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노 저
임솔아 저
애나 렘키 저/김두완 역
로랑스 드빌레르 저/이주영 역
천선란 저
백온유 저
리스본에서 빈까지 유럽 대륙을 종단한 코끼리 ‘솔로몬’이 있었다!
구교와 신교, 물질적 가치와 영적 의미 사이에서 벌어지는 절묘한 유머와 위트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주제 사라마구가 실화를 소설화한 유일의 장편소설 이동수단커녕 도로정비도 제대로 안 된 16세기 유럽에서 한 마리 인도코끼리를 포르투갈 리스본부터 오스트리아 빈까지 수송하는 것이 가능했을까? 게다가 그 코끼리가 다름 아닌 오스트리아 대공의 결혼 선물이었다면? 놀랍고도 믿기 어려운 사건이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상상력을 통해 장편소설로 재탄생했다. 마침표와 쉼표 외에는 문장부호를 사용하지 않고 단락 구분도 드문, 게다가 제목 없는 18개의 장을 끝없이 이어가는 주제 사라마구 소설의 특색이 이번 작품에서도 여전히 흡인력을 발휘한다. 환상적 리얼리즘의 대표 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코끼리의 여행』은 1551년, 포르투갈 국왕 부부가 오스트리아의 사촌 막시밀리안 대공에게 코끼리 ‘솔로몬’을 선물한 실제 사건에서 출발한다. 종교 개혁과 재정난으로 몸살을 앓던 포르투갈이 신교인 루터주의에 동조하는 대공에게 ‘진귀한’ 코끼리를 보냄으로써, 사료 값도 못하는 처치 곤란의 후피 동물도 해결하고 구교의 매서운 눈초리도 피하는 묘안은, 가장 필요 없는 것이 가장 값진 것이 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4톤이 넘는 코끼리의 안전에 철저히 맞춰진 호송대가 느릿한 걸음으로 도적을 피해, 때로는 코끼리 과시를 위해 멀리 돌아가는 길은 인생의 우여곡절에 비견할 만하다. 이리 떼와 흙먼지, 폭우와 알프스의 설산은 물론이고, 코끼리를 권모술수에 끌어들이려는 성직자까지 덮치니 호송대의 험난한 여정이 마치 유머러스한 영웅서사시를 보는 듯하다. |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을 읽기 위해 책을 펴들면서는 긴 호흡을 하고 긴장을 해야 한다. 수 페이지에 걸쳐 문단을 나누지 않고, 대화와 지문을, 그리고 상황 설명과 저자의 생각을 구분하지 않는 방식 때문에 그렇다. 수십 페이지를 읽다보면 이제 익숙해지지만, 결국 어느 부분에 가서는 다시 쩔쩔매기도 한다. 《코끼리의 여행》은 리스본에서 빈까지 여행한 코끼리 이야기라는 간략한 설명 때문인지 그나마 덜 긴장한 채로 시작할 수 있다. 그래도 주제 사라마구이니 그냥 코끼리가 아닐 것이고, 그냥 여행은 아닐 테지만, 그래도 좀 낫지 않겠는가
16세기 포르투갈의 동 주앙 3세가 스페인 섭정으로 바야돌리드에 와 있는 사촌인 오스트리아의 대공 막시밀리안에게 코끼리를 선물하기로 마음먹는다. 인도로부터 어떻게 들여왔는지 모를 코끼리가 당시에는 꽤나 신기한 동물이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솔로몬, 혹은 술래이만이라 불리는 코끼리는 리스본에서 바야돌리드로, 제네바로, 알프스 산맥을 넘고, 오스트리아의 빈까지 이르는 대장정에 돌입하게 된다(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그 길에서 겪는 사건과 만나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이 소설을 이룬다.
당연히 당시 세태와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풍자다. 코끼리 솔로몬과 그 솔로몬을 보살피는 마호우트 수브흐로(혹은 프리츠)의 눈에 비친 세상은 지금의 세상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별 것 아닌 것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고, 거짓 기적으로 사람들을 기만한다. 코끼리와 수브흐로는 그런 광경들에 저항하지도 않고, 순응해가며 그 먼 길을 함께 한다.
코끼리가 주인공이자, 또 풍자라고 했지만 그다지 무겁지는 않다. 가톨릭 구교와 프로테스탄트의 갈등도 첨예하지만 격렬하게 충돌하지 않는다. 아마도 인생의 황혼기에 이른 대가가 세상에 대해 가지게 된, 좀 모가 깎여진 시각을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이 작품은 주제 사라마구의 마지막에서 두 번째 작품이다).
