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노 저
임솔아 저
애나 렘키 저/김두완 역
천선란 저
김호연 저
백온유 저
2020년 09월 29일
팬데믹을 경험하면서 분명히 알게 된 것은, 다른 사람들이 건강해야 내가 건강하고 내가 건강해야 다른 사람들도 건강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같은 공간에서 식사를 하거나 대화를 나누거나 숨을 쉰 것만으로도 전염이 되고 확진 판정이 나고 격리가 되는 사람들을 보면서(혹은 그러한 일의 당사자가 되면서), 나는 마스크를 하지 않아도 손을 씻지 않아도 백신 주사를 맞지 않아도 괜찮을 거라고 믿는 사람은 대단히 이기적이거나 무지하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율라 비스의 산문집 <면역에 관하여>는 팬데믹 이전에 출간된 책이지만 팬데믹 이후에 더 큰 주목을 받았다. 저자는 자신의 건강 문제 때문에 오래 전부터 의학 이슈에 관심이 많았지만,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면서 보다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특히 출산 후 아기들이 의무적으로 접종해야 하는 각종 백신에 대해 알아보고 그러한 백신에 대한 다른 양육자들의 의견을 접하면서, 저자는 백신의 원리를 비롯해 백신을 둘러싼 찬반 양론과 그 역사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하기 시작했다.
백신의 역사는 사실 '백신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국의 의사 에드워드 제너가 종두법을 발견하기 훨씬 이전에 시작되었다. 책에 따르면 중국과 인도, 아프리카 등지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종두법과 유사한 민간 요법이 시행되고 있었다. 이렇듯 백신은 유서가 깊을 뿐 아니라 효과가 입증되었는데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백신의 효과를 믿지 않고, 백신 접종을 하느니 차라리 진짜로 병에 걸리는 편을 택하겠다고 우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그 이유를 아킬레우스 신화를 비롯한 전설과 <드라큘라>를 비롯한 문학 작품 속에서 찾는다.
저자에 따르면 결국 백신을 비롯한 공중 보건 문제는 힘, 권력의 문제다. 어느 나라 또는 문화권이나 여성, 빈민, 장애인, 외국인, 이민자, 성소수자들을 차별하는 근거로 '더럽고' '냄새나고' '병을 옮긴다'는 식의 수사를 사용한다. 이러한 수사를 사용할 수 없게 만드는 의학 또는 과학적 시도에 대한 탄압 역시 오래 되었다. 불과 몇 세기 전까지 유럽에서 병을 치료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마법사, 마녀로 매도하여 처벌했다. 백신에 대한 불신 역시 백신의 효과 자체에 대한 불신이라기 보다는 백신으로 얻게 되는 집단 면역, 사회 안정에 대한 불신이다.
팬데믹 이후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일어난 백신을 둘러싼 논쟁을 보면서, 나는 백신 비접종자들이 백신 접종자들에 의해 형성된 집단 면역의 수혜를 입는 것이 참 모순적이면서도 현실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기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 의해 (원치 않은) 이로운 결과를 얻는 것는 것은 백신뿐만이 아니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사람과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에서 비롯될까. 본능일까 환경일까.
왜 이책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코로나 때문이겠지.
개인적으로는 백신에 관해 크게 생각해본적이 없다. 아마도 국민학교 시절을 보냈던 사람으로 우리는 학교에서 학년이나 시기별로 백신을 일괄접종 했던 세대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맞으라면 맞았고, 우리 부모님도 크게 의견을 내시는것 없이 학교에서 맞으라면 맞아야지 하셨던 것 같다.
그런데 코로나 시국이 되며 백신에 대해 말들이 많아졌다. 부.작.용.
백신을 맞기 전과 후가 분명하니, 추론가능한 것은 백신밖에 없는 일반인으로써는 의심이 들수밖에. 거기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부작용 기사로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맞아야대 말아야대 했지만, 결국은 나와 내 가족을 위해서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백신.
