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레 요코 저/이소담 역
김경민 저
이규영 저
무레 요코 저/이소담 역
친한 언니가 다쳐서 병원에 있을 때 병문안을 가면서 손에 들고 갔던 선물입니다. 나이가 한 살 한살 먹어가면서 "늙어간다는 것"에 대해 좀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실감하는 것 같아요. 젊다고 해서 마음까지 젊은 건 아니고, 신체 나이가 늙었다고 해서 마음까지 늙은 건 아니듯이 인생의 나이는 어느 한 단면으로 판단하기엔 복잡다단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또 나이든 것을 실감하고요. 그저 오늘, 대체로 맑네, 하고 웃어봅니다.
오늘의 나이, 대체로 맑음
이 책을 살펴보기 전에..
한귀은
경상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로 문학을 가르치는 그녀는, 학생 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문학을 가까이 하길 바란다. 20세기에 한 시인은 “모두 병들었지만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라고 했지만, 21세기엔 “아무도 병들지 않았지만, 모두들 아프다.”라고 그녀는 진단한다. 이 환부가 없는 아픔에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치유의 시간만이 흐를 때, 문학이 삶의 나침반이 되어줄 수 있 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그리고 21세기 문학의 소명은 치유에 있다고 믿는다.
세상 대부분의 일을 책, 영화, 드라마, 음악으로 배웠다. 마흔 즈음부터 그 배우고 익힌 것을 몸소 실험하면서 인문학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다. 인문학으로 사랑뿐만 아니라 육아, 직장생활, 돈 쓰기나 쇼핑, 심지어 거절까지도 잘할 수 있다고 믿는 인문학 과격주의자이다. 감성만 있으면 늙어도 그냥 늙는 게 아니라고 믿는 감성 낙관주의자이며, 행복하지만 이 행복이 낯설어서 더 신이 나는 행복전향자이다. 그 외 고독능력자, 롤랑 바르트 신봉자, 작가 노희경처럼 쓰고 싶었던 인문학자이기도 하다.
2009년부터 2010년까지 KBS 진주 라디오에서 ‘책 테라피’(bibliotherapy) 코너를 진행했다. 책을 통해 스스로 자신을 보살피는 과정과 방법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이 시간을 거치면서 책이 얼마나 안전하며 또 은밀한 치유제인지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어 2010년 하반기에는 이별한 여자의 치유 과정을 담은 ‘문학치료의 (불)가능성’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 영화를 통한 위로와 이해의 메시지를 담은 에세이 『이토록 영화 같은 당신』을 펴냈으며, 그 외 저서로 『여자의 문장』,『하루 10분 엄마의 인문학 습관』, 『그녀의 시간』, 『엄마와 집짓기』, 『가장 좋은 사랑은 아직 오지 않았다』, 『모든 순간의 인문학』, 『이별리뷰』 등이 있다.
[예스24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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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내가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에 대한
굉장한 압박을 받은 적이 있다.
중년으로 접어들어 가면서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나이가 든다는 것이 뭔가 사회적으로 소외됨과
외형적인 변화 또한 나에겐 참 세월 앞에 장사없음을 보여주는
초라함을 남겨가는 것 같아 참 비참해진다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참 괜찮다라고 느낀적이 있었나를 묻는다면
사실 그동안 없었다.
연륜이 쌓여서 좋은게 인생의 다양한 경험을 통한
깊이와 철학이라고 하기엔
내 나이가 참 중간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듯 했다.
이도 저도 아닌 참 불편한 나이..
그런데 이 책에선 내 머릿 속을 환기시킬만한
참 좋은 터닝포인트가 된다.
눈부신 봄날만 봄날이 아니다.
그저 조금만 따뜻해도 된다.
손바닥만 한 양지만 있어도 된다.
숨 쉴 만큼, 함께 이야기 나눌 만큼의 바람만 있으면 된다.
그런 날이 많지 않아도 된다.
봄날이 그런 것이라면 중년을 넘어도, 더 나이가 들어도 간혹 와준다.
그게 생이다.
뭔가 기대하던 일을 조바심 내다가 낭패를 본 적이 많다.
그럴 때마다 기대에 대한 아쉬움보다 괜한 분노감도 든다.
