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냉장고가 컸다. 냉장고 속에 들어있는 음식 중에 상해서 버려지는 것도 종종 있었다. 그래서 냉장고 크기를 줄였다. 이제는 버려지는 음식이 없다. 뿌듯했다. 그것으로 낭비를 줄인다고 생각했고, 나 하나의 실천으로 환경이 오염되는 것도 줄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한 나는 정말 어리석었다.
이 책의 제목 <왜 음식물의 절반이 버려지는데 누군가는 굶어죽는가>를 보고 도대체 무슨 말인가 했다. 왜 음식물의 절반이 버려질까? 나는 소비자 입장에서만 생각했었다. 생산되고 유통되고 소비자의 손에 들어가기 전에 쓰레기로 버려지는 식품들에 대해서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유통기한을 넘겨 상하지도 않았는데 쓰레기로 버려지는 음식들과 소비자의 손에 들어갔지만 포장도 뜯기지 않은 채 음식물쓰레기로 유유히 사라져버리는 식품까지, 그 양이 실로 엄청나다.
예를들어 유럽은 매년 300만 톤의 빵을 쓰레기통에 버리는데, 이는 에스파냐 국민 전체가 먹을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전 세계 물소비의 4분의 1은 나중에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식품을 생산하는 재배지에 들어간다고 한다. 영국의 가정에서 매일 버리는 쓰레기는 포도 1320만 개, 빵 700만 조각, 감자 510만 개, 사과 440만 개, 토마토 280만 개, 바나나 160만 개, 버섯 140만 개, 개봉하지 않은 요구르트 130만 개, 소시지 120만 개, 햄 100만 조각, 자두 100만 개, 초콜릿 70만 개, 달걀 66만 개, 완성된 요리 44만 가지라고 한다. 영국인들은 해마다 자신의 몸무게에 해당되는 양만큼의 식량을 버렸다니 놀라운데, 이 식료품 가운데 40퍼센트는 아예 건드리지도 않았고, 적어도 10퍼센트는 유통기한이 끝나기도 전에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식량의 낭비는 고기와 생선에서도 마찬가지다. 고기의 경우 쓰레기의 양에서 20퍼센트밖에 차지하지 않지만, 가축의 사료로 주기 위한 곡물을 재배하는 땅은 낭비되는 경작지의 91퍼센트를 차지한다. 책 속에 첨부된 사진을 보면 파리의 헝지스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농산물시장의 생선쓰레기를 볼 수 있다. 그날 팔리지 않은 식품은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모습이다.
이 책은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톡톡한 역할을 했다. 지구가 오염되고 아파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눈앞에 펼쳐져 또렷이 보인다. 개개인의 노력도 물론 중요하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식개선, 노력과 실천이 필요하다. 이 책을 보면 개인이 무엇을 할지 방법을 알려준다. 하지만 무엇보다 전체적인 시스템이나 법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부끄러웠다.
그동안 내가 버린 음식물 쓰레기만 해도 엄청난 양이기 때문이다.
이것저것 충동적으로 구매해놓고 냉장고에 쳐박아 둔 채 유통기한이 지나고, 문드러지고 곰팡이가 피어서 바로 쓰레기통에 들어간 수많은 음식들..
내 돈 주고 내가 사서 내가 버리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할수도 있겠으나 이 책을 읽으면 차마 그런 뻔뻔한 소리를 하진 못할 것이다.
이 책은 어떤 사람들은 음식을 다 먹지 못해 내버리는데 왜 지구상의 반대편에선 하루에 한끼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속출하는가 라는 의문점에서 출발한다.
처음엔 '쓰레기 맛을 봐' 라는 영화를 제작하는 것으로 시작했으나 음식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알리기 위해 책으로도 제작되었고 이 책은 영화와 책을 합친 하이브리드적 성격을 띤다.
우리는 도대체 왜 음식을 이렇게 내버리는 것일까?
