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노 저
임솔아 저
애나 렘키 저/김두완 역
천선란 저
백온유 저
김호연 저
꽤나 흥미로워 보이는 책을 발견했다. 10년을 방에 틀어박혀 살았던 한 남자의 이야기- 성공담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직도 방안에 있는 사람도 아닌, 이제 막 방을 탈출하게된 실제 은둔형 외톨이의 이야기이다. 무겁지 않은 표지 일러스트와 타이틀에 읽기 시작한 책 <어쩌다 히키코모리, 얼떨결에-10년> 은 세상을 바꾸겠다는 의지나 성공에의 열망만큼 사회적으로 대단한 성취라고 는 할 수 없지만, 스스로 절망에 빠져 세상과 담을 쌓았던 자신의 10년을, 자신의 '의지'로 조금씩 변화한 굉장한 모습을 재치있게 담아낸 책이었다.
저자소개 쓰는 것을 힘들어했던 게임 폐인, 자존감 제로, 침대와 자웅동체, 심야인간, 망상의 낙천주의자....
10년간의 은둔형외톨이 생활과 여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의지를 기록한 이 책으로 저자는 은둔형외톨이에서 제대로 졸업,
다른 은둔형외톨이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자신에게 다가온 또다른 희망을 바라본다.
외톨이들은 혼자일 때는 외롭고, 함께일 때는 초조하고 불안하다. 결국 차악인 외로움을 선택한다. 사방이 차단됐으니 그들은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가 없다.
...
나뿐만이 아닐 텐데, 밖으로 나가고 싳어하는 사람이 세상에 수없이 많을 텐데...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이렇게 썼다.
사람들은 어떨 때 좌절하게 될까? 그리고 그 좌절을 어떻게 이겨낼까? 100명이 있다면 100명의 사람들이 모두 다른 기준과 다른 방법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상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세상은 '성공한 누군가'에게 열광한다. 세계에서 가장 부의 세습이 많이 이루어지는 한국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열정과 패기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를 희망의 증거로 삼아 '부'와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에 대한 어느정도 편향된 관심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그 반대의 사람들은? 사회 부적응자이거나 우울하거나,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힘이 약한 다수의 사람들은 조용히 그리고 외롭게 어딘가에서 존재하고 있다.
<죽고싶지만 떡볶이는 먹고싶어>라고 이야기했던 가벼운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 <센서티브> 처럼 남들보다 조금 더 예민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아지는 이유는 '외롭게 존재하던' '다수의 누군가'들에 대한 위로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절망에 빠지고 무기력이 극대화 되면 사람들은 세상과 담을 쌓는다. 극단적으로는 세상을 떠나버리기도 하지만 그럴 의지도 없는 사람이라면 세상과 인연을 끊는 방법을 시도한다. 자신의 모습은 스스로 볼 수 없으므로 세상이 나에게 어떤 말을 하지 않으면 지금 자신의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자신을 소외해버린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였던 저자는 관계에 대한 실망 그리고 직장에서의 몇 번의 실패 (라고 정말 간단하게 써놓기는 했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로 자신을 더이상 상처주지 않기 위해 '방구석'으로 숨어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담배와 게임, 잠을 벗삼아 10년을 보낸다.
어느 날, 친구가 내 방으로 찾아와 물어본다.
"네가 그 오타쿠인가, 십덕후인가 그런거냐?"
"아니, 난 히키코모리라는 거야"
"어쨌든 방 안에서 은둔해서 살고, 막 일본 만화보고 인형 베개랑 사랑에 빠지고 이러는 거냐?"
"아니 난 히키코모리라고 은둔형 외톨이 같은 거야. 인형하고 사랑에 빠지진 않아"
"암튼 둘 다 방안에서 거의 안 나오고, 게임만 하고, 만화 보고 이러거 아니야? 똑같은 거 아냐?"
"음, 아니, 차이가 있다면 그들은 자신이 즐거워하고 재미있어 하는 걸 하지. 난 딱히 좋아하는 것도 없고, 뭔가를 하면서 행복해하지 않아. "
"그럼 장난감 모으고 인형이랑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보다 못한거네?"
"..."
오랜만에 와서 이렇게 까지 알려주고 고맙다, 개새끼야.
