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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가 사랑한 책

고운기 | 현암사 | 2016년 5월 20일 한줄평 총점 10.0 (12건)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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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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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삼국유사, 간행에 얽힌 비밀

지금은 가장 흔하게 구할 수 있는 고전 중 하나가 『삼국유사』이다. 『삼국유사』는 고려의 승려 일연이 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신기하지 않은가? 고려시절에 쓰여졌다고 말해지는 수많은 역사책을 지금 우리는 확인할 수 없다. 『삼국유사』도 실제로 역사 속에만 존재할 뻔한 위기를 겪었었다. 최남선이 발굴하기까지 『삼국사기』는 무려 415년이나 잊혀졌던 것이다. 묘하게도 최남선은 일본 유학 시절 도쿄에서 『삼국유사』를 발견했다. 책 제목처럼 일본에서 『삼국유사』는 한국보다 더 사랑을 받고 있었다.

이 책은 『삼국유사』 전문가 고운기가 기획한 '스토리텔링 삼국유사'의 첫 번째 권이다. 저자는 자신의 박사 논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현장을 발로 뛰고 취재했다. 이 책에 수록된 다수의 사진 역시 저자가 부지런하게 발품을 판 결과다. 1권인 『도쿠가와가 사랑한 책』은 한국과 일본 두 나라에서 『삼국유사』가 겪은 운명에 대해 쓰고 있다. 한 권의 책이 유통된 과정을 추적하며 그것이 미친 이후의 역사에 대해서도 분석한다.

목차

화보
1장 프롤로그
2장 운명적인 만남
3장 뜨거운 감자- 단군
4장 경주에서 다시 태어난 『삼국유사』
5장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나고야라는 도시
6장 황실에 바쳐진 책
7장 나고야 어느 사무라이의 일기
8장 호사에 핀 꽃
9장 조선 후기 실학자와 『삼국유사』
10장 메이지 유신의 격랑 속에서
11장 1904년, 『삼국유사』의 재발견
12장 에필로그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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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저 : 고운기 (高雲基)
1961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한양대와 연세대 대학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99년에 도일(渡日), 게이오대학(慶應大學)에서 방문연구원으로 3년간 한일 문학 비교 연구를 수행한 뒤, 『일연과 삼국유사의 시대』(2001),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2002), 『일연을 묻는다』(2006)를 냈다. 2007년에는 메이지대학(明治大學)에서 객원교수로 한국 고전문학과 삼국유사를 강의했다. 이 기간의 공부가 바탕이 되어 필생의 작업인 ‘스토리텔링 삼국유사’ 시리즈를 기획하고, 『도쿠가와가 사랑한 책』(2009), 『삼국유사 글쓰기 감각』(2010), 『삼국유사 길 위에서 만... 1961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한양대와 연세대 대학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99년에 도일(渡日), 게이오대학(慶應大學)에서 방문연구원으로 3년간 한일 문학 비교 연구를 수행한 뒤, 『일연과 삼국유사의 시대』(2001),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2002), 『일연을 묻는다』(2006)를 냈다. 2007년에는 메이지대학(明治大學)에서 객원교수로 한국 고전문학과 삼국유사를 강의했다. 이 기간의 공부가 바탕이 되어 필생의 작업인 ‘스토리텔링 삼국유사’ 시리즈를 기획하고, 『도쿠가와가 사랑한 책』(2009), 『삼국유사 글쓰기 감각』(2010), 『삼국유사 길 위에서 만나다』(2011), 『신화 리더십을 말하다』(2012), 『모험의 권유』(2016)를 펴냈다. 삼국유사를 연구해 인문 교양서로 펴내는 일에 주력하고, 이를 통해 고대의 인문, 사상, 역사를 아우르는 문화사를 이루고자 한다.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 『밀물 드는 가을 저녁 무렵』 『섬강 그늘』 『나는 이 거리의 문법을 모른다』 『자전거 타고 노래 부르기』 『구름의 이동속도』 『어쩌다 침착하게 예쁜 한국어』가 있다. 벌교에는 어릴 적 주먹 친구가 세운 자그마한 시비가 있다. 현재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출판사 리뷰

삼국유사 전문가 고운기의 라이프 워크 ‘스토리텔링 삼국유사’

“세계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한국이 커지면 커질수록 세계는 우리를 향해 ‘너희는 누구냐’는 질문을 더 자주 던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이런 사람이다’라고 얘기해 줘야 하는데 우리가 누구인지를 아는 데 삼국유사만 한 텍스트가 없습니다.”

