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국사 시간때 국사선생님이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차이점을 누누이 강조한 것이 생각난다.
수능에도 자주 나오는 것이라고 하면서, 삼국유사는 민족적,자주적 성격을 띄고, 삼국사기는 사대주의,유교적 성격을 띈다는 것을 설명하셨다.
솔직히 지금이야 모르겠는 데, 삼국유사나 삼국사기의 일부분도 읽지 않고 무조건 두 역사책의 차이점을 외웠던 것 같다.
삼국사기는 아시다시피 고려시대 때 김부식이라는 사람이 고려의 지원을 받아 만들어진 책이라서 그 보존에 어려움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삼국유사는 일개 스님인 일연이라는 스님이 썼기 때문에 그 보존과 보호에 소홀함이 있었다. 삼국유사는 고려때 만들어진
후 빛을 보기까지 정말 파란만장한 일을 겪으며 살아남았다.
삼국유사가 빛을 보고 학계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게 된 것은 우리 한국 역사학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안타깝게도 일본학자에 의해서다. 그 것도 아주 먼 옛날에 빛을 본 것이 아니고, 최근이라고 할 수 있는 1904년대 때이다.
고려시대 1281년때 만들어진 삼국유사는 사찰이나 관청에서 보관되다가, 이러저러한 이유로 훼손되고 분실된다.
그러다 조선시대 이계복이라는 관리에 의해 1512년 대대적으로 다시 한번 인쇄된다. 그러나 이마저도 관리소홀로 훼손되고, 분실되다가, 1592년 임진왜란으로 인해 가장 큰 수난을 당하게 된다.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략한 왜군은 조선의 물건이라면 닥치는 대로 쓸어담아 일본으로 보내졌다. 당연히 조선의 책도 그 수탈의 대상이 되었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일본의 권력자의 개인문고에 몸을 의탁하게 된다.
임진왜란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으켰지만 도요토미는 임진왜란 몇 년후 죽게 되고, 그 뒤를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사람이
일본의 최고 실력자가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삼국유사가 이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사람의 개인문고에 들어간 것은 다행이라 할 수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책을 소중히 다루었고, 특히 책을 체계적으로 보관하기 위해 개인문고를 만들어 철저하게 관리했고,
개인 문고에 어떤책이 있는지 목록도 만들어 대대 손손 물려주었다.
만약 삼국유사가 조선에서 보관되었다면, 제대로 된 관리를 못 받아 분실,훼손 되었을 가능성이 클 것이다.왜냐하면 조선시대는
모든 분야에 유교가 깊숙히 뿌리 박혔고, 숭유억불정책으로 인해, 불교와 관련되거나 스님이 편찬한 책은 소홀이 다루어졌을기 때문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살았던 시대는 중앙에는 천왕이라는 허울뿐인 통치자가 있고, 실제 통치는 막부라는 곳에서 이루어졌다.그 막부의 최고 실력자였던 도쿠가와는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또한 그의 개인문고에 있던 책은 천왕에게 빌려주었을 정도로 대단했다.비록 천왕이 허울뿐인 통치자였지만, 천왕이 보았다고 소문이 나면 그 책의 가치는 엄청나게 올라갔다.
여기서 도쿠가와의 권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천왕한테 책을 준 것이 아니고, 빌려주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도쿠가와는
천황이 함부로 할 수 없었던 존재였다.
도쿠가와는 책을 무척 사랑했고, 책 수집과 관리에 철저했다. 삼국유사는 천왕에게 빌려준 도쿠가와 개인문고 32개의 책 중 하나였다. 만약 삼국유사가 천황에게 빌려주었다는 기록이 문서로 남아있지 않았다면 삼국유사는 1904년에 와서 빛을 보지 못하였을 것이다. 도쿠가와는 천왕엑 삼국유사를 빌려주었다는 것을 문서로 남겨, 개인문고와 함께 후세에 물려주었고, 이 기록이 1904년 일본학자에 의해 발견되어, 삼국유사의 중요성이 부각되어, 다시 인쇄가 된다.
이 책 '도쿠가와가 사랑한 책'은 삼국유사가 역사적,지리적 경로를 거쳐 오늘날 빛을 보게 된 경위를 설명해주는 책이다.
그러면서 삼국역사에 대한 조선사람들의 잘못된 인식에도 비판을 하고 있다.
삼국유사를 읽어보면 지금 생각해도, 이상하고 기이한 이야기가 많다. 유교가 판을 치던 조선시대는 불교나 도교에 비해서는 합리성이 있었다. 그리하여 이치에 맞지 않는 이야기나 설명에 대해 무시하거나 그 가치를 깍아내리기 일쑤였다.
그 중 가장 문제가 된 것은 우리가 잘 아는 단군신화였다. 단군신화는 아시다시피 환인의 아들인 환웅이 여러 신하들과 함께
하늘에서 내려오고, 곰이 쑥과 마늘을 먹어 여자가 되자, 환웅이 그 여자와 결혼하여 고조선의 시조인 단군을 낳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단군이 고조선을 세운시기가 중국의 요임금이 나라를 세운 시대와 비슷하다고 적혀있다.
