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팰런 저/김미선 역
김상욱 저
웬디 미첼 저/조진경 역
김상욱 저
재단법인카오스 기획/이강영,다니엘 리,김범준,김갑진,조세형,류형돈,심원목,김상욱,한상근,천현득 공저
원종우,김상욱 공저
작년의 일이다. 연말이 다가오니 슬슬 무슨무슨 어워드, 하는 것들이 보였다. 멋들어진 상패와 인증받은 마크를 보고 있자니 쓸쓸함이 밀려왔다. 나도 한 해 동안 열심히 달려왔는데 내 손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니,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조금 허황되지만 작은 트로피를 만들기로 했다가 자금 사정으로 인해 중단되었다. 그냥 크리스마스 선물이나 하나 사고 말지. 아무튼 그런 일이 있었다.
또 지난 번에는 교보문고를 갔는데, 입구 가까운 매대에 눈에 띄게 진열된 책들은 죄다 유명한 책이었다. 언니와 함께 서점을 돌아다니며 이 책은 어떻고, 저 책은 어떻고 얘기를 나눴다. '요즘 이 책은 다들 엄청 읽더라?', '저 책은 드라마 제작 확정이래.', '이 작가님은 또 책을 냈네.' 신간이었지만 이미 여러번 이야기가 들려오던 책들이었다. 그러나 이미 그런 종류의 베스트셀러에는 여러번 데여봤기 때문에 구매하지 않았다. 대신 내 관심사가 있는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구석에 숨어있던 디자인/예술 분야를 찾아가며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을 했다. 분기별로 나오는 신간이 엄청날텐데, 매번 보여지는 책들만 노출되다보면 유명하지 않은 작가는, 수상하지 못한 작품은 영원히 빛 보지 못하는 걸까.
11월 북클러버 도서로 해당 책을 고른 이유는 위 내용과는 관계가 없다. 우연히 SNS에서 관련 글을 보았고, 책 내용의 일부를 인용한 글귀가 마음에 들었을 테다. 관성적으로 책 이름을 확인한 뒤 별 생각없이 북카트에 담아두었다가, 내 분야 말고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책은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던 찰나에 눈에 띄었을 뿐이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내용 한 줄 모른 채 고른 책이다.
'각자의 넘버 원'이라는 말로 시작을 열어보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넘버 원'이라는 표현은 잘못 되었다. 내 인생에서 한 권을 고르는 게 아니라 올해의 책을 고르는 것이니까. 게다가 한 권만 고르는 것도 아니다. 과학 분야에서 한 권, 비과학 분야에서 한 권, 그러니까 총 두 권을 고른다. 아는 책도 있고, 모르는 책도 있다.
소개되는 책들은 매력적이다. 주목을 크게 받았-다-던 책이 소개되면 그럼 그렇지, 싶다가도 전혀 모르는 책의 소개글을 읽으며 흥미를 느끼고 있자니 내가 모르는, 내 시야가 닿지 않는 곳에 있을 모르는 책들이 그리워진다. 읽었다면- 내가 좋아-했을 책들. 나는 종종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마주치지 못한 채 살아가는 나를 상상하곤 하는데, 어쩌면 그렇게 상상하는 내 모습 중 하나가 이 자리에 있는 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어느 세계선의 나는 이곳의 내가 모르는 무언가를 사랑하며, 그것이 없는 삶을 살아갈 나를 상상하고 있겠지.
그리고 정말로 어쩌면, 그렇게 살아가는 나는 우연으로, 또는 내가 모르는 누군가의 추천으로 또 어딘가의 내가 사랑하고 있을 무언가를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으로 생각을 마친다.
당연하지만 소개되는 모든 책이 그렇게까지 매력적인건 아니다. 아무래도 취향... 이 있다보니까 그리고 과학과 디자인은 어쨌든 별개의 분야이기도 하고(이런 말을 하면 꼭 그렇게까지 별개는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나타나던데 나는 모든 것은 이어져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게 아니다) 나의 경우는 읽는 책의 장르가 무척 한정적이기 때문에, 설명을 들어도 눈길이 가는 책은 따로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취향을 엿볼 수 있다는 점, 그 사람이 왜 그 책을 골랐는지 그 선택의 기준을 알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의 묘미가 아닐까. 특히나 '과학자'라는 직업에 한정된 사람들이라는 것도 상당한 흥미 포인트이다.