저자 고운기 교수의 말이다. ‘삼국유사’는 한민족의 정체성과 뿌리를 알려주는 유일한 책이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책으로 꼽힌다. 700년 전에 쓰인 역사책 한 권을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연구하고 있는 저자는, 지난 2002년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를 출간하여 삼국유사 해설서를 선보였다. 당시 맛깔스러운 표현과 문학적 상상력을 가미한 대중적인 글쓰기로 온 국민에게 ‘삼국유사 읽기’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그 뒤 삼국유사에 나오는 이야기의 현장을 밟아가며 쓴 기행문, 비문으로만 남아 있는 일연의 일대기를 복원한 평전을 출간, ‘삼국유사 3부작’을 완성하였다.

‘스토리텔링 삼국유사’ 시리즈를 간행하며 저자는 독자와 이런 약속을 하였다.

소설가 김훈은 말한다. “일연(一然)은 부서질 수 없고 불에 탈 수 없는 것들에 관해 썼다. 이것이 당대의 야만에 맞서는 그의 싸움이었다.”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인간이 겪은 시간 전체를 살아가는 생활인’이 일연이라고 했다. 이 말에도 동의한다. 나는 이제 ‘삼국유사’ 안에 담긴 ‘부서질 수 없고 불에 탈 수 없는 것’을 오늘의 이야기로 풀어내려 한다. 나만의 일이 아니고, 언제까지라도 끝나지 않을 일이다. 현재진행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 시대의 야만을 향하여 싸우는 나의 몸짓이 소통의 신호 그 자체이기를 바란다. 이제부터 ‘스토리텔링 삼국유사’는 해마다 한 번씩 독자를 찾아갈 것이다. 이 일은 ‘삼국유사’의 이름으로 감히 약속드리는 나의 라이프 워크이다.

‘삼국유사’ 안에 담긴 ‘부서질 수 없고 불에 탈 수 없는 것’을 오늘의 이야기로 풀어내는 고운기의 라이프 워크―. 한평생 ‘삼국유사’만을 짝사랑해 온 고운기 교수의 ‘삼국유사 연구’의 마지막 매듭을 짓는 일이다. 그 첫 권인 ‘도쿠가와가 사랑한 책’에 이어 일연의 삼국유사 기술 방법을 설명하는 ‘이 이야기꾼의 한 생애’, 100년 전 일본과 한국에서 일기 시작한 향가 연구의 붐을 추적하는 ‘노래의 탄생’ 등을 차기작으로 준비하고 있다.

이번에 출간된 첫 권 ‘도쿠가와가 사랑한 책’은 ‘삼국유사’를 두고 벌어진 한일 두 나라의 숨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저자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삼국유사’가 같은 시대에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알아보고, 그에 따른 결과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나타나는지 생생하게 들려준다. 한 권의 책이 유통된 과정을 치밀하게 추적하여 그 비밀을 재미있게 풀어냈다.

어느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책에 관한 보고서

“『삼국유사』 원본, 어쩌다 이역만리 일본으로
그리고 새로운 권력자 도쿠가와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을까.”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7년, 조선에 원정을 갔던 장수들은 돌아오는 길에 수천 종 이상의 조선의 책들을 모두 쓸어왔다.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이었던 조선의 인쇄술을 연구하는 데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이다. 그 중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퇴각하는 일본군이 챙긴 ??삼국유사??. 1512년 경주에서 찍은 책 가운데 한 질이다. 제 땅을 떠나 이역만리 바다로 건너간 ??삼국유사?? 원본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바쳐졌으며, 어문고의 목록 속에 들어가 소중히 보관되었다. 오늘날 국내외 남아 있는 ??삼국유사?? 원본 가운데 세밀한 전승 과정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책이다.

“1904년 일본의 도쿄에서 간행된 '삼국유사'―.
그들은 왜 '삼국유사'를 가르치려 했을까.”
불현듯 1904년 도쿄에서 '삼국유사'는 출판되었다. 명문 도쿄제국대학 사학과 학생이 배울 교재 시리즈의 하나로 나왔다. 을사보호조약을 한 해 앞둔 시점에서, '삼국유사'를 간행한 저들의 속셈은 분명 조선의 식민지 경영과 관련이 있었다.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알아야만 통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도쿄제국대학 사학과 교수들은 이것을 충족시켜 줄 한 권의 책을 도쿠가와 이에야스 장서에서 발견하였다. 도쿠가와 집안의 장서를 빌려 현대식 활자로 '삼국유사'를 인쇄한 전통적인 방식에 고급스러운 장정의 3책 1질이었다.

