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선 저 저
조경국 저
김민영,이진희,김제희,권정희 공저
브랜던 로열 저/구미화 역 저
리사 크론 저/문지혁 역
‘고종석의 문장 2’는 1의 논의가 이어지며 좀 더 파고들고 심화시키고 있다. 1에서 글을 왜 쓰는가? 라는 질문에 이어 2에서는 좋은 글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으로 시작하고 저자는 되도록 명쾌하고 이해하기 쉽게 대답을 해주고 있다.
김현
저자는 불문학자이면서 문학 비평가였던 김현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면서 이런 저런 얘깃거리들을 꺼낸 다음 평론가 김현이 발표한 ‘말들의 풍경’ 서문을 문장 하나하나 꼼꼼하게 살펴보고 있다.
철저한 분석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세심하게 따져보면서 단순히 문장만을 살펴보는 것이 아닌 평론가 김현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알려주려고 한다. 아울러 서문을 읽으며 떠올려지는 생각을 꺼내보기도 하는 등 하나의 글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평론가 김현의 글을 함께 읽으며 뛰어난 문장과 탁월한 비유와 표현 그리고 명료함이 얼마나 글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지 알려준 다음 저자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 문법과 글쓰기 비결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그 다음에 1과 마찬가지로 저자가 발표한 글을 다시 다듬으며 실전에서 쓸 수 있는 글쓰기 요령과 글과 관련한 이런저런 정보와 저자의 생각을 들려주고 있다.
자신의 글이 어떤 맥락과 이유였었는지 그리고 시간이 지난 지금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솔직하게 알려준 후 글쓰기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아리송하게 느껴지는 구별짓기와 차이 지우기를 다루고 있다.
처음에는 왜 저런 걸 설명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째서 다뤘는지 알아챌 수 있도록 이후의 논의가 이어진 다음 좋은 문장가의 글(과 생각)과 나쁜 문장가의 글(과 생각)을 짧게 살펴본 후 다시금 문법에 대해서와 자신의 글을 다듬으며 여러 논의들을 이끌어간다.
1에 비해서는 이론에 대한 부분이 좀 더 많았고 자주 다루고 있어 설명을 잘 따라가야만 이해할 수 있어 어렵게 읽혀지는 경우도 있겠지만 책의 구성 자체는 1과 크게 다르지 않아 아주 힘들 정도는 아니었다.
1권과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좀 더 자세하고 복잡하게 다뤄지는 내용도 있어서 부담스럽게 읽혀질 수 있지만 그래도 되도록 알기 쉽게 설명해주고 글쓰기에 관한 솔직한 생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러 가지로 유용한 내용이었다.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 것들을 글을 쓸 때 잘 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
간간히 이런 책들도 읽어봐야겠다.
한국 사회는 새로운 세기에 걸맞은 한국어 글쓰기의 정본을 얻게 되었다. 이태준의 문장 강화 가 20세기의 글쓰기 교육을 감당했다면, 이 책 문장 은 21세기의 그것을 감당해내길 기대한다 문장 은 작가 고종석의 글쓰기 강의를 녹취 정리한 것으로, 강연은 2013년 9월부터 12월까지 석 달 동안 모두 열두 차례에 걸쳐 숭실대학교에서 진행되었다. 이번 둘째 권은 후반부 여섯 강을 정리한 것이며, 전반부 여섯 강을 묶은 첫째 권은 2014년 상반기에 출간된 바 있다 그런데 왜 새삼 ‘글쓰기’일까? 흔히 SNS가 보편화하면서 글쓰기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졌다고 이야기한다. 고종석도 이런 인식을 공유한다. 이른바 “글쓰기의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모든 사람들이 저자가 되는 세상이 열렸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고종석은 ‘글쓰기 교육’의 필요성을 발견한다
『고종석의
문장 2』를 읽으면서 다시금 느끼게 되는 것은 글쓰기란 어찌 되었던 생각 나타내기란 점이다. 고종석이 아무리 글쓰기의 여러 테크닉을 얘기하더라도 더 눈길이 가고, 밑줄이라도
하나 더 치게 되는 부분은 다름 아닌 고종석이 띄엄띄엄 드러내는 '생각'이니 말이다. 스스로 절필했다고는 하지만, 책으로 묶여져 나오는 글의 주인이 고종석인 바에야 고종석의 글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고(굳이 굳이 '말'이라고
하면야 할 말을 없다), 이 글에서 읽게 되는 것은 다름 아닌 고종석의 '생각'이다. 글쓰기에
대한 생각,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생각 등등.
