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관한 이야기, 게다가 스코틀랜드가 무대라는 이유로 고른 책입니다. ‘뜯어진 책등’ 정도의 의미가 담긴 <The cracked spine>보다는 <희귀본 살인사건>이라는 우리말 제목이 이야기 줄거리에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직장을 옮기거나 심지어는 직종을 바꾸는 일도 수월하게 생각한다고는 하지만, 미국에서 생전 가보지 못한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서 새로 일을 시작한다는 것이 과연 쉬울까 싶습니다. 제목을 보면 셜록 홈즈나 포아르 탐정이 등장해서 범인을 추적하는 그런 줄거리가 연상됩니다. 하지만 <희귀본 살인사건>은 탐정 근처에도 못 가본 젊은 여성이 사건을 해결한다는 그런 이야기라서 약간 무모하다싶기도 합니다.
우리의 주인공 딜레이니는 미국 캔자스 주 시골농장 출신입니다. 캔자스 대학에서 문학과 역사를 전공했는데, 졸업 후에는 전공을 살려 위치타의 박물관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재정문제로 감원해야 하는 박물관 사정으로 일을 그만두는 바람에 새로운 직장을 구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누리망을 뒤지다가 에든버리에 있는 ‘The cracked spine’이라는 서점에서 낸 구인광고를 보고 연락을 취했다가 갑자기 취직이 결정되어 근무를 시작합니다.
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책방 주인의 여동생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것도 셰익스피어의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셰익스피어 초판 2절본의 행방과도 관련이 되어 있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범인으로 지목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강력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경찰의 역할이 너무 드러나지 않아서 강력사건을 다룬 다른 소설들과는 맥이 다른 점이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책벌레 딜레이니가 박물관에 근무하면서 몸에 밴 특별한 능력치가 사건 해결에 기여한다는 설정은 그리 나빠보이지 않습니다.
책을 읽어가면서 사건이 해결되는 과정보다는 딜레이니가 근무하게 된 ‘The cracked spine’이라는 서점을 중심으로 에든버러의 속살을 엿볼 수 있는 점이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년 전에 여행을 할 때는 늦게 도착해서 야간관광을 하고, 다음날 버스를 타고 로열마일을 거쳐 에든버러 성을 구경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니 에든버러의 속살을 제대로 엿볼 틈도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희귀본 살인사건>은 스코틀랜드 사람들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는 책읽기였던 것입니다.
우선 로열마일을 따라 나 있는 에든버러의 구시가가 ‘도시 위에 세워진 도시’라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구시가 아래는 지하에 골과 굴들이 미로처럼 엉켜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골은 일종의 골목인데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있는 아주 좁은 골목을 그렇게 부른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니 옮긴이가 우리말을 아주 적절하게 끌어다가 에든버러의 분위기를 잘 맞춘 것 같습니다. 지도를 찾아보니 ‘The cracked spine’이 있는 grassmarket은 로열마일의 바로 남쪽에 있는 거리였습니다. 에든버러는 책들의 수도 같은 곳이라는 표현도 나옵니다. 시내에만 서점이 50군데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말 ‘The cracked spine’이란 서점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딜레이니를 고용한 ‘The cracked spine’의 주인 애드윈 매컬리스터는 에든버러의 유서깊은 가문의 일원이고 다양한 유물을 거래하는 모임, ‘살코기 시장 묶음’의 일원입니다. 일종의 희귀한 물건을 거래하는 비밀결사와 같은 모임 같습니다. 살인사건의 원인이 된 셰익스피어 2절 초판본은 셰익스피어의 첫 작품집으로 1600년대 초반에 발간된 것으로 약 200부가 남아있는데, 대부분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을 정도로 희귀본이라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2절 초판본은 세상에 나오는 과정도 음산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유령이 많다는 스코틀랜드라서 가능한 일일까요? 어떻든 스코틀랜드와 에든버러의 속살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읽기였습니다.
