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 카네기 저/임상훈 역
윌리엄 셰익스피어 저/존 에버렛 밀레이 외 그림/김기찬 역
조너선 스위프트 저/이종인 역
레이첼 카슨 저/김은령 역/홍욱희 감수
조지 오웰 저/신동운 역
혜경궁 홍씨 저/신동운 역
백범일지의 정본!
『백범일지』는 1947년 국사원에서 최초로 출간된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져 왔고 지금도 꾸준히 읽히고 있는 전국민의 필독서이다. 27년간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이끌어온 민족독립운동가이자 자신의 전 생애를 조국과 민족을 위해 바친 겨레의 큰 스승 백범, 일제의 침략 아래 신음하는 우리 민족의 살길을 열고자 해방된 통일조국 건설에 혼신의 힘을 다하다가 끝내 비명에 간 백범의 생애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 주고 있는 책이 바로 『백범일지』인 것이다.
『백범일지』는 참으로 진솔하고 감동적인 기록이다. 백범의 파란만장한 생애가 그러했듯이 지고지순한 민족애와 헌신성으로 기록된 이 책은, 자신의 치적을 포장하고 허물과 과오를 덮으려는 숱한 인사들의 자서전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며 오늘날에도 빛 바래지 않는 감동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다. 이 책 『백범일지』는 백범의 친필 원본은 물론 등사본과 필사본, 여러 가지 출간본 등 여러 저본을 일일이 면밀하게 검토, 대조하여 교감한 책이다. 뿐만 아니라 사전류는 물론 고전, 규장각 자료 등의 고문서, 수많은 회고록, 일본, 중국 등 해외의 임정 관계 자료까지 두루 활용하고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로부터 자문을 받아 원본의 미흡한 점과 착오 등을 수정, 보완하였다. 수많은 판본이 나왔으나 정작 정본은 부재한 현실에서, 원본 『백범일지』의 정본화 과정에 완벽성을 기한 이 책 『백범일지』는 지금까지 나온 출간본 가운데서도 가장 모범적이고 표준이 되는 『백범일지』로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
요즘 같은 시대에 다시 한번 독립의 진정한 의미를 일깨워주네요. 심리적 식민지라 말씀하셨던 스님의 말씀이 이젠, 심리적이 아닌 제2의 경술국치를 맞아 진짜 또다시 두번째 식민지가 된 현실입니다. 한사람이 나라를 구할수도, 나리를 또다시 매국하는..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한번은 꼭 읽어야 하는 필독서라고 생각합니다. 홍범도 장군의 삶이 이념에 의해 왜곡되고 폄훼되고 있는 상황이라 더욱더 김구선생님의 개인적인 삶부터 나의 평생 소원은 독립, 죽어서도 독립을 부르짖던, 절규가 가슴 한켠에 남아 다시 대한민국의 진정한 독립을 쟁취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잘 읽었습니다
푹푹 찐다고 투정 부리던 날에도 거리집회가 있었다. 아스팔트 불판 위에서 시민들은 행동하고 있었다. 한국 정치에 관심이 생길수록 역사에 무지몽매한 내 자신이 부끄럽다. 백년사를 알아보는 일에 게으름을 피우니 말이다.
어쨌든 귀동냥으로라도 김구를 접해 다행이다. 동네도서관에 ‘백범일지’를 검색하니 대출중이다. 기쁘다. 이렇게 깨어 반응하는 시민들이 자랑스럽다. 8.15를 앞둔 도서 선정이라 한다. 자주독립自主獨立을 곱씹는 ‘비현실적인’ 2023년이다. 모 방송에서 바이든, 기시다, 윤석열이 걸어가는 모습을 인류 진화 도표와 엮었는데 웃펐다. 대통령이 자유를 부르짖던 것으로도 모자라 나라를 자기 것처럼 막 취급한다. 아마 저런 정신상태면 양평 땅덩어리쯤은 아무것도 아닐 거다. 국민의 의사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어떤 해명도 사과도 하지 않는다. 쌩까고 무시한다.
