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웃음의 복원
《허삼관 매혈기(許三觀 賣血記)》는 제목 그대로 허삼관이라는 한 사내가 집안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피를 팔아 해결하는 비극적 연민의 이야기, 격정의 드라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극적 삶의 여정은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무겁게 다가들지 않는다. 소설 전반을 통해 눈물과 웃음을 교차 반복시키는 작가 위화의 치밀한 서사 전략이 성공적으로 녹아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 연민과 격정을 자아내는 비극적 삶의 내용을 희극적인 말놀음으로 버무리는 구조는 허 삼관의 피의 역정 이야기를 역설적으로 윤택하게 한다. 또 가벼운 장난이나 농담이 아닌 삶의 극한적 인 고통을 체험한 사람들의 웃음이기에 그 희비극적 웃음의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고 더욱 값지다. 또 그것은 삶의 실재로부터 유리된 채 가상의 몽중보행으로 치닫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지형에서 볼 때는 잃어버린 웃음의 일종이다. 어느덧 우리 삶의 양지에서는 사라진 듯 보이지만, 그래서 그늘에 한없이 가려진 웃음이지만, 그 그늘에 숨길 수 없는 희비극적 삶의 진실이 스며 있음을 우리가 어찌 부정할 수 있을 것인가. - 우찬체(문학평론가, 서강대 교수)
평등에 관한 색다른 이야기
작가가 머리말에서도 밝힌 바 있거니와 이 소설은 평등에 관한 이야기이다. 마오쩌둥이 집권한 이후 중국 공산당 정부가 그토록이나 오랫동안, 집요하게 희구했던 이념. 그러나 결국에는 피빛 이상으로 머물고 만 꿈.
《허삼관 매혈기》에서 작가가 노리는 지점은 바로 이 자리이다. 하지만 여간해서는 작가가 의도하는 바를 알아채기 어렵다. 작가 위화는 격동의 중국 현대사 한 가운데에 평범하기 그지없는 사내를 던져놓고 그가 걸어가는 삶의 여정을 따라 천천히,??평등??이라는 이상(理想)이 지닌 현실적 한계와 죽음으로서만 다다를 수 있는 꿈의 비극성을 이야기한다.
아는 것도 별로 없고, 아는 사람도 많지 않으며, 자기가 살고 있는 작은 성 밖을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길을 잃지 않는 사람이 있다. 가정이 있고 처와 아들이 있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밖에 나오면 주눅들어 지내면서도 자기 자식과 마누라 앞에서만은 자신만만한 사람. 이 사람은 머리가 단순해서 잠을 잘 때 꿈은 꾸더라도 몽상을 하며 살지는 않는다. 이 사람의 이름이 ??허삼관??일 수 있다. 그는 일생 동안 평등을 추구하였으나 안타깝게도 늘그막의 그가 발견한 것은 자신의 몸에서 자라는 눈썹과 좆털 사이의 불평등이었다. 그리하여 소설 마지막에서 그는??자못 근엄하게??푸념한다.
??좆털이 눈썹보다 나기는 늦게 나도 자라기는 길게 자란단 말씀이야.??
주제의식에 가위눌리지 않으면서도 할 말은 다 하는 기술, 가히 압권이다.
동아시아적 서사의 현대적 변용
84년 등단한 이후 장편소설 《살아간다는 것》을 발표하기 전까지 위화는 중국 3세대를 대표하는 포스트모던 작가였다. 그러던 그가 중국 대륙의 역사성과 본토성이 체현된 글쓰기 방식으로 획기적인 변화를 꾀한다. 이 소설《허삼관 매혈기》는 동아시아적 서사 기법을 현대적으로 변용한 구체적 결과물이다.
글쓰기에 있어서의 숙련이란 작가로 하여금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글을 쓰게 하는가 하면, 동시에 치명적인 어려움들을 은폐시키기도 한다.
나는 줄곧 스스로에게 오늘날의 방식으로 글을 쓰도록 강제했다. 그로 인하여 현대적 서술 방식에 대 해 점차적으로 정통해짐에 따라 스스로의 글쓰기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되었고, 서술상 최대한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글쓰기가 수년간 지속되다가 어느 날 생생한 사실 속에서 마음이 움직여지는 느낌을 받고 나 서는, 갑자기 확신에 찼던 나의 서술 방식이 생생한 현실에 접근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발견하 게 되었다. 바로 내가 가슴 속에 새겨 두었던 글쓰기 방침에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어떻게 하면 내가 점점 더 뜨겁게 사랑해 가는 것들을 생생하게 써낼 수 있을까? 이 문제로 나는 한동안 고민했다. 그리 고는 장편 《허삼관 매혈기》를 쓰기 시작했다. 이 작품을 쓰는 동안 나는 마침내 오늘날 나의 이상을 글쓰기 속에서 실현시켰다. -〈중국어판 초판 서문〉중에서