딜레이니는 미국 캔자스 주 시골 농장 출신으로 캔자스 대학에서 문학과 역사를 전공하고 위치타의 박물관에서 일해왔다 눈에 띄는 빨간 머리가 늘 신경쓰이고 책 속의 인물들이 말을 걸어오는 통에 잠깐씩 멍해지기도 하지만 도서관과 박물관처럼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서 책과 유물에 빠져 있을 때 최고의 행복을 느끼는 책벌레이자 애서가다 그런 그녀가 박물관의 인원 감축으로 갑자기 해고되어 무언가 새로운 것을 갈망하던 바로 그때 에든버러의 책방 구인 광고가 딱 맞게 날아와 꽂힌다
책 속에서 떠나는 여행은 너무나 익숙하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모험이라곤 해본 적이 없는 그녀는 아침에 에든버러로 취업 이주를 결심한다 생활 터전이 바뀌는 엄청난 변화를 감당해야 하지만 그곳만큼 자신에게 잘 맞는 일자리도 없다고 생각했다
소설 초반에는 딜레이니가 이국의 낯선 도시에 도착해 겪는 문화적 충격과 흥분 새로운 직장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생동감 있게 그려진다 여행 책자로만 보았다너 에든버러의 고성들 어느 하나 예술 아닌 것이 없는 건축물 특색 있는 골목과 상점 그리고 그 속에 깃들어 있는 신비로우면서 무시무시한 이야기 달라진 자동차의 통행방향과 종종 알아들을 수 없는 스코틀랜드 방언도 그녀가 적응해야 하는 것들이다
희귀본 살인사건은 책방 직원 딜레이니가 살인사건 이후 스스로 탐정이 되어 낯선 도시를 누비며 사건 현장을 조사하고 이웃을 탐문하며 혐의가 있을 법한 인물들을 찾아다니는 과정을 거치면서 흥미진진한 추리소설의 골격을 갖추게 된다 딜레이니가 직업적인 탐정ㅇ이나 전문 수사관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라는 점 살인사건을 다루더라도 폭력적이거나 자극적이지 않고 사건의 스케일이 크지 않으며 소박한 공간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희귀본 살인사건은 전형적인 코지 미스터리 소설이다 더욱이 문학과 역사 속 일화들이 촘촘히 얽혀 있고 이방인의 눈으로 오래된 도시의 여러 공간을 새롭게 발견하며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 사이에 유쾌하고 다정한 교감이 일어난다는 점에서 더없이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작품이다
딜레이니가 사건의 진상을 밝히려는 이유는 살인자를 알아내고 잃어버린 책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자신의 새 직장을 지키고 새로 생긴 친구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 과정에서 에든버러가 새로운 고향이 되고 그녀가 새 사회의 진정한 일원으로 받아들여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독자로서 흐뭇한 일일 터이다
'코지 미스터리(cozy mystery)'라는 장르가 있다. 기존의 추리 소설과 달리 형사나 탐정이 아닌 평범한 시민이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이고 사소한 사건을 해결한다. 가끔 살인이나 절도, 방화 같은 묵직한 사건을 다루기도 하지만 본격적인 추리 소설처럼 전개가 촘촘하고 추리가 치밀하진 않다. 주인공의 연애사나 주변 사람들의 일상 등 사건 해결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이야기가 자주 끼어드는데 그 점이 또 매력이다.
페이지 셸턴의 <희귀본 살인사건>은 전형적인 코지 미스터리 소설이다. 미국 캔자스 출신의 딜레이니 니콜스는 우연히 본 구인 광고에 이끌려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 있는 한 고서점에 취직한다. 유서 깊은 도시에서 좋아하는 책에 파묻혀 생활하게 되었다는 기쁨도 잠시. 고서점 주인 에드윈의 여동생 제니가 잔인하게 살해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제니가 생전에 에드윈으로부터 셰익스피어 초판본을 받았고, 약물을 구하기 위해 셰익스피어 초판본을 팔려고 하다가 살해를 당했다는 의심이 제기되면서 딜레이니는 뜻하지 않은 범인 찾기에 휘말린다.