유시민 작가의 소개대로 강유정 교수는 대중문화 해설가 이전에 문학비평가로 활동했었다. 영알못은 ‘백범일지’의 내용이 “스핀오프”(재창조물)로서 ‘암살’ ‘밀정’ 등의 영화에 재해석되었음을 배운다. ‘백범일지’는 세 개의 다른 독자층을 대상으로 전개된다. 먼저 두 아들에게 쓴 자서전 형식이다. 하권에 속하는 임시정부 시절은 기록 문학 텍스트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 민족’에게 하고 싶은 소원이 담긴다.
극한 체험기이자 수기 작가로는 프리모 레비와 빅터 프랭클이 유명하다. 백범일지는 해군 출신 위인답게 날씨로 시작하는 ‘감정 해우소’의 성격을 띤 ‘난중일기’와 다르다. 행동 위주로 묘사하고 감정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이 책은 명예로운 이름과 목숨 값을 떠올리게 해, 사람은 죽어 기억으로 남는다는 데 동조하게 된다.
김구 선생은 촌사람. ‘위대한 개츠비’ 식으로 표현하자면 노웨어 출신의 노바디다. 그런 그는 결핍을 개화한 교육운동과 사업으로 승화했다. 왜놈 척살의 치하포 사건은 위인전에 넣어야 할지 논쟁의 소지가 있으나 실화 바탕의 영웅 서사에서 빠지면 섭섭한 주요 이벤트이다. 그리고 김구 선생은 자기 역사를 수정하지(손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일관된 자신감을 보였다 한다.
현실이 영화를 넘어서는 사태 속에, 항거를 다룬 영화들 ‘사일런스’ ‘브레이트 하트’ 등이 언급된다. 강 교수는 김구 선생(의 시대)을 다룬 영화들이 영화적 상상력을 발휘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의 인간 감별법이 대사를 타고 흐른다고 분석한다. 현장을 선두 지휘한 생생한 입말들.
유 작가는 김구 선생이 캐릭터로서 사랑받는 이유를 김영하의 관점을 삼각대 삼아 전한다. 그들은 많은 시련을 겪는다. 한번이라도 능력을 발휘할 기회로 삼고 행동력을 보인다. 그리고 뚜렷한 목적의식을 지닌다. 물려받은 이름을 거부하고 개명한 이력을 짚는다. 김창암, 김창수, 김구, 백범 김구(앞과 한자 다름). 좋든 나쁘든 개명은 목표결의 다지기란다. 김구 선생은 책상받이ㅋ가 아닌 오피니언 리더이자 액티비스트로서 나라를 빼앗길 수 없다는 자각에서 만세 운동과 독립정부 수립에 나섰다.
여담이지만 이번 주는 이잼의 휴가vacation였다. 그의 공석vacant이 알려주는 메시지들이 참 많았다. 강 교수는 대체 ‘왜?’라는 의문에서 ‘백범일지’가 중심을 잃고 붕 뜬 상태를 잡아주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나는 요새 언론 배설이 악몽에나 나올 방치된 공중화장실처럼 견디기 힘들다. 윤희근이 나와 “경고 없이 사격”이라 하는데 소름끼쳤다. 앞에 흉기난동, 이라는 전제가 붙었지만 경 고 없 이 사.격.이 귓가를 때렸다. 대통령 취임식에 이어 장갑차가 등장하고.... 흉악범죄 소식이 뉴스로만 들리지 않아 괴롭다. 국민의 불안과 공포마저 물타기에 쓴다는 의심이 드니 휴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제일 중요하다. 그런데 잼버리 행사에 촬영 나들이 차 들렀던 대통령은 문제 발생에는 말이 없다. 이태원과 오송 참사에 이어 책임자가 없다. 흉흉한 악성루머와 땀 흘려 일하는 사람만 꼬리자르기로 짤린다. 다시 이잼의 빈자리가 알려주는 것으로 돌아가.. 장성철의 카더라 입에 대한 강력 조치는 없는 건가? 이 와중에 박 원내대표의 백일 입장 발표는 또 뭔가? 그의 엄중한 기도 시간이 낭비로 느껴진다. 대한노인회 회장의 종이 위원장 공개 가격은 충격이었다. 노련한 말 맺힌 참여자들과 달리 눈치볼 청년들을 위해 한 말이