영화 제작자와 기자인 저자들은 음식이 생산되는 단계에서부터 포장, 운반, 마트에 진열되어 판매되는 순간까지 수많은 음식들이 버려진다는 것을 밝혀냈다.
경제가 충분히 발달하지 못한 개발도상국같은 경우엔 제대로 된 포장과 저장 시설이 없어 음식물이 상하는 경우가 많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선 규정에 맞지 않은 음식의 경우 아예 소비자들에게 팔 수가 없고, 마트에 진열된 음식들은 유통기한이 많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새로 들어온 음식들에게 자리를 내주기 위해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
환경운동가들과 함께 쓰레기통을 뒤져 그 음식들로 만찬을 차린 대목을 읽을 때는 나도 모르게 입이 떡 벌어졌다.
나도 음식을 버리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멀쩡한 음식들이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건 정말 죄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통기한이 다 되어 버리는 음식들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도 있겠으나 가격이나 기타 다른 여러 정황상 대부분의 마트에선 이런 것을 꺼린다.
심지어 쓰레기도 마트의 소유물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마음대로 가져가는 것은 법적으로 처벌을 받는다고 한다.
버려지는 음식들도 문제지만 농업 연료를 생산해 내기 위한 곡물의 소비도 문제가 되긴 마찬가지다.
이 책에서 처음 안 사실, 환경에 좋다고 생각한 바이오 연료(콩이나 옥수수 등으로 연료를 만드는 것)는 사람들이 먹을 곡물을 빼앗는 것이고, 연료 생산에 들어가는 비용과 물을 생각하면 오히려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재래식 연료에 비해 연소가가 낮으니 동일한 효율을 얻으려면 더 많이 태워야 하고 이것은 바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증가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바이오 연료 100리터를 만들 곡물이면 한 사람이 1년동안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양이라니 기가 막혔다.
이런 문제는 개인이나 어느 한 나라가 해결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다.
국제기구는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 것일까.
속이 터질듯한 답답함을 약간 풀어주는 해결책은 책의 뒤편에 나온다.
국제기구는 국제기구대로 할 일이 있으니 그들은 내버려 두고, 음식물의 낭비를 막기 위해 우리 개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과연 무엇일까?
곡물 부족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적당하게 구입하기, 육류를 적게 먹기, 적게 버리기 등의 방법이 제시되었고, 대량 사육에 대처하는 방법으로는 의식있는 소비, 양대신 품질, 원산지 정보 확인, 패스트푸드 멀리하기 등의 해법을 내놓았다.
마지막으로 식품 낭비를 막기 위해선 자주 조금씩 구입하기, 지역 제품 및 계절 제품 구입하기, 유통기한이 있으나 대부분의 제품은 이 기간보다 더 오래 간다는 기준을 두고 음식을 섭취하기 등의 방법이 있다.
내가 가는 마트에선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식품들을 반값에 파는 매대가 있다.
이런 경우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네덜란드의 어떤 마트에선 유통기한이 이틀남은 음식은 그냥 가져가도 된다는 아이디어를 냈다고 한다.
지금까지 유통기한이 긴 음식들만 찾던 소비자들이 이제는 폐기될 음식들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많이 퍼져 있지만 생산자와 소비자가 유통 구조를 거치지 않고 직접 연결되어 음식을 거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마트에서 음식 재료를 고를 때, 모양이 이쁘고 상태가 좋은 것만 찾았었는데 나와 같은 소비자의 구매 성향이 크기가 작거나, 모양이 이상하거나, 약간의 흠집이 난 음식 재료들을 쓰레기통에 갖다 버리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는 것도 깨달았다.
살기 위해, 또는 삶을 즐기기 위해 먹는 음식, 내가 먹지 않고 버리는 음식이 누군가에게는 정말 절실하게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진다면 음식물의 낭비는 줄어들지 않을까.
기상이변으로 인해 세계 곡물시장의 움직임이 심상치않다는 뉴스가 연일 방송되고 있다.
