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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겪어보지 못한 직업군들에 대해 관심이 많다. 관심이라고 해서 특별한 건 없다. 내가 그 직업을 가졌으면 어땠을까 상상하는 정도. 하지만 그 범주에 간호사는 없었다. 태생 쫄보인 내가 환자의 목숨을 책임지는 중대한 일을 한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음이 첫째이고, 간호사를 겪어보고 만날 기회가 적었음이 둘째라고 할 수 있겠다.
책, 드라마 등 병원을 주제로 한 매체는 늘 쏟아져 나왔고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간호사가 ‘주’였던 적은 없던 것 같다. 그러던 와중에 북클럽에서 <나는 간호사입니다> 책을 만났고 심적으로 가깝고도 먼 미지의 직업군 간호사에 대해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간호사인 저자는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까. 의사와는 다른 이야깃거리가 있으려나
환자의 죽음에 절망을 느끼는 간호사, 민원을 받아 상처를 받고도, 몸이 아픈 와중에도 출근해야 하는 간호사, 서로 의지하며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간호사. 어린 시절 만나보았고 내가 생각했던 간호사와는 사뭇 다른 느낌의 간호사의 이야기가 등장했다. 책을 읽으며 연민을, 경외감을, 때로는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다.
간호사는 우리가 가진 직업과 비슷한 점이 많았다. 직접적으로 민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점, 여초 직업군이라는 점, 힘듦의 정도를 이해받지 못한다는 점 등등. 그래서인지 조금 더 감정이입이 되었던 것 같다. (북클럽 모임에서 할말이 참 많았다.)
저자는 간호사의 처우개선을 위해 목소리 내었지만 끝내 그 바람을 이루지 못했다. 심지어 간호직을 떠나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의 목소리에 보폭을 맞추며 차근차근 달려왔는데 그 결과가 사직이라니. 쭈욱 발이 미끄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쉬움, 울적함, 절망감이 물밀 듯 밀려들었다.
이렇게 목소리 내는 분들이 하나, 둘 모인다면 앞으로 상황은 점차 좋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도 직업의식을 가지고 투철히 싸우고 계시는 간호사 선생님들에게 존경을 표한다. 오늘도 힘내시길!! (그리고 우리도..)
되돌아보면 지금까지 읽은 의료진 관련 책들은 대부분 의사가 쓴 책들이었다. 의사로서의 희노애락을 담은 그들의 자서전은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있고, 못해도 일년에 열권씩은 신간으로 발매가 될 것이다.
그러나, 간호사의 입장에서 바라 본 병원은 지금껏 읽었던 의사들이 쓴 책에선 볼 수 없었던 이야기들이 담겨있었다. 묵묵히 뒤에서 환자들을 위해 애쓰는 그들의 이야기가 나에겐 좀 더 가슴찡하게 다가왔다.
첫째로, 간호사라는 직업의 고됨에 대해 생각해보게되었다.
3교대를 하며 화장실도 못 갈 정도로 바쁘고, 환자와 보호자에겐 폭언을 듣기 일쑤이며 심지어 동료들 사이에선 '태움' 문화가 있다. 사실 이 태움 문화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이해가되었다. 의사들은 인턴, 레지던트, 전공의 등 과정을 거치며 수없이 훈련을 받으나 간호사들은 임용이 되면 바로 1인분의 간호사 일을 해내야하고 그렇지 못하면 환자와 동료들에게 큰 폐를 끼친다. 그러니 서로에게 엄할 수 밖에 없고 '태움'문화가 만들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전국에 간호대, 간호학과가 그렇게나 많고 수많은 사람들이 나이팅게일 선서를 하며 신규 간호사로 사회에 나오지만, 그들의 직업 수명이 그렇게 길지 않은 이유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둘째로, 간호사 처우개선이 필요하다 여겨졌다.
의사들의 모든 진료는 진료명이 붙어 돈, 즉 '수입'이 되지만 간호사들은 병원 입장에서 '지출'일 뿐이다. 간호사를 줄이는 것이 병원 입장에선 이득이다. 그러니 간호사 수는 줄어들고 그 일은 남은 간호사들이 과도하게 나누어 가지게 된다. 과도한 업무에 지친 이들이 힘들어 파업을 하면 '가암히 생명을 책임지는 간호사가 파업으을~?!'하면서 전국 꼰대들이 출동을 해서 한마디씩한다.