“받아들이기도 버리지도 못할 존재
그들에게 단군은 뜨거운 감자였다.”
'삼국유사'는 단군신화로 시작한다. 민족의 뿌리를 단군에게서 찾았던 일연(一然)의 혜안이었다. 그러나 조선왕조 500년 동안 단군신화는 이 시기 지식인들에게 뜨거운 감자와도 같았다. 받아들이기도 버리지도 못할 존재―. 그런 와중이라 이를 싣고 있는 '삼국유사'뛁차 황탄한 책으로 대접받아야 했다. 19세기에 들어서면 이 책을 보았다는 사람도 없고, 심지어 행방조차 묘연해지고 만다.
1904년 이후 '삼국유사'는 뜨거운 감자로 다시 떠올랐다.

“최남선,
415년 만에 '삼국유사'를 찍다.”
집필이 끝나고 제 주인의 손을 떠나기로는 13세기 후반, 어느 눈 밝은이가 경주 관아의 작은 창고에 묻어 둔 판본을 꺼내 손질하고 새로 인쇄하기는 16세기 중반, 그 중 한 권이 임진왜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바다 건너 새 집에 들어가기는 17세기 초반, 그곳에서 근대식 활자로 다시 태어나기는 20세기 초반. 제 땅을 떠난 뒤로 제 땅에서 까마득히 잊혔고, 이국땅에서 다시 태어난 20세기 이후에야 제 땅의 사람들에게 비로소 알려지기 시작했다. 바로 최남선에 의해서였다. 최남선은 일본에서 간행된 '삼국유사'를 가져다 '계명' 제18호에 실어서 널리 보급시켰다. 최남선에 의해 415년 만에 ‘백천금을 주어도 구하기 어려운 진서’ '삼국유사'가 빛을 보게 되었다.

삼국유사 간행 경위, 일본과 한국을 넘나들며
치밀한 자료조사, 정확한 자료분석으로 생생하게 전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그동안 우리나라에 공개되지 않은 자료를 비롯하여 일반인이 쉽게 볼 수 없는 귀한 자료를 많이 실었다. 도쿠가와본 '삼국유사'(도쿠가와 이에야스로부터 물려받은 책에는 ‘어본이라는 도장을 찍었다. 이 도장이 찍힌 책은 더 특별한 대접을 받았다. 도쿠가와본 '삼국유사'에는 빈 페이지가 여러 면 보인다.) 호사문고 도서 목록(호사문고의 자료가 소중한 것은 역대로 이 문고에서 간행한 도서 목록이 있기 때문이다. 도서 목록을 통해 문고 안의 장서가 어떻게 보관되어 왔는지 알 수 있다.), 황실에 빌려 드린 서적의 메모(호사문고가 32종의 책을 빌려 주고 나중에 돌려받기 위해 만든 목록), 어문고 도장(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물려주었다는 표시로 찍었던 도장. 어본이라고 새긴 도장은 지금 여러 종 남아 있다.), 도쿄대본 '삼국유사'(도쿄대학 문과대 학장인 쓰보이 구메조가 ‘문과대학 사지총서’라는 시리즈의 하나로 간행), 교토대본 '삼국유사'(1925년 교토대학 이마니시 류에 의해 간행. 이마니시가 서울에서 구한 순암수택본을 저본으로 원문을 그대로 영인하였다.), 1512년 경주부에서 간행한 '삼국유사', '계명', 관영 목록 속의 '삼국유사', 오와리 목록 속의 '삼국유사', 바바 어문고 어장서 목록 속의 '삼국유사', 바바 어문고 어서적 목록 속의 '삼국유사', 어문고 어장서 목록 속의 '삼국유사', 어문고 어서적 목록 속의 '삼국유사', 스루가 어양 어서물 목록 속의 '삼국유사' 등 일본에서 찾은 자료와 우리나라의 자료를 토대로 치밀하게 조사하여 같은 시대 한국과 일본에서 어떻게 평가받고 전개되었는지 생생하게 들려준다.

종이책 회원 리뷰 (11건)

[서평] 도쿠가와가 사랑한 책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 | 2011.08.31

고등학교 국사 시간때 국사선생님이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차이점을 누누이 강조한 것이 생각난다.

