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문학에서 도서 지원 받아 작성하는 서평입니다. 주관적이고 솔직한 생각만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현대문학에서 출간되는 세계문학 단편선은 표지부터 취향에 잘 맞아 꼭 서평하고 싶었다. 뿐만 아니라 잘 알려진 작가,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 가리지 않고 좋은 작품들을 모아 해당 작가 고유의 분위기를 잘 반영해 도서를 제작하는 방식도 몹시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도전할 때마다 계속 미끄러져서 인연이 아닌가 싶었는데 드디어! 이번 <알퐁스 도데> 서평단에 뽑히는 경사가 찾아왔다.
알퐁스 도데. 아주 낯선 이름은 아닐 것이다. 가장 잘 알려진 그의 작품 <별>을 아는 이라면 반가웠을 저자의 이름.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스물아홉 번째 <알퐁스 도데>에는 <별>을 포함한 총 스물다섯 편의 단편이 담겨 있다. 크게 <풍차 방앗간 편지>, <아를라탕의 보물>로 나눠져 있는데, <아를라탕의 보물>은 국내에서 첫 선을 보이게 되었다. 기대감을 갖고 읽기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조곤조곤 이야기 들려 주듯 편안한 문체가 인상적이었다. 슬픈 이야기인데도 풍자를 이어갔고, 감동 또한 놓지 않고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달했다. 괜히 세계적인 문학 거장이 아니었다.
아닐세, 아니야. 이보게들. 우선 가서 풍차 방앗간에 먹이를 줘야지…… 생각 좀 해 보라고! 풍차가 아무것도 못 먹은 지 아주 오래됐거든!
가엾은 노인이 밀 포대를 칼로 찢어 열랴, 낟알이 빻아져 뽀얀 밀가루 먼지가 천장까지 휘휘 날아다니는 동안 회전 숫돌을 살피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을 보며 우린 모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지요.
- 코르니유 영감의 비밀 중, 일부 발췌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건 마을 사람들 뿐만 아니라 코르니유 영감을 만난 독자들 또한 그러했을 것이다. 마음을 적시는 서정적인 문체가 너무 좋았다. 알퐁스 도데의 글을 읽고 있으면 마치 프로방스에 있는 듯했으니까. 아주 소중한 책을 좋은 기회를 통해 얻게 되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다.
삶에 지치고, 어디론가 떠다고 싶고, 누군가의 조곤조곤한 위트 있는 위로가 필요할 때 기꺼이 언제고 꺼내어 보고 싶다. 누군가의 지친 손 위에 건네고 싶기도 하다. 조금은 건조하고 조금은 서늘해진 계절과 시대에 아주 촉촉한 위로가 되어 줄 것이다.
사람마다 평생 잊지 못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나 역시 내가 자랐던 시골 동네의 이미지가 여전히 가지고 있다. 이제는 다 사라지고 없는 동네와 이제는 평지가 되어 버린 뒷 동산의 이미지가 내 안에는 여전히 남아 있다. 과연 안에 남아 있는 그 세계는 현실의 세계일까? 때로는 이제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은 채 내 안에만 남아 있는 그 세계가 정말 존재했던 세계인지 의심스러울 때도 있다.
알퐁스 도데에게 프로방스란 그런 세계가 아닐까? 알퐁스 도데라면 교과서를 통해 [별]이나 [마지막 수업]과 같은 작품들만은 접해 왔었다. 대부분 아무리 아름답고 좋은 작품도 시험이나 공부라는 목적을 통해 접하면 그 작품이 주는 감동을 느낄 수 없는 건가 보다. 그때는 이런 작품들이 그저 또 다른 소설들과 다르지 않는 배우고 알아야 하는 공부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 한참의 세월이 지난 후 알퐁스 도데의 단편집을 통해 저자의 작품들을 접하고 나서야 이 작가의 작품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작품인지를 알 것 같다.
