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지글러 저/유영미 역
폴 칼라니티 저/이종인 역
나탈리 골드버그 저/권진욱 역/신은정 그림
가쿠다 미쓰요 저/권남희 역
세라 워터스 저/최용준 역
파리 리뷰,움베르토 에코,오르한 파묵,무라카미 하루키,폴 오스터,이언 매큐언,필립 로스,밀란 쿤데라,레이먼
A friend in need is a friend indeed.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다. 한창 친구가 내 삶의 중심일 때 배웠던 이 격언은 당시 고등학생이던 나에게 불변의 진리처럼 느껴졌다. 내가 힘들 때 격려하고 위로해주는 친구라니, 생각만으로도 삶의 한 부분이 가득차오는 충만함이 느껴지지 않겠는가. 그렇게 한참을 지냈을까. 그렇게 죽고 못 살던 친구와 대학에 진학했다. 불행한 것은 그가 나보다 공부를 못했는데도 더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는 사실이었다. 내 마음은 혼란스러웠다. 나만큼이나 소중한 친구인데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말하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말로는 축하한다고 했지만, '그냥 운이 좋았지'라고 말하는 친구의 말이 가식처럼 느껴졌다. 분명 우리는 어려울 때 힘이 되어주고, 형제보다 가까운 사이였는데 도대체 무슨 감정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제 시간이 꽤 많이 흘러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한 감정을 느껴서는 안되는 것이 문화적 압력이라면, 그런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라고.
이 책은 제목이 그대로 한 권의 책이다. 남이 잘못 되었을 때 느끼는 은밀한 쾌감에 대한 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감정을 정확히 표현하는 독일어는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라는 단어가 있다. 이 단어는 '피해'라는 단어와 '기쁨'이라는 단어가 합쳐져 그런 뜻을 갖는다. 신기한 사실은 영어 단어에 없다는 사실인데, 어찌 보면 그것은 하나의 위선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심하면 하루에도 몇 번씩 느끼는 감정에 대한 것인데 그에 상응하는 단어가 없다는 것은 말이 안되지 않나. 우리는 '쌤통'이라는 단어로 번역되었는데 대부분의 경우에 잘 들어 맞기는 하지만 미묘한 감정이라 조금씩 핀트가 안 맞는 부분도 있다. 어쨌든 우리나라든 다른 나라에서든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문화를 형성하며 사는 한 이러한 감정은 계속 존재 했었다.
그렇다면 그런 감정은 수 세기의 진화 과정을 거치면서도 왜 사라지지 않았던 것일까. 그 말은 바꿔 하면 쌤통의 심리가 인간에게 주는 이익이 존재한다는 의미기도 하다. 우리는 아무리 친밀한 관계의 인물이라고 해도, 드러나든 드러나지 않든 경쟁관계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친구인 경우 뿐만 아니라, 직장 내 동료, 때로는 처음 보는 타인일 수도 있다. 이때 상대가 우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고 이로 인해 평판이 좋아지고 소득이 늘어난다면 상대적으로 나의 지분은 작아질 수밖에 없다. 이것을 저자는 '문화적으로 높이 평가되는 가치에서 우월성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라고 표현한다. 우리 대부분은 우리가 객관적으로 평가되는 수준보다 스스로가 더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착각은 우리가 자존감을 지켜내는 무기가 되곤 하는데, 현실에서는 나보다 못 났다고 생각하는 타인이 나를 앞지르는 문제가 발생한다. 때문에 상대가 잘 되는 것에 대해서는 '질투'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
상대의 불행을 고소해 하기 위해서는 논리가 필요하다. 종종 우리의 감성은 이성에 앞서기 마련이다. 누군가의 실패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결론에 도달하기까지의 모든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사업에 실패했다면 그럴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고, 어떤 사고를 냈다면 거기까지의 열악한 여건이 있었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 감정은 이미 타인의 실패에 작은 쾌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생각을 배제한다. 대신 그의 '자만함'이나 '무계획함', '무절제' 같은 철저히 개인에게 국한되는 문제로 사태를 파악하고자 한다. 이것은 꽤 효과적이어서 그럴만 해서 그렇게 되는 것에 대해 쌤통의 감정을 갖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스스로 자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심리는 티브이 쇼에서 우리보다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연예인이나 일반인을 보면서 다른 방식으로 위안을 안겨주기도 한다. 늘씬한 모델이 많이 먹고도 살 안찌는 방송보다, 뚱뚱한 연예인 4명이 나와 한계없이 먹어대는 먹방 프로그램이 더 보기 편한것도 비슷한 이유다. 예능 프로그램은 이러한 감정이 편하게 발현되기 위한 고도의 장치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심리를 분석하는 책이 많지 않았던 것은,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믿고 싶은 심리가 우선하기 때문이 아닐까.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보이지 않는 문화 규범들은 우리에게 해야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가이드 라인을 정해준다. 그것은 보이는 부분에서 시작해서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은밀하게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때문에 누군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 쾌감을 느낀다거나, 경쟁자가 실패했을 때 즐거움을 표현한다는 것은 이치에 어긋나는 일처럼 느껴진다. 이 책이 불편하다면 표현이 제한되어 있는 감정에 돋보기를 들이대고 그것을 분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러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실제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우마이스터와 부시먼은 인간 본성에 대해 '자연은 계속 가라고 말하고, 문화는 멈추라고 말한다'며 훌륭한 정의를 내렸다. 저자의 결론은 책의 전체 분량에 비해 놀라울 만큼 짧은데, 그도 그럴것이 이 책은 그러한 감정을 정확히 지적하고 인정하는 것으로도 큰 수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상대의 좌절감을 상상하며 통쾌할 수 있다는 사실은 바꿔 말하면 상대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아마 우리는 거기서부터 답을 찾아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