수능에도 자주 나오는 것이라고 하면서, 삼국유사는 민족적,자주적 성격을 띄고, 삼국사기는 사대주의,유교적 성격을 띈다는 것을 설명하셨다.

솔직히 지금이야 모르겠는 데, 삼국유사나 삼국사기의 일부분도 읽지 않고 무조건 두 역사책의 차이점을 외웠던 것 같다.

삼국사기는 아시다시피 고려시대 때 김부식이라는 사람이 고려의 지원을 받아 만들어진 책이라서 그 보존에 어려움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삼국유사는 일개 스님인 일연이라는 스님이 썼기 때문에 그 보존과 보호에 소홀함이 있었다. 삼국유사는 고려때 만들어진

후 빛을 보기까지 정말 파란만장한 일을 겪으며 살아남았다.

삼국유사가 빛을 보고 학계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게 된 것은 우리 한국 역사학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안타깝게도 일본학자에 의해서다. 그 것도 아주 먼 옛날에 빛을 본 것이 아니고, 최근이라고 할 수 있는 1904년대 때이다.

고려시대 1281년때 만들어진 삼국유사는 사찰이나 관청에서 보관되다가, 이러저러한 이유로 훼손되고 분실된다.

그러다 조선시대 이계복이라는 관리에 의해 1512년 대대적으로 다시 한번 인쇄된다. 그러나 이마저도 관리소홀로 훼손되고, 분실되다가, 1592년 임진왜란으로 인해 가장 큰 수난을 당하게 된다.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략한 왜군은 조선의 물건이라면 닥치는 대로 쓸어담아 일본으로 보내졌다. 당연히 조선의 책도 그 수탈의 대상이 되었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일본의 권력자의 개인문고에 몸을 의탁하게 된다.

임진왜란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으켰지만 도요토미는 임진왜란 몇 년후 죽게 되고, 그 뒤를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사람이

일본의 최고 실력자가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삼국유사가 이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사람의 개인문고에 들어간 것은 다행이라 할 수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책을 소중히 다루었고, 특히 책을 체계적으로 보관하기 위해 개인문고를 만들어 철저하게 관리했고,

개인 문고에 어떤책이 있는지 목록도 만들어 대대 손손 물려주었다.

만약 삼국유사가 조선에서 보관되었다면, 제대로 된 관리를 못 받아 분실,훼손 되었을 가능성이 클 것이다.왜냐하면 조선시대는

모든 분야에 유교가 깊숙히 뿌리 박혔고, 숭유억불정책으로 인해, 불교와 관련되거나 스님이 편찬한 책은 소홀이 다루어졌을기 때문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살았던 시대는 중앙에는 천왕이라는 허울뿐인 통치자가 있고, 실제 통치는 막부라는 곳에서 이루어졌다.그 막부의 최고 실력자였던 도쿠가와는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또한 그의 개인문고에 있던 책은 천왕에게 빌려주었을 정도로 대단했다.비록 천왕이 허울뿐인 통치자였지만, 천왕이 보았다고 소문이 나면 그 책의 가치는 엄청나게 올라갔다.

여기서 도쿠가와의 권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천왕한테 책을 준 것이 아니고, 빌려주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도쿠가와는

천황이 함부로 할 수 없었던 존재였다.

도쿠가와는 책을 무척 사랑했고, 책 수집과 관리에 철저했다. 삼국유사는 천왕에게 빌려준 도쿠가와 개인문고 32개의 책 중 하나였다. 만약 삼국유사가 천황에게 빌려주었다는 기록이 문서로 남아있지 않았다면 삼국유사는 1904년에 와서 빛을 보지 못하였을 것이다. 도쿠가와는 천왕엑 삼국유사를 빌려주었다는 것을 문서로 남겨, 개인문고와 함께 후세에 물려주었고, 이 기록이 1904년 일본학자에 의해 발견되어, 삼국유사의 중요성이 부각되어, 다시 인쇄가 된다.

이 책 '도쿠가와가 사랑한 책'은 삼국유사가 역사적,지리적 경로를 거쳐 오늘날 빛을 보게 된 경위를 설명해주는 책이다.

그러면서 삼국역사에 대한 조선사람들의 잘못된 인식에도 비판을 하고 있다.