셰익스피어 초판본은 셰익스피어가 세상을 떠난 후, 셰익스피어의 친구 두 명이 2절판으로 간행한 최초의 셰익스피어 전집이다. 현재 200여 권밖에 남아 있지 않고 모든 판본의 소재가 밝혀져 있어 고서 수집가들 사이에선 다이아몬드보다 귀한 취급을 받는다. 소설에서 셰익스피어 초판본에 관해 나오는 설명은 이 정도다. 소설의 나머지는 셰익스피어 초판본이 아니라 딜레이니가 에든버러에서 살 집을 구하고, 새 직장에 적응하고, 킬트가 어울리는 멋진 남자를 만나 데이트하는 과정에 더 충실하다. 살인 사건을 제외하면 미국 여성의 영국 생활을 그린 일상 소설로 봐도 무방하다.
미스터리 소설로서의 매력이 약한 건 아쉽지만 소설 자체는 흥미롭다. 동경하던 나라에서 새 직장을 구하고, 새 집을 구하고, 새로운 동료들을 사귀고, 새로운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져서 잔뜩 신나 있는데 때마침 일어난 살인 사건 때문에 모두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얼마나 오싹할까. 전형적인 코지 미스터리 소설답게 아주 안락하고 포근하게 결말을 맺으니 걱정 말고 읽어보시길.
미국의 박물관에서 일하던 주인공이 직장을 그만두고 스코틀랜드의 고서점에서 일하는 업무에 지원해 모험같은 새 출발을 한다.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고서점 사장의 문제 여동생이 살해당한다. 그들이 확보했다고 하는 세익스피어 4절 초판본도 사라진다. 희귀본 때문에 죽게 된 것일까.?
예전에 드라마에서 '초판본'에 대한 관심을 보고 놀랐던 적이 있다. 나에게 책은 그냥 '책의 내용을 전달해 주는' 책이었던지라 판본에 대해 알지도 못했다. 지금도 여전히 가리지는 않지만, 그 심리를 이해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보물찾기와 같은 이 책의 내용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물론, 꿈같은 이야기이고, 미스터리 소설의 관점에서 본다면 뭔가 허술한 느낌. ㅎ
읽고 난 후, 에든버러에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만...
*밑줄
그래, 스코틀랜드는 모험과 잘 어울리는 곳이지만 사악한 기운이 떠도는 곳이기도 했다. 어떤 일을 겪게 될지는 곧 직접 알게 될 터였다.
"에든버러는 책들의 수도 같은 곳이에요.
"정말 그래요. 시내에만 서점이 50군데 이상 있는 것 같아요. 그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죠."
분명 매우 억지스러운 이야기였다. 하지만 믿고 싶기도 했다. 목소리들이 안내해주는, 마법의 책들이 있는 장소.
"이건 그냥 물건이야. 사람만큼 중요한 게 어디 있어. 그 반만큼도 안 중요하지."
Q. 예상했던 내용과 실제 내용의 차이?
A. 제목에서부터 살인사건이라고 명시되어 있었기 때문에 책 초반부터 누가 죽을까, 누가 범인일까 하며 희생자와 범인을 먼저 탐색했었지요. 그리고 셰익스피어 희귀본과 살인사건은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궁금했어요. 책 초반의 흡입력이 좋아서 술술 읽었습니다만, 책을 다 읽고나니 아쉬운 부분도 많았습니다.