나는 이잼의 민주당에 결과적으로 보탬이 되면 된다는 쪽이다. 내가 봐온 이잼은 멀리에 대해 말하는 분이 아니다. 두 번의 대선 실패가 그를 그리 이끌었으리라. 그는 현장의 부름과 쓰임에 응답할 뿐이다. 지금은 총선이, 아니 민생이 가장 눈앞의 일이니까 그에 대해서만 입장을 밝히고 움직일 거다. 재고 숨기는 게 아니라 지금 할일에 열일하는 것이 그가 책임지고 행동하는 방식이다. 같이 가달라 할 때 가주는, 가주면 되는 사이
민중운동 얘기를 듣다가 어쩌면 나 역시 386 운동권을 한쪽에서만 단편적으로 본 건 아닌지 반성했다. 그들이 기득권으로 안착한 것이 없는 사실은 아니지만 전부는 아닐 것이다. 악의적 프레임대로 반감을 가지고 보긴 쉽다. 바로 아는 애씀이 내게 부족했던 것 같다.
유 작가의 말대로 ‘백범일지’를 읽는 것이 투사의 무용담으로 반일감정을 키우자는 취지가 아니다. 한 인간의 삶을 결정한 주요 가치와 미덕을 따라가보니 그곳에 ‘공동체의 자주’권이 위치한다에 방점을 찍을 뿐이다.
나는 본부장을 대표하는 자유가 아닌 투명하고 소통하는 민주국가의 국정 운영을 바란다. 국민이 존엄하게 대우받고 알 권리와 자존(립)이 충족됨을 느끼는 사회에 살고 싶다. 우리는 어느 나라의 “지부나 하급자”가 아니다. 대체 왜 를 복잡하게 따져 묻지 않아도 선거자금(줄)과 주요 세력(:카르텔)의 정체를 알게 된다. 졸속 자기인증이 범람한 까닭에. 유 작가의 제안대로 이해하면 덜 불편할지 모르겠으 요
~ 여름산타가 되어 주세요, 대의원제 축소 말고 폐지 ~
내 기억이 맞다면, 이 백범일지 마지막 장에 실린 “나의 소원”은 고등학교 때던가 국어교과서에 실려있었다. 그 얘기인 즉슨 한국사람이라면 이 <백범일지>라는 책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란 의미다. 하지만 ‘누구나 아는 책’의 맹점은 누구나 아는데 누구도 읽어보지는 않은 책이라던가. 정작 읽어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적어도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30여년 만에야 이 책을 읽었다.
“일지”란 날마다 일어난 일을 기록한 글일텐데,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엄밀히 말하면 일지는 아니다. 상하권으로 나뉘어 50세 무렵, 그리고 70세 무렵에 각각 조금은 다름 목적을 가지고 기록한 글이다. 상권은 늦게 얻은 두 아들에게 아비의 살아온 길을 전해주기 위한 것이요, 하권은 임시정부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낸 한사람으로서 역사를 기록하듯 한 심정으로 남긴 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엔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놀랐고, 그리곤 그 정도의 분량에도 불구하고 술술 잘 읽힌다는 점에 놀라게 된다. 또한 이 책에 갖게 되는 선입견과는 달리, 분명 그런 의도를 쓴게 아닌 진지하게 쓴 것이 분명하지만 웃음을 참을 수 없는 대목도 있다.
나는 두문불출하고 석 달 동안이나 내 상을 관상학에 따라 면밀하게 관찰하였다. 그러나 어느 한 군데도 귀격(貴格)·부격(富格)의 좋은 상은 없고, 얼굴과 온몸에 천격(賤格)·빈격(貧格)·흉격(凶格)밖에 없다. 과거장에서 얻은 비관에서 벗어나기 위해 관상서를 공부했는데 오히려 과거장 이상의 비관에 빠져버렸다. 짐승과 같이 살기 위해 산다면 모르지만 인간으로서 세상 살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책 중간중간에 실린 백범의 사진을 볼 때 마다 이 글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있을까.