삼국유사를 읽어보면 지금 생각해도, 이상하고 기이한 이야기가 많다. 유교가 판을 치던 조선시대는 불교나 도교에 비해서는 합리성이 있었다. 그리하여 이치에 맞지 않는 이야기나 설명에 대해 무시하거나 그 가치를 깍아내리기 일쑤였다.

그 중 가장 문제가 된 것은 우리가 잘 아는 단군신화였다. 단군신화는 아시다시피 환인의 아들인 환웅이 여러 신하들과 함께

하늘에서 내려오고, 곰이 쑥과 마늘을 먹어 여자가 되자, 환웅이 그 여자와 결혼하여 고조선의 시조인 단군을 낳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단군이 고조선을 세운시기가 중국의 요임금이 나라를 세운 시대와 비슷하다고 적혀있다.

조선은 그 당시 중국이 천하의 중심이고 , 조선은 그 중국을 섬긴다는 사대주의에 빠져있었다. 그런데 삼국유사에서는

고조선의 성립시기가 중국의 요임금이 나라를 세운 시기와 비슷하다고 하고, 또한 그 시조의 탄생설화가 얼통당토하지 않다고 하며 삼국유사를 많이 깍아내렸다. 이런 인식은 우리가 흔히 깨어있었다고 생각한 실학자사이에도 있었다. 정약용도 삼국유사를 인용하면서도 몇 몇 내용은 이치에 맞지만 대체로 이치에 맞지않는 기이한 책이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이런 대접을 받았던 삼국유사가 지금은 역사서로 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일연스님이 삼국유사를 지을 때, 일연은 유교적 입장이 아니, 우리 나라의 문화를 가감없이 삼국유사에 남겼다는 것이다.시중에 떠도는 소문도 삽입하고, 그 당시 존재했던 문헌에 적힌 삼국에 관한 내용을 가감없이 옮기면서 그 내용이 있었던 문헌을 명백하게 밝혔다. 또한 우리 민족이 흥얼거렸던 향가,고려가요 등 국문학적 가치가 있는 것도 삽입하고, 각종 신화, 설화도 옮겼다.

즉 삼국유사에는 그 시대, 우리사람이 보고 느꼈던 모든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있는 것을 총망라했다는 것이다.

그 것도 특정 사관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가감없이 옮겼다는 것이다.

또한 그 것을 옮기면서도 그 유래와 문헌도 같이 옮겼다는 것이다. 만약 유래와 문헌을 같이 옮기지 않았다면, 그 신빙성에 의문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일연은 내용이 허황되더라도 일단 옮기고 문헌을 밝힘으로서 사실에 입각해서 저술했다.

우리는 그리스 로마신화를 서양문화의 보고라고 하면서 즐겨 읽고, 거기에 나오는 신들의 이름과 그 신들이 한 행동을 외우기도 하고, 다른사람에게 알려주고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기도 한다.

그리스 로마신화도 읽어보면 판타지 저리가라 할 정도 허황된 것이 거의 대부분이다.신이 사람이 되고, 동물이 되고, 죽어서 별자리가 되고 일일이 나열할 수가 없다.

그런 그리스 로마 신화는 서양문화의 정수다라고 하면서, 우리 문화가 들어 있고, 거기다 문헌까지 적혀있는 삼국유사를 모르고,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은 것은, 또 다른 서양사대주의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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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가 사랑한 책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 | 2010.01.20

상대를 이길려면 상대의 생각을 잘 꽤 뚤어야 한다고 한다.일본인들은 한국인들의 마음을 삼국유사를 통하여 상대의 마음을 읽음으로써 침략의 야욕을 버리지 않았을것이다.

한국인의 마음을 담은 삼국유사는 분명 우리를 침략의 야욕을 불태운것이 아닌가 싶다.임진왜란에 비롯 그들이 패 했어도 그들은 많은 국보급 보불들을  가지고 가서 도쿠가와가 손에 보존되어진체로 놓인것은 그네들은 미래를 내다보는 느낌이 든다..

충렬왕때 승려는 일연으로 인하며 만든 삼국유사는 단군신화부터 고대사를 다룬 책이여서 우리에게 큰아큰 보탬이 되었는데   조선시대는 사대부들은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숭상하는것들로 하여금  자기만 잘살겠다는 이기주의로써   그\국보를 등안시 하는 큰 실수를 범한것 같다.

 도쿠가와가 사랑한 책』의중심에 삼국유사를두고 벌어지는 일본은 한국의 역사적인  이야기들이 숨가쁘게 전개되어가는책이다..