나와 다른 삶을 살았던 타인의 선택을 지켜보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데, 여기에 설명까지 곁들여진다면 두 배로 흥미로워진다. 우리는 전부 각자 다른 경험을 하며 살아왔고, 다른 프로세스로 사고하며 살아간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는데, 단순히 배움의 깊이 뿐만 아니라 머릿속에 어떤 지식이 담겨있느냐에 따라서도 보이는 것이 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같은 것을 보면서도 다른 정보를 캐치해내고, 다른 부분에서 감동한다. 각자가 꼽는 올해의 책, 이라는 주제는 단순한 개인의 취향을 넘어서 그들이 책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시선, 이 시대에 어떠한 가치를 추구할 것인지와 같은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사진을 찍을 때 어느 부분을 클로즈업 하는지, 그림을 그릴 때 어떻게 묘사하는지, 글을 쓸 때는, 묘사를 할 때는, 그리고 아이디어를 전개하는 것에서도. 한 분야의 숙련자는 아마추어의 작업물을 보고 그들이 어떤 콘텐츠에 익숙한지 알 수 있다고 한다. 그 정도는 아니겠지만 확실히 SNS에서 유행하는 분위기의 작업물에 익숙한 사람들이 디자인한 결과물에는 그 느낌이 보인다. 이것을 일종의 나이테 같은 거라고 봐도 좋을까.
다시 책 얘기로 돌아오면,
이 리뷰를 쓰면서 확인해 보았는데, 18년 4월 출간작이라고 한다. 올해의 책이라고 말했으니 집계는 그 전년도에 진행됐을 것이다. 그러면 17년도 한 해동안 읽은 책이라는 것인데, 5년 전에나 유효했던 내용이라는 점은 유의하고 보아야 할 것 같다.
5년전이면, 내가 막 이 회사에 입사했을 때로, 일년에 한 권의 책은 커녕 웹소설만 주구장창 읽고 있었을 때다. 그것을 감안하더래도 20개의 소개된 책 중에서 이름을 들어본 것이라고는 드라마로 제작되었던 단 하나뿐이다. 이렇게까지 내가 책에 관심이 없었나. 소개된 내용을 들어보면 제법 이름있는 책들 같은데, 겨우 한 권, 그마저도 책이 아니라 드라마 이름으로 기억하는 그 한 권 뿐이라는게 적잖게 충격이었다. 이것이 책을 읽는 사람과 읽지 않는 사람의 차이란 말인가.
한 편으로, YES24에서 투표했던 올해의 책 목록이 생각났다. 그래도 하반기에 뺀질나게 온라인 서점을 들락날락한 덕분일까 제법 익숙한 이름들이 곳곳에 보였다. 그래도, 여전히 모르는 이름들이 한가득이다. 이건 내가 예술 분야 한정으로 책을 골라 담았기 때문도 있겠지만, 그런 생각을 한다. 대충 이번 년도에 90 조금 넘는 돈을 책에 썼는데 이렇게 쓰는 사람도 '올해의 책' 후보조차 모르는 것들이 태반이다. 그렇다면 그 후보에조차 오르지 않은 책들은 누가 알아주는 걸까.
책은 실물로 보고 사야한다고, 전에는 도서관에서 책 표지 한 번 보고, 책 소개글을 읽고, 목차를 보고 책을 고르던 나는 커서 편리함을 위해 인터넷 서점을 애용하는 사람이 되었다. 서점이나 도서관이 멀어 시간을 내서 멀리까지 나가야한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였다. 잘 시간도 없는 사람이 시간을 내긴 무슨.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사려면, 원하는 책의 이름을 알고 있어야 한다. 키워드로 검색해서 책을 찾는 사람이 있을까? 웹 소설쪽에서는 종종 보였는데 일반 서적은 잘 모르겠다. 이벤트 페이지에서 책을 만날 수도 있다. 아니면 메인에 뜬 베스트 셀러 책을 구경할 수도 있다. 결국 보여지는 것은 소수의 프로모션 책들 뿐이다.