또한 당시 상황에서는 전혀 어색하지 않지만, 머리를 깍고 불교에 귀의하였다가 얼마되지 않아 절을 나와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열심히 전도와 선교에 몰두하기도 하는 모습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그런 배경이 있기에,
나는 공자·석가·예수의 도를 배웠고 그들을 성인으로 숭배하거니와, 그들이 합하여서 세운 천당·극락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 민족이 세운 나라가 아닐진대, 우리 민족을 그 나라로 끌고 들어가지 아니할 것이다.
라는 말도 설득력있게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최근에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보았는데, 근현대사를 공부하기가 흥미로우면서도 까다로운 이유는 이름도 비슷비슷한 수많은 독립운동 단체, 독립군들이 비슷한 시기에 여기저기서 활동하기에 시험 목적으로는 그걸 일일이 기억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큰별 최태성 선생님이 하신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그 시기를 공부할 때 별로 공부할 게 없다면 얼마나 슬픈일이겠는가, 그 시기에 우리 민족이 별 활동을 하지 않았다는 의미니까. 이렇게 일일이 기억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은 단체와 인물들이 국내 뿐 아니라 만주에서 간도에서 관내에서 미국에서 일본에서 활동하였다는 것은 그 만큼 우리 민족이 끊임없이 저항하였다는 의미일테니 불평하지 말고 감사한 마음으로 공부하자는 말씀이었다. 그렇게 힘들게 공부했던 민족 독립을 위한 노력이 바로 이 <백범일지>에, 그것도 그 많은 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백범 김구 선생의 글로 생생하게 기록되어있다.
축주석은 놀라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중경에서 무슨 소식이 있는 듯하다”며 전화실로 급히 들어가더니, 뒤이어 나오며
“왜적이 항복한답니다.” 고 하였다.
이 소식은 내게 희소식이라기보다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이었다.
수년 동안 애를 써서 참전을 준비한 것도 모두 허사로 돌아가고 말았다.
“나의 소원”에서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독립이 나의 소원이라 말하던 백범에게 왜적이 항복하였다는 소식보다 더 기쁜 소식이 또 있었을까. 하지만, 그의 반응은 위와 같았다. 중국의 도움을 받아 한국광복군을 창설하고 미군과 연합하여 국내로 일본을 공격하기 위한 계획을 하던 중이었다. 만약 계획대로 국내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한국광복군이 공격해 들어와 일본과 일전을 벌인 이후라면 당당히 우리 힘으로 우리 나라를 되찾는데 일조를 했노라고 이후 주도권을 잡을 수도 있었을 것이나, 그럴 기회를 갖지 못하고 일본이 항복을 하게 되면서 백범은 미 군정으로부터 미국이 이미 정부 (미군정)를 수립했으니 또 다른 정부를 인정할 수 없고 따라서 백범 일행은 임시정부 자격이 아닌 개인자격으로만 돌아올 수 있다는 통보를 받게 되고 이후 완전히 주도권을 뺏기며 남북이 분단되는 비극의 시작이 되어버렸다. 위 백범의 반응은 그러한 상황을 예견한 것이다.
역사에 관심을 갖고 보면, 회사 주변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할 장소가 많다. 김구를 비롯한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고초를 겪은 서대문형무소도 멀지 않고, 백범이 안두희에게 암살을 당한 경교장도 신문로 강북삼성병원 관내에 있다. 또한 백범이 귀국하여 국민들이 환영회를 개최한 곳은 바로 덕수궁 뜰이었다.
격동의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살아낸 백범의 삶을 이 <백범일지>라는 책 한권으로 살펴 본 뒤, 책을 마치는 그의 아래와 같은 한마디는 가슴을 때린다.
우리 민족이 주연배우로 세계의 무대에 등장할 날이 눈앞에 보이지 아니하는가.