10년, 3650 일- 아니 그 보다 조금 더, 긴 시간을 방에서 보낸다면 어떻게 될까? 은둔형 외톨이라고 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폐인, 사람들과의 소통의 단절, 그리고 이를 갑갑하고 한심하게 여기면서도 식사를 챙겨주는 부모와의 불화- 우울과 공상, 폭력... 솔직히 안좋은 이미지로 점철되어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 책을 보고있노라니 왜 은둔형외톨이가 방구석으로 숨어버렸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어떤 생각들을 하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냥 마냥저냥 아무 대책없이 하루하루를 기계처럼 보내지만 그 속에는 나름의 고뇌가 있고, 고민이 있다. 단지 세상으로 나올 용기가 없고 타성에 젖은 생활을 어떻게 해쳐나갈지 답을 잃어버린 것일 뿐-
<스파이더맨:홈커밍>이라는 영화를 보면 벌처라는 악당이 나온다. 처음부터 악당은 아니었다. 벌처는 뉴욕이 전쟁으로 파괴되자 전 재산을 털어 뉴욕을 재건할 기계를 사고 인부들을 고용했다가 권력층때문에 그 일자리를 빼앗기고 만다. 잘해보려고 한 일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자신과 가족을 한순간에 길거리에 나앉게 만든 원인이 되고 만다. 가족을 아끼고 사랑하는 중년 가장이었을 뿐이었는데, 주위 환경과 사람들이 계속 힘들게 만들면서 태어난 악역, 어쩌다보니 이렇게 되어버린 악당.
내가 히키코모리가 된 이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 왜 10년간이나 나오지 못했는가?
...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폐암에 걸린 사람이 암을 극복했다면, 극복했다는 이야기가 중요한 게 아닐까요? 폐암에 왜 걸렸는지, 투병 기간 이야기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사실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내가 10년이나 이러고 있었떤 것은 비겁한 핑계와 변명 때문이라는 것을.
'커다란 이유가 있을거야'하고 기대하신 분이 계셨다면 죄송하다. 이게 솔직한 답변이자 진심이다.
어쩌다 보니 편하고 안전한 장소인 방에 들어가게 되었고, 이 생활을 즐겼다.
그렇게 히키코모리가 되었고,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다행인 것은 저자는 나름 이야기하는 '친구'도 있었고, 어머님을 위해서 '빨래'정도는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기도 했지만 일년에 한번 명절에 '히키코모리'임을 들키지 않기 위해 (혹은 부모님을 위해) 자신을 정비했고, 히키코모리들의 모임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물론 그 모임은 다시 각자를 철저히 고립시키면서 실패)
그래서 방안이 아닌 방 안속 더 깊은 심연으로는 떨어지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살짝 추측한다.
책은 히키코모리의 생활과 생각, 그리고 사소한 어떤 계기들로 인해 꿈이 생기고 '밖으로 나가자'라는 결심을 하게 되고 이를 통해 한걸음 한걸음 밖으로 향하는 저자의 모습을 솔직하게 담아낸다. (그 계기는 왠지 이 책의 클라이막스 일것 같아 스킵!) 방을 탈출하고자 하는 '의지'를 반영한 메모들을 묶어 책으로 낸 것이기 때문에 우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위트가 있고 그 속에서 공감할 만한 부분이 곳곳에 존재했다.
단순히 집에 틀어박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만 히키코모리일까? 사회생활을 하면서 낮아진 자존감에 심하게 외로움을 타는 사람, 스스로 나약하다고 자책하며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어 숨으려는 사람, 타인에게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남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은밀히 숨어드는 그들만의 공간이 있다면, 그곳이 집이든 차든 상관없이 그들 또한 히키코모리라고 생각한다. 방에 있는 시간이 제일 많았지만, 타의로라도 사회생활을 하려 노력했다. 그랬다고 해서 은둔의 삶에서 벗어났다는 의미는 아니다. 물론 잠시 착각은 했다. 사회로 나오고 사회의 일원이 됐다고 믿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중력에 이끌리듯 방으로 다시 끌려 들어왔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웜홀처럼 방으로 들어왔더니 시간이 휙 지나가버렸다. 혹시 주위에 이런 사람들이 보인다면 ,도움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들을 조금은 너그러운 시선으로 봐주었으면 한다. 10년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10년을 그 안에서 머물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나름의 사연이 있고, 상처가 있다. 상처가 너무 아픈 것뿐이다.