이로 인해 당장 식료품 가격의 인상뿐 아니라 동물들의 사료가격까지 인상되면서 우리는 우리들 식탁에 오르는 먹거리들을 장만하기 위해 더욱더 허리띠를 졸라매야만 한다.
그래서 소량의 음식물이 필요하더라도 가격이 싸다는 이유로 대형마트에서 대량구매를 이용하게 되고 '1+1'행사를 보면 당장 사용하지는 않더라도 지금 사두어야만 이득일것 같은 생각에 사로잡혀 바구니에 집어넣으며 오늘 뭔가 횡재한 기분이 들어 뿌듯해한다.
하지만 그렇게 구입한 음식물을 다 사용하지도 못한 채 유통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마음의 위안을 얻으며 한 가득 버리고 있으면서 우리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아직 잘 느끼지 못할 때가 많다.
아니 '음식 남기면 지옥에 가서 다 먹어야 한다'는 어른들의 가르침으로 약간 깨름칙하기는 하지만 유통기한이라는 강력한 방패막이가 있고 '가족 건강'이라는 최우선의 가치가 있으므로 우리는 이를 핑계삼아 음식물을 버리는 자신의 모습들을 정당화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이러한 우리들의 모습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음식물이 낭비되고 있는지를 알게 되면서 충격에 빠지게 된다.
이렇듯 이 책은 우리들에게 음식물이 우리들의 식탁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이 낭비되고 있는지 그 실상을 낱낱이 보여준 후 이로 인해 발생되는 여러가지 문제점들을 지적하며 우리들의 사고의 전환을 촉구한다. 그 후 건전한 음식물 소비를 위해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과 국가와 기업등이 정책적으로 할 수있는 일, 국제사회의 협력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제시하며 실천을 요구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사실은 음식물이 우리의 식탁에 오르기전에 무려 약 50%가 폐기된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유통기한'과 '판매기한'의 차이점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단지 우리들이 정한 규격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확시에 버려지고, 모양이 조금 이쁘지 않다는 이유로 또는 한 묶음의 음식물 중에 단지 상한 음식물이 한두가지 섞여 있다는 이유로 대형마트에서는 포장지도 뜯지 않고 버려지고.......
나 역시 음식물이 가득 전시되어져있는 대형마트 진열장이 익숙하고 모양이 조금이라도 이상하거나 흠집이 있으면 구입하지 않았던 평소 소비습관을 보면 결코 남 탓만은 할 수 없는 실정이었다.
또한, '유통기한'(이 기한까지 식품을 적절한 보관 조건하에 두면 특수한 특징을 유지하게 된다는 뜻)을 '판매기한'(쉽게 상하고 사람들의 건강에 문제를 일으킬 수있는 음식에 표기, 건강을 위해 판매기한 이후에는 절대 판매해서는 안됨)으로 인식하여 무조건 유통기한을 넘기면 음식물을 살펴보지도 않고 쓰레기통에 넣으면서 현명한 선택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었으니....
이러한 음식물의 낭비로 인해 지구의 다른 쪽 식구들은 기아에 시달리게 된다는 것은 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그 이외에도 음식물 경작으로 인해 소비되는 물의 양과 기후 온난화와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시선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럼 지금 우리가 지금 당장 음식물을 책임있게 소비하기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그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고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 책은 우리가 필요한 양만큼만 계획적으로 구입하며 지역농산물을 이용하도록 권유하고 있다.
이외에도 정책적으로 효율적인 보관, 운반, 포장 시스템으로 음식물의 낭비를 줄이고 이렇게 해도 남는 음식물은 효율적으로 분배하여 재활용할 수 있도록 제시하고 있다.
어찌보면 이 해결책들은 그리 새로운 것들이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 나와 이웃, 그리고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지구를 위해 이제는 조금이라도 음식물쓰레기를 줄이고 낭비를 막을 수 있는 생활습관을 길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