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장편소설 『착한 여자』는 1997년 작품입니다.
소설 2권을 다 읽고나서야 맨 뒤에 실린 작가의 후기를 보고 알았습니다.
소설은 작가의 상상이 빚어낸 창작물이라지만, 작가의 현실에 깊이 뿌리내린 창작물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작가의 후기가 더 인상이 남는 소설인 것 같습니다.
힘들었겠다....산다는 게.... 누구나 그렇겠지만....
초판 작가 후기에서는 "돌아보니 소설이라는 걸 쓴 지 십 년째가 되었다. 그동안 많ㅇ느 책들을 냈지만 처음으로 이 책을 내 자신에게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 낳던 날 난산의 고통을 견디던 어머니에게 의사를 불러다주고 날 업어 키웠던 봉순이 언니, 어린 영혼에 내가 상처입혔던 나의 딸, 언젠가 밤 강가에 나와 함께 서 있어주었던 그, 그리고 어제 감기약을 먹으면서 놀이방에 갔던 나의 아들 승빈까지, 내가 사랑했으나 내가 상처입혔던 그 모든 사람들이 결국은 모두 나였다는 걸 나는 이제사 어렴풋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서른네 해를 살았지만 고통으로 이제 겨우 몇 살을 먹고, 처음으로 나는 내가 젊다는 생각을 한다. 1997년 4월 공지영"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제2판 작가 후기에서는 " 『착한 여자』를 회상한다는 것은 내게는 아직까지도 고통스러운 일이다. 『착한 여자』도 정인이도 그리고 그것을 쓸 무렵의 나와 내 아이에 대한 기억도. ... 사람은 누구나 어리석다. 적어도 그런 면들을 갖는다. 나는 이제 나 자신과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두 팔로 감싸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2002년 5월 23일 공지영"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 뒤로 이 소설은 2011년 3월 17일 제3판을 찍고, 2018년 1월 5일 제4판을 찍었습니다만 작가의 후기는 없습니다.
2018년 작가의 후기를 직접 볼 수는 없지만 제 나름으로 짐작해봅니다. 오정인이 아닌 공지영이라는 사람에게 평화가 머물기를 바랍니다.
1부에 이어 2부에서 정인은 남편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고무적인 것은 도박과 폭력을 일삼던 남편에게 그녀가 먼저 이혼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인은 착한 여자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냥 참고만 사는 여자는 아니구나. 자신의 목소리를 낸 그녀의 태도에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자신을 먼저 챙기지 못한다. 남편이 내민 위자료도 그녀는 거부하고 홀로 우뚝 서기를 시작한다.
그러나 또다시 정인은 바로 같은 선택을 한다. 그녀는 건실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을 보지 못하는 것일까? 어쩌면 저리 '나쁜 남자'만 선택할까. 차라리 남자를 사랑하는 대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못할까.... 또다시 답답함이 몰려온다.
첫 번째 결혼보다 더 아픈 상처를 남긴 두 번째 사랑은 그녀의 몸에 사라지지 않는 상처를 남긴다. 그리고 태동의 아이.
정인은 새로운 출발을 하라는 명수의 말을 거부하고 아이를 출산해 홀로 아이를 키운다.
소설은 정인의 모습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찾는다. 여자가 아닌 어머니의 삶, 그래 어쩌면 연거푸 사랑에 버림받으며 그녀는 변하지 않는 사랑을 찾은 것인지도 모른다. 어린 자신을 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어머니처럼은 되지 않겠다고! 사랑에 실패했다고 어머니까지 실패하지는 않겠다고! 그녀는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또 다짐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결심은 그녀는 다시 일어나게 하고 누구의 도움도 받지않고 스스로 서게하는 원동력이 된다. 수 많은 상처를 통해 비로서 자존감을 회복한 것이다. 답답하기만 하던 그녀의 삶이 조금씩 달리보이기 시작한 것은 그녀의 조금은 무모한 선택의 결과들을 보면서부터다.
그래. 그녀는 여전히 착한 사람이다. 그녀의 착함을 주변인들도 다 안다. 그리고 그 착함을 이용하고 마지막 순간에 그녀에게 용서를 구한다. 하지만 그것 뿐이었다. 정인이 주변의 도움을 거절한 것은 어쩌면 그들의 잘못을 단지 돈으로 면죄부를 주지 않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착한 여자가 아닌 어미니의 삶을 선택한 그녀. 그녀가 지난 상처를 발판으로 이제는 진짜 자신의 삶을 살기를 바란다.
'오정인'이라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어린 시절 불우했던 그녀의 가정사를 시작으로 고통스럽고 불행했던 그녀의 청춘을 보여주고 있다. 가난하고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누구보다 당당하고 빛날 수 있었던 그녀는 스스로를 '착한 여자'라는 틀 안에 가두고 다른 사람들을 위한(특히 남자) 삶을 산다. 그리고 그들이 모두 떠나고 스스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와서야 비로소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오정인'을 중심으로 90년대 사회상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책이었다. 여권 신장의 초창기 모습도 엿볼 수 있었고, 그러면서도 여전했던 남존여비 사상과 고졸과 대졸의 학력차별, 가정폭력(아내폭력) 등 당시의 사회 문제이자 오늘날의 사회문제들이기도 한 것들을 마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인과 그 주변 여성들이 만들어가던 가족의 의미가 인상 깊었다. 기존의 부모, 자녀로 구성된 가정의 개념을 확장해 한부모 가정을 또 하나의 가정으로 받아들이고 서로 식사와 육아를 도우며 함께 사는 모습이 보기에 참 좋았다. 각 가정에 맡겨놓았던 육아와 가사를 정인과 그 주변 사람들이 함께 설립한 '사람이 사는 집'처럼 우리 사회가 공동으로 분담한다면 어떨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20년 전쯤에 나온 작품이라고 들었는데,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가족, 육아, 가사에 대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이 소설에서 찾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