그 당시에는 우리나라가 지금과 같이 GDP기준 세게 11위의 경제대국이요, K-POP으로 대표되는 한국 문화가 전세계에 퍼져나가는 상황을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을텐데, 백범은 우리 민족에게서 그런 가능성을 보았다. 올해 들어서는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 스스로를 과소평가하지 말자. 물론 어려움이 많고 답답함도 많고 한심해보이는 부분도 많다. 하지만, 2020년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백범과 같은 비전을 가졌으면 한다.
(돌베게 버전 e-book으로 읽었는데,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도진순님이 너무 친절하고 상세하게 각 장마다 주석으로 달아 놓았는데, e-book이라면 주석 번호를 누르면 바로 주석으로 연결되는 하이퍼링크는 기본아닌가. 종이책 대비 e-book의 장점 중의 하나가 그런건데 이 책은 왜인지 모르겠으나 하이퍼링크가 작동하지 않는다. 게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왠 오타가 그렇게 많은지. 이런 책을 돈 받고 팔 수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정도의 졸작이다. <백범일지>정도의 책을 내는 <돌베게>정도의 출판사 책을 <Yes24>정도의 온라인 서점에서 돈을 받고 팔면서 이렇게 오타가 많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책속으로]
무릇 한 나라가 서서 한 민족이 국민생활을 하려면 반드시 기초가 되는 철학이 있어야 하는 것이니, 이것이 없으면 국민의 사상이 통일되지 못하여 더러는 이 나라의 철학에 쏠리고 더러는 저 민족의 철학에 끌리어, 사상과 정신의 독립을 유지하지 못하고 남을 의뢰하고 저희끼리는 추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현상을 보면 더러는 로크의 철학을 믿으니 이는 워싱턴을 서울로 옮기는 자들이요, 또 더러는 맑스?레닌?스탈린의 철학을 믿으니 이들은 모스크바를 우리의 서울로 삼자는 사람들이다. 워싱턴도 모스크바도 우리의 서울은 될 수 없는 것이요 또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니, 만일 그것을 주장하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예전 동경을 우리 서울로 하자는 자와 다름이 없을 것이다.
우리의 서울은 오직 우리의 서울이라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철학을 찾고, 세우고, 주장해야 한다. 이것을 깨닫는 날이 우리 동포가 진실로 독립정신을 가지는 날이요, 참으로 독립하는 날이다.
무릇 난 자는 다 죽는 것이니 할 수 없는 일이거니와, 개인이 나고 죽는 중에도 민족의 생명은 늘 있고 늘 젊은 것이다.
나는 내가 못난 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못났더라도 국민의 하나, 민족의 하나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쉬지 않고 해온 것이다. 이것이 내 생애요, 내 생애의 기록이 이 책이다.
나는 두문불출하고 석 달 동안이나 내 상을 관상학에 따라 면밀하게 관찰하였다. 그러나 어느 한 군데도 귀격(貴格)·부격(富格)의 좋은 상은 없고, 얼굴과 온몸에 천격(賤格)·빈격(貧格)·흉격(凶格)밖에 없다. 과거장에서 얻은 비관에서 벗어나기 위해 관상서를 공부했는데 오히려 과거장 이상의 비관에 빠져버렸다. 짐승과 같이 살기 위해 산다면 모르지만 인간으로서 세상 살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그런데 『상서』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상 좋은 것이 몸 좋은 것만 못하고 (相好不如身好)
몸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다. (身好不如心好)
이것을 보고 나는 상 좋은 사람[好相人]보다 마음 좋은 사람[好心人]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하였다."
먼저 과거장에서 비관적인 생각을 품었다가 희망을 관상서 공부로 옮겼고, 나 자신의 관상이 너무도 못생긴 것을 슬퍼하다가 마음 좋은 사람이 되리라는 결심을 했었다. 그러나 마음 좋은 사람이 되는 방법 또한 묘연하던 차에 동학당의 수양을 받아 신국가·신국민을 꿈꾸었으나, 이제 와서 보면 그도 역시 바람 잡듯 헛된 일이었다. 이제 패전한 장수의 신세가 되어 안진사의 후의를 입어 생명만은 안전하게 지키게 되었지만, 장래를 생각하면 과연 어떤 곳에다 발을 디뎌야 나아갈 길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하고 스스로 의심을 느끼던 참이었다.