 

최남선은 최초 근대적인 잡지 소년을 탄생시켜고 최초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했다.1512년에 발간된후 최남선의 손에 415년만에 삼국유사가 최남선의 손에 의해서  1904년 일본유학시절 도쿄제국대학이름으로 삼국유사가 출판되었다고 한다.최남선은 그 책을 사서 과연 사실과 부합되는지 처음에는 알 도리가 없었지만 ..때마침  도쿄제재 문과대학 사저총서본으로 삼국유사를 출간한것이었다..

책을 통해서 우리의 정체성 과 한민족의 근원을 찾아가기 위해 일본을 오가며 진실을 차는 고운기교수님의 역사적으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생생하게 들어 주고 있네요..

요시나오가 선정한 32종 가운데 나라를 다스리는 이데올로기가 다분한 삼국유사는 중요한 역사서들 이었기에  고미즈노오 천황은 궁중에 채택되어 읽었고 그후로 삼국유사의 존재감은  오와리 번에서 특별대우를 받는계기가   된것은 분명한 사실이니 말이다...




한 책의 유통과정을 통해 한 나라는 문을 닫고 한 나라는 신민지 통치를 하였다는것이 가슴 아픈일이지만 필연이 아닌가 하는 답답한 생각을 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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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접어보기
도쿠가와가 사랑한 책...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 지*니 | 2010.01.15
'기구하면 기구할수록 운명답다.기구한 운명의 끝이 해피엔딩이라면 더욱 좋다..그런데 바로 삼국유사가 그런 책이란다.'
온전히 이말 한마디가 나에게 이책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했다.
학교다닐때 그냥 역사속의 책이라 단순히 역사공부를 위한 책으로 다가왔던 삼국유사를, 새롭게 재조명 해보고 삼국유사를 두고 한일간 두나라의 숨은 이야기가 재미있게 전개되는 이책으로 좀더 의미있게 다가왔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으로 흘러 들어간 삼국유사가 어떻게 도쿠가와 집안에 보관중이었는지 이책을 읽다보니 조금은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방치됨에 안타까움과 함께 삼국유사가 새롭게 더욱 의미를 더해지는것 같았다.
막연하게 동화속 설화로만 알았던 연오랑과 세오녀의 운명이 어쩌면 삼국유사를 닮은것도 삼국유사안에 들어간 연오랑 세오녀 이야기가 이책의 운명을 예견이라도 하고 있는듯 보였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가 흔히 아는 단군신화는 13세기의 일연의 삼국유사에 의지해 있다는 사실도 이책을 통해 확연히 다가와서 우리역사의 의미를 좀더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단군신화에 관한 가장 오랜 기록을 담은 삼국유사와 제왕운기는 깉은 시대를 살다간 일연과 이승휴의 저작이다.
같은시대를 살다간 두사람이 서로 친밀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두책에 나란히 단군신화가 실린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유래있는 삼국유사도 그 명찰을 달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 책에 처음으로 명찰을 달아준 사람은 이계복이다.
이단아 기질이 있던 이계복의 노력으로 간행된 삼국유사는 오늘날까지 온전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이계복 이후에 아무도 삼국유사를 다시 찍지 않았다는 사실로 볼때 오늘날 우리가 온전히 삼국유사를 볼수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된다.
하지만 임진왜란 이후 일본으로 넘어간 이책이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넘어간 사실은 실로 안타까운 실정이다.
학술과 문화의 진흥에 힘썼던 이에야스는 일본 최대의 개인 도서관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가운데 특히 이에야스가 관심을 가진 것이 바로 조선으로 부터 건너온 책이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7년간 조선에서 건너온 책들중 상당수가 그에게 바쳐졌다고 하니 삼국유사가 그에게 넘겨진것도 어쩌면 역사적으로 어쩔수 없었던 사실이다.
삼국유사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인연은 도쿠가와가 권력을 잡은 다음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책의 작가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같은시대에 삼국유사가 어떠한 대접을 받았는지 면밀히 알아보고 그에 따른 결과를 역사적 사례로 생생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
삼국유사라는 한권의 책을 지키지 못한 우리민족의 아쉬움과 함께 그래도 지금까지 남아있어 우리에게 큰 의미를 던져주는 서적으로 남아 감사할 따름이다.
이책으로 단군신화의 역사적 관점을 삼국유사라는 책으로 바라볼수 있게 되었고 한권의 책이 주는 역사적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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