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버거 저/김현우 역
잉글리시 페이션트/마이클 온다치/박현주/그책/2018
영화로도 만들어진 소설 잉글리시 페이션트입니다. 주인공 알마시 백작은 헝가리 출신의 실존 인물이며, 영화 속에 그려진 것과 같은 대외적인 활동을 하기는 했지만 클리프톤 부인과의 연애는 완전한 허구입니다. 실제로는 동성연애자일 거라는 추측이 강하다고. 그 시대에 그 나이의 부유한 사람이 결혼하지 않은 것을 보면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이야기다 싶습니다. 실제 스파이 활동으로 의심을 받기도 했지요.
영화와는 달리 소설에서는 킵의 비중이 상당히 크며 그의 과거사에 대한 설명도 꽤 상세한 편입니다. 동양인으로서의 정체성으로 원폭에 대해 분개하는 장면들도 나오지요. 물론 지뢰 제거를 위해 갖은 고생을 하는 장면 역시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데이비드 카라바죠 역시 영화와는 달리 실제로는 이전부터 주인공 해나와 알고 있는 사이로 해나가 삼촌이라고 부르는 사람입니다. 아버지의 지인으로서 꽤 친밀한 사이로 나오죠.
꼭히 알마시 백작이 아니더라도 있을 만한 이야기. 영화는 그래도 킵과 해나가 다시 만날 것처럼 끝나지만, 소설을 보다 냉정하게 각자 고향으로 돌아간 해나와 킵이 각자 삶을 꾸리는 것으로 끝납니다.
작가는 아름답고 긴 산문시같은 문체로 등장인물들의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면서 여러 사연들을 그려내고 개인적인 감상 역시 촘촘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실존 인물들이 어떠했든 상관없이 한편의 아름다운 문학작품. 영화도 2시간 남짓한 제한 속에 제법 잘 담아냈지만 아무래도 소설의 상당부분을 각색하면서 내용 면에서는 살짝 부족해진 듯도 합니다.
개인적인 취향이 잘 맞는 맨부커상 수상 작품이다. 게다가 2018년에 맨부커 수상작 중 10년 단위로 추려 몇몇 작품을 선정하여 '황금 맨부커상'을 투표했는데 그 중 가장 많은 표를 받기도 한 작품이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1996년에 제작되었으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9개 부문을 휩쓸기도 했다. 원작과 영화가 있을 때 소설을 먼저 보는 편이라 영화는 아직 보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소설보다 영화가 더 좋았다고 한다. 둘 중 혹평을 받는 글을 아직 발견하지 못한걸 보니 어느 쪽을 먼저 보아도 후회하지 않는 선택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은 2차 세계대전 종전 무렵에 화상으로 얼굴이 심하게 뭉개진 부상을 입은 영국인 환자 알마시와 그를 간호하는 캐나다인 간호사 해나, 연합군 스파이로 활동하는 카라바지오, 영국군에서 폭탄처리 전문가로 일하는 인도 시크교도 출신의 공병 킵을 중심으로 다루어 진다. 이들은 우연히 함께 모여 살며 새로운 인연을 맺게 된다. 알마시는 자신의 사랑이야기를 카라바지오와 킵에게 들려주고 해나의 헌신으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 이야기는 전쟁의 황폐함을 배경을 사랑의 상실을 겪고 고통받는 네 사람을 한 무대에 모아놓고 전쟁으로 황폐해진 세계에서 벗어나 과거를 극복하고 새로운 현실을 살고자 하는 인간의 군상을 나타낸다.
전쟁으로 인해 우연히 한 곳에 모이게 된 네 남녀가 텅 빈 곳에서 전쟁의 상실감으로 서로를 위로하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역할을 찾아 헤어지는 이야기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솔직히 거창한 타이틀에 비해 나에게 큰 만족을 주지 못한 작품이었다. 많이 지루하기도 했고, 끝이 허무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야기의 윤곽이 뚜렷하지 않아 몽상인지 현실인지 구분가지 않았다. 낮에는 뜨거운 지열이 이글거려 앞이 보이지 않는 느낌이고 밤이 되면 컴컴한 어둠속을 밝히는 촛불 하나로 앞이 보이지 않는 느낌이다. 어쩌면 그런 모호함이 이 책의 매력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원작. 우선 마구 나열되는 듯한 내용이라 읽기가 쉽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그 많은 나열같은 이야기들이 잘 수렴되는 것도 맞는듯 하다. 이 책의 이야기는 팟캐스트등에서 많이 이야기되고 있다. 전쟁의 시기에 사랑, 돌봄, 참혹함, 화해... 그리고 미래. 전쟁의 상처는 그 전쟁을 전후로 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 내지만....아무리 그래도 전쟁 만큼은 없어야 한다. 그야말로 그것은 잃어버린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