“사람이 자기를 알기도 쉽지 않거든 하물며 남을 어찌 밝히 알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성현을 목표로 하여 발자취를 밟아가도록 하게. 예로부터 성현의 지위까지 도달한 자도 있고, 좀 모자라는 자도 있고, 성현이 되는 길이 너무 높고 멀다 하여 중도에 달아나거나 자포자기하여 금수만도 못한 자리에 몰려 있는 자도 있다네. 자네가 마음 좋은 사람이 되려는 생각을 가졌다면 몇 번 길을 잘못 들어서서 실패나 곤란을 경험하였더라도, 그 마음 변치 말고 끊임없이 고치고 나아가게. 목적지에 도달하는 날이 반드시 있을 것이네. 지금은 마음에 고통을 가지는 것보다 행하기에 힘써야 할 것이 아닌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요 고민은 즐거움의 뿌리이니, 자네, 상심 말게. 나 같은 늙은이가 자네 앞길에 혹시 보탬이 된다면 그 또한 영광이 아닌가?”
선생은 주로 의리(義理)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말씀하셨다. 아무리 발군의 뛰어난 재주와 능력 있는 자라도 의리에서 벗어나면 재능이 도리어 화근이 된다는 것과, 사람의 처세는 마땅히 의리에 근본을 두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일을 할 때에는 판단·실행·계속의 세 단계로 사업을 성취해야 한다는 것 등, 여러 가지 좋은 말씀[金言]을 들려주셨다.
가지 잡고 나무를 오르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지만, (得樹攀枝無足奇)
벼랑에 매달려 잡은 손을 놓는 것이 가히 장부라 할 수 있다.(懸崖撒手丈夫兒)
아무리 급박하여도 국가흥망에 대한 절실한 각오가 적은 민중과 더불어서는 무슨 일이나 실효 있게 할 수가 없다. 바꿔 말하면 아직 민중의 애국사상이 박약한 것이다.
오직 듣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농민들 중에는 합병이 무엇인지, 망국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는 자도 많았다.
그러고 보니 국가는 망하였으나 인민은 망하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나는 평소 우리 한인의 정탐을 몹시 미워해서 여지없이 공격하곤 했는데, 나에게 공격을 받은 정탐배까지도, 자기가 잘 아는 그 사실만은 밀고를 하지 않고 왜놈에 대하여 비밀을 지켜준 것이 아닌가.
하나하나 일마다 양심을 본위로 삼아서, 삿된 마음[邪心]이 생길 때마다 먼저 자기를 자책하지 않고는 감히 다른 사람의 그릇됨을 탓하지 못하는 것이 거의 습관이 되었다. 그런 까닭으로 학생들과 친우들 간에 충실하다는 신망을 받고 지냈고, 매사에 자기로부터 실천하여 남에 미치는 것이 습관이 되었건만,76) 어찌하여 불과 반년 만에 심리에 큰 변동이 생겨났는가를 연구해 보았다.
“네가 항상 암송하는 고인의 시 가운데,
남이 해준 음식을 먹고 남이 만들어 준 옷을 입거늘 (食人之食衣人衣)
품은 뜻은 평생 어기지 말아야 한다. (所志平生莫有違)
는 귀절을 망각하였느냐? 네가”
복역중에 뜰을 쓸 때나 유리창을 닦고 할 때는 하느님께 이렇게 기도하였다. ‘우리도 어느 때 독립정부를 건설하거든, 나는 그 집의 뜰도 쓸고, 창호(窓戶)도 닦는 일을 해보고 죽게 해 달라’고.