계속해서 강조하지만 타인의 추천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단순히 누군가의 '추천'으로 이미 검증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기 때문은 아니다. 나와는 다른 기준을 가진 사람이 고른 책을 읽으며, 내가 알 길이 없었던 어떤 작품을 만나는 것은 늘 보여지는 것들만 보여지는 세상에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추천받은 책을 모두 읽는 것은 아니지만, 이름이라도 들어본 책이 새롭게 늘어나는 것은 확실한 즐거움이다.
이 책을 이번 달 초에 읽었다가 서평 쓰는 것을 미루고 미뤄 결국 마감일이 다 되어서 쓰게 되었기 때문에, 솔직히 내용의 대부분은 이미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목차를 보려고 YES24 판매 페이지에 들어갔다가, 평점이 6.6인 것을 보게 되었다. 포인트나 받으려고 대충 매긴 평점들은 대개 5점대를 멤돌기 마련인데, 흥미가 생겨 리뷰란을 들어가 보았다. 예상대로 지적받는 부분이 먼저 보였고(깊이감이 없음),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은 보여지는 평점에 비해 호평이었다는 점인데, 다른 부분 보다 '어쨌든 호기심을 효과적으로 자극하는 책' 이라는 말이 인상깊다. 별점은 3점인데, 리뷰어는 성공적인 책이었다고 한다. 17권의 모르는 책 중에 12권을 장바구니에 담게 되었다고. 별점의 근거는 개인적인 성공의 여부와 별개로 한계가 있는 책이라는 점에 있는 것 같다.
한편으로, 나는 이미 마음속에 5점을 줄 생각이었는데, 이것 또한 개인적인 성공 여부와는 별개로 그냥 무난한 책이었기 때문이다. 위의 평점을 보고 나니 너무 가벼운 마음으로 평점을 매기는 것 같다는 기분도 드는데, 어쨌든 각자의 평점 기준이 있을테니까(나의 경우는 기본 평점을 5점으로 시작해서 거슬리는 게 있을 때마다 0.5씩 깎는다). 추가로 말하자면 나는 19권의 모르는 책 중에 5권 정도 흥미를 느꼈고 0권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런 나는 5점이란 말이지... 이 또한 흥미롭다.,
《과학자를 울린 과학책》
황정아 외 9명 지음 | [바틀비]
과학자들의 내밀한 생각을 발견하는 즐거움
틈틈이《과학자를 울린 과학책》에서 여러 저자들이 쓴 서평을 읽어보았다. 저자들은 모두 물리학 혹은 생물학분야 전공자들이다. 이제는 어느 누가 이과 전공인 사람들보고 필력이 약하다고 할 수 있을까. 저자들은 모두 편견과 달리 인문적인 소양과 필력을 인정받은 필자들이다. 이제는 문과 전공인 사람들도 과학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이해를 갖추도록 요구받는 세상이다. 이과 전공인 사람들 역시 인문적인 소양이 필수적인 사회가 되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교육 현실에서 이과와 문과를 구분하는 제도는 한 사람의 인생에서 꽤 오랫동안 결핍에 대한 자기 위안이나 변명이 되기도 했다. ‘나는 수학을 못하니까 문과, 혹은 과학을 싫어하니까 문과다’라는 식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기피사유’가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다.
이과 분야를 공부한 사람이 신춘문예로 등단한 사람도 있고, 문과 공부를 한 사람이 양자 역학 공부에 도전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사회는 그만큼 다원화되고 새로운 변화를 맞고 있다. 이 책 《과학자를 울린 과학책》도 이런 분위기의 연장선에서 나온 기획물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이 책의 출판을 기획한 과학책방 ‘갈다’의 이명현 대표는 이미 학창시절부터 별을 좋아하던 ‘덕후’였지만 문예반에서 문학을 읽고 글을 쓰며, 문장을 다듬어온 인물이기도 하다. 물론 다른 저자들도 글쓰기에 남다른 감각을 가지고 있으며 흔히 아는 이공대생들과는 다른 학창시절을 보냈으리라 생각한다. 이들은 다만 시를 읽고, 소설을 읽는 일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뿐일 것이다. 이 책의 필자 10명은 각각 두 권 씩의 책을 골라 서평을 쓰는 기회를 마련했다. 제목은 ‘과학자를 울린 과학책’이지만 반드시 과학지식을 전달하는 과학책만 고른 것은 아니다. 소설이나 과학사에 감춰져 있던 여성과학자들에 대한 논픽션 도서도 있다.