"그러는 동안 깜깜한 밤이 되었죠. 산의 능선 위에 남은 것이라고는 먼지 같은 햇빛의 잔영 그리고 해가 떨어진 방향으로 어슴푸레 마치 한 줄기 김처럼 남은 잔광뿐이었습니다. - 중략 - 만약 여러분이 한 번 이라도 한 데서 밤을 새워 보았다면 알 겁니다. 우리가 잠든 시가에 고독과 침묵 속에서 신비로운 세상이 깨어난다는 것을 말이죠, 그럴 때 샘물은 낮보다 한결 또랑또랑한 소리로 노래하듯 흐르고, 연못은 작은 불꽃들을 밝히지요. 산의 모든 정령들이 자유로이 왔다 갔다 하고요. 허공중에는 뭔가 삭삭 스치는 듯한 소리,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들이, 마치 나뭇가지가 자라나고 풀들이 쑥쑥 커 오르는 소리처럼 들려온다니까요. 낮 시간은 존재들의 삶이지만, 밤은 사물들의 삶입니다. 이런 걸 익숙하게 접해 보지 않았다면 우섭게 마련이지요. 그러니 우리 아가씨도 오들오들 떨면서 작은 소리만 들려도 나한테 꼭 달라붙었지요. 한 번은 길고 우울한 어떤 울음소리 같은 것이 저 아래 번쩍이는 연못 쪽으로 우리가 있는 쪽까지 일렁이며 들어왔어요. 바로 그 순간 예쁜 별똥별 하나가 우리 머리 위에서 같은 방향으로 휙 스쳐 가는 겁니다. 마치 우리가 방금 들은 그 울음소리가 빛과 함께 움직인 것처럼 말이죠" [별 중에서]
알퐁스 도데의 대부분의 작품은 프로방스를 배경으로 한다. 그것도 주로 풍차나 양치기, 염소와 같이 당시 프로방스의 목가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한다. 프로방스 출신으로 파리에 진출해서 작가로 활동했던 알퐁스 도데에게 어쩌면 파리는 전쟁과 같은 삶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런 그에게 프로방스의 이미지는 평생 그를 지켜 주는 이미지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소설에서는 유독 파리의 생활에 지친 주인공이 안식을 누리기 위해 프로방스를 찾는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이제, 시끄럽고 거무칙칙한 여러분의 파리가 내 어찌 그립겠습니까? 내 풍차 방앗간에서 이렇게 잘 있는데 말이죠! 그동안 찾던 호젓한 이 구속은 너무나도 좋아요, 향기롭고 훈훈한 작은 구석이죠. 일간지, 합승 마차들, 자욱한 안개, 이런 것으로부터 천리만리 덜어진 이곳! ...... 또 주위엔 얼마나 예쁜 것들이 많은지! 여기에 자리 잡은 지 겨우 일주일 됐는데 벌써 머릿속이 느낌과 추억으로 가득하네요...... 보세요! 바로 어제저녁만 해도 나는 산 위에 올라갔던 양 떼가 언덕 기슭의 마스로 돌아오는 모습을 직접 보았답니다. 장담컨대, 여러분이 이번 주에 파리에서 관람한 모든 초연들을 다 보여 준대도 난 이 장관과 맞바꾸지 않을 겁니다. 어디 한번 판단해 보시지요." [자리 잡기 중에서]
그렇다고 무조건 낭만적인 소설들만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파리의 전쟁과 같은 삶에서 지친 영혼으로 프로방스에 내려온 주인공이 맞닥뜨리는 것은 이제는 사라져가는 프로방스의 낭만들이다. 그런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도데의 유명한 작품 중의 하나인 [코르니유 영감의 비밀]이다. 이제는 풍차가 사라지고, 모두 증기식 방아갓만이 운영되는 시대에 여전히 코르니유 영감의 방앗간만은 계속해서 밀을 빻고 있었다. 도데의 작품 중에는 조금은 미스터리 한 분위기를 풍기는 소설들이 많은데 이 작품 역시 그런 분위기를 풍긴다.