16세기. 세계가 하나가 되기 위해선 아직 몇 세기의 시간을 더 필요로 할 터였다. 하지만 일찌감치 지구 저 편 탐험에 나선 이들이 있었다. 그 시절에도 제국주의란 단어를 사람들이 알았을까. 새로운 흐름을 창조한 포르투갈 인들은 아마도 자신들이 선구자 격임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2010년 세상을 떠난 주제 사라마구의 2008년도 작품 <코끼리의 여행>은 우리를 16세기로 인도한다. 자신이 가진 진기한 것을 선물하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했던 모양이다. 포르투갈의 동 주앙 3세가 오스트리아 막시밀리안 대공에게 선물로 코끼리 한 마리를 준다. 제국에서 이보다 더 귀중한 것은 없음을 강조하는 편지와 함께. 4년 전 결혼 선물을 약속하게 한 것이 마음에 걸렸기에 정말 신경 써서 준비한 선물이라 하였다. 하지만 왠지 주는 측에서도 처치가 곤란하여 떠넘긴 게 아닌가란 강한 의심이 들었다. 코끼리란 무엇인가! 오늘날 코끼리는 동물원에 가야 만날 수 있는 생명체가 됐다. 이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초원이 남아 있는 대륙은 아프리카 외에 없지 싶다. 사정이 다르다 가정하여도 코끼리로부터 쓸모를 발견하기란 힘들어 보인다. 기껏해야 코로 나무 등을 감아 들어 올리는 게 할 수 있는 전부다. 이는 포르투갈 왕 부부의 대화만 엿들어도 알 수 있는 내용이다. 2년 전 인도에서 온 코끼리가 이제껏 한 것이라곤 먹고 자는 게 전부였다. 외려 물통에는 늘 물을 채워주고 먹을 것을 꾸준히 갖다 주는 등의 부양이 필수인데 이를 선물로 보아도 무방한지를 왕비는 되물었다. 하지만 결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코끼리 솔로몬은 이제 오스트리아 빈까지 육중한 몸을 이끌고 걸어가야 할 운명에 놓였다.
조련사격인 인도인 한 사람이 코끼리와 함께 긴 길을 걸었다. 넝마나 다름없는 옷차림을 한 이 인물은 왕을 못 알아볼 정도로 유럽 세계에 동화되지 못한 상태였다. 심지어 그의 이름은 발음조차 힘들었다. 수브흐로. 왕은 “무슨 이름이 그런가”라며 지독한 불만을 드러냈다. 사실 그 또한 코끼리를 다루는 데 능통하다고는 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왕이 직접 코끼리와 동행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코끼리는 많은 이들의 관심을 한 눈에 받았는데, 당시 유럽에서 볼 수 없는 동물이었기에 그랬다. 분명 사람이 아님에도 유럽인들은 이 동물을 자신들의 세계에 복속시키려는 우스꽝스러운 시도를 행했다. 이를테면 코끼리에겐 하등의 의미도 없는 권력자에게 사람으로 말하자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는 것과도 같은 행동을 취할 것을 요구했던 것이다. 심지어 이름조차 솔로몬에서 술래이만으로 바꾼다. 자신에게 일어난 그와 같은 변화를 과연 솔로몬 혹은 술래이만이 이해하긴 했을지. 억지에 가까운 요구들에 몸이 달았던 건 수브흐로(그 또한 이름을 프리츠로 바꾸게 된다)밖에 없었을 것이다.
단순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 짧은 분량의 이야기에는 사람과 코끼리의 시선 혼재에서부터 시작하여, 온갖 복잡한 기제들이 다 담겨 있었다. 무엇보다도 저자는 귀찮고 덩치가 큰, 관리의 대상에 불과했던 코끼리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격하게 변화를 주입한다. 코끼리와 일거수일투족을 함께 한 인물인 수브흐로의 경우, 솔로몬의 몸체를 타고 오르내리는 일조차도 처음엔 버거워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한시라도 빨리 수행하고 어딘가에 정착하길 꿈꿨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는 솔로몬과 떼어낼 수 없는 관계가 되고야 만다. 이 인물은 이제 새로운 수브흐로가 등장하지 않을지에 촉각이 곤두선다. 사람들은 처음에 코끼리에게 기대할 수 없는 일을 기대했고 회의적인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솔로몬은 단순한 코끼리이길 거부(?)하고 사람들의 우려 섞인 시선에 한 방 먹인다. 급기야 빈에서는 기적과도 같은 선행(!)을 행하기까지 한다.
어디에 중점을 두고 읽어야 할까. 이야기를 따르자니 그다지 굴곡이 없어 밋밋하지 싶다. 차라리 이참에 코끼리가 되어 보는 건 어떨까. 동물원에 갈 적마다 우리 안에 갇힌 것이 동물인지 우리 자신인지를 묻고 팠다. 한 마리의 코끼리가 된다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이, 아등바등 거리는 인간의 삶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한 눈에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