서평은 독후감과는 달리 이야기하는 책에 대해 ‘거리두기’라는 객관화를 요구한다. 예를 들면 ‘나’라는 주어를 많이 쓰기 보다는 ‘필자’라고 한다던가 하여 스스로를 대상화, 객관화하는 노력을 의도적으로 투입한다. 하지만 완벽한 객관화라는 것이 가능할까? 그리고 이 ‘거리두기’라는 방식이 ‘필자’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 안되는 것일까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어떤 글이든 대상이나 현상에 대한 필자의 견해와 문제의식이 표출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완벽한 객관화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는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든 글에서 드러나게 마련이다. 이 책에 실린 20편의 글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서평들은 무엇보다 책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문제의식을 책과 결부시킨 글들이다. 바로 저자 자신들의 어쩌면 부족했던, 혹은 부끄러웠던 과거의 경험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솔직함이 내게는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다. 과학자들이 자신의 내밀한 생각을 표출하고 독자가 이들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저자 각각의 개별적인 구체성을 통해 사회현상과 주제에 대해 필자가 갖는 문제의식이 내게는 피부로 더 잘 다가왔다.
서평의 기본 목적은 서평을 읽는 이가 해당 책을 읽게 하거나 혹은 읽지 않아도 되도록 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저자들은 ‘자신들을 울렸던 책’을 고른 만큼, 독자도 이와 같은 책을 읽게 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적일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나는 이미 이 책에 소개된 몇 권의 책을 읽고자 온라인 장바구니에 책 몇 권의 리스트를 만들어 두었다. 과학자/과학저술가 이전에 ‘생활인’으로서 이들을 이과와 문과를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 역시 문이과 제도가 만들어 놓은 편견 속에서 나의 무관심과 무능에 대한 변명으로 이 제도를 끌여들였다는 비판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무엇보다 독자로서 저자들이 부러웠던 점은 이들이 전문지식을 통해 사회에 기여를 한 부분보다는 각 필자가 감명을 받고 각자 큰 영향을 받은 책들이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이 책들을 읽은 후에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된 것이다. 이들에게 큰 영향을 준 책들을 읽는다는 것은 이들이 세상을 보는 관점에 변화가 찾아왔다는 것, 그래서 삶의 의미가 한층 달라지고 더욱 깊어졌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그러면 어떤 책이 나를 변화시킨 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많지 않은 책을 읽으며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나는 어떤 책에 감동을 받고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어떤 책을 고르거나 제목을 볼때는 기대하는 바가 있다.
1. 정보전달인가? 설득인가? 감동을 주는 책인가?(나는 과학적 사실로도 감동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문학적으로 쓰여진 책보다 더 감성적이라고 느껴질때도 있고 …이 책이 과학책뿐만 아니라 비과학서적까지 다양하게 추천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한다.)등등이 있겠다.
그 다음으로 고려하는 사항은 2. 독자가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이 있다는 전제 하에 쓰여진 책인가, 아닌가? 가 있겠고. 어떤 경우에는 전자보다 후자가 더 중요하다. 1에서 아무리 엄청난 메시지를 전달하려 한다고 해도,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하는 책은 단순한 활자의 나열일 뿐이니까. 특히 해당 분야가 수학이나 과학일 경우에는 2가 더 중요한 사항이 되겠다.
뭐 2가 충족되지 않더라도 "읽을"수는 있겠다. 그냥 눈으로 글자를 스쳐 지나가는 행위라면 남들과는 다르게 누구보다 빠르게 읽어내려갈 자신이 있으니까.
그래서 거두절미하고 이 책에 대한 제 평가는요....
제목부터 완벽하게 오독 해 버렸다가 되겠다.