Q. 책을 읽으며 생각했던 것?
A. 소설 내내 등장하는 것이 셰익스피어 초판 2절본. 그런데 굳이 생각해보자면 꼭 셰익스피어가 아니었어도 상관없었겠다 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소재의 쓰임이 그저 그랬습니다. 마치 셰익스피어 초판 2절본이 살인사건의 매개로 이용된 것에 그쳤다면, 이 책에서도 셰익스피어가 그저 소재의 하나로 이용되었을 뿐이란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지요. 소설 초반에 햄릿이라는 인물도 나오기에 활약상이라거나 실제 희곡 속의 인물과 비슷한 접점같은 것을 기대했습니다만, 그 조차도 그다지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게다가 이제 막 사건의 장소로 이사 와서, 일을 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여주인공이 주변 사람들보다 사건을 너무 열심히 캐고다니는 모습이 전혀 공감이 가지 않았달까요(오지랖이 넓..). 희생자가 된 사람 또한 제대로 등장조차 하지 않은터라, 안타까움이 느껴질정도의 심적 동요도 없었습니다. 사건도 너무 급하게 마무리 지은 느낌이 들고 말이죠.
또한 스코틀랜드 억양을 살리기 위해 번역가가 열심히 아이디어를 내서 옮긴 것도 느껴졌지만, 그 아이디어도 조금 아쉬웠습니다('야' 라고 대답하는 것이나 '색시'라고 표현하는 것도..). 차라리 한 지역의 사투리를 그대로 쓰는 편이 낫지 않았으려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Q. 이 책의 미래 독자에게
A. 셰익스피어라는 소재에 혹해서 읽은터라 아쉬움이 많았던 소설이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초반 흡입력은 좋은 소설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제가 기대를 너무 많이 한 터라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도 많았을테고 말이죠.
나는 매혹적인 물건들, 즉 책과 유물처럼 나를 매혹시키고 나에게 말을 거는 물건이 가득한 곳에 있어야 하고 그런 곳에서 일해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미국 캔자스 위치타의 박물관에서 일하던 딜레이니는 갑작스러운 감원 해고 통보를 당하고, 우연히 영국의 한 서점에서 직원을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영국의 ‘갈라진 책’ 서점에 취업을 하게 됩니다.
‘갈라진 책’ 서점의 주인인 에드윈은 자신의 동생인 제니에게 전세계에서 희귀품으로 알려진 셰익스피어의 2절 초판본 책을 맡겼다는 얘기를 하고 그 책을 경매에 내놓기 위해 같이 경매장으로 가자는 제안을 합니다.
하지만 귀중한 초판본을 가지고 있는 제니는 나타나지 않고, 경찰에게서 제니가 살해당했다는 얘기를 듣게 됩니다.
영국으로 오자마자 고용주의 동생이 죽게 된 사건과 만나게 된 딜레이니는 직접 제니의 죽음을 조사하기 시작합니다.
제니가 계속 마약에 찌들어 살았고, 제니가 살던 건물주가 마약 공급책이었으며, 제니가 마약 값을 제대로 갚지 않아, 건물주가 제니를 죽이고 그 책을 팔아 마약값으로 대신하려던 것을 알아내게 됩니다.
건물주는 그 책의 가치를 확실히는 모르고 오래된 책이니 나름 가치가 있을 것으로 생각해서 제니에게 넘기라고 했지만, 오빠에게서 맡아놓은 책이 귀한 것임을 알았던 제니는 집의 매트리스에 숨겨 놓고, 건물주에게는 책을 넘기지 않는 과정에서 살해당한 것이었죠.
제니의 집을 조사하던 딜레이니가 책을 찾아내자마자 건물주가 딜레이니를 죽이고 책을 빼앗으려 하지만, 딜레이니의 영국 친구들이 도와줘서 위기를 모면하게 됩니다.
셰익스피어 2절 초판본에 대해서 이야기가 진행될 거라고 생각하고 책을 읽었는데, 책에 대한 얘기는 없고, 다만 비싼 물건으로만 인식되어 소설 속에 등장하는 것이 의외였습니다.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지만, 속도감도 없고 의외로 지루한 추리소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