더 충격적이었던건 의사들의 파업과 비교했을 때였다. 지금 의대 정원 확대를 반대하며 의사 총 파업이 진행중인데, 네이버 기사에, '감히 생명을 책임지는 의사가 파업을?!' 이라는 댓글이 그렇게 적을 줄이야 상상도 못했다. 간호사 파업땐 그렇게나 '감히'를 외쳐댔으면서. 심지어 지지합니다, 응원합니다. 라는 댓글이 줄을 잇더라. 간호사는 안되고, 의사는 되는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
셋째로, 이 문제는 결국 여초 직업이라서 받는 차별이라 생각되었다.
사실 간호사의 처우 개선이 힘든 이유 중 하나가 간호사가 여초직군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여성과 남성의 성별로 인한 임금 차별이 심한 나라 중 하나다. 남초 직군인 택배 기사, 택시 운전사, 배달 기사등에 대한 처우 개선은 꾸준히, 급격하게 이루어진다. 그러나 여초 직군인 조리사, 청소부, 간호사, 승무원등의 처우는 개선이 쉽지않고 그마저도 선심썼다는 듯 최저임금을 살짝 웃도는 수준으로나 인상을 해준다. 사회적인 시선은 말할 것도 없다.
간호사 선생님이라 불리기 시작한건 아주 최근의 일이다. 불과 오년전만해도 간호사는 언니, 아니면 아가씨였다. 저기요, 라는 호칭이 양호할 지경이었다. 누가 남의사에게 오빠, 아저씨라고 부르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학교에 다닐 때도 유관순 누나는 들어봤어도 안중근 오빠는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아직도 우리 대한민국 사회는 숨쉬듯이 차별과 하대가 만연하다. 간호사의 처우 개선은 최종적으로 인권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책을 읽고 나니 간호사라는 직업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어 이렇게 구구절절 적어보았으나, 사실 책에는 간호사라서 힘든 이야기보다 눈물 짓게 만드는 환자들의 이야기가 훨씬 더 많았다. 인간의 삶은 짧고 허무하면서도 그렇기에 아름답단 생각을 하게되었다. 혐오가 만연한 사회이지만 그래도 그 안에 숨어있는 사람들의 인간적인 따뜻함을 찾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변호사 검사 판사 교사 의사..
이런건 흔히 말하는 '사'자 직업 반열에 있다.
간호사는 그런거없다.
나에게 간호사분들은 피곤한 기색없이 매번 그러셨던거같은데
대체 그런분들이 그런 높은 업무강도로 시달리고
서로들끼리 못잡아먹어 안달이고
우리는 왜 이런 세상에 잇는걸까.
저분들은 왜 이런 세상에서 간호사라는 직업으로 살고계신걸까
그런 생각을 하게되고, 공감하게 되는 책이다.
크게 어렵지 않고 술술 읽혀서 출퇴근길에
잘 읽었다.
그리고 요즘같은 때에 또 너무 감사하다.
활활 타는 이브닝 근무를 마치고 집에 와서 읽다가 새벽내내 울다 잠든 기억이 납니다.
메르스 시기를 이겨낸 김현아 간호사님의 얘기가, 비단 전염병 상황뿐만이 아니라 평소에도 거의 한계까지 밀어붙여져 일하는 우리네 간호사들의 모습을 담고있어요.
코로나 판데믹 상황에서 한번 더 읽고싶지만 정신적으로 힘들어 손이 선뜻 안가네요.
간호사의 처우 개선은 대체 언제쯤일지? 응급상황이 터지면 담당 환자수가 너무 많아서 나머지 환자는 뒷전이 되는... 나머지 환자가 제발 무사히 있기만을 바라며 다른환자의 응급처치를 하는 이 상황이 대체 언제쯤 나아질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답답해져만도 옵니다
병원에서 일하는건 보람찬 상황도 분명 있지만 트라우마적 상황이 더 많은것같아요
저는 4년 좀 안되게 일하고 지금은 퇴사후 휴직중이지만 아직도 병원 악몽을 꿉니다
모든 간호사님들께 존경을 바치며 우리 힘내요..
창문을 열면 파란 하늘이 나를 반겨준다. 헐벗은 산의 나무들이 푸른 잎을 매달고 있다. 꽃이 피었고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의 함성이 들린다. 너희, 빨리 학교 가고 싶지? 씽씽이를 타고 단지 앞을 달리며 웃는다. 택배 차가 하루에도 몇 번씩 들어온다. 제목에 끌려 기사를 클릭했다. '간호사 출신 작가 김현아, 드라마 집필 접고 의료 지원 위해 대구로'
21년 동안 중환자실 간호사로 살아온 김현아의 이야기였다. 메르스 사태 때 그가 있던 병원에서 메르스 확진 환자가 사망했다. 즉시 14일간 코호트 격리 상태로 중환자실에서 싸워야 했다. 그때 겪었던 기록이 신문 지면에 실리면서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숨도 쉬기 버거운 마스크와 방호복을 입고 중환자실에서 사투를 벌였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최초 메르스 사망자 이외에 단 한 명도 그곳에서 메르스 확진 환자가 발생하지 않은 것이다.
