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론의 원조 ‘요시다 쇼인’에서 우경화의 기수 아베 신조까지,
조선을 탐한 사무라이는 왜 모두 한곳에서 나왔는가?
150년간 묻혀 있던 한·일 근대사의 미스터리를 추적한다!
사무라이와 선비, 세상을 만나다
- 바깥세상으로 창은 열었으나 열린 방향이 달랐다
지은이가 한·일 근대사 150년의 여정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수도가 함락된 전쟁에서도 무너지지 않았던 조선이 전쟁도 없이 망했던 사건(한일합병)에 주목하면서부터다. ‘조선은 왜 망했는가?’에서 시작된 물음은 현해탄을 건너 일본으로 이어졌고, 메이지유신 사적지를 따라가며 조선과 일본의 근대화 여정을 비교 분석한 그의 날카로운 시선은 지금까지 그 어떤 역사서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울림으로 다가온다.
비슷한 시기에 근대화에 나섰던 조선과 일본의 대응을 바라보는 지은이의 시선은 매우 직선적이고 거침이 없다. 근대화의 격랑 앞에서 방향을 잡지 못한 채 외세에 의지하다 국권을 빼앗긴 고종 한 사람만을 망국의 암군(暗君)으로 매도하기 보다는, 상투를 틀고 앉아 근대화의 격랑을 등진 선비들을 무능한 식자(識者)로 비판한다. 반면에 상투를 자르고 근대화에 목숨을 걸었던 사무라이와 일본의 성공 원인을 정밀 분석했다. 조선 관리들의 부패상과 일본 사무라이들의 근대화를 향한 헌신, 서구제국을 향해 창을 활짝 열었던 일본과 오직 중국으로만 열린 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다 나라를 보전하지 못했던 조선의 대비는 냉정할 정도로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한다.
혹여 보는 이에 따라서는 국권 회복을 위해 투쟁했던 조선 민중과 선비들의 저항의 역사를 폄하하는 것 아닌가 하여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은이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굴욕적인 망국의 역사와 함께 일본의 근대화 과정을 알아야만 잘못된 역사의 단추를 제대로 끼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의 그늘진 역사를 드러내 놓고 처절한 반성이 동반되었을 때 또다시 같은 역사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은이가 이끄는 대로 조선과 일본의 근대화 발자취를 따라 깊게 들어가 보면, 분명 보이는 것과 얻는 것이 있을 것이다.
조선을 삼킨 조슈 사무라이
- 정한론의 원조이자 일본 제국주의의 본영 ‘쇼카손주쿠’
역사도 결국 사람이 만드는 것이고, 조선이 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사람이 만든 것이니 사람을 돌아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조선이 망할 수밖에 없었던 내부적 요인보다 기어코 조선을 삼키려고 했던 그들의 동기가 역사적 진실을 더 명쾌하게 설명해 줄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러한 의문을 안고 지은이가 첫발을 디딘 곳은 일본 야마구치(山口) 현 변방에 있는 ‘하기(萩)’라는 도시다.
그렇게 찾아간 하기의 조그만 시골 학숙 ‘쇼카손주쿠(松下村塾)’는 일본 근대화 추적의 출발점이었다. 그곳에서 한일합병 주역들의 면면을 조사하다가 당시 일본 총리(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토모, 가쓰라 다로), 조선공사(이노우에 가오루, 미우라 고로), 조선통감(이토 히로부미, 소네 아라스케, 데라우치 마사다케), 조선주차군사령관(하세가와 요시미치), 조선총독(데라우치 마사다케, 하세가와 요시미치) 등 핵심 인물들이 모두 조슈 번(야마구치 현) 도읍지 하기에 있는 쇼카손주쿠에서 동문수학한 문도들이었고, 그들을 키운 이데올로그는 불과 서른에 생을 마감한 백면서생 ‘요시다 쇼인’이었음을 확인한다. 또한 지은이는 치밀한 탐방과 추적 조사를 통해 조선 침략의 핵심적 역할을 한 조슈 인맥의 정점에 있는 인물이 ‘다카스키 신사쿠’라는 젊은 사무라이이고, 그가 바로 야스쿠니의 망령을 창조한 군국주의의 원령이라는 사실을 생생한 현장 사진과 함께 보여준다.