"그 풍차 방앗간 앞을 지나가면서 보면 문을 늘 닫혀 있고, 커다란 풍차 날개는 항상 돌아갔으며, 늙은 당나귀는 바닥에 난 풀을 뜯어 먹고, 말라빠진 고양이는 창가에 앉아 햇볕을 쬐면서 심술궂게 우리를 쳐다보았지요. 모든 게 아리송하기만 했고, 그래서 사람들은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댔어요. 코르니유 영감의 비밀에 대해 각자 나름대로 설명들을 했지만, 가장 널리 퍼진 소문인즉, 그 풍차 방앗간 속에는 밀 포대보다 돈 보따리가 훨씬 더 많다는 것이었죠." [코르니유 영감의 비밀 중에서]
조금 아쉬운 건은 이 책은 모두 도데의 단편들로만 이루어져 있어서 그의 깊은 깊은 작품 세계를 온전히 맛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읽은 현대문학의 세계문학단편선의 다른 단편들에 비해 유독 도데의 단편들은 짧은 분량으로 채워져 있다. 심지어는 2-3장 정도의 소설들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마치 초밥집에서 비싼 초밥 몇 개 먹는 것처럼 감칠맛만 나고 깊은 맛을 느끼지를 못하는 느낌도 들었다. 다행히 맨 마지막 소설인 [아를라탕의 보몰]이란 작품은 꽤 긴 분량을 가지고 있는 단편소설이었다. 이 소설 역시 파리에 염증을 느낀 주인공이 프로방스의 카마르그라는 곳에서 신비로운 여인들을 만난다는 내용이다. 앞에서 언급한 아름다운 프로방스의 분위기와 함께 시골 여인인 나이스와 그녀의 동생 지아라는 여인의 미스테리한 분위기가 한껏 어울려 있는 작품이다. 특히 이 작품에서는 아름다운 프로방스의 풍경을 묘사하는 작가의 속에 감추어진 작가로서의 열정과 광기가 뒤엉켜 보인다. 자신이 발견한 그 이미지에 사로잡혀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하는 작가의 고뇌가 수많은 은유와 미스터리 속에 감추어진 채 아름다운 소설로 표현되어 있다.
"친구, 카르마그에 오래 산 자네는 아를라탕의 보물이라고 들어 본 적이 있지. 꼬마 지아는 그걸 보고 싶어 했기 때문에 죽은 거라네, 그리고 나, 나는 반대로 그 보물을 보고 치유와 생명을 찾은 것이길 바란다네. 몇 주 있으면 그걸 알게 될 걸세, 게다라 아를라탕이 해 준 말이 내게 그걸 미리 알려 주었네. '내 보물 속에는 사람을 구하는 풀과 사람을 죽이는 풀이 있지.' 이 아를라탕의 보물은 우리의 상상력과 닮지 않았을까? 다양한 걸로 이뤄져 있고, 밑바닥까지 탐구하기엔 너무나 위험한 상상력 말일세. 사람은 그것 때문에 죽을 수도 있고 살 수도 있지" [아를라탕의 보물 중에서]
알퐁스 도데 안에서 평생 떠나지 않았던 프로방스의 목가적인 이미지, 그 이미지가 전쟁터와 같은 파리의 삶에서 그를 지탱하게 해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그 이미지 때문에 그는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한 채, 그것에 끌려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그 무언가를 추구하며 살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에게 프로방스의 이미지는 또 다른 아를라탕의 보물이 아니었을까?
알퐁스 도데의 단편집이 현대문학 단편선으로 출간되었다.
알퐁스 도데의 대표작 [별]등을 포함해 스물 다섯편의 단편이 수록되어있는데,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된다는 [아를라탕의 보물]도 담겨있어 그 가치가 더욱 빛나는것 같다.