과학자를 울린 과학책 : 10인의 과학자들이 뽑은 내 마음을 뒤흔든 과학책
에서 울렸다는 말이 과학자들이 "엉엉 울었다"는 의미인 줄 알았다. 울기 위해서는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야 하니까. 부제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감동'을 기대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대차게 실패했다. 한 100페이지 쯤에서...'어라, 이거 뭔가 아닌데?'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아니 근데 표지에도 눈물표시 그려져 있지 않아?? 당연히 울 각오를 하고 펼쳐들었다고 나는 !!!!!
페이지를 넘길수록 내 마음은 건조기에 돌아가는 빨래마냥 바싹바싹 말라가기만 했다. 그리고 다시 제목을 읽었다. 내 마음을 뒤흔든. 그래 울린다는 동사는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일 수 있겠지 …나는 이 모호한 제목에서 배신감까지 느꼈다.
10인의 과학자들이 뽑았다는 것도 10명이 극찬한 단 한권의 책인줄 알았다.(그러면 차라리 그 책에 관심이 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힘든 일이다. 당장 나한테도 최고의 책 한 권을 꼽으라고 말하면 머릿속이 복잡해지니까)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 10명이 모여서 만든 리스트라니...그런거 안 궁금하다. 리뷰쓰는 와중에 하긴 뭐한 말이지만 애시당초 나는 남의 리뷰엔 관심없다. 똥인지 된장인지 일단 퍼먹어봐야 하고, 그 영화가 구린지 아닌지 뚜껑을 열어보기 전까지는 잘 평가하지 않는다. 물론 이러저러한 영화라는 말을 들으면 머릿속에 이미지가 그려진다던가. 편견이 생기기는 하겠지만 일단 남들이 백 번 "좋다"고 외쳐도 "그래서 뭐?"가 된다는 말이다.
책을 읽기 전 기본 정보라도 검색해 봤어야 했던 걸까? 알 수 없다. 어쨌든 뭔가 잘못 됐다는 것만 느껴졌다.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진 상태로 나는 계속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이 직업적 과학자는 아니고, 그렇게 될 필요도 전혀 없다. 하지만 과학자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좀 더 유용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 적어도 한번쯤은 자신이 '진짜로' 알고 있다고 믿는 '상식적 지혜'를 잠시 미뤄두고, 과학자들이 과연 어떻게 현실에 적용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보는 것은 어떨까.
과학자를 울린 과학책 : 10인의 과학자들이 뽑은 내 마음을 뒤흔든 과학책 P.125
합리적인 사고는 불필요한 비용을 막을 수 있다. 이건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생각보다 대중은 과학적 지식에 취약하다. 미국인 4명중 1명은 '지구가 태양을 도는 것'을 모른다. 그 중 인류가 동물로부터 진화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48%에 불과하다.
위의 통계는 2012년에 실시된 조사로, 다시 조사를 하면 다른 통계가 나올 수는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사를 접했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정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과학적 지식이 부족한 것이다. 이 리뷰를 쓰고 있는 나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과학자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어떤 걸까? 과학을 뜻하는 science는 scire에서 유래된 말로서 scire(안다) → scientia(아는 것, 지식) →science로 이어져 내려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무언가를 안다는 건 뭘까?
우리는 초등학교에서 작은 수에서 큰 수는 뺄 수 없다고 배운다.
중학생이 되면 음수가 있다고 배운다. 그러나 음수의 제곱근은 없다고 한다. 고등학생이 되면 사실 허수가 있다고 배운다. 갑자기 웬 수학 얘기냐고? 수학이랑 과학은 밀접하게 관련이 있지 않나? 그리고 당장 생각나는 비유가 이것뿐이다... 그럼 과학으로 돌아가 보자, 물은 전기가 통한다고 배운다. 하지만 더 배우기 시작하면 순수한 물은 전기를 통과시키지 않는다고 한다. 좀 더 배우면 약간은 통과할 수 있다고 한다.
과학의 특성 중에 과학의 잠정성이라는 놈이 있다는데 이건 새로 입증된 이론으로 인해 언제든지 다른 지식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성격이 있댄다. 과학에는 절대적인 지식이나 진리가 없다는 뜻이다. 글쓴이도 '유용하다'고 했지 절대적이다. 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절대적인 진리란 없으므로 생각하는 것을 멈추자고 하거나, 현재까지 내려진 판단들이 틀렸다던가 의미가 없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정보는 자신이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이해되고 재해석 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다.