그
생각들에 대해서 몇 가지만 추려서 다시 음미해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고종석은 몇 명의 작가에 대해 분명한 판단을 하고 있다. 전혜린, 양주동, 피천득이라는
세 작가에 대한 것인데, 그저 두루뭉술하게 써도 별 문제가 없으련만 자신의 호오(好惡)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들에 대한 고종석의 호오는 기본적으로 그들의 삶의 자세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우선
전혜린에 대해서는 '구별짓기의 나쁜 예'라고 언급하고 있다. 구별짓기란 소통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나는 당신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드러내는데, 전혜린이라는 사람은 그런 구별짓기를 통해 자기 만족을 이루려고 하였다.
양주동(이 양반의 이름 뒤에는 꼭 '박사'라는
호칭을 넣어야 할 것만 같다. 어린 시절 늘 그렇게 불리는 것을 들어왔으니)의 경우에는 '독보적 문체를 통한 구별짓기'라 제목을 짓고 있다. 극단적인 한문체 문장을 쓴 영문학자 양주동은
그것을 자신의 스타일을 세웠다. 그는 그런 스타일을 확고히 하는 방향으로 남들과 글쓰기를 구별지었다는
것이다. 고종석은 양주동에 대해서는 나쁜 평가를 하지 않는다.
마지막은
피천득이다. 익히 잘 알고 있는 <인연>이라는 수필의 지은이. 고종석은 '글에는 스타일로도 결코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이 있습니다'라고 하고
있다. 그 벽이란 바로 '마음의 천박함'이다. 완벽히 역사 의식을 결여한 글에서 마음의 무늬를 읽어내는 것은
무슨 의미냐는 것이다. 고종석은 피천득의 글에 혐오감이란 단어를 쓰고 있다.
그렇다면
글이란 스타일도 중요하고, 논리도 중요하고, 수사도 중요하고, 맞춤법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며, 생각이라는 것을 고종석은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절대적으로
동의한다.
2. 고종석은 그 생각의 일면으로 전체주의, 집단주의에 대한 혐오를 자주 드러내고 있다. 또한 순수성과 열정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이전 자신의 글(『자유의 무늬』란 책에 실린 글들)을
통해 여러 차례 이야기하고 있다. 동의할 수 있는 부분도 많지만, 선뜻
동의하기가 꺼려지는 부분도 없지는 않다. 이를테면 깨끗한 도시가 자연스럽지 못하기 때문에, 혹은 지나치게 순수성을 강요하는 것이기에 싫다는 것은 일면 이해는 가지만, 꼭
그렇게만 볼 수는 없지 않을까 싶다.
- 글을 읽되, 좋은 글을
많이 읽고, 좋은 글을 읽으면서도 비판적인 거리를 둬야 한다는 고종석의 말에 따르면 나는 썩 그의 말을
잘 따르는 셈인데, 한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에 대한 생각도 나는 그와는 조금 다른 것 같다.