그리하여 결심의 표시로 이름을 ‘구’(九)라 하고, 호를 ‘백범’(白凡)이라 고쳐서 동지들에게 언포하였다. 구(龜)를 구(九)로 고친 것은 왜의 민적(民籍)113)에서 벗어나고자 함이요, 연하(蓮下)를 백범으로 고친 것은 감옥에서 여러 해 연구에 의해 우리나라 하등사회, 곧 백정(白丁) 범부(凡夫)들이라도 애국심이 현재의 나 정도는 되어야 완전한 독립국민이 되겠다는 바람 때문이었다.
자식들에게 대하여도 아비된 의무를 조금도 못하였으므로 내가 아비라 하여 자식되니 의무를 하여 주기도 원치 않는다. 너희들은 사회의 은택을 입어서 먹고 입고 배우는 터이니, 사회의 아들이라는 심정으로 사회를 부모처럼 효로 섬기면 내 소망은 이에서 더 만족이 없을 것이다.
나의 신조는 “일을 맡기면 의심하지 않고, 의심하면 일을 맡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 나이가 31세입니다. 앞으로 다시 31년을 더 산다 해도 과거 반생에서 맛본 방랑생활에 비한다면 늙은 생활에 무슨 취미가 있겠습니까?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31년 동안 인생의 쾌락은 대강 맛보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제는 영원한 쾌락을 얻기 위하여 우리 독립사업에 헌신하고자 상해에 왔습니다.”
그리고 사진관으로 가서 기념사진을 찍을 때, 내 얼굴에 자연 처연한 기색이 있었던지, 이씨가 오히려 나를 위로한다.
“저는 영원한 쾌락을 향유코자 이 길을 떠나는 터이니, 우리 두 사람이 기쁜 얼굴로 사진을 찍으십시다.”
이에 나 역시 억지로 미소 띤 얼굴을 하고 사진을 찍었다.
차에 올라 앉은 이봉창은 머리 숙여 마지막 경례를 하였고, 무정한 차는 한 번 경적소리를 내고 홍구 방면으로 질주하였다.
나무판자 틈으로 붉은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목격하고 가슴 가득한 열성으로 경의를 표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비오듯 흘러내렸다. 우리도 어느 때 저와 같이 왜와 혈전을 벌여, 본국 강산을 충성스런 피로 물들일 날이 있을까? 눈물이 쉴새없이 흘러내려, 길 가는 사람들이 수상하게 여길까 봐 그 자리를 물러났다.
“고능선 선생이 가르쳐 주신 ‘득수반지무족기(得樹攀枝無足奇) 현애살수장부아(懸崖撒手丈夫兒)’란 구절을 떠올리니 마음이 가라앉았소. 군과 내가 거사하는 심정은 서로 같은 것 아니겠소?”
그러는 사이 자동차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나는 목메인 소리로 마지막 작별의 말을 건네었다.
“후일 지하에서 만납시다.”
윤군이 차창으로 나를 향하여 머리를 숙이자, 자동차는 엔진소리를 높이 울리며 천하영웅 윤봉길을 싣고 홍구공원으로 질주하였다.
우리 민족의 비운은 사대사상의 산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실질적인 국리민복을 도외시하고, 주희(朱憙)학설 같은 것은 원래 주희 이상으로 강고한 이론을 주창하여 사색 당파가 생겨 수백년 동안 다투기만 하다 민족적 원기는 다 소진하고, 발달된 것은 오직 의뢰성뿐이니, 망하지 않고 어찌하리오.
정주(程朱)의 방귀를 ‘향기롭다’고 하던 자들을 비웃던 그 입과 혀로 레닌의 방귀는 ‘달다’ 하니, 청년들이여, 정신을 좀 차릴지어다. 나는 결코 정주학설의 신봉자가 아니고 마르크스〔馬克思〕와 레닌주의 배척자도 아니다. 우리나라의 특성과 백성들의 수준에 맞는 주의와 제도를 연구·실시하려고 머리를 쓰는 자 있는가? 없다면 이보다 더 슬픈 일이 어디 있으랴.
세월이 흐르는 물과 같아서 내 나이 오십여라. 과거를 회상하고 장래를 추상하니 신세 가련하다.
