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노 저
임솔아 저
애나 렘키 저/김두완 역
로랑스 드빌레르 저/이주영 역
천선란 저
백온유 저
너무도 유명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손이 가지 않은 책이었는데, 역사에 대한 책을 읽다보니 징비록이 꼭 걸렸다. 그리고 임진왜란에 대한 기록을 객관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책이라고 하고, 또 후세에 그 사실을 전하고 다시 이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 책이라기에 이번에 맘을 잡고 읽어 보았다.
객관적 사실들을 시대순으로 엮었고, 임진왜란의 배경까지 기술되어 있으며, 간결한 문체를 통해서 가독성을 높인 책이라고 느꼈다. 한번 손에 잡으니 내려놓을 수 없는 책이었다.
독일의 역사가 랑케가 역사가의 임무를 '그것은 실제로 어떠했는가(Wie es eigentlich gewesen)'를 보여주는 것이라 주장했는데, 유성룡은 그 역사가의 임무에 더해서, 나라의 존속과 과거의 전철을 밝지 않기를 바라는 애국의 마음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었다.
내란으로 무기와 전술이 강력해진 일본을 이기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충분히 일본의 전쟁준비를 알아낼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판단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배층의 당파싸움으로 인하여 그 기회를 살리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그러나 그런 당파싸움이 작금의 정치판에서도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모습을 보니, [임진왜란]의 저자인 월탄 박종화 작가의 글처럼 '사람의 인정과 여기 따르는 염량 세태는 마찬가지다'라는 말이 뼈져리게 느껴진다.
징비록에는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름모를 많은 사람들이 죽어간다. 몇천, 몇만이 죽었다라는 말이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다. 한사람 한사람이 누군가에게 가족이며, 자식이었을 터인데 말이다. 전쟁의 참혹함은 죽음이 문제가 아니라, 죽음을 보면서, 누군가를 잃어린 슬픔, 당당하게 맞서지 못한 죄책감으로 살아야 하는 삶일 것이다.
'나 였다면' 이라는 생각을 해봤다. 바다 가득히 메운 왜선이 보이는 부산의 성에서, 또 왜군과의 정면대결을 앞둔 탄현대에서, 진주산성을 가득 메운 왜군들 앞에서.. 나는 당당하게 싸울 수 있었을까? 그렇게 싸워서 죽은 수천중의 한사람으로 기록되었을까? 그 상황을 피해 도망간 사람으로 기록되었을까? 막상 닥친다면 바뀔수 있겠지만, 나 또한 이런 왜군앞에서라면 도망가는데 힘을 썼을 것 같은 맘이 들어, 징비록이란 책이 가볍게 느껴지지 않고, 무서운 선생님 앞에서 훈계를 받는 느낌이다.
짧은 감상평
1) 어려울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쉽게 쓰여져서 가독성이 좋았다.
2) 뭐만 하면 사람 머리를 베어댄다. 왕권 유지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현재 시점에서는 엄청난 공포다. (그리고 답답하다. 말좀 듣고 베든지..)
3) 일본 입장에서는 임진왜란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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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조는 빠른 속도로 치고 올라오는 일본군의 소식을 듣자마자 피란을 고민한다. 한양을 지킬 수 없을 것 같으니, 그 중요하다는 종묘사직을 다 두고 떠났다. 그러면서 나라를 지키고, 그 성을 지킬 책임을 다른 장수들에게 떠맡긴다. 왕이 짊어져야 할 책임감을 뜻하지 않게 짊어지게 된 이들은 그렇게도 쉽게 내팽겨치고, 도망가고 말았다.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피란을 떠난 선조에게 있는가, 아니면 어쨌든 왕의 명령을 받은 장수들에게 있는가
둘 다 책임이 있다. 굳이 경중을 따지자면 선조의 탓이 더 크다고 얼핏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왕을 대체할 사람은 장수들과 비교했을 때 별로 없지 않은까. 세자가 있다손 아직 어리거나 전시에 바로 왕위를 물려받기는 힘들 것 같다. 장수들은 애초에 왕과 국가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데 윗사람이 도망치듯이 나왔다 하더라도 의무를 다 했어야 됐다고 생각한다.
2. 명의 ‘속국’이었던 조선. 그리고 왜가 쳐들어오자마자 명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명이 하는 대로 해야 했다. 그리고 어떠한 지휘권도 통치권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명이 하자는 대로 따라야 했으며, 심지어 왜와 협상을 할 때도 조선은 배제시킨다. 크게 유린당한 왜에게도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렇게 주체성, 주도권은 타국에게 넘겨졌다. 그 나라에는 주체성이나 자주권이 있는가? 더 중요하게, 현재의 우리들은 자신의 주도권을 잘 지니고 있는가?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사라지지 않았는가
국력이 부족한 나라는 어쩔 수 없다. 세상 일은 예의, 도리만으로 돌아가지 않고 결국 실리에 의해 돌아간다. 주체성과 주도권이 넘겨진 나라는 왜를 포함한 외국이 몹쓸 놈들이고 배은망덕하다고 하겠지만, 국익을 위한 일은 어쩔 수 없이 대부분이 제로섬 게임이다.