그럼 우리는 어디까지 알아야 할까? 현재 시점에서 어디까지가 맞고 어디까지가 틀리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
글쓴이의 말마따나, 모든 사람들이 과학자가 될 수도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 기준을 정하는 건 어디까지 일까? 적당한 기준이 있다면 대중과 과학자 사이의 인식 격차를 좁히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인류가 동물로부터 진화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필요한 것이 단순한 '기술'과 '과학'적인 서술뿐이라면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데에는 사람의 판단이 필요하다. 판단....판단 하니까 말인데 책을 읽다 이런 구절이 나왔다.
20여년 동안 휴대전화 같은 외부 기억 장치에 전화번호 저장을 맡긴 덕분에 암기력도 형편없이 떨어졌다. 운 좋게도 인공 뼈를 몸에 받는 일은 없었지만, 치아는 부분적으로 인공물이다. 따져보면, 이런 나는 '사이보그'다.
P.17~18
나는 이 부분에서 너무 극단적인 논리의 점프가 아닌가 싶었다. 이게 뭔 소리래?? 당황스러웠지만 생각해보면 냉장고는 나온지 100년이 채 지나지 않았다. 스마트폰도 끽해야 30년이 될까말까 하다. 그러나 이런 패턴은 사람의 사고방식을 바꿔 놓는다.
나는 어릴때 가족과 둘러앉아 케이블에서 방영해주는 프로그램을 봤다. 드라마 한 편을 보기 위해 다섯개에서 열 개 내지의 광고를 봐야 했다. 지금은 9,500원을 내면(그보다 더 적거나 혹은 많이) 광고조차 보지 않아도 되는 세대를 살고 있다. 그럼 정말로 내가 프로그램 한 편을 보기까지의 시간은 줄었을까?
아니, 나는 수많은 영상 중에 무엇을 봐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이도 저도 결정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보지 않거나 부담감이 적은 유튜브 쇼츠 영상을 보기도 한다.
저장장치가 다루기 쉽고 용량이 많아질 수록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 줄어든다. 구글이나 네이버 검색 한 번으로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가나다순으로 사전을 뒤지던 세대보다 방법을 찾는 요령을 익히기 힘들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이보그인가? 인간의 몸에 있는 세포가 완전히 바뀌기 까지는 7년이 걸린다고 한다. 그럼 7년에 걸쳐 세포가 갈아끼워진 나는 7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인가? 판자의 조각을 계속 갈아끼운 배는 여전히 테세우스의 배라고 부를 수 있는가? 나라는 건 실재할 수 있나?
나는 생각을 깊게 하지 않으려 하는데 이렇게 끊임없이 생각을 하다 보면 정신병이 와버릴 것 같기 때문이다.(과학자들이 정신병을 앓고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내 뇌 용량이 여기까지 밖에 안된다는 말이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어떤 것을 근거로 내려야 할까? 과학? 철학? 신학? 수학? 문학? 놀랍게도! 나는 이 모든 분야에 대해 제대로 아는 바가 없다. 하지만 근거로 내세운다고 하면...역시 과학이 제일 그럴듯하겠지. 과학이란 단어가 들어가면 일단 그럴듯하게 들린다.
어쨌든 과학자와 대중 사이의 거리가 줄어야 한다는 생각은 갖고 있다. 그러나 나는 과학자만큼 알 수도 없고, 학교를 다닌지도 오래된 지금은 그나마 알고 있던 지식이나마 흐려지고 있는 상태이기도 하다. 그 사실을 인지 하고 있기 때문에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과학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은 하고 있고 ……어느 정도의 흥미도 있다.
그래서 과학 분야의 책이 많이 나왔으면 한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많이 나오면... 그 중 하나는 내 마음에 들거나 나를 이해시켜 주는 책이 있겠지.
어쨌든...이 책은 아니라는 점이다.
