 뛰어난 달변가가 갖추어야 할 명쾌한 의사전달 법이 모두 담겨 있다. 이따금 나는 후안의 주식인 생선이 두뇌 발달에 그렇게 좋다고들 하는데, 혹시 그 때문에 후안이 친구들에게 통찰력 깊고 지혜로운 대답을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제가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행복했던 부분은, 소년 디에고와 후안이 함께 수영하는 모습에 대한 묘사입니다. 디에고는 볼리비아에서 온 형편이 다소 어려운 아이였습니다. 지독한 향수병에 시달렸고 학교생활에도 잘 적응하지 못했으며 친구도 별로 없었죠. 하지만 후안을 돌보기 위해 시장에서 청어를 사 오고, 테라스를 청소하고, 후안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우울함에서 벗어나 위안을 얻습니다. 심지어 후안과 함께 수영하면서 자신의 잠재력을 드러내고, 어느새 이 잠재력을 찬란하게 꽃피워 모든 아이들이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학생으로 성장하죠.
그날 밤 나는 두 번째 충격을 받았다. 디에고는 그저 수영을 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수영을 잘했다! 디에고는 후안의 뒤를 쫓아갔다. 만약 다른 사람이 그렇게 했다고 하면 정말 터무니없게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디에고는 전혀 우스꽝스럽지 않은, 기가 막히게 우아한 동작으로 수영을 했다. 디에고가 수영을 하자 후안이 디에고 주위를 빙빙 돌았다. 그리고 둘은 똑같은 동작으로 수영을 했다.
내 평생 서로 다른 두 종이 그렇게 교감하는 장면은 처음 봤다. 그 둘은 마치 바이올린과 피아노 듀엣 연주처럼 서로의 기술을 돋보이도록 안무를 하며 완벽하게 교감하고 있었다. 주연도, 조연도 없었다. 때론 후안이 앞서면 디에고가 후안의 뒤를 쫓아갔다. 후안은 디에고가 자신의 뒤를 바짝 따라올 수 있도록 속도를 조절했다. 후안은 그렇게 멈춰 섰다가 다시 날듯이 수영을 했다. 때론 디에고가 앞서서 수영을 하면 후안이 마치 누에가 고치를 짓듯 8자로 디에고의 주위를 빙빙 맴돌았다. 어떤 때에는 둘이 거의 몸이 닿을 정도로 바짝 붙어서 수영을 하기도 했다. 절묘한 파드되를 보는 듯했다. 황홀한 광경이었다.
그날 저녁, 그날의 분위기는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신비로웠다. 무수히 많은 장면이 한데 어우러지는 마법 같은 시간이었다.
이 책을 통해 인간이 지구에 미치는 끔찍한 영향과 결과, 펭귄이라는 동물의 사랑스러움, 펭귄과 아이들의 귀엽고도 뭉클한 교감, 아름답고 광활한 자연의 묘사, 그리고 언제나 슬픈 이별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쿠데타와 엄청난 인플레이션 아래 살아가야 했던, 그리고 여전히 진행 중일 평범한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고통과 빈부격차 같은 이야기들도 볼 수 있고요. 무엇을 더 중점적으로 보든, 명랑하고 생기 가득한 펭귄 후안의 모습은 독자들의 뇌리에서 쉽게 잊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은 책.
계속 무거운 주제(?)의 책을 읽어서
좀 가벼우면서 힐링이 되는 책을 읽자고
이야기해서 선정된 책이다.
분명 가볍게 쓴 산문인데 뭔가 뭉클하고
힐링되는 포인트가 있었던 작품.
1970년대, 영국인인 작가는 아르헨티나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게 된다.
휴가지에서 우연히 기름범벅이 되어
옴짝달싹 못하는 펭귄을 데리고 와
씻기고 보호하다 결국 학교 기숙사까지
데리고와서 살게 된 그는 펭귄과 함께 하면서
학생들도, 본인도 한층 성장하고
서로를 알아가는 좋은 기회를 갖게 된다.
뭔가 생뚱맞은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1970년대라는 배경을 생각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펭귄을 데리고
입국장을 통과하던 당당한 그.
나였다면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을 텐데
오히려 당당하게 위기를 모면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면서 부럽기도 했다.
그나저나 아르헨티나에 마젤란 펭귄이
그렇게 많이 사는 줄 몰랐네 그려 ㅎ
작가가 머물던 시기에는 마젤란 펭귄 서식지인
푼타톰보 해안이 정말 야생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찾아보니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인듯.
관광상품으로 아예 개발이 되어 있는 듯 했다.
선뜻 동물을 키우기는 힘들지만
동물과의 교감이 사람에게 많은 위로와
힘이 된다는 이야기로 마음이 따뜻해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