우연의 일치일까? 지은이가 현지답사를 통해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 5년 후인 2016년에 ‘쇼카손주쿠’와 사무라이 마을 ‘조카마치’는 근대화 산업혁명이라는 포장지를 쓰고 일본의 세계문화유산 유적지 23곳 중 하나로 등재되었다. 쇼카손주쿠는 정한론의 원조로 지목된 요시다 쇼인이 만든 학숙으로 메이지유신의 주역을 길러낸 곳이고, 일본의 산업혁명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는 점에서 150년 전 군국주의 망령이 어른거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지은이는 5년 전 답사기에서 이러한 일본의 속셈을 이미 경고했는데, 우려했던 일이 그대로 일어났다.
150년 전 일본이 다시 돌아온다
- 아베 신조는 사무라이의 부활과 패권 국가를 꿈꾸는 가케무샤인가?
조슈와 사쓰마의 젊은 사무라이들이 메이지유신을 이끌었으며, 그들의 사무라이 정신이 오늘날의 일본 정치인들에게 까지 면면이 이어져 오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이 강조하는 핵심 메시지다. 특히 우경화의 기수를 자임하며 폭주하고 있는 아베 총리가 150년 전 메이지유신 주도 세력의 본산이었던 쇼카손주쿠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도 그의 가계와 사상적 편력을 추적하여 밝혀내고 있다.
실제로 하기에 있는 쇼인신사에 가면 신사 경내에 요시다 쇼인을 존경하던 메이지시대 야마구치 출신 고위 인사들이 바친 석등이 줄지어 서 있다.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토모, 이노우에 가오루, 가쓰라 다로, 기도 다카요시, 노기 마레스케, 데라우치 마사다케 등 메이지시대를 주름잡은 쟁쟁한 인물과 함께 아베 총리의 외고조부인 오오시마 요시마사의 석등이 서 있다. 쇼인신사의 현판 글씨는 기시 노부스케(아베 총리 외조부)의 작품이고, 1968년 메이지유신 100주년을 기념하여 당시 사토 총리(아베 총리 외종조부)가 세운 기념비가 웅장하게 서 있다. 아베 총리는 쇼카손주쿠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켰다. 이쯤 되면 아무리 일본 근대사에 문외한이라 하더라도 그림이 그려지지 않을 수 없다. 아베 총리의 DNA는 그렇게 형성됐다.
아베 총리를 필두로 일본의 우익 세력은 식민 지배와 침략 전쟁에 대한 통절한 반성은커녕, ‘일본은 왜 패배했는가’에 대한 처절한 자아비판을 통해 패권 국가로의 부활을 꿈꾸며 국제무대를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다. 이 책의 흐름이 조선 망국의 시점까지로 한정되어 있지만, 우리는 지은이의 글을 통해서 일본이 새로 일어설 때를 준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는 군국주의의 부활을 우려하지만, 일본이 그런 모습으로 세계무대에 등장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군국주의자의 초상을 지우고 훨씬 더 세련되고 업그레이드 된 모습으로 ‘강력한 동맹국’의 손을 잡고 국제무대에 당당히 복귀할 것을 예고하고 있다. 미래에 일본은 어떤 모습으로 다시 돌아올까?
최근의 한·중?일 3국을 둘러싼 국제 정세는 100여 년 전 조선 망국을 불러왔던 당시의 데자뷰처럼 전개되고 있다. 당시 일본이 국운을 건 전쟁까지 도발하며 한반도에서 몰아냈던 러시아를 21세기 패권 국가를 지향하는 지금의 중국으로 대체하면 상황은 복사판처럼 똑같다.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현재의 한·중?일 관계가 150년 전의 그때와 너무나 닮아 있음에 소름이 돋을 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 지은이가 말하고자 하는 한 가지만 기억하자. 100년 전 근대화의 흐름을 타지 못해 망국의 굴욕을 당했던 그때의 실수를 또다시 반복하지 않으려면 치열한 논쟁과 처절한 반성을 통해서 철저하게 미래를 대비하는 것, 그것만이 동아시아의 격랑 속에서 국가의 자존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