총평을 내자면, 주말에 드러누워 출발 비디오여행을 한 화 본 기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차라리 영화 한 편을 온전히 보는게 좋다. 군데군데 어떤 문장에서 흥미를 느꼈을 수도 있겠지만 나한테 '오 이거 나중에 읽어봐야지'라는 건 유의미한 생각이 아니다. 의미가 있으려면 결제 버튼까지 가야 한다. 그치만? 219페이지 까지 훑어내리면서 그렇게까지 끌리는 책은 없었던 것으로.....
-끝-
서평 수준의 깊이 있는 책리뷰를 제공하는 건 아니고 아니고 각자 재밌게 본 책과 짧은 내용 정리와 인용 등의 형식으로 과학자 및 여러 유명인들이 추천하는 책을 소개하는데 글의 수준과 재미는 각자 다르다. 리스트 참조할만 해서 메모로 적어둔다.
강양구(기자)
1. 휴먼에이지 - 인류세(anthropocene)의 이모저모를 기록한 작가 다이앤 애커먼의 책, 자연과 인공이라는 뿌리 깊은 이분법 비판
전세계 자연보호구역의 대부분은 그 곳에 살던 원주민을 쫓아내고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곳이다. 대한민국 국토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산림 대부분이 인공 조림의 결과물이다.
2. 섬에 있는 서점 - 개브리얼 제빈 : 섬에서 마야라는 2살배기 여자아이를 공동으로 키우는 이야기인듯.
김범준(물리학자)
1. 맥스 테그마크의 유니버스 : 중심주제는 평행우주
‘적대적 인공지능’은 안정적인 고정점(stable fixed point)이어서,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몰라도 변화는 결국 그쪽을 향할 것이라는 거다. 머나먼 미래의 인공지능은, 인류를 목적함수(objective function)의 구성요소로 고려할 이유가 없다. 사실 ‘적대적’이라는 표현도 필요 없다. 인류에게 아무 관심이 없는 인공지능이, 인류에게 선량한 관심이 있는 인공지능보다 더 성공적일 수밖에 없다.
2. 미스 함무라비, 문유석 - "저울 위에 올라선 진실의 배후"
김상욱(물리학자)
1. 인포메이션, 제임스 글릭
2.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 박준
송기원(화학자)
1. 빅 히스토리, 데이비드 크리스찬 ( 이거 5년 전에 읽었는데, 다시 봐야겠다)
2. 바깥은 여름 - 김애란
좋아서 이런 목메는 쓰라림들이 우리를 비껴갈 때, 나를 포함한 우리들이 타인의 불행을 바라보는 시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스쳐가는 시간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쓰라림을 겪는 인생과 이를 바라보는 주위 타인들에 대한 작가의 관찰력은 예리했다. 어쩌면 불행을 겪는 시간이 멈추고 다시 회복될 수 없는 것은 그 사람들을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강환(박물관장)
1. 솔직한 식품, 이한승
웹툰 <유사과학 탐구영역>에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콩을 갈아낸 다음 단백질만 추출한 용액을 염화마그네슘이나 황산마그네슘으로 응고시킨 변성단백질 덩어리인 두부는 웰빙 천연 식품인데··· 사탕수수 당밀이나 해초를 발효시켜서 추출한 MSG는 화학조미료란 말이지. 영어 이니셜로 되어 있으면 합성이고··· 알기 쉬운 우리말이나 한자 단어로 되어 있으면 천연물인가···.”
2. 냉정한 이타주의자(Doing Good Better) - 윌리엄 맥어스킬
이은희(과학저술가)
1. 생각한다면 과학자처럼 - 데이비드 헬펀드
2. 파크애비뉴의 영장류 - 웬즈데이 마틴
이정모(박물관장)
1. 수컷들의 육아분투기 - 이나가키 히데히로
2.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 김탁환
이지유(과학저술가)
1. 랩걸 - 호프 자런
2. 달리기의 맛 - 누카가 미오
정경숙
1. 숙주인간(This is your brain on parasiters), 캐슬린 매콜리프
2. 현대미술은 처음인데요-제시카 체라시
황정아(물리학자)
1. 로켓걸스 - 나탈리아 홀트
2. 힐빌리의 노래
10명의 과학 저술자들이 인상깊은 책을 소개하는데 일반적인 리뷰 형식을 띠지만 울릴만큼 감동책을 소개하는 만큼 비판적인 부분은 없고 칭찬일색이어서 읽은책조차 다시 읽고 싶게 만들고 당연히 못들어본 책은 뽐뿌가 강하게 온다. 여기서 읽은 책은 김상욱이 소개한 박준의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과 송기원이 소개한 김애란의 《바깥은 여름》황정아 소개의 《힐빌리의 노래》세 권 뿐이다. 읽으려고 사 두었지만 오래도록 못 읽고 있는 책은 《인포메이션》이다. 종이책이고 두꺼워서 모바일 환경에서 읽기가 적합지 않아 언제 읽개 될지 기약도 없지만 어쨌든 유명인이 추천하는 책을 추천하는 글을 읽기도 전에 사둔 나의 안목이 뿌듯하다.