이젠 안되는가 싶은 희망 잃은 내 가여운 모습을
나도 스스로 돌아봐지면서 나에게 봄날은 언제인가를
늘 기다리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눈부신 봄날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내 눈 앞에 펼쳐진 손바닥만 한 양지의 햇살을
난 보지 못하고 살아왔던 것 같다.
그래서 더 조바심나고 조급해 했던 것 같다.
내 몸과 마음의 풍경을 바라볼 여유없이
찬란한 빛으로 내가 더 빛날 수 있는 때만을
늘 기다리고 기다리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런 봄 날이 중년에 찾아와준다면 하는 마음에
뭔가 로또 1등 당첨되는 기분처럼
학수고대하는 내 바램이 헛된 기대가 되었다라고 좌절했던 순간들..
삶은 포기하기 이르고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언제까지 찬란한 봄날만 바라보고 있을 것인가.
그렇게 살기엔 내 생에 남은 시간들이 아까운 생각들로
허비되고 있다는 것이 참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나이 사십을 바라보면서
어중간하지 않을 만큼 내가 몫을 하며 살아가고 있나 싶지만
그런 걱정과 근심은 내가 가진 남은 나날들 속에서
참 무의미한 것들이었음에
나는 지금의 나로 충실히 살아가고 싶다.
늘 맑을 순 없겠지만, 대체로만 맑았으면 하는
오늘의 나이..
나이 듦에 익숙해지려 애쓰지 말고
지금을 편안히 느끼며 하루 하루 살아가자.
아는 사람의 글을 읽는 건 새롭다. 그 사람을 만나는 것과는 또다른 느낌이 든다. 행동과 말에서 미처 담지 못한 이야기를 글은 담아낸다. 그리고 조금 더 정돈되고 단정하다. 혹여나 글에서 가식이나 거짓이 묻어나더라도 결국 그것 또한 글쓴이 자신이다. 그렇기 때문에 글은 행동과 말 만큼이나 큰 표현력을 가진다.
<오늘의 나이, 대체로 맑음> 한귀은 저자는 아는 사람이다. 말 그대로 아는 사람. 나는 일년 정도 그녀에게 수업을 들었다. 비록 그녀는 나를 기억하지 못할 거지만, 나는 분명히 기억한다. 저자의 강의는 대학 내에서 인기가 많았고 수업 또한 재밌었다. 다른 노교수들보다 고루하지도 않고 진부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강렬하게 남아 있는 하나, 교내 영상 공모전에서 심사위원이었던 그녀가 1등의 자리를 비워놓고 내게 2등을 줬다. 나보다 나은 사람이 없었지만, 1등 받을 퀄리티는 아니었다고 했다. 그리고 무엇이 부족했는지 조언해줬다. 언뜻 기분 나쁘게 들릴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 경험을 통해 성장했다. 돌아보면 정말 고마운 일이다.
<오늘의 나이, 대체로 맑음>은 공적으로 알던 저자 한귀은의 철저한 사적인 이야기다. 그래서 낮설다. 교단에서 당당한 모습의 그녀와 달리 아들을 기르는 평범한 주부 혹은 중년의 여성이 책에 담겨 있다. 조금씩 쳐지는 피부, 날이 갈수록 적어지는 머리 숱, 예전 같지 않은 기력, 허무감 등 많은 것들이 그녀에게 다가온다. 갑자기 찾아오는 사춘기와는 달리 중년의 허무함은 하루마다 조금씩 스며든다. 그러나 저자는 자신이 현재 겪고 있는 중년의 쓸쓸함을 토로함과 동시에, 한편으로 담담한 통찰을 보여준다. 일과 가족, 관계와 사랑 등에서 새로운 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비춰주고 있다. 아직 청춘의 마음을 잃지 않은 감수성으로 40대 여성의 삶을 응원하고 있다.
저자 한귀은은 기존에 사랑에 관한 전작을 꽤 냈다. 그때의 책이 전문적이고 객관적이었다면, 이번 책은 현실적이다. 그렇지만 둘 다 저자의 모습이다. 둘 중 어느 쪽이 더 났다고 선택하는 것조차 모순이다. 다만, 인간적인 모습이 보이는 이번 책이 참 살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