이 책은 백신으로 인한 면역에 관한 저자의 에세이이다. 면역에 대한 생리학적 반응 신체적 효과 뭐 이런걸 말한다기 보다 저자가 백신에 관해 했던 생각에 대한 정리이다.
소위 서방세계에서 백신에 대한 불신이나 불안감은 생각보다 높고, 오래 되었다는 점이 놀라웠다. 어떤 약이든 부작용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왜 이렇게 높은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쯔음 작가는 과거를 통해 하나의 원인을 말해준다. 14세기 유럽 인구의 절반이나 사망으로 몰고 갔던 흑사병 시기, 그 원인을 유대인으로 돌리면서, 당시 유대인을 산채로 태워 죽여싸고 한다. 질병을 그 자체로 보아왔던 것이 아니라, 타자화 함으로써 타자로 정의된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 자신이 취약하다고 느낄 수록 편협해지는 마음을 그 한 예로 들고 있다. 과학이 발전한 지금도 코로나 시작을 두고 여전히 특정 지역에 대한 혐오를 들어내는 모습을 보며, 과학이 이토록 발전했음에도 인간의 심리는 변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백신 그 자체를 놓고 보면, 건강에 관한것이고 나와 나의 가족의 생명과 관계된 일인만큼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어디까지 의심을 넘어서 편향으로 가는것인지, 아니면 의심을 통한 바른 결론이 내려지는 것인지에 대한 중심은 참 어렵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책속의 글을 보면서 백신은 '나'와 '나의 가족'에 한정된 문제로만 보기에는 우리는 너무나 많이 얽혀있다.
"여동생은 이렇게 제안했다. <서로 의존하는 관계라고 생각해 봐. 우리 몸은 자기 혼자만의 소유가 아니야. 우리는 그렇지 않아. 우리 몸들은 서로 독립적이지 않지. 우리 몸의 건강은 늘 남들이 내리는 선택에 의존하고 있어> 이 대목에서 동생은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서 잠시 머뭇거렸는데, 그녀에게는 드문일이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요컨대 독립성이란 환상이 존재한단거야.>" p.188
백신이나 면역과 별개로 개인적으로 이책을 통해 새로 알게된 사실이 있다.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에 관한 부분이다. 세상을 바꾼 위대한 책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이 책으로 인해, 아프리카의 말라리아가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DDT가 금지되면서 그를 대체하는 모기 퇴치제를 사용할 수 없는 아프리카에서 말라리아로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다니.. 물론 DDT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다. 미국이나 다른 국가처럼 대단위로 쓰는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에서 일년에 한차례 집 안쪽 벽면에 한번정도 칠하는 것만으로도 말라리아가 거의 근절된다고 하니, 다른 서방국에서 사용하는 것보다는 환경에 충격을 거의 주지 않는 방법이라는 점이 정말 생각치도 못한 부분이였다. 다만 DDT를 생산하는 곳이 없기에 구할 수가 없어 아이들이 모기로 인해 죽어간다고 한다. 이런...
로젠버그는 <말라리아를 겪는 가난한 나라들에게 벌어진 가장 나쁜 일은 부자 나라들에서는 그 질병이 근절되었다는 점일지 모른다>고 말했다. p.72
개인의 선택이지만 모두의 선택이기도 한 백신 그리고 면역에 대해 저자의 생각을 따라가며, 나도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였다. 여전히 갈팡질팡이긴 하지만.
Good!
코로나가 극성이다. 고위험자인 노인들이나 의료종사자들이 제일 먼저 코로나 백신 접종 대상자로 지정되어 일반인인 나는 접종이 시작된 지 한참 후인 5월에서야 1차 AZ 백신을 맞을 수 있었다. 잔여 백신을 여기저기 다 알아본 끝에 회사 근처의 허름한 동네 병원에서 접종을 받았다. 백신 부작용 관련 여러 소리가 있었지만, 뉴스를 고르게 들어 정보를 편식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국내 일부 언론이 자가발전하는 '화살촉'같은 선동에 귀 기울이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결국에는 성인의 90% 이상이 접종을 받았으니까.