9년 만에 모자 상봉하는 첫 말씀,
“나는 지금부터 시작하여 ‘너’라는 말을 고쳐 ‘자네’라 하고, 잘못하는 일이라도 말로 꾸짖고 회초리를 쓰지 않겠네. 듣건대 자네가 군관학교를 하면서 다수 청년을 거느리고 남의 사표(師表)가 된 모양이니, 나도 체면을 세워주자는 것일세.”
이로 인해 나는 나이 육십에 어머님이 주시는 큰 은전을 입었다.
축주석은 놀라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중경에서 무슨 소식이 있는 듯하다”며 전화실로 급히 들어가더니, 뒤이어 나오며
“왜적이 항복한답니다.”
고 하였다.
이 소식은 내게 희소식이라기보다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이었다. 수년 동안 애를 써서 참전을 준비한 것도 모두 허사로 돌아가고 말았다.
입국하려 할 때에 미국 측은 미국 군정부가 서울에 있으니 임정은 개인 자격으로 들어오라고 통보하였다.22) 그리하여 입국 문제로 의논이 분분하였으나, 결국은 개인 자격으로 입국하기로 결정되었다.
물러나 속세의 일을 돌아보니 (却來觀世間)
마치 꿈속의 일만 같다. (猶如夢中事)
라고 되어 있다. 지나온 일들을 생각하니 이 글귀는 과연 나를 두고 말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독립이 없는 백성으로 70 평생에 설움과 부끄러움과 애탐을 받은 나에게는 세상에 가장 좋은 것이 완전하게 자주독립한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보다가 죽는 일이다. 나는 일찍이 우리 독립 정부의 문지기가 되기를 원했거니와, 그것은 우리나라가 독립국만 되면 나는 그 나라에 가장 미천한 자가 되어도 좋다는 뜻이다. 왜 그런고 하면, 독립한 제 나라의 빈천이 남의 밑에 사는 부귀보다 기쁘고, 영광스럽고, 희망이 많기 때문이다.
나는 공자·석가·예수의 도를 배웠고 그들을 성인으로 숭배하거니와, 그들이 합하여서 세운 천당·극락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 민족이 세운 나라가 아닐진대, 우리 민족을 그 나라로 끌고 들어가지 아니할 것이다.
오늘날 소위 좌우익이란 것도 결국 영원한 혈통의 바다에 일어나는 일시적인 풍파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된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으로서 하여야 할 최고의 임무는, 첫째로 남의 절제도 아니 받고 남에게 의뢰도 아니하는 완전한 자주독립의 나라를 세우는 일이다.
이렇게 완전 자주독립의 나라를 세운 뒤에는, 둘째로 이 지구상의 인류가 진정한 평화와 복락을 누릴 수 있는 사상을 낳아 그것을 먼저 우리나라에 실현하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지나간 역사가 빛나지 아니함이 아니나 그것은 아직 서곡이었다. 우리가 주연배우로 세계 역사의 무대에 나서는 것은 오늘 이후다. 삼천만의 우리 민족이 옛날의 그리스 민족이나 로마 민족이 한 일을 못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젊은 사람들이 모두 이 정신을 가지고 이 방향으로 힘을 쓸진대 30년이 못하여 우리 민족은 괄목상대(刮目相對)5)하게 될 것을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나의 정치 이념은 한마디로 표시하면 자유다. 우리가 세우는 나라는 자유의 나라라야 한다.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仁義)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이 마음만 발달이 되면 현재의 물질력으로 20억이 다 편안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우리 민족이 주연배우로 세계의 무대에 등장할 날이 눈앞에 보이지 아니하는가.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김국선생의 백범일지입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힘쓰다 돌아가신 백범 김구 선생의 일지 입니다. 독립운동을 했단 정도만 알고 있지 실제로 책을 읽고 많은 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문학은 그 사회를 표현한다는 말처럼 살아있는 그 시대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단순히 단어 몇개로 표현되던 그 시대를 작가의 눈으로 들여도 볼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