3. 대체로 고종석은 강요를 하지 않는다. 이것이 좋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 혹은 이것은 별로 좋지는 않지만, 굳이 쓰겠다면 반드시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식이다(물론 꼭 바꾸어야 하는 것은
바꾸어야 한다고 하지만). 그러니까 글이란 생각을 담는 수단이지, 그
수단에 완벽히 얽매어 재미없는 글을 쓰는 것은 반대한다는 뜻이리라. 그럼에도 좋은 글은 있다. 모든 문법적인 제약을 다 무시하면서도 좋은 글을 좋을 글로 읽힌다. 당연히
모든 사람에게 좋은 글이란 있을 수 없지만, 그래도 보편적으로 좋은 글이 있을 수 있으며, 보편적으로 좋은 글은 아니라 할지라도 내게는 좋은 글일 수도 있다. 은유와
환유니 하는 것들을 의도적으로 쓰지 않더라도, 으르렁말과 가르랑말을 의식적으로 나누어 쓰지 않더라도, 'Paris'를 '파리'로
쓰던, '빠리'로 쓰던 어떤 좋은 글을 그냥 좋은 글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글쓰기 강좌를 듣고, 그 강좌를 묶은 책을 읽는 이유는 무얼까?
그저 글쓰는 생각을 읽기 위해서? 다른 인문학 서적이나,
사회과학 서적, 자연과학 서적을 읽는 것이 더 풍부하고 논리적인 사고를 접할 수 있는데도? 아니면 우리는 느끼지 못하지만 글쓰기의 테크닉이란, 글쓰기의 문법적
고려란 글 속에 녹여져 글을 좋게도, 나쁘게도 만들기 때문에? 그것도
아니면 내가 쓴 글이 과연 잘 읽힐 수 있는 글인지를 스스로 판단하는 기준을 알기 위해서?
4. 내 글쓰기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글을
많이 쓴다. 블로그에 쓰는 글을 제외하고도, 나는 연구 계획서도, 연구 보고서도 자주 쓸 수 밖에 없고, 논문도 적지 않게 쓰게 된다. 그런데, 연구 계획서나 연구 보고서의 글은 수사라고는 들어갈 틈이
없는, 삭막하기 이를 데 없는 글이다. 게다가 개조식이라고 '~음', '~임'으로
끝나도록 강요받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걸 여기서 말하는 글이라 할 수 없으니, 여기의 글쓰기 강좌는 아주 제한적으로밖에 의미가 없다(맞춤법이라든가, 조사라든가, 명료함이라든가 하는 것들은 그래도 의미가 있으니). 논문은 더욱 그렇다. 고종석도 끝에 영어로 글을 쓰게 되는 상황에
대해서 잠깐 언급을 했는데, 나의 논문은 한글로 된 논문이 없다. 그러니
그 논문을 잘 쓰게 되는 것은 내 한국어 감각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영어 실력의 의한 것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앗 잠깐! 내가 간과한 것이 있다.
비록 나는 영어로 논문을 쓰지만 생각은 우리말로 한다는 사실이다. 워낙에 일천한 영어 실력이다보니
영어 자체로 영어 논문의 문장을 쓰는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전체적인 논리는 당연히 우리말로 되어 있다. 여기에 글쓰기의 요령이 필요하다면 이 책은 의미가 있다. 고종석도
명료함, 즉 논리가 우선이라고 하지 않는가.
블로그의 글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비록 이 짧은 글도 비문투성일 테고, 명료하지 않는 문장이 몇 되지도 않는 읽는 이로 하여금 짜증을 선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분명한 것은 단 한 가지라도 『고종석의 문장』을 통해 고쳐진 문장일 것이란 것이다. 누구도 깨닫지 못할 수도 있지만.
(2015. 11)
기존 1편과 함께 2편도 구입하였다. 작가의 글쓰기 강연을 녹취한 것을 정리한 것으로 더 친근하고 이해하기 쉬웠다. 지금은 SNS가 워낙 활발한 시대이기에 글쓰기의 중요성이 더더욱 중요해졌는데, 이를 고려한 접근법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평소 생각지 못한 일상에서 도움이 될 만한 조언들이 인상 깊었는데, 내 하루에도 적용해볼 생각이다. 아름다운 문장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