팬데믹 초기에는 70~80% 정도 접종이 완료되면, 집단면역이 될 것처럼 소위 전문가 그룹들도 섣부르게 예측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짧은 개발 기간 탓인지 모르겠지만, 백신이 그리 완벽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3차 접종을 끝낸 사람들에게도 돌파감염이 간간이 발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신은 효력이 있고 감염률을 낮춰줄 뿐만 아니라 중증으로 병이 악화되는 것도 거의 다 막아준다. 백신을 개발하고 먼저 접종을 시작한 서구 여러 나라들의 데이터가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그럼 우리나라에서 현재 일부에서 들끓고 있는 백신 거부와 백신 패스 반대에 대해서는 어떻게 봐야 할까? 현 정부가 잘 되는 꼴을 죽어도 못 보겠는 언론의 선동과 꼬임에 넘어간 일부 학부형들의 무지에서 비롯된 오판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이 책 <면역에 관하여>는 코로나 팬데믹 훨씬 이전인 2016년에 번역되었는데, 옮긴이인 김명남은 이미 이렇게 적고 있다. "백신의 유효성과 전반적 안전성은 의학계에서 논쟁하고 말고 할 것도 없는 사실로 받아들여짐에도 불구하고, 예방 접종은 뜻밖에도 현재 가장 뜨거운 공중 보건 문제가 된 것이다."
언제, 어느 때고 백신에 대해 의심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있다. 자연적인 것이 바람직하고, 인위적인 것은 나쁘다는 '자연주의적 오류'에 빠지는 사람들도 일부 있을 거다.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결과에 대해 느끼는 불안이 훨씬 더 크게 다가오기 때문일 수도 있다. 백신의 부작용은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공포지만, 코로나 감염은 자신이 방역수칙을 잘 지키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는 것이다. 교통사고로 사망할 확률이 훨씬 높지만, 실제 사람들이 느끼는 두려움은 비행기를 탈 때가 훨씬 큰 것처럼.
저자는 확고한 백신 찬성론자이지만, 백신 반대자를 한심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점은 왜 그들이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는지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좋은 영향을 끼치거나 피해를 예방하려는 목적으로 타인의 자유에 간섭하는 일', 소위 '가부장주의'는 선의에 비해 결과가 늘 좋지 않기 마련이다. 아버지와 자식 간의 관계, 정부와 시민과의 관계가 적대적이라면 아버지와 정부의 좋은 의도는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된다. 가부장주의를 걷어내고 신뢰를 회복기 위해서는 집요하게, 성실하게, 겸손하게 설득하고 이해해야 한다. 물론, 더디고 지난한 일이지만 말이다.
(덧붙이는 글)
개인적으로는 백신접종을 개인의 자율에 맡겨도 좋다고 본다. 단, 미접종으로 인해 감염되었을 때의 치료 비용과 자신으로부터 바이러스가 옮아가서 치료를 받게되는 감염자의 치료 비용을 원인 제공자에게 물리는 것은 어떨까. 자유가 있는 곳에는 늘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가 빚지고 있으며 면역은 우리가 공동으로 가꾸는 정원이니까.
면역에 관하여입니다. 전염병이나 면역?에 관한 고찰이나 추론을 기대하고 샀는데 제가 기대한 내용이랑은 좀 많이 빗겨갔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깊이가 있는 책은 아닌 것 같고요. 재미도 크게 있는 것 같진 않네요. 그래도 면역에 대해 얕게 알아보는 용도로는 괜찮은 것 같고, 교양서로서 크게 기대를 안 하면 만족할 수 있는 책인 것 같습니다. 다른 책이 훨 나은 것 같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