그런데 얼마 전, 친구 J가 술이 얼큰하게 취해 뜬금없이 나에게 추억의 질문을 던졌다.
“넌 장래 희망이 뭐냐?”
나는 한참 생각하다 “지금이 장래 아니냐?”라고 나름 멋들어지게 받아쳤다.
친구 J는 순간 움찔 놀라면서도 지기 싫은 듯 이렇게 받아쳤다.
“그러네. 우리에게 장래는 지금이 순간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너 장례 치를 때까지 이러고 살면 어떡하냐.”
나는 미식가였나 보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부모님 등골을 빼먹고 있으니….
우리는 모두 백마흔여덟 번 마음의 상처를 받고, 남은 자존심과 마음까지 크게 다칠까 공포심과 두려움에 휩싸여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열두 척, 세상을 피해 도망만 다니는 내 안의 바닷속 어딘가 있는 이 열두 척의 배. 내가 죽기를 각오하고 목표를 향해 세상이라는 녀석과 한 번 부딪쳐 싸워볼 만한 무기. 내게 열두 척의 배는 시간과 같았다. 열두 척의 배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있다고 생각한다. 이 배들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질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게임과 은둔의 생활로 도망치지 말자. 열두 척의 배를 더 이상 방치하지 말자. 이제 나만의 열두 척을 꺼내자. 결심해본다. 저 멀리서 장군님의 음성이 들려오는 듯하다.
“만일 그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저자가 변화하겠다!고 결심할 수 있었던 건, 누군가의 힘이 아닌 저자 자신의 '의지'였다. 한결같이 자식을 걱정했던 부모님의 모습도, 친구들의 배려도, 지인들의 관심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어떠한지에 따라 180도 달라질 수 있다. 10년의 타성을 극복하고 자신을 바꿀 용기를 냈다는 점에서 이미 저자는 무언가 하나를 이뤄낸 것이 아닐까?
자신과 같은 은둔형외톨이 들에게 공감과 위로, 작은 희망의 씨앗을 주고 싶어서 쓰기 시작했다는 책- 굳이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정도면 책으로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자신만의 역사를 써 내려가는데 있어서, 어쩌면 실패는 불가피하다. 다른 인생길을 알려준다 하더라도 분명 다른 안 좋은 일이 벌어져 다른 실패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아무리 훌륭한 업적을 쌓거나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진 분들이라 해도 나름의 실패를 경험했다. 그 실패는 그분들을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하게 하고 이끌어준 동력이었을 것이다.
실패에 무릎 꿇으면 실패로 끝나지만, 다시 일어선다면 성공을 향한 성장이 될 것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 누구도 일으켜 세워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힘내라고 응원해줄 수는 있다.하지만 결국 일어서는 힘은 자신의 의지와 결단, 용기가 합쳐질 때 가능하다.
내가 만약 과거로 돌아간다면 어린 내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재주야, 넌 앞으로 많은 시련과 실패, 좌절을 맛볼 거야. 겁이 맣아서 그런지 다행히 그 때마다 극단적인 생각은 안하더라. 잘했어!
대신 '이 모습은 내가 아니야'라고 생각할거야. 너 자신을 부정하고 잘나가는 척, 괜찮은 척 연기도 하게 돼. 시간이 지날수록 그 거짓된 모습에 움츠러드는 삶을 선택하고, 스스로 고립돼 갈거야.
괜찮아!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깨달았어. 몸을 사리는 일은 살아 있지 않은 것과 같다는 것을. 아무거도 아닌 자신을 발견하고 내려놓고 인정하는 날, 네가 원하는 걸 깨닫고 비로소 목표가 생길거야.
그날이 오면 우리 약속 하나만 하자. 더 이상 부정적인 말로 자책하지 않고, 희망적인 미래만 믿으며 네 모든 에너지를 거기에 쏟겠다고 말이야. 잊지마, 네가 부질없다고 생각하는 시간과 좌절하고 고뇌하는 시간 모두, 비로소 스스로 일어나게 하는 큰 힘이 되리란 걸."
자신의 꿈을 향해 앞으로 나가는 저자의 모습을 나도 저 먼발치에서 응원하면서 지켜보고 싶다.
그리고 나도 조금 더 힘을 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