그의 글이 세상에 알려지고 유명해졌지만 간호사 업무를 소홀히 할 수 없었다. 근무를 하면서 인터뷰와 강연 요청에 응답했다. 간호사라는 직업과 처우에 대해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환자를 살리겠다는 사명감이 분명 존재했지만 그는 후배 간호사가 환자 가족에게 폭행을 당할 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무력감으로 간호사를 그만두었다.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는 간호사로서 살아왔던 그간의 기록이 담긴 책이다.
의료보험비를 내지 못해 병원에 갈 수 없었던 엄마를 위해 간호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중환자실을 전담하는 간호사가 되어 그곳에서 만난 환자의 일화와 보낸 시간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내 환자'라고 김현아는 부른다. 열악한 처우와 모든 걸 돈으로 생각하는 병원 경영에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내 환자'를 살리겠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를 읽기 전까지는 알 수 없었다. 간호사의 업무가 어디까지인지.
중환자실에서 그들은 무적이 되어야 했다. 신입 간호사가 들어와도 업무 파악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인원을 증원해도 모자랄판에 병원은 경영 논리를 앞세워 간호사 인원을 줄였다. 경력 간호사가 그만두는 걸 좋아하기도 했다. 인건비 부담 때문이었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근무를 해서 환자에게 먹여야 할 밥을 자신의 입으로 가져간 간호사. 폐기물 쓰레기통 옆에서 달걀 한 알을 씹지도 못하고 삼킨 간호사.
죽음과 삶이 동시에 공존하는 중환자실에서 만난 환자들의 이야기는 알 수 없는 미래가 아닌 지금 여기에서 충실히 살라고 말한다. 출근하기 위해 버스로 달려가다가 사고를 당하고 교통사고로 아이를 먼저 떠나보낸다. 저승사자와 맞서 싸우는 김현아가 바라본 중환자실에서의 죽음의 모습은 처참했다. 돈 때문에 죽어 가는 부모 앞에서 싸우는 형제. 죽음이 임박해 옴을 알고서 같은 편이 되어 달라는 할머니.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어머니.
김현아는 메르스 코호트 격리 기간 중에 자신의 어머니를 대구로 보냈다. 그 일로 대구에 마음의 빚을 진 게 있다고 하면서 대구로 의료 지원에 나서겠다는 신청을 했다. 드라마 집필도 멈춰 두었다.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를 읽은 사람은 알겠지만 그는 노련하고 능숙한 간호사였다, 아니 간호사이다.
간호사란 직업은 끝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환자들을 열심히 돌보면 돌볼수록 점점 자괴감이 커져가는 직업 같았다. 어쩌면 자괴감이란 무슨 일이 있어도 자기가 끝까지 할 일을 끝까지 해낸 사람들만이 느끼는 감정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가 전체가 위기였던 메르스 때 내가 중환자실에 남았던 건 병원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내가 중환자실에 남은 이유는 오로지 그곳에 내가 돌보던 내 환자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른 많은 간호사들도 나처럼 자기 환자들을 끝까지 지키려 각 병원에 남았다. 메르스에 감염되어도 그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던 그곳엔 간호사들의 '희생'이 가득했다.
(김현아,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中에서)
끝까지 환자를 지키려고 했던 김현아는 다시 간호사가 되어 대구로 간다. 자괴감 때문에 간호사를 그만두었던 그였다. 어떤 이들에게 자괴감은 자신의 일을 정당화하기 위한 말이었다. 책임지지 않기 위해서 하는 그럴듯한 말로써 자괴감이라는 말을 쓰곤 했다. 김현아는 자괴감의 뜻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끝까지 해낸 사람들만이 느끼는 감정'이 자괴감인 것이다. 누가 자괴감이란 말을 함부로 쓰면서 책임을 떠넘기고 진실을 왜곡하는가.
죽음 앞에서 한없이 무력해지고 약해지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 삶의 정의를 곱씹게 만드는 책,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 삶이란 알 수 없다 와 모르겠다의 반복이다. 무엇도 장담할 수 없다도 추가한다. 모호한 세계를 뚫고 나갈 수 있는 힘이란 나보다 우리를 생각하는 마음이다. 단단하게 살 수 있었던 건 누군가들이 베풀어준 호의 때문이었다. 지금은 마음의 빚을 갚을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