주도권의 관점에서 현재 한국은 강대국 사이에서 이쪽저쪽 눈치를 보면서 주도권을 크게 외치지 못하고 있다. 북핵 문제나 위안부 사건 등은 타국과의 상호작용 없이 우리 뜻대로 원하는 것을 얻기 힘들다. 북한같은 독불장군 식으로 본국의 주도권을 주장하기 보다는 적당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정체성은 다른 국가도 그렇듯이 주변국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희미해지고 있는 것 같다. 취할 건 취하고 부정적인건 타산지석으로 삼아 한국 고유의 K-문화가 이어져야 할 것이다. (사족으로, 일본 연예산업 및 방송이 한국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정말 지양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질문 1
선조는 빠른 속도로 치고 올라오는 일본군의 소식을 듣자마자 피란을 고민한다. 한양을 지킬 수 없을 것 같으니, 그 중요하다는 종묘사직을 다 두고 떠났다. 그러면서 나라를 지키고, 그 성을 지킬 책임을 다른 장수들에게 떠맡긴다. 왕이 짊어져야 할 책임감을 뜻하지 않게 짊어지게 된 이들은 그렇게도 쉽게 내팽개치고, 도망가고 말았다.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피란을 떠난 선조에게 있는가,
아니면 어쨌든 왕의 명령을 받은 장수들에게 있는가?
생각 1-1
휘연님은 <징비록>의 키워드를 '책임감'으로 뽑았다.
키워드에 맞게 첫 질문부터 책임을 다하지 않는 자를 색출하여 책임의 경중을 묻는다.
일상에서 쉽게 말하지만 실천하기엔 묵직한 '책임'의 뜻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꾸짖다, 나무라다, 책망하다' 는 꾸지를 '책'과
'맡기다, 주다'는 의미가 담긴 맡길 '임'
1. 맡아서 해야 할 임무나 의무
2. 어떤 일에 관련되어 그 결과에 대하여지는 의무나 부담. 또는 그 결과로 받는 제재
네이버 국어사전에서는 위와 같이 풀이되어 있다.
두 문장에서 반복되는 단어는 '의무'다.
책임이란 단어 대신 의무를 넣으면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그 의무는 누구에게 있는가?
피란을 떠난 선조에게 있는가,
아니면 어쨌든 왕의 명령을 받은 장수들에게 있는가?
'책임'은 한 사람을 세워두고 비난하기 쉬우며 짊어진 무게 100%로 질책하는 반면,
'의무'는 모두가 짊어져야 할 무게를 여러 명이 쪼갠 후 힘을 합쳐 100을 만드는 형태다.
나라를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을
나라를 지켜야 할 의무가 누구에게 있는지 물어본다면
그 시대를 살았던 모두가 나라를 지킬 의무가 있었다.
왕은 국력을 높일 의무가
장군은 훌륭한 전략으로 적을 무찌를 의무가
백성은 나라의 기반을 닦을 의무가.
의무의 크기와 형태는 조금씩 다를지언정
하나라도 빠지거나 해이해지면 나라를 지탱하는 기둥이 위태로워진다.
왕은 왕으로서 왕의 의무가 있고,
장군은 장군으로서 장군의 의무가 있는데
어찌 각자 지위에 맡게 짊어져야 할 의무를
다른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 맡길 수 있단 말인가.
<징비록> 마지막 장에 도달하기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죽음이 문장을 이어 나갔다.
목 끝까지 가득 쌓인 울화통을 채 비워 내리기도 전에
죽고 난 후 부여하는 '벼슬 놀이'를 보며 갑갑함이 혈관마저 막아 버렸다.
이순신도 조정의 벼슬 놀이를 피해갈 순 없었다.
<징비록>에서 이순신은 꽤 비중 있게 자세히 다뤄지는데,
이순신을 재주는 있었으나 운이 없었던 사람으로 소개한다.
그도 그럴 것이,
조정에서 끌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출중한 실력은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했다.
뇌물을 주고 감옥을 나오면 된다고 말하는 조카 이분에게
"죽게 된다면 죽을 뿐이지,
왜 바른 길을 어기고 살길을 찾겠느냐?"
라며 꾸짖는 이순신의 성품은
"이순신은 천하를 다스릴 만한 뛰어난 재주와
무너진 하늘을 메울 만한 공이 있는 사람입니다"
라며 칭찬한 진린의 말에서
진정으로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는 진정한 충신이라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충직한 이순신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지만,
조정에서는 어땠는가.
