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노 저
임솔아 저
애나 렘키 저/김두완 역
로랑스 드빌레르 저/이주영 역
천선란 저
백온유 저
이 책을 골라든 것은 아마도 오래 전에 읽은 강원대학교의 김선희교수의 <철학자가 눈물을 흘릴 때; http://blog.yes24.com/document/5689789>를 읽은 기억이 남아있었던 모양입니다. 철학적 상담을 통하여 현대인의 마음의 병을 치료하려는 철학상담치료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김선희교수는 그 꼬투리를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철학적 사유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괴로운 날엔 쇼펜하우어>는 싱가포르에 있는 프랑스 국제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셀렌 벨로크 교수가 ‘우리의 삶을 바꾸기 위해 위대한 철학으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것에 관심을 가져달라’ 뜻에서 썼다고 합니다. ‘철학은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알게 하면서 우리의 삶을 개선하려는 야망 같은 것을 가진다’는 철학의 본질에 기반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 책의 독자들은 새로운 철학적 이론의 도움을 얻어 자기 문제들을 해석해보고 또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 마침내 그 문제를 해결해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도 했습니다.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방식을 바꾼 다음에라야 우리 삶과 그 의미라는 더 큰 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는 전제를 두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1. 진단하기, 2. 이해하기, 3. 적용하기, 4. 내다보기 등의 순서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진단하기의 과정에서는 우리가 무엇 때문에 고통을 받는지, 즉 우리의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이어서 파악된 문제를 이해하는 단계인데, 여기에서 혁신적인 철학적 테제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즉 새로운 시선으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적용하기의 단계에서는 인간에 대한 새로운 견해가 행동하고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어나갈 수 있도록 행동에 옮김으로서 본격적인 문제해결 과정에 돌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끝으로 내다보기의 단계에서는 형이상학적이고 사변적인 철학적 견해를 통하여 삶을 더 총괄적이면서도 거시적인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고 합니다. 즉 일상에서 자신을 관리하게 된 것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 단계라 하겠습니다.
저자는 “철학은 ‘영혼의 약’이다”라는 플라톤의 말을 인용하면서 약의 부작용을 미리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미리 경고합니다. 아마도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극약처방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약물학의 시조 파라켈수스가 남긴 ‘모든 것은 독이며 독이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용량만이 독이 없는 것을 정한다.’라는 금언처럼 부작용이 없는 만큼 사용하면 극약도 약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쇼펜하우어는 ‘산다는 것은 고통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자체로는 실로 고유한 가치가 없고, 삶이 움직이면서 유지되는 것은 필요와 환상에 의해서다. 그것이 멈추는 순간 실존의 빈곤과 공허는 명백해진다(‘소품과 부록’)”라고 말입니다. 행복이나 사랑도 그저 고통을 누그러뜨리려는 희망에서 오는 환상이라고도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이어가는 이유는 살고자 하는 의지의 분출이라고 보았습니다. 그것이 자유의지이건 맹목적인 충동이던 간에 말입니다.
결국 삶의 고통에서 헤어 나오려면 행복이나 사랑이라는 환상에 묻어 잊어버리려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맹목적으로 살고자 하는 의지에 휘둘리지 말고 주어진 상황을 객관적으로 관조함으로서 새롭게 인식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더하여 결핍을 보충하려는 의지에서 생기는 욕망으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점에 대하여 쇼펜하우어는 ‘사물들을 멀리 놓는 것만 아니라 가까이 앞에 놓음으로써 우리는 모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 사물들을 순수하게 관조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고양시킬 수 있는 것이다.’(‘의지의 표상으로서의 세계’)라고 설명합니다.
자신의 삶을 관리할 수 있게 된 단계에서는 살고자 하는 의지를 부정하는 것으로 삶을 제대로 즐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벼르고 벼르던 쇼펜하우어에 입문했다.
철학을, 현실에서 겪는 문제의 원인 분석과 해결책 제시라는 관점으로 엮은 시리즈의
마지막 책이다.
책의 큰 틀 (진단하기, 이해하기, 적용하기, 내다보기)을 따라 인간으로 살면서 숙명적으로 느끼게 되는 고통과 괴로움의 원인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그 지옥같은 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지 쇼펜하우어의 세계관을 통해 알아보게 된다.
우선, 인간의 삶을 진단해본다.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 사는 이상 실존이 주는 고통을 피할 수 없다.
우리가 추구하는 모든 가치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의미가 변화하여 언젠가는 더 이상 나에게
같은 강도의 절실함을 주지 못하고, 그러한 경험이 반복될 수록 공허함과 무상함은 커져간다.
가장 절실한 목표를 달성하여도 당장 그 다음 목표를 향하는 우리의 (쇼펜하우어에 의하면 사실 철저하게 본성에 의거한) 의지와 욕망은 끝을 모른다.
다람쥐가 챗바퀴를 돌듯, 이 덧없음을 의식하지 않고 살다가 이런 현시을 직시하게 되는 순간
삶의 원동력을 잃게되는 것이다.
우리는 어째서 이러한 절망 속에서 살게 된 것일까.
쇼펜하우어는 인간은 본능적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싶어하고, 생명 유지의 매커니즘이 현재를 부정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인만큼 (성장),
표면적으로는 이성으로 포장된 우리의 '열심히 살고 싶은 마음'도 사실은 자연적인 본능에 불과하다고
이해한다. 자유롭게 선택한 것을 향해 나아간다고 생각하는 우리는 본능과 자연법칙의 노예이며,
우리 뜻대로 이뤄낼 수 있는 영원한 행복이나 평화는 없다.
이런 절망의 굴레 속에서도 고통없이 삶을 사는 방법이 있을까.
이에 대한 쇼펜하우어의 조언은 더 '자기관리'를 하라는 여느 해결책들과 다르다.
즉, 나를 잠시 벗어나 객관적으로 삶의 양상을 조망하는 것.
우주의 차원에서 일개의 개개인에 연연하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라는 것이다.
철학적 관조와 예술의 감상은 우리가 구할 수 없는 것을 꽉 쥐고 놓치않으려는 욕망에서 벗어나
순수한 감동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매개체이다.
자못 추상적이고 두루뭉술한 이 아이디어를 내가 처한 상황 속에 직접적으로 연결하면
이해가 쉽다.
지금으로선 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남편의 영원한 부재를 (죽음 또는 결별의 이유로)
'내 스스로'가 되어 온전히 겪고 슬퍼한다면 나는 고통 속에 미쳐 죽어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쇼펜하우어는 내게 나의 충동과, 욕망에 매몰되지 말고 객관적이고 담담한 시선으로
상황을 관조하라고 말한다.
내가 만지고 냄새 맡을 수 있는 그의 물질적인 형상을 잃었을 뿐,
내가 사랑한 그의 본질은 언제든, 그 누구도 소유할 수 없는 형태로 영원 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나는 슬퍼할 일도, 억울해 할 일도 없는 것이다.
현재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지금에서야 어려운 사고방식이지만, 그 때가 된다면 유일한 안식처가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괴로운 날에' 읽어야 하는 쇼펜하우어라고 무릎을 탁친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