DK(Dorin Kindersly 스페링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는 영국 있을 때 알게 되어 감탄을 마지 못한 포맷의 시리즈 책들을 출간하는데,특히 컬러 도판에 연결된 깨알같은 정보들로 가득한 꼼꼼한 여행서는 20여년 당시 독보적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요즘은 국내에서도 번역서를 많이 볼 수 있다 빅 히스토리를 한국말로 거대사라고도 하는데 번역이 어렵지도 않은 걸 굳이 길게 빅히스토리라고 할 필요가 있자 싶지만 어쨌든 말은 그렇게 굳어졌고 2016년에 DK 출간한 빅히스토리 번역판이 한국에서도 나왔는데 초딩6학년도 즐겁게 읽을 정도고 초3도 그림 위주로 열심히 보더라는 말을 보고 조카에게 사주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 아니지 내가 먼저 읽고 라는 마음이 들었다. 빅히스토리 책은 다른 책도 많지만 백과사전 식이고 퀄리티 있는 사진과 그림이 기대된다.
《섬에 있는 서점》과 《랩걸》은 이북으로 사둔 것 같은게 찾아봐야겠고, 《현대미술은 처음이데요》는 읽은 거 같기도 하고 다른 책과 헷갈리는 것 같기도 하다. 현대미술 관련 책을 몇개 읽었지만 아직 눈앞에 뭐가 보이는 게 없어서 헷갈린다. 모두 흥미롭지만 문유식 판사의 책을 여러권 가지고 있음에도 아직 접해보지 못한 저자인 채로 남은 저자의 또다른 책 《미스 함무라비》가 넘버1으로 가정 읽고 싶고, 늘 그렇듯이 먹는 것에 대한 탐구는 한번도 흥미를 떨어뜨리지 않았기에 《솔직한 식품》이 식욕과 독서입맛을 자극한다. 파크애비뉴의 영장류는 소재 자체가 흥미롭긴 한데 미국저자들의 강한 자아를 드러내는 스토리텔링과 와 탐사 저널리즘의 결합이 좀 사람을 질리게 하는 데가 있어서 좀 더 고민해봐야.
유일하게 별로 읽고 싶은 생각이 안든 책은 이정모 관장이 소개하는 《수컷들의 육아 분투기》다 이유는 단순히 수컷에게 필요한 책이라서. 책 제목은 소개하는 책이 과학책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딱히 과학책이라고 여겨지는 책들은 앞서 언급한 것 외에《숙주 인간》 《로켓걸스》《휴먼에이지》《맥스 테크마크의 유니버스》정도다. 네 권 모두 예스24 블로그나 다른 매체에서 소개된 적을 본 적 없어서 금광을 캔 기분이다.
강양구
휴먼에이지
섬에 있는 서점
김범준
맥스 테크마크의 유니버스
미스 함무라비
김상욱
인포메이션
운다고 달라지는 건 없겠지만
송기원
DK 빅히스토리
바깥은 여름(읽었음)
이강환
솔직한 식품
냉정한 이타주의자
이은희
생각한다면 과학자처럼
파크애비뉴의 영장류
이정모
수컷들의 육아 분투기
아름다운 그 이는 사람이어라
이지유
랩걸
달리기의 맛
정경숙
숙주인간
현대미술은 처음인데요
황정아
로켓걸스
힐빌리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