조선은 그 당시 중국이 천하의 중심이고 , 조선은 그 중국을 섬긴다는 사대주의에 빠져있었다. 그런데 삼국유사에서는
고조선의 성립시기가 중국의 요임금이 나라를 세운 시기와 비슷하다고 하고, 또한 그 시조의 탄생설화가 얼통당토하지 않다고 하며 삼국유사를 많이 깍아내렸다. 이런 인식은 우리가 흔히 깨어있었다고 생각한 실학자사이에도 있었다. 정약용도 삼국유사를 인용하면서도 몇 몇 내용은 이치에 맞지만 대체로 이치에 맞지않는 기이한 책이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이런 대접을 받았던 삼국유사가 지금은 역사서로 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일연스님이 삼국유사를 지을 때, 일연은 유교적 입장이 아니, 우리 나라의 문화를 가감없이 삼국유사에 남겼다는 것이다.시중에 떠도는 소문도 삽입하고, 그 당시 존재했던 문헌에 적힌 삼국에 관한 내용을 가감없이 옮기면서 그 내용이 있었던 문헌을 명백하게 밝혔다. 또한 우리 민족이 흥얼거렸던 향가,고려가요 등 국문학적 가치가 있는 것도 삽입하고, 각종 신화, 설화도 옮겼다.
즉 삼국유사에는 그 시대, 우리사람이 보고 느꼈던 모든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있는 것을 총망라했다는 것이다.
그 것도 특정 사관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가감없이 옮겼다는 것이다.
또한 그 것을 옮기면서도 그 유래와 문헌도 같이 옮겼다는 것이다. 만약 유래와 문헌을 같이 옮기지 않았다면, 그 신빙성에 의문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일연은 내용이 허황되더라도 일단 옮기고 문헌을 밝힘으로서 사실에 입각해서 저술했다.
우리는 그리스 로마신화를 서양문화의 보고라고 하면서 즐겨 읽고, 거기에 나오는 신들의 이름과 그 신들이 한 행동을 외우기도 하고, 다른사람에게 알려주고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기도 한다.
그리스 로마신화도 읽어보면 판타지 저리가라 할 정도 허황된 것이 거의 대부분이다.신이 사람이 되고, 동물이 되고, 죽어서 별자리가 되고 일일이 나열할 수가 없다.
그런 그리스 로마 신화는 서양문화의 정수다라고 하면서, 우리 문화가 들어 있고, 거기다 문헌까지 적혀있는 삼국유사를 모르고,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은 것은, 또 다른 서양사대주의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상대를 이길려면 상대의 생각을 잘 꽤 뚤어야 한다고 한다.일본인들은 한국인들의 마음을 삼국유사를 통하여 상대의 마음을 읽음으로써 침략의 야욕을 버리지 않았을것이다.
한국인의 마음을 담은 삼국유사는 분명 우리를 침략의 야욕을 불태운것이 아닌가 싶다.임진왜란에 비롯 그들이 패 했어도 그들은 많은 국보급 보불들을 가지고 가서 도쿠가와가 손에 보존되어진체로 놓인것은 그네들은 미래를 내다보는 느낌이 든다..
충렬왕때 승려는 일연으로 인하며 만든 삼국유사는 단군신화부터 고대사를 다룬 책이여서 우리에게 큰아큰 보탬이 되었는데 조선시대는 사대부들은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숭상하는것들로 하여금 자기만 잘살겠다는 이기주의로써 그\국보를 등안시 하는 큰 실수를 범한것 같다.
도쿠가와가 사랑한 책』의중심에 삼국유사를두고 벌어지는 일본은 한국의 역사적인 이야기들이 숨가쁘게 전개되어가는책이다..
최남선은 최초 근대적인 잡지 소년을 탄생시켜고 최초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했다.1512년에 발간된후 최남선의 손에 415년만에 삼국유사가 최남선의 손에 의해서 1904년 일본유학시절 도쿄제국대학이름으로 삼국유사가 출판되었다고 한다.최남선은 그 책을 사서 과연 사실과 부합되는지 처음에는 알 도리가 없었지만 ..때마침 도쿄제재 문과대학 사저총서본으로 삼국유사를 출간한것이었다..
책을 통해서 우리의 정체성 과 한민족의 근원을 찾아가기 위해 일본을 오가며 진실을 차는 고운기교수님의 역사적으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생생하게 들어 주고 있네요..
요시나오가 선정한 32종 가운데 나라를 다스리는 이데올로기가 다분한 삼국유사는 중요한 역사서들 이었기에 고미즈노오 천황은 궁중에 채택되어 읽었고 그후로 삼국유사의 존재감은 오와리 번에서 특별대우를 받는계기가 된것은 분명한 사실이니 말이다...
한 책의 유통과정을 통해 한 나라는 문을 닫고 한 나라는 신민지 통치를 하였다는것이 가슴 아픈일이지만 필연이 아닌가 하는 답답한 생각을 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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