벼슬 한 단계를 높여주는 거로 왈가왈부하다가
결국 이순신은 죽고 나서야 정1품 벼슬이 주어졌다.
"이순신이 바다에서 이겼다는 보고가 올라오자 조정에서는 크게 기뻐했다. 임금은 이순신의 벼슬을 한 품계 더 올려주려고 했다. 그러나 대신들이 너무 지나친 일이라고 하므로 이순신을 정헌대부 (정2품), 이억기와 원균을 가선대부(종2품)로 높여주었다.... (죽고 나서) 나라에서는 이순신에게 의정부 우의정 (정1품) 으로 벼슬을 높여주었다."
이 대목은 나를 분노케 했다.
자신들이 져버린 나라를 목숨까지 바쳐가며 지킨 사람에게
무슨 벼슬이 마땅할까 머리를 굴리다
죽고 나서야 그 가치를 인정해주는 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순신 장군에게도 이런식으로 대접 했는데,
하물며 책 대신 칼과 활을 든 이름 모를 선비와 승려들,
전방 곳곳에서 일어난 의병들에 대한 대우와 처우는 어떠한가.
용감하고 처절한 그들에 대한 평가는 어떠한가.
충직한 장군도 억울한 옥살이를 시키는 마당에
의병들의 활약은 제대로 기록했을지 한번 생긴 의구심이 도저히 사라지지 않는다.
목숨이 붙어있을 땐 배고픔에 굶주려 있다가
윗사람들이 버리고 간 나라에서 굶주림에 죽을 바에
대신 적의 총에 맞는 죽음을 택하며 싸운 수많은 의병.
나라의 목숨이 위태로울 땐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이제서야 평민들의 이름을 영웅처럼 기록한다.
화가 났다.
있을 땐 소중히 여기지 않고 가차 없이 버리며 자기 밥그릇 채우기 바빴으면서,
이제 와서 사람대접해주는 게 꼭 겉모습만 치켜세우며 자신들의 죄책감을 덜어내는 것 같았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죽고 난 후 주어지는 벼슬이 아니라
목구멍에 숨이 남아있을 때 꼴깍 삼킬 수 있는 쌀 한 톨이었다.
아이러니하게 휘연님의 질문에 답하다 보니 분노가 차츰 가라앉았다.
단순히 넋을 위로하라고 의병들의 활약을 기록하고 장군의 지위를 올려준 게 아니다.
조정에서 벼슬을 올려주거나 이름을 기록하는 이유는
지위를 올려줌으로써 그에 합당한 책임을 다했다는 걸 인정하기 위함이다.
예를 갖춘 것이다.
"강산 표훈사의 승려로 유명한 유정, 호성감은 임금의 친척으로 100명의 의병을 이끌고 임금께서 계시는 곳으로 달려갔다. 조정에서는 그의 벼슬을 올려주고 순안에서 명나라 군과 힘을 합쳐 싸우게 했다. (119쪽)"
왕의 지위가 없는 장군은 왕의 책임을 다할 수 없고,
장군의 지위가 없는 백성은 장군의 책임을 할 수 없다.
그러나 나라가 어수선할 때,
백성은 백성의 의무가 아닌 장군이 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다했다.
그 대가로 나라에서 뽑은 군사가 아니라 스스로 군사가 되어 적과 싸우는 백성을 의미하는 '의병'이라는 새로운 이름(지위)을 얻게 된다.
침략되기 전에 현명하게 대처했어야지 나라를 잃을 마당에 죽은 사람들의 이름과 활약을 정리하는 게 무슨 소용인가 화딱지가 났으나 단순히 넋을 위로하기 위해 지위를 올려준 게 아니라 그 지위에 있던 사람이 했어야했을 책임과 의무를 대신 한 것을 인정했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일본과 싸워야 할 몫은 이름 없는 백성이 아니라 장군이으로 불리는 타이틀(직위)을 단 사람들의 몫이라는 걸 스스로 반증한 셈이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서,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만큼 책임이 있다고 답할테다.
이름을 하나하나 외우진 못하지만, 이 지면에 빌어 넋을 위로하며 예를 갖춘다.
전라도 의병: 김천일, 고경명, 최경회, 경상도에서 의경을 이끌고 활약한 장수인 곽재우, 김면, 정인홍, 김해, 유종개, 이대조, 장사진 등.
충청도에서 의병을 일으켜 활약한 승려 영규, 조헌, 김홍민, 이상겸, 박춘무, 조덕고으, 조웅, 이봉.
함경도에서는 가장 많은 활약을 한 정문부와 고경민.
경기도 의병: 우성전, 정숙하, 최흘, 이노, 이산휘, 남언경, 김탁, 유대진, 이질, 홍계남, 왕옥.
묵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