수록된 작품들 대부분이 작가 특유의 서정적 문체와 프랑스 지방의 아름다운 풍경묘사등을 담고있어 읽는 재미가 있었고, 풍자와 해학적인 서술이 시간가는줄 모르게 한것 같다.
알퐁스 도데. 아주 낯선 이름은 아닐 것이다. 가장 잘 알려진 그의 작품 <별>을 아는 이라면 반가웠을 저자의 이름.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스물아홉 번째 <알퐁스 도데>에는 <별>을 포함한 총 스물다섯 편의 단편이 담겨 있다. 크게 <풍차 방앗간 편지>, <아를라탕의 보물>로 나눠져 있는데, <아를라탕의 보물>은 국내에서 첫 선을 보이게 되었다. 기대감을 갖고 읽기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조곤조곤 이야기 들려 주듯 편안한 문체가 인상적이었다. 슬픈 이야기인데도 풍자를 이어갔고, 감동 또한 놓지 않고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달했다. 괜히 세계적인 문학 거장이 아니었다.
아닐세, 아니야. 이보게들. 우선 가서 풍차 방앗간에 먹이를 줘야지…… 생각 좀 해 보라고! 풍차가 아무것도 못 먹은 지 아주 오래됐거든!
가엾은 노인이 밀 포대를 칼로 찢어 열랴, 낟알이 빻아져 뽀얀 밀가루 먼지가 천장까지 휘휘 날아다니는 동안 회전 숫돌을 살피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을 보며 우린 모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지요.
- 코르니유 영감의 비밀 중, 일부 발췌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건 마을 사람들 뿐만 아니라 코르니유 영감을 만난 독자들 또한 그러했을 것이다. 마음을 적시는 서정적인 문체가 너무 좋았다. 알퐁스 도데의 글을 읽고 있으면 마치 프로방스에 있는 듯했으니까. 아주 소중한 책을 좋은 기회를 통해 얻게 되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다.
삶에 지치고, 어디론가 떠다고 싶고, 누군가의 조곤조곤한 위트 있는 위로가 필요할 때 기꺼이 언제고 꺼내어 보고 싶다. 누군가의 지친 손 위에 건네고 싶기도 하다. 조금은 건조하고 조금은 서늘해진 계절과 시대에 아주 촉촉한 위로가 되어 줄 것이다.
알퐁스 도데. 앙드레 지드. 헤르만 헤세. 알베르 카뮈. 그리운 이름들. 낯익지만 낯설고 그렇지만서도 그리운 것은 이 이름들과 함께 왔다 그냥 지나가버린 그 시간들 때문일는지. 얼마전 문학자이자 번역가로 널리 알려진 김화영 선생의 <행복의 충격>과 <여름의 묘약>을 연이어 읽으며 지중해와 프로방스라는 이름에 젖어들어, 정작 가보지도 않은 그곳이 그리운 고향처럼 느껴지고 있을 때 선생의 글에서 불쑥 튀어나온 '알퐁스 도데'라는 이름. 그리고 어딘가 가버린 줄 알았지만 여전히 멀지 않은 창공에 그저 잠시 구름 뒤에 가려진 것뿐이었던 그의 단편소설, <별>. 나는 부랴부랴 읽던 책을 내려놓고 인터넷 서점 창을 띄워 알퐁스 도데의 책들을 찾아보았다. 스물다섯 편의 단편에 벌써부터 가슴이 울렁거려 멀미가 날 것만 같다. 이렇게 좋은 멀미라면 백 번이라도 달게 받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꿈을 꾸게, 꾸라고, 가엾은 사람아! 내 자네보고 꿈꾸지 말란 소리는 안 하겠네…… 그 작은 북을 과감히 두드리게. 있는 힘을 다해서. 자네 모습을 보고 우스꽝스럽다 할 권리가 내겐 없어.' ?「병영의 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